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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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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물 구조도를 천천히 보다가 문득 ‘나는 바보인가?’를 자문해 보았다. 분명 익숙하게 봐온 건축인데도 하나하나 그 이름을 따라 읽어 가다가 고작 ‘지붕, 기둥, 계단, 대들보’ 모르면 우스워질 단어들에 반가워하는 내 기색 때문이었다. ‘요즘 것들은 옛것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어르신들의 푸념이 온전히 내 탓이오라고 무릎이라도 꿇어 자책하고, 이 책이라도 열심히 익혀서 내 텅 빈 뇌에 공양 바치자는 심경으로 읽어내려 갔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용어와 지식들은 몰라도 될 만한 전문적인 것들이고, 돌아서면 쉽게 잊혀졌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라는 문구의 제안처럼 정말 그렇게 되어있음을 인식하는 것은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우리네 건축이 어떤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 안에 세심히 박혀있는 과학적 논리가 어떻게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지혜인지를 알게 되는 일을 고스란히 이 책으로 배운다.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은 크게 일곱장으로 나누어 평면에서부터 초석을 다져 기둥과 가구를 세우고 공포로써 유형을 결정하며 지붕을 올려 마감을 하는 건축의 모든 역사와 과정을 담고 있다. 놀랍게도 모든 페이지에 걸쳐 사진과 그림들이 아주 상세하게 설명돼 있어서 상상만으로 부족한 이해의 구체를 도와준다. 이 작업을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고 역사를 공부했으며 나름의 시각으로 풀어냈을까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숙연해질 정도로 반듯한 기분이 든다.
집은 곧 우주이고 자연이라고 말하는 그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는 여정이 이토록 치밀한 계산과 자연의 융화 과정이었다니, 정말이지 심지가 끝을 모르고 타내려가는 신비로움이 있다.
 

어느 고장의 어느 유적지를 들러도 옛 건축은 비슷한 모습으로 고즈넉한 기분을 선사하며 서있다.  단아한 지붕의 선과 그 밑의 화려한 공포의 멋, 이어진 하늘의 그림같은 풍경 정도를 탄복하며 바라보는 수순의 감상 정도가 고작일테다. 그저 자연 풍광의 그림 같은 한 채, 세세히 들여다본들 선조들이 살아내면서 세세하게 지어올린 지혜까지 엿보게 된다는 것은 우매해서가 아니라 알기 힘든 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직접 살아내며 알게 될만한 소소한 지혜나 과학적 근거들을 목격하는 일은 소중하고 새롭다. 과학적 토대가 부실한 시대였다고 생각할 근거가 전혀 없을 정도로 정교해서, 오히려 지금의 과학이 못 따라가는 위대함이 어디에든 숨어있다는게 한없이 놀랍다. 과학적인 토대로써 균일하게 지어졌고 자연과 사상의 멋이 논리적으로 융합된 구조물로 거의 완벽하기만 하다. 우리 건축의 뼈는 선조들의 정신과 자연에 어울어지는 삶의 융화를 단단히 흙에 심어 올린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저자는 마치 그 시대로 가서 목수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스케치를 하고 온 시간여행자인 것만 같다. 그 시대의 혼마저 느껴질 정도로 역사의 맥을 짚어내고 그 틈을 살필 줄 아는 건축의 재단사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환경과 지혜가 결합한 구도라는 이해는 당시의 법과 사상 종교 등 모든 면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건축물 하나로서 드러내는 한국미의 원형을 다 보여준다. 한국인이 구축해낸 정신과 환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건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보니 건축 하나로 당시의 우주만큼 광활한 가치의 성취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이었는지는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건축에 투영된 삶의 방식과 시대정신, 예술에 대한 지적 통찰력까지 추론하는 일, 집은 곧 우주이고 자연이라는 명제. 기둥과 기둥 사이의 비움이 곧 공간이 되고 이어 채움의 미학으로 충만해지는 조화로움은 얼마나 위대한가. 섬세한 우리 선조들의 실용이 보태지면 일상이 사물을 포용하는 가치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건축이 왜 시대를 상징하는 명확한 증거가 되는지 모든 궁금을 풀게 한다. 모든 재료의 크기와 쓰임, 모양새와 틈에는 자연이 주는 조화가 담겨 있고 정신이 깃들여 있으며 궁극의 가치가 스며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건축이며 우리의 혼이고 뼈다.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을 통해 한국 건축이 세상을 담은 우주고, 우주의 가장 위대한 '섬'임을 본다. 자연 위에 덩그러니 놓여만 있어도 왜 그토록 아름다워 보였는지를, 이 책으로 이제 좀 더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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