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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술 ㅣ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밀란쿤데라가 이야기하는 소설의 여러 양태에는 작품 고유마다의 개성이 재생의 힘을 얻어 하나의 전형이 되고 기술이 되어 펼쳐진다. 시대와, 역사, 문화를 짚어낸 모든 틈바구니 속을 속속들이 헤아린 깊은 통찰과 이해의 긴 침묵이 서사처럼 유려하게 흐른다. 전에 없던 새로움을 발견해내는 안목, 범인류학적인 시선으로 소설을 이해하려고 애쓴 기록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총체적으로 기술을 발견해내는 연구자임과 더불어 기존의 기술로부터 극복하려는 새로운 글쓰기를 이뤄낸 소설가이기도 하다. 시대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다만 어느 한가지의 표정과 관점만으로 이해하지 않은 위대한 예술가의 본질적 자세를 엿보게 해준다.
신화와 현실, 전통과 삶이라는 특수한 교차점들을 포착하여 집요하고도 조직적 확대의 이해를 도모한 흔적은, 왜 밀란쿤데라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적 통찰력을 드러내는 유익한 책으로 읽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해준다.
세르반테스의 모험적 면모로 하여금 소설의 앎인 조건을 이야기로의 시작은 무척 흥미로운 출발이다. 돈키호테가 길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통해 몇 번이고 삶을 견디며 실험해본 과정들이 고유한 자신의 면모를 발견해 내는 일인 동시 소설의 여정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독과 싸우는 자신과 타인, 세계와 단절이라는 양 극단의 역설적 상처를 주고받으며 잉태되는 일이다. 나를 알기 위해 길을 나서는 영혼들의 이야기, 아무도 가보지 않은 버림받은 세계에 무모한 첫 걸음을 내딛는 이야기가 바로 소설의 면모인 것이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덩그러니 놓여 모험을 하게 되는 건 바로 돈키호테처럼의 ‘앎’에 대한 욕구가 소설의 근간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 처량한 신세이긴 하지만 그의 모험에는 숭고한 희비극이 함께하고 ‘앎’의 세포가 분열을 일으켜 그만큼 성장하리란 기대를 엿보게 해준다.
밀란쿤데라가 바라보는 소설의 여러 특질들은 구체적으로 소설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의미들 때문인지 그 가속에 힘이 부쳐 쉽게 읽힐 만한 책은 아니다. 여러 번 놓치고 상황의 문제들을 실상 동의하게 되면서도 지식의 창고에 쌓아 두기만 하는 일이 벅찬 일이기는 마찬가지다. 어쨌든 밀란쿤데라의 특정 소설에 대한 해석들이나 대담편, 구체적 언어와 용어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읽으면서 이것들을 이루게 된 긴 시간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주제와, 관계의 모색, 관점의 복합적인 조건들, 역사와, 소설의 기술을 이루는 작가 특유의 개성, 이 모든 면을 깊은 애정으로 통찰한 예술가의 기술 연마의 과정은 참으로 위대하게 느껴진다.
작가의 기질은 예민하게 혹은 각별하게 발휘되어 주목하게 되는 의식의 면, 요컨대 서구정신에 국한된 세계관을 부정 혹은 극복하려는 면이라던가 기존 체제를 부정하고 인류학적인 접근을 모색하는 점 등이 동의되는 만큼이나 요소마다의 깊이로 인지되곤 한다. 하나의 중심에서 자꾸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전체가 보이는 것처럼 다채로운 이면을 보고자 하는 노력에서 이 책의 궁극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밀란쿤데라는 음대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음에 대한 깊은 조예가 드러나는 것 역시 그 작품 세계만의 특질이라면 특질이라 하겠다. 구체적으로 음악이 그의 작품 안에 어떠한 식으로 쓰여졌는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다면화된 인간을 형상하는데 음악이라는 예술은 단면적 관점을 파기하고 보다 양립되어 흐르는 상상력의 자극을 훨씬 크게 도와준다는 믿음이 컸던 모양이다. 명징함 보다는 지금 흐르는 이 소리가 흘러 과연 어디로 가는 지에 대한 애매하고 불확실한 물음표들로 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하다. 소설의 폭은 이러한 식으로 넓혀지는 일이다.
<소설의 기술>은 다만 소설을 이루는 기술적 혹은 미학적 요소들을 말해주지만 결국 우리가 본 소설의 모든 면이 소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밀란쿤데라의 예민한 눈으로 좀 더 명확하고 진실하게 보여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