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들으면 눈물마저 꽃이고 새잎이 된다. 상실의 추억을 간직한 어느 가을날의 아침으로 데려가, 그 때 그 눈물을 기억하는 낙엽을 한참동안 바라보게 하는 일. 붉은빛으로 감도는 잎새를 보며 우리는 수많은 과거와 조우하고 위안을 얻는다. 그의 음악을 듣는다는 건 바로 이런 일과 같다. 사소해서 기억해내지 못할 추억과 손끝까지 전해질만큼의 아픈 기억까지 모조리 일으켜 세우는 스위치 같은 음악, 이를 그의 예술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참으로 잔인한 일이지만 아픔도 아름답게 재생해내는 예술이란 이름을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라 일컫는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들으면 언제나 마음의 현이 모두 일어나 감정의 선들이 춤을 추는 그런 마법 같은 시간을 보낼 수가 있다. 
 

그를 생각하면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동성애라던가 자살이라던가 하는 자극적인 단어가 따라 붙는지도 알지 못했다. 공연장은 몇 번 갔어도 그의 생애에 관심을 둔 적은 없으니까.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처럼 차이콥스키가 러시아인이라는 것 이것이 그를 아는 유일한 것이려나. 그래 새삼 그의 전기를 전해주는 책이 반갑고, 음악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책이다.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차이콥스키가 전형적인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불행한 삶을 예견하는 것이다. 바람과도 같은 성미를 지닌 사람, 섬세하게 불어대다가 때로는 본인도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의 회오리를 몰아치는 격정적인 사람 말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주어진 현실이 남들 보다 특별히 불행한 상황이거나 한 게 아니라는 현실을 따져보면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현악기의 미세한 현과 같은 마음을 그가 만든 소리의 울림으로 헤아리고 공유하는 것은 그래서 안타깝기만 하다. 그 본연의 모습은 어려서부터 유약하고 남에게 상처를 잘 받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그의 음악이 전반적으로 우울하다거나 근원의 상처를 건드리는 일은 별로 없으니 유별난 사생활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크게 불행한 삶은 아니었어도 그것을 감당해내는 입장에서는 때때로 자살까지 몰아가는 검은 그림자가 항상 따라붙는 삶이었던 것 같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쉽게 사랑에 빠지곤 했지만 그것은 거의 다 평범치 못한 결말로 치닫는다. 동성애이거나, 배신을 종용한 건지 진짜로 당한 꼴이 되어버린건지 아리송한 관계라거나, 애정 없이 불행하기만 한 결혼생활, 오랜동안 만나지도 못할 후원인과의 정신적 사랑 등 그는 어느 사람과도 일치 하지 못한 관계를 만들었다. 그의 죽음까지도 석연찮은 의문만 남겼듯이 차이콥스키의 인생은 어느 시절 하나 행복한 기억 없이 애매하고 불행한 쪽으로만 흘러간다. 그의 곡이 우울하거나 하지 않고 그만의 개성이 들어간 아름다운 선율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놀라울 만큼 온 생애는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았다. 이 어두운 그림자를 따라가며 그의 생애를 알게 되고 다시금 음악을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은 가벼운 곡조의 선율에도 전에 없이 다른 면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 었다.  



이 책은 차이콥스키의 생애를 주로 참고문헌을 편집하고 서간 자료를 토대로한 구성이다. 그러나 좀 더 밀착되고 구체적인 글쓰기를 선보이는 것은 아니어서 아쉽게도 그리 흥미로운 책은 아니다. 다만 몇몇의 편지 자료에서 느껴지는 그의 태도로 미루어 짐작하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 지점만이 재미있다. 그는 늘 자신에게만은 솔직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라는 것, 누구보다 성실한 삶을 살아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언제나 어설프고 상처 받는 결과를 낳은 관계를 이어갔지만 음악에서만큼은 이 체험들을 깊고 넓은 소리로 표현해낼 줄 아는 드넓은 상상력을 가진 예술가라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선생들로부터 받은 자극과, 철저하게 공부해온 작곡의 토대들이 어우러져 차이콥스키의 감성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러시아인 특유의 기개가 느껴지고 각 곡마다의 개별적 완성도도 매우 높다. 그래서 그를 말할 때 교향곡, 협주곡, 독주곡, 오페라곡 등 많은 장르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리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음악가라고 일컫는지도 모르겠다. 
 

예술가가 자신이 상상하는 영감을 표현할 때 그 중 가장 어렵게 만들어지는 창조물은 음악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보고 느끼는 그대로를 쓰거나 그리는 행위는 음악보다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는 소리로 구현해 낸다는 점에서 보다 다각화된 상상력과 기술을 요한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청자 입장에서도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을 들이댈 수밖에 없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들으며 새삼 이 수많은 곡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탄생한 것이며, 각 마디의 역사는 얼마나 길고 위대한 것인가를 떠올려 본다. 전율이 느껴지는 순간마다 훌륭한 음악은 결국 예술가의 수많은 시간들을 내가 잠시 빌려 마음에 새겨 넣는 일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