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의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도시락의 시간 -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도시락’ 하면 학창시절이나, 소풍, 네모난 모양의 컵라면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책 <도시락의 시간>의 그것은 어딘지 경건함이 깨알처럼 뿌려진, 한 끼 식사 이상의 낱말을 지칭하는 것 같다. 들뜬 축제의 한 자락에 웃고 떠드느라 단무지만 들었어도 맛있었을 점심이 아니라, 또 어딘가 허술해보이는 엄마같은 여인이 새겨진 컵라면 속 MSG란 깊은 매력의 맛도 아닌,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먹는 흰쌀밥 그득한 네모상자를 지칭한단 소리다. 일하러 나온 사람들의 손에 들은 손수 만든 소박한 한주먹의 인생, 이것이 바로 잠시 잊었던 도시락이라는 진짜 이름이다.
사진들이 촬영물이라는걸 감안한 도시락이라 하더라도 이들이 먹는 평소와 다르지는 않다는 걸 보면 일본인의 도시락은 참으로 정갈함이 큰 장점인 식문화란 생각이 든다. 하나같이 '이렇게 맛있어 뵈는 점심이라면 매일이라도 먹고 싶겠구나'란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지고, 두세가지만을 넉넉하게 담은 우리네 도시락이 풍경과는 사뭇 다른 조금씩 다양하게 먹는다는 인상이 들었다. 마냥 이들의 소박한 잔치를 부러워 할 수 있을것도 같지만, 그게 또 그렇지만은 않아 진다. 이윽고 이 작은 도시락이라도 싸오기 위해 서둘렀을 아침의 부산한 한때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드는 생각은 이러한 것도 있다. ‘자영업자 아닌 이상, 아니 왜 밥도 안주는 데서 일을 해야 하나’하는 푸념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싸온 도시락에 대한 처연함이 그렁그렁 맺히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정과는 아무 상관없는듯 도시락의 매무새는 하나같이 정갈하기 그지 없어서 아이러니 한 풍경을 연출한다.
고된 삶의 첫 시작 그 쩌렁한 스타트 총소리가 절로 정신을 일깨우는 것 같아 심란하지만, 한끼 식사만큼은 부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점심이어야 한다는 듯이 이들의 도시락은 참 예쁘다.
요즘에는 그나마 점심값 챙겨주는 회사들도 물가 상승률을 따져 주는 건 아니어서 아예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노동자가 부쩍 많아지긴 했다. 하물며 세계 최고 물가를 자랑하는 일본의 경우라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네보다 훨씬 전부터의 풍경이라그런지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들의 사연에는 작은 불만마저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 자족의 미소를 쓸쓸히 번져보이는 것 뿐, 그런 사람들의 부지런함에 놀라 자주 의아하고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러한 소재의 책을 낸다면 힘겹게 살아가는 데에 대한 성토가 좀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이 편이 좀 더 자연스러운 태도가 아닌가. 세상을 향해 좀 더 발언하고 처지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부리는 한국인의 도시락이 아마 몇 배는 더 사랑스러울 것이다.
이 책은 각자가 싸온 도시락의 풍경과 사연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사람이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먹는 쪽보다 건강에 더 유익하다거나, 경제사정, 개인의 취향 쪽으로 방향을 틀고 보면 도시락의 낭만을 보다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아이에게 싸준 도시락이나 할머니가 추억 삼아 싼 도시락의 그것에는 분명 그런 일상의 행복따위가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분명 이것 만을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저마다 시간에 쫓긴다거나, 사정상 도시락을 들고 나와야하는 그 빠듯한 생활에 있는 것이기에.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닥 작업 환경과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로는 발언하지 않는 점이 조금 의아하다. 아닌 게 아니라 집밥이 훨씬 맛있다는 건 알지만 이런 이유로 부러 도시락을 싸온다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은가. 일단은 자족하더라도 얼마쯤은 자신의 처지를 조금씩 동정하고는 있는게 느껴진다. 알고 있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제 분수에 맞다고 믿는 일이 좀 더 쉬운 선택이었을 뿐인 것이다.
게다가 차분히 앉아 담소를 나누며 밥알을 씹고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서서 대충 때우는식의 주먹밥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딱한 일이다. 아니 대관절 이 주먹밥은 어느 시대의 산물이란 말인가. 전쟁 때나 혹은 먼 길을 떠날 때 급히 먹던 암흑기도 아닌데 왜 이다지도 고된 식사를 해야한단 말인가.
주먹밥이 시간을 절약해주고 맛도 있다는 말은, 카모메식당 같은데서나 할 수 있는 소리겠고. 아내에게 미안해 직접 도시락을 싼다는 그이의 점심은 그래서 참으로 눈물겨운 배려로 말을 잃게 만든다.
그런 것이다. 대게 서민들이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흡사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 시간 꼬박 땀 흘려 버는 돈이 햄버거 한개 값도 못한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무표정하거나 혹은 쑥스러운 미소가 은은하게 번져 보이는 이들에게 분명 희망이 있을 테지만, 그 희망을 향하는 발걸음이 먼 길을 떠나는 자에게 느껴지는 결기마저 풍기는 것이라면 어느쪽으로 생각하더라도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가족을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밥을 푸고, 찬을 담는 일. 이 소중한 일이 작업장에서 소중한 한입으로 넘기며 또 힘내어 살아가는 인생들에는 반드시 너른 대지와도 같은 은총으로 내려지리라. 순응하고 제 일을 묵묵히 하느라 조금은 처량해 보이는 인생일지라도 일상을 만족할 줄 아는 이들의 땀에는 이래서 진솔함이 맡아지는 모양이다. 책을 보는 내내 한 장 그득히 윤기 나는 과일과 신선한 채소, 포실포실한 계란말이를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엉덩이 들이밀고 노나 먹고 싶어지는 뻔뻔함이 부려진다. 이러고도 남을 인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거듭 이들의 고된 하루 중 반이 남아 있는걸 응원하고 싶어지고, 덩달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차고 넘칠만큼 상기해보고 싶어진다.
근본적으로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무척이나 맑아서 덕분에 진짜 세상이 돌아가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그런 책이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 우리 곁에서 여분의 젓가락을 건네며 미소를 짓는것 같다. 도시락의 시간에는 그런 따뜻한 맛이 삶을 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