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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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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해 사유하는 명사들의 진지한 관점들을 읽고 나니 새삼 영화의 스토리나 미장센, 연기 이외의 시각에는 한번도 물음을 던져본 일이 없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도 그럴것이 영화가 갖는 위상이란게 누구나가 태동의 역사부터 대충은 꿰고 있을 미술이나 음악 따위의 영역과는 사뭇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랄 것도 없는, 예술이라는 무대의 주연들이 잠시 주춤하는 새 나타난 광대역의 신인, 영화는 이쯤이랄까. 미적 창조가 돋보이는 명백한 예술의 고고한 성질 그것과는 때때로 대척점에 서서 극렬한 논란꺼리를 안겨주는 영화라는 장르는 어쩐지 달라도 뭔가 달라보이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제 영화는 예술의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기도 하는 명실상부한 예술의 집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영화의 역사가 어떤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만한 충격과 큰 감동을 선사해 주면서 여느 예술보다도 그 영역을 넓고 크게 확장하며, 열렬한 호응 속에 다 큰 성인이 되어 버렸다. 좋은 작품을 생산해 내는 영화 판이 존재하게 되었고, 그것은 정말이지 좋은 본보기로 자리잡아 갔다. 그러나 일면 예술의 본질에서 찾을 수 없는 다른 면을 보게 된다는 것이 영화를 좀 수상한 장르로 여기게 하는 문제일지 모르겠다. 그 예로 영화는 작품 이외에 제반되는 산업과 자본의 토대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태생을 지니고 태어났다. 독립영화가 있긴 하지만 독립영화만을 예술영화라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분류란게 딱히 쉬운 일도 아니다. 만약 그 지점이 진정한 창조의 가치를 스스로 발하는지에 대한 점이라면 이 역시 아슬아슬 하기만 하다. 역자의 말처럼 영화는 예술의 제7이라는 숫자에서 머물거나 내쳐지거나 하는 애매한 위치에 서있다. 그럼 영화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가 예술이라는 명징한 영역 안에 있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면 이는 어쩌면 현대사회에 태동한 새로운 잣대로써 가늠해 보는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예술이란 단어의 기준은 영화 하나로도 본질을 수정해야 할 만큼 조금 더 확장된 논란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렇게 애매한 관점으로부터 시작된 영화라는 장르에 예술적 실마리를 제공하고 그 시작점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영화를 만들어낸 사람보다 심리학자나 미술이론가, 기호학자, 작가 등 다양한 사유자들의 개성있는 논의들로 엮어 낸걸 보면 더욱 그 의도가 드러난다. 어떤 논문을 읽다보면 영화에 대한 사유라기 보다 사진예술이나 미술 등의 역사 공부를 하는 것 같아서 이것들이 대관절 영화와 무슨 상관이던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결국 영화라는 게 사진과 미술 음악 장르의 복합물이라는 걸 감안하면 각각의 뿌리를 더듬는 일도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저마다 영화에 대해 가진 사유들은 시대를 이해하고, 심미안적인 예측과 함께 예술의 여러 속성과 맞물려 잘 녹아 있다. 요사스러운 시기도 없고 경외시하는 일도 없이 다분히 새로운 영역에 대한 세심한 진단이 이어진다.

특히 나는 앙드레 바쟁이 말한 자연이 예술가를 모방한다는 흥미로운 시각이 새로웠다. 사진은 창조력에서 예술가를 능가한다는 말은 발터벤야민의 진짜를 능가하는 가짜 그 진면모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영화가 아직 진정한 의미와 가능성을 포착해내지 못하지만 초자연적인 모든 것을 표현해내는 고유한 능력 그 특별함 속에 곧 시작점을 찍을거란 가능성을 열어 두는 관점이다. 만약 이들이 아바타나 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본다면 또 어떤 말을 꺼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영화는 스크린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함축적인 언어와 형태로 카메라의 앵글에 담겨 전달된다. 하나의 숏에 담을 수 있는 총체적인 가치나 혹은 소소한 단서들일지라도 빛과 말과 형태로 치환해 말을 걸어오는 일은 너무나 멋진 작업같아 보인다. 대관절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랴.
 

어쨌거나 영화는 태동부터가 독자적이지 못하고 여러 재료의 결합으로 가능해진 것이었으므로 다양한 견해와 이해의 충돌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건 너무 당연하고 지극히 자연스럽기만 하다. 어떤 이는 영화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아니라고 하고 어떤 이는 언어 그 자체라고도 하는 이 다양한 견해들을 모두 체득해 '안다'고 말할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 속 영화란 '상상력에 움직이는 이미지를 창조하는 행위' 인 것 같다. 
영화가 영화적 발화를 하는 시점에 대해 그 상상력의 크기와 부피의 매력을 가늠해보면 예술에서 상상력이 지니는 절대적 가치와 그 맥을 같이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상상은 우리 내면에서 점진적으로 자라기도 하고 어느 순간 찾아오기도 하는데 영화적 상상력이란 이 순수한 상상에 어떤 장치들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장치로의 인위적 조작이 영화의 출발이었듯이 예술의 매듭 역시 상상력에서 끝날 것이다. 창조란 현실을 모방한 세계가 아니지만 현실의 일면을 간직하고 있으니까.  

여러 장에 걸쳐 이들이 영화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원리와 양식, 심리학, 기호학,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곳으로 부터의 접근이고 이 사람들이 다 영화를 예술에 넣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 대해 이토록 깊은 사유를 하는 동안 우리는 팝콘이나 먹으면서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것들, 그러니까 영화의 이면 혹은 역사의 원리와 근본을 기웃거리기만 해도 된다. 알려 애를 쓴들 개념의 배치도 정도도 그려내지 못할 제로치 가까운 우매함만이 드러날 뿐인게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사유 속의 영화>는 영화가 일상의 줄기를 한 지점 한 지점마다 돌기를 새겨가며 자라나는 장르이고, 저마다 전에 없던 영화에 대한 사유를 조금이라도 하게 된다면 좋을, 그런 영화 사유 장려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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