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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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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갇힌 마을은 온통 미지의 세계인 것만 같다. 이곳으로 통하는 길은 청량한 기운이 돌고 사계의 아름다움이 잠든 고요의 숲이다. 길고 긴 역사의 숲길을 지나 이윽고 다다른 마을에서 장광하고 유려한 그림들이 펼쳐 있다. 그곳을 우리는 우주라, 무한공간이라 말하고 싶어진다. 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보고, 자연스럽고 때론 엄격히 흘러가는 질서를 엿본다. 감당하기 벅찬 지극히 고요한 사색의 시간이 펼쳐지는, 그야말로 혼자가 되는 공간에 와 있는 것이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는 자연으로 우주로 가는 숲길 같은 책이다. 자연의 조짐들이 사계의 구분으로 미묘하게 나뉘고 옛 그림 안으로 정겨운 단어를 문 나비와 벌이 마음껏 날아다닌다. 계절이 다음으로 이동하려는 자연의 틈을 보게 되는 것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모든 변화 앞에 경건하게 혹은 자연의 일부인 냥 멈춰서서 ‘옛 사람’을 만나게 해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조우인가. 그림을 앞에 두고 감히 다른 상상일랑 할 수 없는 시간의 무한성이 고마워 내가 자연의 일부이고 그림 안의 모든 사람인 듯이 행동하게 된다. 그들과 함께 노닐고 싶어지는 순간, 어느새 옛 그림이 너무 친숙하다. 시간의 틈새에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나누는 기쁨이란 참으로 크고 깊다.  

 

이 책은 각 계절마다 17편의 작품을 선보이며 작가가 온종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닐었을 여정의 기록을 담아낸다. 옛 그림의 정취와도 알맞게 글쓰기 역시 한 폭의 그림처럼 단아하고 맑은 얼굴로 시 짓는 듯이 펼쳐진다. 작가는 마치 조선의 어느 선비였을 법한 단정한 인상으로 시간안내자의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처음 본 그림은 생경한 눈으로 보게 하고, 많이 봐온 그림에선 작가 손철주의 눈이 더욱 빛나서 도무지 같은 그림을 봐왔다고 할 수도 없다. 아무도 응시하지 않은 다름을 엿보는 안목, 오래 머물고 그 이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알만한 빼어난 시선으로 시종일관 그림 안에서 유영한다. 그리고 이 그림들의 주인이 독자의 것이 될 수 있게 기꺼이 구름이 되고 한 마리 새가 되어 조연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옛 그림 중에서도 각 계절마다 어울릴 그림을 선별하고 엄선한 까닭에선지 손철주만의 유별난 애착이 묻어나 보인다. 그의 글은 옛 시인처럼 삼라만상의 응축된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안목으로 넘쳐나고 요즘 말로도 응축해 내보일 줄 아는 ‘시 언어’의 아름다움이 알알이 박혀있다. 
그의 그림 읽기에서 특히 우리 옛말에 대한 아름다움을 새롭게 알게 되는 점도 새롭다. 알고는 있었지만 거의 쓰이지 않던 우리말을 만날 때 고개가 크게 끄덕여 지는 반가움이 있고, 전혀 알지 못했던 순우리말에는 이렇게도 아름다웠던가 싶어지는 앎의 깨달음이 깊이 배어난다. 그림의 정겨움과 더불어 그의 언어들은 감정의 폭을 더욱 넓혀주는 샘과 같다. 역시 우리 그림에는 우리말의 어울림이 가장 조화롭고 아름답게 빛날 재료인 셈이다.  

 


또한 그의 글에서 읽을 수 있는 예리한 비판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제 고조부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면서 정치계파의 이름은 술술 꿰는 괘꽝스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싶어지고, 남 탓은 그만두고 세태에 맞게 처신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를 준다. 옛 사람들의 정서와 태도로서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새삼 옛 것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메마른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지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옛 사람들이라는 자양분으로 자란 나무이므로. 하여 숲을 이루는 오랜 시간들을 한 권의 책으로서 돌아보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옛 그림과의 교신을 자청해야지 싶어지는, 참 정겨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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