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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문학은 요컨대 제 몸의 모든 면을 낱낱이 보여주고 어느덧 그것을 관람하던 자의 몸 안으로도 들어가 역으로 탐할 줄 아는 기묘함을 지니고 있다. 문학이 또는 예술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냐 없냐 까지 논하는 것만 봐도 이것이 인간에게 주는 바는 무궁무진하리라는 걸 떠올려볼 수 있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존재하는 한, 여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리가 정지되지 않는 한 끊임없이 인간은 이야기를 꾸며내고 그것이 주는 삶의 반추를 흥미로워 할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영원하다고들 말하는 것일지.

 

누구나 과거를 들추었을 때 지금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치기어린 실수 또는 언행의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땐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하는 어이없는 실소와 함께, 역으로 지금의 내가 퍽 성장했다는 의식이 들기도 한다. 소통을 배우면서 무수한 매체에 영향을 받고 지식을 쌓고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에 사람의 나이테는 조금씩 그 무늬를 이룬다.

이는 꼭 물리적인 나이로 명확히 구분되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여든 넘은 할배라도 한 권의 책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분류할 수 있는 중요한 한 권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다. 앎이라는 것은 평생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깨우침의 순간은 언제라도 찾아 올 수 있다. 이는 한 번 느껴본 사람만이 더 자주 그 기회를 느끼게 마련이며 그렇기 때문에 결코 책이라는 사물을 멀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읽고 생각하는 행위만큼은 내가 그려낼 수 있는 원의 크기를 한없이 증폭하면서 확장시켜 주는 힘의 원천을 제공해준다. 개인의 사유는 이러한 식으로 조금씩 알고 깨달아가면서 보태지는 일이다.

 

 

조금씩 내가 성장해가고 있다는 즐거움을 알게 될 때 전혀 알지 못했던 뜻밖의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은 그래서 책의 중요성을 반증한다. 미세한 온도로서 감지되는 예민한 촉을 가지게 된 자만이 언어의 촉을 이해하며 세상을 바로 볼 줄 아는 힘을 지니게 된다. 결국 우리가 함께 꾸리며 꿈꾸고 살아갈 세상은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과연 책을 읽고 꿈꾼다는 것이 비단 나만의 생산적 활동에 지나지 않는 것은 자명해진다.

 

 

<책읽기 좋은날>은 저자 이다혜가 한 뼘의 나이테를 두를 수 있던 책들의 틈틈한 기록의 책이다. 여행 중 기껏 신발 한 켤레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던 공간을 벌기 위해 신발을 버리고 책을 챙겨올 만큼 그녀에게 책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 보인다. 말 그대로 책벌레란 별명 밖에는 달리 생각나지 않을 책속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다. 저자의 특별한 리스트를 들여다보니 읽었던 책은 본대로 고개가 끄덕여 지고, 안본 책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큰 기대감을 안겨준다. 상상력이 절로 확장되는 것 같은 기대감이 절로 드는데, 결코 속단하거나 규정하지 않는 순수한 열의가 느껴져서 더욱 좋다. 

한 방 가득 실을 잣는 거미의 움직임처럼 교묘하고 예민한 상상력의 타래들이 눈으로 펼쳐 보일 듯 눈을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서평들이다. 각각의 책에 관여한 인물들과, 때의 역사와, 사건들이 주는 낱낱의 의미들을 압축적으로 다 들여다보게 해주는 간결함이 돋보인다. 양탄자를 얻어 타고 유랑하듯 지루함 느낄 새 없이 함축적으로 증축된 세상을 구경하다보니 작가가 구획해놓은 단정함의 세계관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단 두어 페이지로 표현된 책의 감상과 평에는 그 책의 현실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들이 교묘히 뒤섞여 표현된다. 어느 세계고 우리의 모습과 닮은 거미줄의 연결고리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이다.

 

 

특히 여섯 테마로서 묶이는 의미들을 곱씹어 보면 지금 이 시대를 대변하는 ‘아픈 청춘’ ‘노력하면 누구나 된다’는 차고 넘치는 희망찬 선동적 문구와는 사뭇 다른 차분하고 어깨를 토닥여 주는 카테고리들로 넘실대는 것 같다. 가령 슬픈 날에는 슬픈 음악을 들으라 하고, 긍정이 뒤통수를 칠 때와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설핏 ‘왜’라는 반문이 드는 말들이지만, 상황을 처절히 몰입해본 사람이라면 이 쓸쓸한 말들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희망이란 단어가 오히려 더 큰 상실과 고통을 주는 말 일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는지.

 

 

책에 나오는 개별적 이야기들이 오히려 개인의 삶에 반추하여 들춰지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이 책에서 느껴지는 향기로운 면이다. 그래서 작가가 들려주는 책의 조근 조근한 이야기들은 어스름한 저녁의 모습처럼 고요하고 쓸쓸해도 견딜만해 보이는 모양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책이야기의 목록을 옮겨 적으면서 올 겨울에는 곳간 가득히 곡식이 넘쳐나는 농부의 미소가 지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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