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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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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면 으레 문학을 말할 때 고뇌쯤을 어깨 위에 지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것만 같다. 시대와 맞물린 사실적인 이야기든 혹은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로든 얼마든지 변주하고 삶을 이행하면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세계를 꾸린다.

낱낱의 언어에는 온 말과 빈 말의 여지를 담고, 숱한 날 고민하고 정제된 말들의 성으로 독자들을 그렇게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해주는 것이다. 하나의 형용사를 위해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고심하고 모래알도 같은 작은 말은 우주가 되고 하나의 세계가 되는 말로 부푼다. 이 고된 과정들을 기꺼이 버티고 즐기는 것을 보면 '작가'라는 이름을 평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엄격하고 엄중해 보이는 선입견만으로 작가의 소명 따위를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읽고 쓰는 삶이 전부인 사람들에게 지독하게 주어진 시간의 오선지 위에는 이런 메타포가 그려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자주 작가에게 바라는 정직과 같은 잣대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어떤 이야기라도 해보지 않은 상상을 듣고, 보는 일로도 이렇게 즐거운데 말이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일, 세상의 추함과 아름다움, 지켜내는 것과 버리는 것, 의심하는 것과 사랑하는 일, 생의 얼개란 참으로 다양한 것인데 이를 정직으로 구축하는 일은 그 구체를 설명할 수나 있는 일일까?

생의 가장자리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며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들에는 과연 어떤 진정한 창조와 거짓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작가에게 바라는 엄격한 진실성, 진정한 창조란 예술가에게 도덕적 잣대 윤리적 권장을 위시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오히려 규범과 틀을 벗어난 밖의 이야기를 바랄 수 있을 때 세상이 주는 삶의 보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의 짐을 충분히 지어 본 사람, 어렵고 고된 삶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눈 씻을 작은 여유를 갖는 사람에게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는 예술이 곧 삶의 활력소를 주는 일일테다. 예술은 그런 기능으로도 족한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는 여러모로 세상의 가장 무겁고 은밀한 가장자리만을 떠도는 이야기를 선보이는 작가로 손꼽힌다. 그의 소설은 명징하고 파격적인 소재, 거침없는 표현들로 하루키의 작가적 인상을 최고조로 높인바 있다. 그런 그이지만 일상인 하루키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새삼 또한번 놀라게 되는 것 같다. 워낙 매체에 얼굴을 보이는 걸 꺼려해서인지 그에게 갖는 선입견이라면 평범과는 거리가 먼 강한 이미지가 지배한 것이 사실이다. 말 수가 없는 것 같다거나 쿨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 하루키는 소설처럼은 사는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 겸연쩍다.

그는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여느 회사원처럼의 규칙적인 패턴으로 실천하며 살아갈 뿐인 글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낮춘다. 낮춘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선입견들로부터 사실은 저 안그래요라는 듯, 굳이 말하지 않으면 몰랐을 부분까지도 드러내어 말한다. 집에서 그는 과하다 싶을 만큼의 많은 채소 먹기를 좋아하고, 매일 쪽잠을 자기도 하며, 가진 명성에 비해 심한 낯가림으로 고생스러운 아기자기한 성격의 하루키씨다. 소설 밖 하루키의 일상은 우리네와 같이 비슷하게 흘러갈 뿐이지만 역시 작가라는 비범함을 유별하게 드러내는 버릇이란 것은 어쩔 수가 없어 보인다.

가령 하루를 살더라도 매순간 의식하며 시간을 보낸다라는 인상이 그것이다. 날 선 시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을 가진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일단 그는 뭘 쓸까?’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을 참 얄밉게도 한다. 화재를 생각하기에 골머리를 쓰기 보다는 사물과 풍경처럼 눈앞에 보이는 사안과 사물, 호기심만으로 출발한 생각에 골몰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 말은 평범하지만 그 안의 비범성을 보는 또다른 눈을 가지라는 말과 같다. 적어도 하루키의 시선에는 세상에 평범이란 것은 없어 보이는 모양이다. 그냥 흘려보내는 것 같은 일상이지만 그는 항상 지금은 없는 이야기로 이야기를 창조하고 변주해 내는 천상 이야기꾼인 것이다. 끊임없이 가동되는 하루키 라디오의 주파수는 바로 이 유별난 호기심때문에 가능했던 모양이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지 연재물의 3권 중 마지막 이야기로 소소한 일상과 자신만의 철학을 솔직하게 일기 쓰듯 전하는 책이다. 여느 작가의 일상기라고 말해도 좋지만 그의 어투에서 특유의 버릇이 느껴질 때마다 영락없이 호기심 주파수라는 소제목을 달고 싶어진다. 그는 자주 어째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란 말을 사용한다. 일본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그들 말투가 원래 저런 식인가 싶어서, 숙어로 삼아도 좋은 말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왠지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은 일본인 특유의 소극적인 태도와, 약간은 애교 섞인 짜증, 귀여운 도발로써 자주 쓰이는 말인 모양이다. 하루키의 호기심은 왕왕 이런 식으로 표현되곤 하는데 그게 작가의 권위의식이나 엄숙함을 깨는데 많은 일조를 하는 것 같다.  

 

 

하루키는 보이는 청춘의 이미지만큼이나 아마 더 이상 펜을 들 수 없을 날까지 이런 파릇파릇한 감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같다. 그가 한 번도 뭘 쓸까에 대해 고민해본적이 없다는 말은 세상 어느 날도, 어떤 바라봄에도 평범한 것이 없다는 '다른 시선'에 머물고 있다는 걸 배운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새롭게 바라 보리라는, 그것이 내 삶에 부족한 부분이었다는 생각을 조금 해봤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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