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
-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제 삶을 둘러 싼 모든 기호들이나 이미지, 소리와 사상과 말과 온갖 오브제들이 떠도는 세상을 보고 배운다. 그리고 그 나름의 인식체계 속에 평생을 끊임없이 입력해가며 살아간다. 그런 수순이라지만 그렇다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물론 온갖 것들의 개념을 배워나가는 상황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고 각자의 뇌역할이 다르기 때문에라도 그럴 것이다. 그것은 모두 제각각의 시점에서 정확하거나 불명한 이유를 달고 어떠한 기호나 이미지로서 기억될 일이다. 그런데 모든 의미들의 어원이나 기원을 파악해내는 일은 살면서 아주 드문 일이어서 가령 ‘아프다’의 개념을 생각해볼 때, 이 상태를 '몸의 고통'쯤이란 단어로 이리저리 설명해내다가 종국에는 이마저도 더 깊은 어원이지는 않지 않냐는 황망한 심산만이 들 가능성이 크다. 즉 의미의 진실보다 짧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미지만이 개념의 온상인냥 말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좋거나 나쁨, 애매하거나, 어렵거나, 가볍거나, 진중한 인상들처럼 가장 기본적인 감각적 능력을 빌어 또 개인에게 익숙한 에피소드와 일상의 코드만이 맞물리는 지점에 따라서 그런 식으로만 명확해질 도리가 있을 것이다. 뇌리에는 무의미의 유혹에서 용케 탈출한, 고작 광범위한 범주의 본질의 도식만을 그려낼 가능성만이 희미하게 '안다'의 경계를 오갈 것이다.
프랑스 문단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가 제기하는 본질에 대한 다름의 인식은 바로 우리의 감각적 능력과 개인의 경험 밖의 이야기를 던져 놓는 개념의 진짜 이야기를 말하려는 시도이다. 그동안 철학서나 개념서 같은 논리의 인식체계를 다루는 책에서나 봤음직한 개념들을 진짜 기원적인 뿌리를 알려줌은 물론이요, 그만의 상상력이 보태지고 새롭게 발굴해낸 의미가 덧대어 전복적이고도 새로운 인식체계의 전환을 돕는다. 단순하지만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한 개념들을 전면에 드러내 놓음으로써 오히려 ‘왜 이런 쉬운 단어를 새삼 탐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불러 일으켜진다. 가령 남자와 여자, 목욕과 샤워, 아름다움과 숭고함 등 서로 상반되거나 이웃해 보이는 단어들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새롭다. 어느새 그곳의 틈과 균열이 만들어져서는 기어이 조각내지고 제 철학과 상상력이 보태진 지혜가 새로운 퍼즐로 보이게 되는 또다른 탄생을 낳게 한다. 이는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한 반기라기보다는 좀 더 깊은 의미로의 확장을 건축하는 일이다. 이 심리적인 차별화의 출발로 계열화된 구조가 무시되고 상상력이 증폭되는 일이 아닌가 싶어진다.
미셸 투르니에는 본질적으로 깊이에의 개념인식이 그 표면을 벗겨내고 될 수 있는 한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하는 탐험으로의 고찰이라 말한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먼 곳으로 가서 그곳의 다른 면을 보고 오게 되기를 꿈꾸는 여행의 산파와도 같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가장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맛을 체험하게 해준다는 점에 있다. 각 개념들의 신화적이고 역사적인 연원의 뿌리를 소개하거나 어원의 연쇄고리를 타고 도착하는 텅 빈 부재의 공간에 데려다 준다는 점도 놀랍다. 이러한 투르니에의 낯설고도 익숙한 개념 설명은 이 자체로서의 과정이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지만 그 보다 개념의 진원지이면서 본질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부재를 어떻게 채워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준다는 점이 좋은 것이다. 결국 내가 한번 채워보지 않은 앎의 진지한 자세를 되잡아 주는 셈이다.
대게 우리가 알던 코드를 새삼 들여다보는 것은 대중이 갖는 넓은 의미로의 본질일 수는 있지만 생각해보면 넓을수록 그 의미가 단층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표피는 두터워질 대로 겹겹이 싸여 견고해지고 결국 남의 생각으로 하여금 그 개념이 정의되는 착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당연시되는 넓은 체계를 과감히 무너뜨리고 모호함이나 엉성한 질문을 던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화두를 던진다. 분명 작은 파문이긴 하지만 확장을 포기하는 대신 깊이로의 펌프질을 돕는 편이 진짜 개념의 본질을 알게 되는 시작점이며, 결국 알게 되는 것이 아주 단순한 진리였다 해도 그것은 내가 생각한 진리이며, 내 삶의 막강한 주체적 개념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철학을 고리타분하고 실용적이지 못한 사유 뿐이라고 터부시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투르니에가 전하는 철학은 우리의 삶과 아주 가깝고 풍요롭게 해주리란 기대를 품게 만드는 철학이다. 무엇보다 뜨겁고 진지하게 살아간 지성들의 아포리즘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오랜 시간 돌아보게 하는 기쁨이었고, 내 삶을 아우르는 거의 모든 생각들의 뿌리를 다시금 점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