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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정병모 교수의 민화읽기 1
정병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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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화가들의 반란, 민화>를 읽고 있자니까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익살스러움’의 천진난만한 기운들이 눈과 마음을 맑게 정화시켜주는 듯 하고, 저잣거리에서 복닥거리며 들려오는 소리가 색색의 풍요로움으로 전해진다. 민화를 보는 일은 그득하고도 다양한 삶의 면면을 목격하는 일처럼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일이다. 마치 시간을 멈추게라도 해서 그 안의 이야기를 모두 머릿속에 기록하라는 것만 같이 자주 정지하게 만든다.
우리가 민화를 두고 왜 위대한 예술인지를 논할 때 이유를 들라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해학의 면모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가장 인상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림 안의 사람이 웃고 있기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마저 든다. 단순히 그 옛날 어느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겠거니 하는 인상을 뛰어 넘은, 이들도 나와 같이 웃고 삶의 희로애락을 느꼈을 어느 개인의 역사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을 맞을 때마다 어떤 경지의 숭고함마저 느끼게 된다. 마치 해학이라는 미학의 일면을 한참 넘어서서 슬픔마저 밀려오는 순수의 세계, 우주의 영원 따위를 상상하게 되는 희미한 순간이다. 
 

민화는 ‘예술’이라는 거대하고도 고유한 영역의 무게에 감히 접근하지 못하다가 어쩌면 제멋대로일 수 있는 방식으로 태어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예술이다. 대다수의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 소박한 정취만으로 그 모든 것이게 하는 그림 한 장의 위력은 실로 엄청나다.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프고도 다행스럽기도 한 독특한 태생의 예술 민화. 민화는 특정 계급이 향유하던 엄숙주의, 고급성을 상실한(물론 의도된 상실이어서 아름다운) 진중의 틀을 벗어내고, 사람 냄새 물큰 풍기는 ‘익살스러움’의 재치를 한껏 뽐내는 예술이어서 좋다. 자연과 사물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하고,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그려냈기 때문에 민화는 우리네 뒷모습을 참 많이 닮았고 그래서 더 특별하다.


민화의 또다른 면모 가운데 익살스러움과 버금가는 매력을 들자면 그 중 으뜸은 역시 ‘일탈’과 ‘자유로움’일 것이다. ‘예술’이라 함은 그 본질이 ‘상식’과 ‘관습’적인 것에 틀을 벗는데 있다. 거기에 이왕이면 인간의 가장 솔직한 단면을 마음껏 구현해 낸 것이어야 좋다. 전통과 관습의 틀을 깨고 마음껏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구사한 민화는 숙명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손에서 만들어져 도드라진 매력이 없다. 그렇지만 기존의 예술과 비교하여 위대한 점이라면 민화가 가장 솔직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당당히 말한다는 것이다. 터부시되는 금기를 상징으로 교묘히 배열하고 가장 들추기 어려운 부분만을 적나라하게 다루는 호기가 있다. 이전까지의 예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권위의 상실, 타락의 외침이다. 그래서 민화는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서 그 본연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예술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사실 기존 예술에서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떤 사고와 방식으로 예술을 향유했는지 예측 가능성을 뛰어넘는 일은 거의 없다. 유교와 관습 따위를 어떻게든 중시하면서 양반문화를 예술에 구사하여왔는지 몇 편의 작품으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거의 문자로도 기록된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이런 민화로나마 알도리가 없다. 민화의 솔직함과 자유분방함은 단도직입적이고, 때로 진지하여서 십장생도와 같은 예술작품으로는 아주 뛰어난 예술흐름을 선두할만큼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고즈넉하고 진중하기만 한 기존의 예술작품과는 다르게 항아리와 병풍, 일상생활의 물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면도 지금의 생활 밀착형 예술의 흐름을 선두한 면면일 것이다.
서민 화가들의 다채로운 상상의 나래는 닭 한 마리를 그리더라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분석하고 재구성한 새로운 닭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꼬리를 한껏 감추고 호쾌한 기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호랑이는 또 어떠한가. 권위가 땅으로 쳐 박혀 고양이도 웃고 갈 정도의 순진무구한 표정의 양반이 보이는 듯도 하다. 이렇게 우스꽝스럽고 제멋대로의 자연의 재구성은 사실 당시 계급 문화와 사회의 단면을 비집는 ‘일탈’ 행위였다. 마음껏 놀리고 풍자하고 재미있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용기에서 조용히 일어난 민화는 그래서 예술의 사회적 쓰임으로서 그 질적 양상을 좀 더 다양하고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보면 민화를 세계에 알리려는 저자의 오랜 숙원의 목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우리의 그림이 세계에 어떤 식으로 전해지고 그 의미를 찾아가는지 그 위상을 자세히 전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민화의 다양성이 자세한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어서 민화의 특징을 알기에 용이하다. 우리 민화가 사람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실용성 있는 장식이 되기도 하고, 주술이 되기도 하며, 상징으로서의 예술적 가치로 남은 것도 높이 평가할 일이다. 많은 예술적 의의가 있겠지만 민화가 인간의 소박한 바람에 의해 투영된 매개체로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는 사실은 민중의 삶이 왜 더욱 위대한 일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서민들의 마음과 염원의 유토피아를 가능케 하는 온 삶, 과거 혹은 미래의 세계관을 매개해주는 민화의 매력은 그래서 차고도 넘친다. 왜 민화 한 점을 보면서 그 때의 자연이, 사람들이, 그곳의 이야기들이 내게 쏟아져 흐르는지 그 이유를 오랫동안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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