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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간혹 사람들이 ‘그 순간 내가 살아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라는 투의 자신을 체험하는 순간, 인생의 전환점같은 깨달음을 맞이한 순간의 경이로움을 말할 때 나는 퍽 의아했다. 그리고 말의 시작과 끝점에 이르는 단 한 점의 느낌도 이해하지 못한 자괴감에 빠졌다. 아니, 의아하기 보다는 ‘살아있음’의 말의 느낌 정도를 알 도리가 없어서 당황하고 의기소침해졌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라는 말이 주는 모호함 만큼이나 내가 내게 행하는 사랑의 가늠을 대관절 어떤 식으로 알게 되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가령 누가 봐도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 됐을 때 그 때 사람들은 ‘아, 난 참 바보같이도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격렬한 고통 뒤에 찾아온 러너스하이의 쾌감을 느끼게 될 때 ‘아 내가 살아있어!’ 라고 왜 느끼게 되는 걸까? 도통 어떤 명확한 감정들이 나를 증명하는 정도로 남게 되는지 모르고 살고 있다.
딱하게도 이 두 문장과 등치시킬 만한 순간이 아직 찾아오지 않아서 희열 비슷한 것도 느끼지 못한거라면 또 부지런히 살아볼 요량이지만, 이 나이쯤 살아봤으면 또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싶어지면 돌연 한심한 노릇이어서 나는 좀처럼 감정의 고도를 올리기에는 무딘 인간이아닌가 싶어지는 결론에 이른다. 감정의 불구일까 아니면 기대치가 너무 높아 ‘고작 이 정도에?’ 하고 무심코 넘겼을 일인지 답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치과에 가서도 소리 한번 내지른 일이 없다면? 아프지 않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고통에 신음하는지를 모르겠어서 고민하다 잘 참는다는 칭찬을 듣곤 했으니 끝내는 이런 소심함이 결정적 이유였을까. 감정을 숨기는 병이 깊어지면 내가 나를 느끼는 일 조차 저 멀리 은닉시켜 버리는 타고난 자학기질 때문일지도.
남이 흔히 경험하는 감각의 체화 따위도 아직일지 영원히일지 요원하기만 해서 자조 섞인 희망을 이제는 넘겨짚듯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직 모르는 건 죽어도 모르겠지만, 남들이 고백하는 경이로운 순간에 대한 기록은 언제나 처음 먹어보는 과일의 즙을 훕- 하고 빨아먹는 순간처럼 달콤하기만 하다. 이런 남부러운 체험들이 쌓이다 보면 내게도 이럴 땐 남들처럼 살아있다고 느껴야겠군 하고 나도 모르는 기분이 처음으로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작가가 말하는 과거와 현재의 일화들은 스스로를 어떤 식으로 격려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모험 같은 이야기다. 아지트에 모여 가져온 과자 한 봉지에 여러 손이 모이고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공간의 신비한 공기, 영원한 시간이 흐른다.
작가는 살아가면서 점점 매순간 살아가고 있다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지독한 개인으로 살아가기를 즐기는 사람 같다. 자신에게 유용한 깃대를 참 부지런히도 찾는 성실한 작가의 인생을 선택했으니까.
그는 어떤 때 한 편의 짜릿한 느와르를 보여주기도 하고, 텅 빈 객석 앞의 초라한 배우 같기도 했다가, 요란한 퍼레이드를 즐기는 밸리댄서의 몸짓을 선보이기도, 호환마마로부터 달아나는 귀엽고 우스꽝스러운 얼치기 소년 같기도 하다. 삶은 어찌나 너와 내가 서도 닮았으면서도 다른 것이던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그러고 보면 송연해지는 엄격함 때문에 참기 힘든 때를 버텨내야 하는 순간이 많지만, 그만큼 참 달콤하기도 해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쯤 얼마든지 무시하고 무작정 내달리고픈 유한한 착각을 심어 주기도 한다. 각자를 고유한 개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수많은 비밀을 품고 있는 살아가는 것, 하루하루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 살아가는 이유가 생기는 일이다.
특히 이 책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는 대단히 발랄하고 주도적으로 즐겁게 살아가려는 작은 실천들이 돋보인다. 이는 마치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로 의식되어 살아가기를 꿈꾸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삶이다. 김연수작가를 보면 언제나 소년 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역시나 끊임없이 꿈꾸는 자이기를 꿈꾼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를 곱씹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결국 끊임없이 성장해가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서 내게도 좀 더 나은 삶을 찾아보라고 언질을 주는 것 같다. 그렇다라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내가 아닌 나를 발견하기까지 숱한 ‘나’를 만나게 된다는 것, 나이를 먹으면 그 땐 또 다른 내 모습이 있을터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보며 어떻게 하면 내게 자극이 될 꺼리를 찾을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해 보았다. 당연하게도 내 삶을 마음껏 누릴 권리는 내게 있고, 제때 누리지 못하면 유죄라는 믿음은 조급하지만 묘한 기대감을 준다. 적어도 나는 이 책을 보고 내가 나를 느껴내는 일부터 배워야겠지만, 한 걸음 더 내딛어야겠다는 다짐은 내내 드니 큰 소득을 얻어 간다.
문득, 오늘 아침 나뭇잎에 고인 이슬이 어깨 위에 떨어진 찰나 같은 것- 을 두고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그래서 내 삶의 작은 은총에 감사하게 됐다면 조금 나아졌다고 말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