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차라리 입 안 가득 버석거리는 모래알을 씹더라도 황무지를 걷는 편이 나을 사람들이 있다. 내몰린 길 위에서라지만 해맑게 걸음걸음 내딛는 힘을 투지라 이름붙일 수 있을지. 그런 거라면 정말 이 에너지들이 과연 어디서부터 나올 수 있는 건지, 묘연하다. 이래서 사람의 능력은 그 끝을 알 수 없다고들 하는 걸까.
교묘히 구획되어 놓은 작은 원 안에 당해 낼 리 만무한 일들을 감내하면서도, 매일 적중하는 화살을 잘도 버텨가는 것, 심지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원대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아주 촌스러운 영화의 기승전결처럼 뻔 한 결말을 알겠는데도 그저 속아주는 제스처를 하는 것은 얼마나 허탈한 일인가. 적당의 반응을 해주면서 이 극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은 요원함을 저당 잡힌 지루함만 한 가득이다. 언젠가 돌아봤을 때 이 이미지들은 실컷 조롱이라도 할 수 있을까? 사실 그런 상상을 품는 일조차 후련해지리란 기대보다는 어서 잊어버리고 싶어지는 깊은 한숨만을 내몰 것 같다.
폐허의 흔적이야 사라지겠지만, 분명한 건 지금 몰래 중얼거리는 이 순간에도 언제 갈겨질지 모르는 뒤통수를 서늘하게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잊혀질 과거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참 굳세게도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동질감의 정서를 눈빛으로 나누고 살아갈 수는 있으니 최악은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이 책을 보면서 그렇게 심각했던 건 아니니까. 그저 자주 궁금했던 생각만이 불현 듯 스쳐 지났을 뿐이다. 원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
저들이 말하는 진짜 좋은 세상은 대체 무엇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나, 좋은 세상이란 의미를 알기나 할까 아는데도 묵살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걸까. 정말로 모르는 거면 연민을 느껴야 할까 아니면 영영 무시해버려도 좋을까 등등.
특별한 공덕을 쌓으라한 적이 없는데도 왜 그렇게들 제 식대로의 계몽에 혈안이며, 가치라 말하고, 명분을 덧칠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래봐야 스스로의 덫에 저당 잡혀 살아갈 뿐인 존재들인데, 이들에게는 정말 이 야유가 아무런 상처도 죄책감도 동반하지 않는단 말인가.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슈퍼 귀마개라도 달고 사는 것일까? 그래봐야 약간 추해보이겠지 뭐 더 있겠어? 하는 안도감이 무기였던 걸까?
황량한 바람이 일긴 해도 잠시 맞아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그래도 같은 세상에 놓인 사람이라는, 인간된 도리가 남아서인지 모르겠다. 다만 모든 맥락들이 뒤엎어지고 사라지는 것 은 오래도록 잘 기억하고 싶다. 다시 일으킬 생각을 하자니 비축해둘 창고가 끝 모르게 늘어서는 것 같아 서늘해진다. 지치지만 같이 해야 할 일이다.
사회적 책무를 모르거나, 손 놓고 코푼 사람들 천지인 세상이라 해도 그나마 더불어 살 궁리를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이런 때에 너무 소중하다. 천 원 한 장 비지 않는 잃어버린 지갑을 찾게 되는 일처럼 아직 감동할 사연을 누군가는 만들고, 살짝 앞에 서서 인도해 준다는 믿음을 주는 게 마냥 고맙다.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는 이렇게 기꺼이 정다운 미소를 지어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정치적인 사람이거나 혹은 전혀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같이 공유하며 나누면 좋을 삶의 방식들이 진솔하게 펼쳐져 좋다. 원대한 말만을 늘어놓지 않고 사소한 일상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좋다. 그들의 행보가 주변이 은은히 밝혀지는 만큼의 빛의 세기로 흐르기 때문에 상관없는 것이다.
사고와 취향이 다르다는 건 낱낱이 충돌될 분자를 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융화되고 쉴 새 없이 연동될 공기를 가공하는 일일지 모른다는 믿음이 생긴다. 어쨌든 각자의 일상을 신뢰할 만 하고, 그 속에서 박애(?)를 느끼며, 보편적 희망을 관찰할 수 있는 게 우리가 스스로 진정한 주인일 때 가능하리란 생각을 해봤다.
이런 믿음을 준 몫은 전적으로 인터뷰어 김제동의 깊은 이해와 호기심 덕분이겠다. 그의 포용력은 사람을 구분 짓지 않고, 상대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진정 궁금해 하는 솔직한 관심이 담겨있기에 가능하다.
무대와 관객이 있는 곳에서라면 언제나 있는 모두를 행복의 도가니로 빠뜨릴 준비가 돼 있는 그여서, 이 시대 진짜 익살꾼 김제동이라 불리나 보다. 그가 빚어내는 행복 바이러스는 온 세포를 무장해제하고 마음껏 감염되고픈 용기를 준다. 필연적으로 미래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이 소소한 물음과 대답의 문답은 제 각자의 미래로 흐르게 하는 놀라운 에너지를 선사한다.
그의 팔에 잠시 에둘러진 어깨에 그새 이상한 고요가 얹어지고, 자꾸만 만화 같은 웃음이 피어오른다. 일단은 그를 향해 안녕에 대한 미소의 예의를 지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