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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개정판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초판이 나왔던 2005년 무렵에는 지금처럼 발랄하고 가벼운(?) 산문이나 에세이들이 쏟아 나오던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에세이라고 하면 본격문학보다 가볍게 치부되는 암묵적 시각이 있긴 했어도, 사뭇 진지한 어투와 삶의 진솔함으로 언제나 많은 대중의 마음을 이끌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한눈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 화려한 일러스트가 박힌 표지의 책들, 그 중에서도 비소설이나 여행서들이 대히트를 치면서 서점의 절반이나 메우게 된 후부터는 일 년 내내 책 한권 읽지 않은 사람까지도 한 권쯤 소장하는 일이 유행이 되어 버렸다. 소장용이 잘 팔리다보니 문고본 따위가 없어져 버렸고, 전보다 책값도 우악스럽게 비싸졌으며, 유명 작가들뿐 아니라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발랄한 에세이와 여행서들을 내는 일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책을 내는 일이 특정한 사람에게서 꼭 진지한 내용을 품어야 좋다는 법도 없지만 아무튼 좋아진 점도 있고 그만큼의 아쉬운 부분도 생겼다. 이 중 어떤 특정한 점때문에 변화가 왔나하는 생각을 해보면, 그게 그러니까 어쩌다 보니 세상이 또 바뀔만 해서 이렇게 됐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비유하자면 세상은 이제 성숙보다는 동안이 칭송받을 만한 거대한 트렌드를 낳게 되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젊은이에게도 아이크림이 중요해졌듯이, 발랄함과 일상의 소소함이 담긴 책들 역시 대세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게 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이러한 시대가 도래해 버렸고 김영하의 <랄랄라 하우스>는 흐름의 원조 격이랄 수 있는 책으로 기억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짧은 우화 같은 이야기라는 게 신선해서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7년이 흘렀지만 다시 한번 독자를 찾아오게 된 것은 여전히 작가가 벌여놓은 판이 싱싱한 채로 많은 공감과 웃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신문에 연재된 글이었던 만큼 시의성이 중요한 글이었음에도 공감이 떨어지기는커녕 현재의 상황을 작두 탄 무당의 예견처럼 맞춘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몇 가지, 작가의 특정한 기호들이 이 책이 나온 이후에 큰 유행이 됐다는 사실이 그래서 매우 흥미롭다.

첫 번째로, ‘고양이가 부각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었다. 무섭거나 귀찮은 존재, 요물이라는 오명을 쓰고, 그들의 행동이 조금만 굼떴다면 엉덩이나 매일 걷어 차이는 인생이었을 삶. 물론 동물에게 물리거나 위협을 당했던 일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나, 그냥 그것들을 보는 것만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사람, 보는 둥 마는 둥 무관심한 이들에게 이르기까지 크게 바뀌지 않은 인식이야 여전하긴 하다. 그래도 어쨌든 내가 아는 한 유명작가들이나 연예인들, 만화가, 예술가 등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영화나 책에서도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다뤄지는 일이 많고 보니 사정이 크게 달라지긴 했다. 이 책을 읽었을 무렵에는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어떻게 길고양이를 데려와 키울 생각을 했을까하는 의아함이 들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는 걸 보니 내 편견이 세상의 변화에 이끌려 많이 달라지긴 한 것 같았다.

 

 

책에서 작가는 우연히 데려온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부터 일상의 변화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녀석의 매력에 천천히 동화되고 보니 책을 덮고 나면 정말 직접 만나서 그 도도한 매력을 느껴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7년이란 세월은 눈을 한번 질끈 감게 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품는 애석함의 시간이기도 하다. 여전히 작가의 책상 위에 식빵처럼 웅크려 있는 녀석들을 상상해 보는 것으로, 시간을 원망할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확실히 머리만으로 알고 이해하고 예뻐하는 일 보다 직접 기르고 가족이 되는 편이 훨씬 좋은 변화를 가져오기는 하는것 같다.

 

 

두 번째로 작가의 발랄한 영화감상이나 여행기로 엿보는 일상의 수다스러움이 대세가 된 점이다. 당시 블로그나 미니홈피가 막 유행을 타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신의 일상을 요약해 내보이는 식의 짧은 글이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작가가 들려주는 일상은 매일 매일이 콧노래 흥얼거리며 랄랄라 할 수 있는 일상은 아니지만, 잠시 잊고 고양이와 뒹굴며 노니는 시간을 즐겨봐라는 듯 삶의 소소함이 묻어나는 수다를 펼쳐 보인다. 물론 전혀 시끌벅적한 수다스러움은 아니지만, 이야기하는 방식이 소설가라고하면 응당 느껴질만한 정중함의 벽을 허물고 같이 앉아 조근조근 들려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점이 재미있었다. 어디서 겪었거나 들어서 알게 된 재미있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이런 일들이 얼마나 황당하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지 세상의 다양함을 이야기한다.

마치 발명가라도 되는양 생각해내는 수많은 기발함들도 작가의 남다름을 설명해주는 면이다. 이렇게 항상 다름을 생각하는 습관과 평소 그가 영화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생각해보면 언제고 세상의 낯섬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무궁무진한 앎을 주기 때문에 즐기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는 작가가 써 보이는 글만큼이나 사진에도 큰 애정을 쏟는 점이다. 요즘에는 들고 다니는 손전화만 꺼내 들어도 사진가 뺨치는 작품이 나오는 세상이 되었지만, 이 때는 수동이든 디지털카메라든 사진기를 하나씩 소장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개인의 취미와 여가 생활이 막 대두되던 시기였다. 인터넷에 자기만의 공간을 하나쯤 만들어 놓고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써넣는 것으로 수많은 인맥들이 쌓였다. 사진은 곧 다른 방식의 서사를 한 장 안에 숨겨둔다는 점일 테니 작가만의 시선이 무척 궁금했다. 짧은 글이 주는 오랜 여운처럼, 한 장의 사진 안에도 아주 많은 이야기가 있고 그 전과 후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어서 사진의 매력이라 함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바라보는 일상의 포착, 글 아닌 다른 방식의 서사를 숨겨 두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것이었다.

 

 

김영하의 <랄랄라 하우스>는 우리가 너무 가까워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소소함의 면면,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삶의 작은 도전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들게 해주는 책이다. 삶은 당연하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다양한 색을 지니고 있다. 아이에서 중년이 되고, 엄마의 얼굴빛만 구분하던 눈이 보이지 않는 공기빛을 알게 되고, 여름의 삼계탕을 한그릇 비워내고는 와 시원하다 말하며, 가장 존경하던 사람의 치부에 허망함을 배우고, 코미디언의 쇼보다 더 진짜 쇼가 뭔지 세상을 향해 썩소를 날리는, 삶의 단순하지만 다양한 계단을 그저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 <랄랄라 하우스>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알아가는 삶의 이러저러한 재미를 맛보게 해주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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