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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의 마지막 여정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임정은 옮김 / 다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일평생 어디론가 훌쩍 떠나본 일이 드물고, 떠난다고 해봐야 정해진 루트대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먹여주는것 먹고 사진 몇 장 찍고 오는게 다라고 여기는 그런 여행만이 즐비하다. 몇 시간 눈을 정화시키고 일탈의 자유를 잠시나마 느끼는 것, 뭐 나쁠 건 없지. 그러나 이런 여행은 그곳을 안다고 하기도 민망해서 편한게 다가 아닌데란 말을 곱씹게 될 때가 많다.
사실 내게는 며칠이었지만 딱 한번 혼자 여행해본 경험이 있긴 하다. 정보도 별로 없이 떠났고, 이방인인 채여서 처음 느껴보는 이질감이 무척 흥분되고 오래 기억 남는 여행이었다. 다행히 좋은 추억이 되어서 여행의 참 묘미라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알고 마음에 새기는 일은 언제나 좋은 에너지와 살아갈 의지같은 것을 북돋아 주는듯 하다. 끝없이 낯섬을 찾아 유랑하는 이들, 탐험가나 여행가라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마냥 설레고, 마치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양을 지키는 목동의 일처럼 느껴진다.
여행가를 여행가이게 하는 것, 여느 직업군과는 다르게 본인의 의지만이 순수하게 많이 담긴 직업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작업물을 보다보면 이들이 참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가들에게는 참으로 거대한 여백이 있고, 그들이 전혀 말을 하지 않고 단 한장의 사진으로만 전하는 순간에도 그 적막은 참으로 근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새삼 여행에 매료된 단 한가지의 이유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극적이고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무엇보다 여행가에게 부러운 성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존재하는 ‘공간’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과 사랑이다.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들을 보고 탄성을 내지르며 호기롭게 ‘나중에 여기서 살아봐야지’라고 떠들 수는 있지만 정말 그렇게 살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제 삶의 모든 삶을 ‘공간’을 떠도는 것만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부러운 삶이지 않은가.
호시노 미치오의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는 우연히 본 텔레비전의 알래스카의 정경에 단숨에 매료되어 일생 탐험하고 관찰해온 여행가의 미완 여행기이다. 그가 담아내는 알래스카의 풍경을 순수하게 다 느끼기는 힘들더라도 더없이 섬세한 설명들과 무수히 많은 별처럼 느껴지는 시 적인 묘사들을 보고 있으면 알래스카의 바람과 푸르름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니면 오도카니 서서 바람에 흩날리는 강아지풀의 몸짓마냥 이리저리 움직이는 대지의 고요를 맛보는 것 같기도 하다. 빙하가 있고 또 안개가 자욱한 숲도 있다는 매력의 공간 알래스카. 그 한 가운데서 온도를 느끼고 입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호흡의 순간을 느낄 때마다 그는 자연과 하나 되는 아찔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곰의 습격을 받아 영원히 자연에 묻혔지만 마지막 순간, 왠지 그 삶이 허무하다거나 불행하고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나라, 어느 누구에게는 불쾌하고 한없이 빈곤해 보이기만 한 척박한 땅이지만 그곳을 수백 수천 년간 지켜온 원주민들과 동식물과, 그곳을 사랑한 탐험가 호시노에게 만큼은 더없이 풍요로운 땅이라는 것을 알 것 같다.
그는 비록 미완인 채로 알래스카의 더 많은 일상을 담아 내지 못했지만, 왠지 하늘에서도 멈추지 않고 알래스카의 땅을 같이 일구고 또다른 면모를 들춰내는 몽상가인 천상 여행자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머지 3회의 이야기를 더보지 않아도 전혀 아쉬운 마음이 남거나 하지 않는다.
어쩌면 호시노가 첫 발을 디뎠을 때의 감흥처럼 언젠가 혼자 대자연의 한가운데 서서 온 자연이 나를 응시하고 교감하는 전율을 느끼게 될 날을 꿈꿔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정말 나도 진짜 여행을 한 걸 테지.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430/pimg_767951133757155.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