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황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신문에서 본 박성우의 <삼학년>이란 시를 읽고 한참 동안이나 정지하게 되는 무언가가 흘러갔다. 전문은 이렇다.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 동네 우물에 부었다 /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놓았다 /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이 시의 소박함과 순박함의 정서는 원대한 고향의 품처럼 아름답다. ‘영혼의 맛이란게 있다면 바로 이 미숫가루와 같은 순박한 맛이지 않을까. 실컷 먹고 싶은 소년의 순수함이 우물 한 가득을 채우고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한 작은 손을 응시하게 한다. 잠깐의 행복감에 젖은 아이의 눈과 마음을 헤아린다면 어찌 따귀를 올려 부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이 지나침 역시 다 헤아리지 못할 것은 아니어서 이 시는 우리네 고향이고 누구나의 정서가 맞닿을수 있는 공동의 품이다. 아마도 소년에게 미숫가루가 가득 들은 우물은 온 우주와도 같았을 행복의 근원지였으리라. 온 몸을 흔들리게 한 이 강렬한 맛을 헤아리는 기쁨이, 우리네 인생이 맛이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정말이지 영혼의 맛을 아는 사람은 인생의 절반을 살아 낸 사람들일 것이다.

 

인간이 누려야 할 원초적인 욕망 중 가장 으뜸은 이고 그 다음이 바로 먹는 것이란 말을 들었다. 잠을 자는 것은 혼자 행하는 일이지만, 먹는다는 것은 결코 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태어나면 누구나 타인에 의해 먹임을 당해야 한다.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먹거나, 끓인 이유식이라도 누가 떠먹여 줘야만 살 수 있으니까자립으로 만들 수 있는 시기가 되기 전까지는 일단 누군가가 조리해주는 음식을 먹는다. 따라서 먹는 행위는 집에서든 밖에 서든 먹는 것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꼭 함께할 때 가능한 일이다. <칼과 황홀>은 바로 이러한 누군가로 비롯되거나 그런 결과를 낳았거나 하는 관계에 관해 이야기 한다. 특히나 이 책은 그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뛰어 넘어 황홀의 맛까지 담은 상차림이니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작가가 찾은 음식들은 그 특유의 맛을 궁금하게 하지만 그보다 그와 얽힌 깊은 맥락들을 짚어내는데 자연스러운 이끌림이 인다. 단순히 그 음식의 맛을 설명하려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그 곳의 정취나 냄새, 문화와 역사 등 오래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전해준다. 마치 간장과도 같은 인생의 깊은 맛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일처럼 말이다. 같은 재료와 같은 시간, 공을 들여도 맛은 제각각인 어머니들의 손맛처럼, 책은 이야기마다 새로운 집으로 초대해 날마다 다른 음식을 선사해준다. 특정한 상황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음식의 맛을 좀 더 깊고 풍부하게 해주는 연관을 맺는다. 이는 마치 된장이 익어가는 발효의 과정처럼 몸에 좋은 균들이 아주 미세한 실이 되어 진득진득 붙어가는 관계를 비유하는 것 같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추억하는 일만은 결코 아니며, 결국 너와 나관계의 연장선상 위에 놓인 매일 해야만 하는 관계의 미학을 비유하는 일이다.

 

 

성석제는 그 어느 이야기여도 재미있게 꾸며내는 익살의 재주로 유명한 작가다. 이 책 역시 예외일 수 없어서, 먹고 사는 흔한 이야기를 어쩌면 이렇게 재치있게 그려낼 수 있을까하는 감탄이 매 장마다 절로 튀어 나온다. 먹음을 생의 축복이라 여기는 작가이기에 그의 유머와 재치는 또 한 번 맛의 도구가 되어 다채로운 향연의 조미료로 쓰인다. 그만의 음식 기행은 만나는 사람마다의 특별한 교류와 개성을 통해 작가가 듣고 본 자연스러운 재료와 어울어져 가미되고 풍부해진다. 그래서 그가 먹는 음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더 이상 내가 알던 단 하나의 맛으로만 기억되는 음식일 수가 없게 된다. 그의 흥겨운 칼놀림이 좀 더 날렵하고 섬세해져 그가 아니면 절대 맛볼 수 없는 맛의 경지까지 안내하는 것이다.

먹는 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몸을 유지하게 해주는 숭고한 행위다. 여기에 마음의 윤택까지 돌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먹는다는 것의 숭고함을 몸의 보약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싶다. 결국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그것이 내 몸을 이루는 영양소로서만 생각하는 일에 그친다면 그 영혼은 먹는다는 행위로서 결코 인생의 깊이를 가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박한 음식이라 하더라도 내 몸에 들어가 삶의 기운을 얻고 말거라는 의도된 긍정은 조금씩 쌓이다보면 모든 삶의 원기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 복합의 에너지가 발산될 날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음식은 개인의 몸과 마음을 잇게 해주고 나아가서 내게로 온 재료의 역사와 관계를 맺는 일이다.

 

 

작가가 전하는 음식 이야기들은 주로 그 음식에서 비롯된 소소한 일상들을 전하는 일이다. 아무리 비루한 인생이거나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어도 작가의 눈을 통하면 결코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니게 된다. 설탕을 끼얹은 빵을 베어 무는 일처럼 금세 미소가 번지게 되면서 그 소소함 안의 달콤한 면면을 목도하게 해준다. 먹는다는 것을 특별한 행위이게 해주는 작가의 유별난 지시가 소박한 인생에서도 유머를 보게 하고 삶의 에너지를 부리게 해주는 추진력을 줄 것 같다.

이쯤이면 황홀한 맛이라는 게 꼭 맛있다라는 감탄사를 내뱉을 미감의 황홀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내 입맛을 사로잡는 맛은 접시 위에 놓인 맛좋은 음식일수만은 없고, 그것을 향유할 줄 아는 개개인의 포크와 칼의 의지에 달려 있다. 어느 지점에서 베어 물줄 알고, 어떤 때에 술을 마셔 풍미를 더 가감할 수 있는지를 아는 섬세한 지점을 말이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그것을 알맞은 때에 먹고 입안에 머무는 동안의 씹는 행위를 적절하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맛을 정확하게 누릴 줄 아는 자이다.

그가 펼쳐내 보이는 인생의 소박한 맛은 오랜 동안 우울한 순간마다 떠올리게 되는 소중한 맛집들의 지도처럼 아로새겨진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해준 당신의 미소 그것만으로도 밥상의 무게는 전보다 훨씬 근사해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