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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하는 궁금 정도는 매일 보는 뉴스와 신문에서 거의 해갈된다. 접근성을 생각해 볼 때 아마 신문보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편이 쉽고 이해도 빠를 것 같다. 그러나 매체의 특성상 시간이 제약적이라는 것 때문에 종합적인 것을 다 다룰 수 없고 자세한 정보가 전달되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여러 채널이 있다해도 그 순서나 논조까지도 거의 비슷하니 이를 보는 시청자가 생각할 여지를 갖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또한 일방적인 전달 수단이란 걸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앵커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하는 입장에서는 여차하면 세뇌라도 당할 기세로 여과 과정 없이 내 생각인냥 그대로 흡수되어 소화까지 될 때가 많은 것이다. 물론 뉴스가 객관적인 사실을 전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위험한 발언을 할 확률도 적긴 하다. 다만 다른 어떤 정보력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라는 면에서 오독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차분히 나만의 생각을 정립하고자 하면, 지면 매체를 찾을 수밖에 없다. 글쓴이의 가치관과 논조를 충분히 고려하고서라도 자신의 기준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나만의 생각'이 만들어지는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정도의 기준과 가치관이 생기기 전까지는 아무런 의심과 비판 없이 뉴스에 나온 말은 그대로 믿었던 때가 있었다. ‘법’이 전하는 정의와 도덕의 테두리 안에 무조건의 진실일테니 의심의 여지는 결코 없었다. 그러나 점점 앎이 생겨나고 비판의식이 생기기 시작하고부터는 세상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후지게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집에서 보는 유명 일간지의 사설은 수능 하나 잘 보겠다고 거의 다 섭렵했을 정도인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다 부질없는 짓이었고 오히려 꽉 막힌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었다 자조한다. 편향된 시각만을 더 각인했을 것이다. 지면 역시 위험한 사람이 쓰면 폭탄을 머금은 것과 같은 것이다. 대중의 편에 약자의 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인 전달하는 정보는 의외로 많지가 않다. 그것들을 솎아내고 여과해내는 것은 역시 내 눈에 달려 있다. 결국은 각자 안목의 문제인 것이다.   
문득 홍세화 선생님의 <생각의 좌표>에 나오는 질문이 생각난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나의 생각인가?’하는 물음 말이다. 지금 내가 보고 듣고 있는 바를 남이 아닌 내 시선으로 보고, 귀를 활짝 열어 제대로 진단하며 따지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만큼 내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남이 말하는 것에 날을 세워 바라볼 줄 알며 세상이 돌아가는 사안에 끊임없이 질문할 줄 아는 제동을 항상 걸어 두고 있을까? 내 생각의 주체는 '나'로 부터 시작될 때 관점도 생기고 주관이 생겨나는 일이다.
이러한 태도와 맞물려 언론의 주체 역시 '진실의 눈'에 기반할 터다.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전달을 하면서도 글쓴이의 주관이 진실의 무게에 방점을 찍는다면, 이를 읽는 독자 역시 더이상의 유익한 대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소통이 될 것이다. 
 

독자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어내며 굽본좌라는 별칭까지 얻어낸 굽시니스트의 만화는 그래서 좀 특별하다. 2009년부터 시사IN에 연재된 만화를 <본격 시사인 만화>의 이름으로 엮어낸 작품 모음집인데 온전히 '그만의' 생각을 발견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두페이지의 만화 뒷면에는 ‘못다한 이야기’까지 실어서 말 그대로 컷 안에 다 담지 못한 정황과 에피소드들을 읽게 하는 구성이 흥미롭다. 만화를 읽어내면서 나는 어느 매체를 통해서도 느껴보지 못한 제동의 게으름을 경험했다. 날을 세우고 내 생각화하여 읽으려다가도 이내 굽시니스트의 글과 그림에 감복하고 전적으로 신뢰하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나이브함이 오히려 반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굽시니스트는 의외로 폐부를 찌를 만한 강심장은 아니구나 하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분명 조롱할 만한 사람은 마음껏 놀리고, 호되게 역정도 내는 듯 보이지만 그렇게 직접적인 날을 세우지는 않는다. 이는 아마 최악의 상황을 제작한 최악의 사람에게라도 똑같이 응징하지는 않는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처럼 느껴진다. 그의 시선은 심하게 냉소적인 편이 아니어서 가슴이 뻥 뚫릴만한 촌철살인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주는 작가이다. 조근조근 따져내며, 풍자하는 쪽을 택해서인지 자주 피식 웃게 하거나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반응을 유도한다.
또한 이 책은 작가가 주시하고 있는 디테일한 면면의 그림자를 따라가면 좀 더 다른 시각에 도달하게 하는 면이 색다르다. 미처 몰랐던 사안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지게 한다던지, 오해한 부분을 수정하게 하고, 잊혀진 역사를 지금의 현실과 맞물려 생각하게 하는 여지를 세련미있게 던진다. 특히 국민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했던 소식을 전할 때는 자주 정지하게 만드는 진심의 말들로 여운이 오래 남는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냥 현재의 시점에서 읽어내기 보다 과거와 판타지를 오가고, 젊은 작가답게 유행과 세태를 센스있게 잘 포착해내는 안목은 굽시니트스를 따라 갈 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재치와 개성의 뭉치같다. 그래서인지 한심한 뉴스를 볼 때마다 굽시니스트의 만화가 실린 지면의 온도가 항상 생각이 난다.
사람들은 지친 소리로 ‘정치는 쇼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굽시니트스의 무대에 올라온 배우의 연기를 보는 일은 정말이지 개성으로 넘쳐나는 환상의 쇼같다. 다만, 굽시니스트와 우리의 바람처럼 화려한 무대 위 배우들이 좀 더 근사하고 상식적인 사람으로 거듭나주길 소박하게 기대해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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