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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일상이 만약 바닥에 닿을 듯 푹 꺼지는 쇼파에 앉아서 이리저리 눈알이나 굴리는 신세처럼 무료한 것이라면, 여행은 일단 무릎을 탁탁 털고 일어나 걷거나 뛰기를 반복해서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숨결이 가빠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행은 언제나 뜻밖의 상황으로 몰고 가 감정을 추스리지 못할 지경의 당혹감을 만들고 혹은 나도 미처 알지 못한 '나'이게 만드는 낯선 시간 제공자다. 돌발적이고 예기치 못한 우연이 많아지고 내 안의 비밀이 많아지는 것, 이를 여행이라 부르면 좋을 것 같다. 평온하던 일상의 파문을 일으켜선 격렬하거나 여러 가지 함정과도 같은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어 내는 것, 낯선 땅과 낯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아우라의 경계, 우리는 이곳을 끊임없이 넘나들고 싶어진다. 

건축가 안도다다오는 평생을 이렇게 일상을 벗어나서 본인도 알지 못한 마음을 헤아리러 떠나는 수행자 같은 삶을 산다. 틈만 나면 난생 처음 가본 땅에 서게 되고, 의도적으로 헤매며, 여행지의 정취와 철학과 역사를 알러 떠도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낯선 땅에서 거창하고 위대한 면을 보려하기 보다는 사소하기만 한 풍경과 소외된 사람을 보고, 사라진 역사를 보는 이면의 눈을 뜨고 바라본다. 작은 사물들이나 언어를 줍고 자기만의 공간에 차곡차곡 쌓는 수집가처럼 그의 발걸음은 천천히 또 오랜 여정을 기록하는 진득한 데가 있다. 

문득 재즈바에 들러 음악을 듣게 되면서도 그는 그 이질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엄청난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다. 재즈의 즉흥성에 건축 속성과의 닮은 점을 생각해낼 만큼 그가 생각하는 건축에 대한 애정은 유별난데가 있다. 재즈바 공간의 어둡고 침침한 기운이 내뿜는 퇴폐나 불쾌의 정서를 경멸하지 않고 오히려 재즈 문화가 어떻게 태동하였는가를 깊이 이해하는 태도는 연구가의 자세가 어때야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악취를 풍기고 불쾌한데도 그 이면의 아름다움을 찾는 집요함이 있는 것이다. 그는 요즘 도시가 생명력을 잃은 듯 보이는 이유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모조리 드러낸데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오로지 밝은 면만을 보여주려는 획일화 된 도시가 아름다움을 말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빛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낳은 아이러니를 아프게 바라본다. 이러한 철학은 러시아편과 맞물려 그의 건축세계를 보다 확장해서 생각하게 해준다.


그가 러시아에서 알게 된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이란 작품은 탄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건축의 위대한 면만을 갖춘 극치의 작품이다. 이 건축에서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되겠다. 이 작품은 지구와 우주의 상충관계를 자전과 공전의 과학적 토대로 잘 구현해 낸 매우 기하적인 매력이 돋보인다. 내부의 구체적 기능 역시 놀라우리만치 정교하고 거대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는 건축 하나로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수많은 암호와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예술이 예술가의 단순한 표현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회 참여의 수단이 되는 혁명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도다다오는 이 건축 프로젝트를 접하게 되면서 건축이 사회를 응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자문해보는 거울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내비친다.
훌륭한 건축물 하나로도 그 도시를 기억해 낼만큼 건축은 이미 순수 예술적 가치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하는 상징물이다. 지향하는 바를 구현한 건축은 아무래도 지어올린 사람의 철학과 영혼이 살아 있어서 그것을 바라보거나 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앎의 시간을 선사해준다. 좋은 건축은 사람이 머무는 동안 질 좋은 산소를 내뿜어 주는 숲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떠한 전문적인 과정의 배움 없이도 안도다다오는 수많은 길을 만나며 배우고 사람들에게서 건축의 뿌리를 배운다. 진리를 찾는 한걸음 한걸음이 땅을 내딛는 일로 시작 되었으며 완성된 것이다. 이제 보니 그의 건축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던 이유는 이렇게도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여행의 기적으로 가능했음을 알게 된다. 언제나 이면을 보는 날선 혜안이 있었기 때문에 안도다다오가 안내하는 세계 여러 도시들은 더욱 특별해 질 수도 있게 됐다. 그를 따라 낯선 땅을 밟고 알지 못한 냄새를 맡게 되는 일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건축 각각의 재료와, 단순하거나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 속에서 그 안에 서린 역사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일은 고스란히 건축가의 철학이 되고 상상력의 원동력이 된다. 그를 따라 마음껏 길을 잃게 되더라도 내 나름의 상상의 나래가 한껏 펼쳐져 깊고 넓은 뿌리를 만들어낼 것 같은 기대만이 든다. 아무리 죽은 땅이라도 안도다다오가 내딛은 토대 위라면 언 땅을 녹이고 새싹처럼 자라는 크고 위대한 우주가 우뚝 솟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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