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히라노게이치로의 전작 <책을 읽는 방법>을 보면 책을 '천천히' 읽어야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주장이어서 처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만약 너무 재미있는 책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불과 몇시간 안에 독파하지 않을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단숨에 읽힐 만큼의 책이라면 굳이 천천히 읽는게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히라노게이치로의 제안은 책을 아주 오래 음미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깊은 성찰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그런 책의 장인정신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었을 때 왜 굳이 천천히 읽어야 하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경험상 아무리 재미있게 본 책이라도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 내용을 더듬거려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다. 이는 책을 다만 눈으로만 읽고 느낀 탓이 클 것이다.
이번 신간 <소설 읽는 방법>은 전 책에서 다 예시하지 못한 소설의 깊은 행간들을 찾아내는데 주목한다. 마치 작가가 심어 넣은 씨앗을 알알이 찾아내는 일처럼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깊은 관계들을 발견해내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빨리 읽었던 오랜 습관의 제동이 이 기회로 뿌리까지 다 뽑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지영작가가 지리산 친구들의 사는 이야기를 펴냈을 때 가장 궁금했던 사람이 바로 낙장불입 이원규시인이었다. 화려한 도시생활을 접고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지리산생활을 시작한 그의 행보는 읽는 내내 참 순수하고 진짜 삶을 사는구나 하는 용기를 엿보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도시생활을 접은 지 어언 14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시인의 발걸음은 지리산을 비롯 전국의 시골을 찾아 헤매는 진짜 방랑의 삶이었다. 그의 애마인 모터사이클로 홀로임을 즐기면서 자연과 사람과 함께한 세월을 보낸다.
수많은 마을에 가닿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느낀 시인만의 감수성이 긴호흡의 길로 태어났다니 정말 반갑다.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는 제목처럼 홀로 지내는 고독을 불행이라 생각하지 않고 무엇보다 깨어있는 삶, 항상 어디론가 떠나게 되는 방랑기질을 이 책으로 마음껏 부러워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라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소장하고 싶어하고 서가를 빼곡히 장식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뿌듯한 일일 것이다.
<오래된 새책>은 책수집광 박균호씨가 그만의 책에 대한 철학을 소개하며, 각각의 책에 얽힌 흥미로운 사담을 담은 책이다. 수집하게 된 경로, 왜 오래된 책이 좋은가 하는 책과의 필연적인 만남들, 특히 절판된 책에 대한 헌사를 고백하는 내용이라니 각자의 사연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클 것 같다. 오래되었어도 마치 새책을 만난 일처럼 깊은 감동을 주는 책의 깊은 애정을 마음껏 드러내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외항어선의 생활기라고만 해도 무척 흥미로울텐데 <풋내기 마초의 초민폐 항해기>는 무려 19살 영국 소년 바블렌의 항해기란다. 대학입시의 스트레스와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낀 바블렌이 어느날 갑자기 외항어선에 오르게 되면서 좌충우돌 민폐 항해가 시작된다. 온갖 투정을 부려온 철없는 삶과 안녕을 고하고 거친 아저씨들과 먹고 자며 요절복통 에피소드를 만들어가는 바블렌의 거친 이야기가 벌써 부터 큰 파도처럼 넘실대는 것 같다. 스스로를 마초라 부르는 소년의 찌질한 사회생활 첫경험이 어떤 식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해 나갈지 배가 접혀질 것 같은 요절복통 폭풍웃음이 기대되는 책이다.
이정희, 고미숙, 김여진, 오소희... 이름만 들어도 각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배운 여자' 무려 17명의 언니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책이 나왔다. 너무 똑똑해서 조금은 주눅이 들것만 같은 그녀들의 뒷이야기는 의외로 훈계조의 지침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하기만 한 그녀들의 일상 혹은 인생에 대한 담담한 고백조로 담아냈다고 한다. 특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나'가 아닌 '우리'가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란 조언,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질문하게 하는 '배운 녀자'들의 수다에 깊이 빠져들고 싶다. 따뜻한 인생으로 만들어나갈 비타민, 에너지를 충전할만한 좋은 이야기 책일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