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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남은 인생을 작가와 단 둘이 우주여행이라도 한들 똑같이 겪어 낸 일상의 서사가 설마 비슷해 보일 리도 만무하다. 왜냐하면 상대는 무려 ‘작가’이기 때문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행성의 일몰을 보았대도 고작 눈앞에서 소멸해가는 광경을 안타까워하는 흥분만을 몇 줄 담은 글일게 뻔한 내 글과, 일몰의 풍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같을 수가 있을까. 가령 야윈 그녀의 어깨에 슬그머니 머리를 기대어 스텝을 밟는 남자의 뒷모습을 그리는 시작이라든지. 일몰을 보고 다정하게 잡힌 그녀의 콧망울의 주름을 상기하리라고는 어찌 상상이나 해보겠는가.
물론 모험심과 호기심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나라고 한껏 부풀려진 가공의 세계일랑 못만들것도 없지 않은가 으름장을 놓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상상력의 집채가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세상으로는 비교될 수는 없는게 자명하다. 플롯이라거나, 여운을 줄만한 결말을 만들어내는 유기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자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상은 할 수 있어도 이를 실재적 의미로 실현하는 일은 그들만이 해낼 수 있는 다른 세계의 일인 것만 같다.
사람이 뭔가에 자극을 받는다는 것은 앎과 개인사, 이상적인 바람 등 수많은 실타래와도 같은 작용과 반작용이 얽혀서 일어나는 교감일터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하루에 일어나는 생각의 양이 1g정도라면, 또 어떤 사람은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과 연상 작용으로 생각난 과거의 양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서 100g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모든 작가들이 가장 많은 생각을 해내는 사람으로 분류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인공의 세상을 끊임없이 증축해내야 하는 숙명의 과제에는 반드시 이렇게 과도한 무게가 자리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일반인과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생각의 엄격한 경계가 아닐까.
누구든 순간에 겪어낸 그것이 잊혀지지 않을 성질의 차원의 새로움을 준다면 필시 이는 기억의 저장고에 가장 높고 깊은 곳으로 은닉될 것이다. 나중에 누군가에게 말할 기회라도 생기면 발설되는 순간 휘발되는 엄살도 가득 담아서, 설명할 수 있는 온갖 비유가 신화처럼 가공되어 오래 묵혀둔 보람을 잔뜩 누릴 일이다. 사람이 본래 이야기꾼이라는 업을 등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본성을 지녔듯 조금씩이라도 덧대고 버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이야기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내 삶의 위안을 주는 사건으로 기억이 되든 아니든 어찌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윤색되고 부풀려진 허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 기억의 창고에서 벌어지는 반복적인 일들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기억이란 무엇이고, 창조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끊임없이 작동되는 생각이란 작용의 윤활유는 아닐까. 받은 자극이 주는 인상들이 단순히 기억의 밀실에 고이 간직된다면 지극히 평범해 보일 뿐이지만, 이것이 창조의 주재료가 된다면 이를 가장 잘 수행하는 자는 바로 예술가들의 일일터다.
평소 애쓰고 노력하면서 삶과 대면할 때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불현 듯 스치고 지나간 사소함들이 감각을 자극할 때가 있다. 세상의 수많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모든 재료들이 새로운 창작품이 되어 이 또한 세상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예술은 '창작'된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흐를수 있는 이유이다.
책을 읽으면 작가 후기나 말머리에 대부분 자신에게 몰아친 교감의 순간을 고백하는 것으로 문을 여는 경우가 허다하다. 묘하게 행복감을 느꼈던 일, 심장이 고요히 뛰던 소리를 잊지 못해서 펜을 들었노라 고백하는 것이다. 매혹의 순간, 반드시 남기고 싶은 역사적 순간의 기록에 우리는 입을 모아 감탄하면서 동조해보곤 한다. 왜냐하면 내게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곤 했으니까.
모든 글에는 그 글을 이끌어낸 동기라는 게 존재한다.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의 탄생이 어떤 식으로 작가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 창작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 몇 명의 비화를 듣는 것으로도 어느 이름 모를 어느 작가에게서 듣는 창작 비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걸 상기할 수 있다. 대문호라 불리는 그들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말들을 자유롭게 주어 담아서 그 영감의 촉각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점이 비슷하다. 자주 행간 속에 눈길이 멈출 때마다 작가란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이야기가 출발한 것일까 하고 감탄했던 순간의 답을, 이렇게 찾을 수가 있다.
어차피 세상의 속도는 제 각각 누리는 것인데 작가들이 각자 창작의 윤활유가 된 지점에는 어김없이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돌고 있다. 일순 시간이 정지되더니 이것이 곧 그들만의 세계를 창조하여서 한권의 책으로 남게 되었다는 신화가 생겨 버리는 환타지다. ‘읽으면 읽을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매혹적인 소설로 남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남다른 비화가 있었기 때문이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 역시 고뇌했던 한 인간이었으며, 스치고 버리면 그만이었을 이야기를 여러 색으로 담아 빚어내는데 공을 들였다는 사실 여기도 새삼 상기해준다. 어쨌든 이들의 책이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새로운 해석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행운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진다. 일련의 과정들은 마치 작가가 우주에서 꼬리잡기 놀이를 하다 우연히 얻어 낸 화석처럼, 그저 평범한 돌이었던 것에 생명을 불어 넣어보는 일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