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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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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그림을 볼 때면 여지없이 생각나는 궁금증이 있다. ‘왜 하필 이 장면이었어야만 했나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림 안의 풍경은 무조건 하나의 장면만을 담고 있으니 왜 하필이란 생각이 들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정지된 단 하나의 동작 안에는 그 안에 벌어진 이야기, 풍경들이 숨을 멈추고 일제히 가장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극대화된 상태로 멈추어 진다. 머금을 수 있는 최대의 공기를 품고, 찰나의 역사를 응축시키면 작가의 눈이 크로키처럼 빠르게 작동되어 연출되고 화폭에 담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물리적으로 크로키처럼 몇 초 안에 그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그 정교함이 예민해 보일수록 그린이의 을 탄복하게 되면서 상상의 나래는 한껏 부풀게 된다. 이미 멈춘 것이 아니기에 이후 완성되기 까지의 시간은 모두 작가의 상상과 의도로 꾸며지게 되어 있다. 그림 안의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작가는 가장 효율적인 배치를 정하고, 스토리를 꾸미며, 방향과, 비밀을 적절히 배치하는 연극판의 연출가처럼 판을 짠다만약 그림 안에 다 담지 못한 게 있다면 그런대로 미완인 채로 남겨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림은 그래서 서사가 정지된 와 같은 예술인지도 모르겠다. 순간에 명멸해버린 그 기운만이라도 담겨지면 그만인, 영원히 그 상태에서 정지해 버린 비극의 예술로도 불릴 수 있는 것이 회화 예술이 아닐까.

왜 하필 이것이어야 했나란 물음에는 우연보다는 필연이, 아무리 사소한 풍경의 단서에라도 마치 맥을 짚는 의사의 손길처럼 정확하고 유연한 진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여인의 사소한 눈동자의 흔들림이 있다고 할 때 이 역시 결코 이유 없는 그냥이란 말을 갖다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연동하는 가운데 정지버튼이 작동할 그 찰나인 이유에는 유기를 갖는 서사가 작동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녀는 누구를 바라보고 있던 것일까? 그 전과 이후에는 어떤 일이 펼쳐졌던 것일까? 하나의 프레임 안에는 당초 모든 것들이 각자의 비밀과 필연을 품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비밀을 풀어달라는 애원이 숨겨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가의 의도와 이야기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해가 품어진다.

 

 

<눈을 감으면>에서 황경신 작가의 눈에 머문 찰나는 모든 상상의 가장 슬픈 지점의 곳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인 것 처럼 보인다. 그림을 보고 전후의 서사를 상상해 본 서른세가지 이야기가 이별, 슬픔, 성장과 사랑 네 가지 테마로 엮어져 있다.

황경신 작가는 월간 <페이퍼>를 통해 오랫동안 봐온터라 익숙하다. 유난히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슬픈 시처럼 흩뿌려 진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녀의 상상력은 우주의 빅뱅과도 같아서 창조적 폭발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리석게도 어떤 날 나는 그녀의 글이 달이 지나면 잊히고 사라져버릴 잡지에 실려도 좋은 걸까, 그러면 좀 아까운데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그녀의 글은 매달 보더라도 한 번도 대충인 법이 없는 그런 응축된 미를 가장 잘 보이는 글쟁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결이 촘촘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나 볼 때마다 의아했던 것 같다.

 

 

<눈을 감으면>에서는 그동안 많이 봐온 글쓰기에서 조금은 벗어나, 그림으로 출발한 상상의 서른세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여기에 실린 회화 작품들은 그리 유명한 작품들도 아니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던 것 같다유명한 작가라고 하더라도 대표작은 아닌 그림 위주로만 있어서 대부분의 작품들이 생소했다. 그래서 황경신 작가가 이야기하는 서사의 흐름 위에 나의 처음으로 보태지는 상상력이 흐르며 자유롭게 맥이 흐르는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황경신 작가의 이야기에는 지독히도 내면을 파고드는 매력이 있지만 그 비밀이 다 헤짚어지는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위험이 흐르는 점도 재미있다. 이것 때문일까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밝음 보다는 침잠해지는 기운이 지배되고, 곧 그녀가 의도한 눈을 감으면, 들리지 않은 소리와 보이지 않은 희망, 잡을 수 없는 사랑같은 것이 싱싱하게 튀어 올랐다. 이는 역동성이라기보다는 슬픔의 분출처럼 느껴진다. 어째서 그것이어야만 했나 하는, 그림 속 하나의 재스춰 만으로도 온 이야기가 일제히 일어나 유동하고 언어로 춤을 추는 것 같은 마법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그녀의 눈길처럼 섬세하고 유려하게 펼쳐지는 밤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오래 펼쳐 보게 될 것 같은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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