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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는 어떤 책을 만나게 될까, 서재에 들르는 달뜬 기분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지. 평가단을 하기 전에도 신간 목록을 훑어 보고, 읽고 싶은 책을 메모 해두는 습관이야 있었지만 막상 평가단을 하고난 후 신중해지자는 책임감은 실로 큰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내 취향의 범위를 벗어나본 적 없는 지극히 이기적인 선별이지 않았냐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어지지만, 그래도 나름으로의 고심은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읽기 전의 호기심만으로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책의 강점을 소개하며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본 책의 리뷰들이 알라딘 서재에 들르는 독자들에게 얼만큼의 영향을 주었는지는 애매하거나 미미했을 것이다. 다만 한 권의 책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제 각각의 생각을 쏟아내고 공유할 수 있는 나눔의 느낌은 참으로 근사한 일인 것만은 확실하다.
책이 독자의 눈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또 다른 역사가 펼쳐지는 것이란 말이 새삼 실감나는 시간들이었다.
더불어 책이 선정되고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또 리뷰를 써낸 후의 물밑 작업들을 묵묵히 성심으로응원하며 도와주신 파트장님, 담당자님의 노고에도 감사드리고 싶다.
- 다섯권을 꼽다
<마흔의 서재>
도시에 살던 이가 다른 어딘가로 내려가 살게 되면 소위 ‘은닉’이란 표현을 쓴다. 이 말은 어쩐지 이상하다지 않을 수 없겠다. 타자 중심의 말이니까. 본인 스스로에게는 그곳이 어디든 어딘가로부터의 귀퉁이가 아니라 언제나 중심이 아니겠는가. 도시에 살지만 언제나 누군가의 조연이나 주변부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어디로든 가도 오롯이 자신만의 주인공인 삶을 사는 인생이 있다.
<마흔의 서재>를 읽으면서 작가의 느린 걸음으로 같이 두런두런 따라 걸으면서 사색하고, 언제라도 늦지 않았음을 일깨우는 담담한 다독임은 실로 큰 용기를 주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전형적이지 않은 구성이라 읽는 내내 많은 호기심이 자극되는 책이었다. 여백의 시간, 혹은 내가 생각하지 않아본 세계의 초시계가 째깍째깍 울리는 정적을 일깨우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현실을 벗어난 미지의 공간을 탐닉하고, 작가의 손에서 구현된 신비로운 예술품들이 이 책 안에 가득하다. 나무인형과 그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실타래 엮어내듯 밤새도록 듣고만 싶은 의외의 상상력으로 넘실대는 몰입의 책이었다.
<소설의 기술>
밀란쿤데라가 소설에 대해 깊이 통찰하여 얻어낸 면모는 한 편의 소설처럼 유려하다. 전에 없던 시선과 날카로운 진단들이 그의 소설가로서의 업적도 새삼 함께 끌어 올려주었음은 분명한 것이었다. 한가지 표정과 관점만을 말하지 않고 다만 어느 순간을 말할 때라도 그의 사고는 다양성을 이야기 한다. 소설에 대한 기술적 혹은 미학적 요소들을 이야기 하지만 밀란쿤데라의 기민한 시선이 모든 소설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설의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변종모작가의 책은 제목에서 풍겨오는 맛이 참 오묘해서 좋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처럼 아픔과 아련함들이 묻어나는 근사한 제목들이 그렇거니와, 이번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에서도 역시 그만의 향이 담뿍 담긴 세상의 이야기들이 함축적으로 담겨있어 좋다. '그래도'와 같은 말을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손길같은 따스함이 그의 글세계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세상의 상처와 풍경 사랑 온도 모든 것들이 그의 눈을 거쳐 손으로 전해지면 근사한 세상으로 비쳐졌던 이유들이 언제나 다음 책을 기대하게 해주는 전이같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하루키는 굳이 장황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름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자랑하지만, 이렇게 에세이로 만나는 하루키의 본모습은 어쩐지, 마냥 귀엽다. 이 책을 보면 언제라도 젊은 감성으로 자신만의 일상을 살아내며 차분히 앉아 소설을 쓰는 모습이 그려지게 된다. 섣불리 재단하거나 살아온 세월에 대한 권위도 부리는 일 없이 언제나 조심스럽게, 혹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삶을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가볍고 소소한 태도와는 상반되게 삶의 태도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심각함이나 엄숙함 없이도 늙어갈 수 있겠다란 작은 희망들이 읽는 내내 맴돌았다.
- 한 권의 책
<마흔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