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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명의 화가 - 2page로 보는 畵家 이야기 디자인 그림책 3
하야사카 유코 지음, 염혜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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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보이는 사물과 풍경들이 시시각각 변하여 화가들의 작품과 일치되거나 또 다른 변형체가 되어 아른거린다. 나는 지금 온갖 오브제들이 부유하듯 떠도는 소란의 방에 있다. 프리드리히의 방랑자처럼 안개가 드리워진 꿈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꿈을 꾸고, 드가의 발레 소녀들이 금방이라도 나비처럼 날아오를듯한 마루를 보다가, 무심히 빵과 과자가 놓여진 식탁을 바라보며 싱그러운 질감을 상상해본다. 몬드리안의 선과 원색이 예쁘게 장식된 화장실 타일, 뒤샹 사인이 새겨진 샘에서는 연신 물이 쏟아져 나오고, 바닥 위 아메바 같은 피카소의 형상들이 노닌다. 정신을 차리려고 본 거울 속의 나는 어떤가. 저게 나인지 남인지도 알 수 없는 몇 겹의 내가 서있고, 창밖 풍경에는 마그리트의 신사들이 우산을 들고 비처럼 내린다. 꾹 눈을 감았다 뜨니 비로소 고요한 수련이 핀 모네의 정원이 내다보여서 이윽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 오는듯 하다. 모네가 살아생전 정성들여 가꾸었다던 수련이 핀 정원이, 이 봄을 말해주고 이러고 나서야 참 맑은 햇살과 아스라한 향기를 머금은 풍경이 고요하게 펼쳐진다.
때때로 이는 기시감은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반가운 조우을 돕는다. 이내 사라져 버리는 아스라한 기분까지 선사하는 것이 썩 근사한 마무리 같다. 여기 101명이나 되는 화가들의 생애를 조금씩 둘러보며 소소한 감성들이 살아나고,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삶의 이해를 돕는 여행이 시작된다. 수많은 화가들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손님처럼 마음껏 향유하고 실컷 수다를 떨고나니, 들뜬 마음만이 남는다. 

 

<101명의 화가>는 단 두페이지 뿐인 8컷 만화 안에 화가의 전 생애를 단축시켜 놓은 독특한 전기책이다. 물론 이 점은 몇몇 장단점을 한꺼번에 아우른다. 개개인의 가정환경을 짧게 소개하고 어떻게 성장했으며, 사랑을 하고, 꿈을 쫓아, 죽게 되는지 단순한 대강의 삶을 다룬다. 작가가 집요하게 찾아낸 점이 있다거나, 독특한 시선의 한 지점의 생애만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좀 더 깊은 맛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더 많은 화가들의 생애를 다루는 쪽을 선택한 모양이고 때문에 작가의 포괄적인 이해를 돕는 정도로는 유용하다. 만화의 형식이라 이해가 쉽고 전개도 빨라서 그 인물에게 대표되는 대명사나 에피소드들이 왜 그 사람의 명성에 오르내리는지 한눈에 파악된다. 밑단에 곁들여지는 미술사적인 평가나 화가의 성격을 함축시켜 놓은 점 역시 지식함양으로서의 유익함을 쏠쏠하게 전해주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를 대표하는 101명이라는 화가들의 알지 못한 삶의 평범한 면면을 알려주는 점과, 철학이랄 만한 근간 같은 것을 어렴풋이 전달해준다는 점 또한 매우 큰 소득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두페이지라는 아주 적은 내용만으로 화가의 일생을 다 말한다는 것은 무리이겠다. 그의 전 생애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극히 일부의 내용으로 오도될 가능성도 있겠거니와 이 정보만으로 그를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작가의 주관적 시선 따위가 별로 녹아있지도 않고, 작품세계를 설명해주는 책도 아니라서 깊은 지식이나 미술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적합한 책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포인트적인 생애들이 제대로 된 뼈대를 의식하고 다룬건지에 대한 점도 의문이다. 그냥 가볍게 가십을 궁금해하는 파파라치의 시선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목적은 미술사적인 화가의 업적이나, 기술적인 연구의 디테일에 있지 않다. 오히려 화가 개인의 위대한 면모보다는 그 뒷이야기를 전하려고 노력한 책 같아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천재라거나, 거장의 업적을 위시하는 장면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보다는 이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그림자만을 뒤쫓는 짖궂은 인상을 받게 된다. 과장하지 않고, 그렇다고 비하하거나 하는 일 없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들의 생애를 더듬는다. 이렇다보니 워낙 베일에 싸여 알지 못했거나, 그림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에 몇 겹으로 미화된 화가의 성격이나 자취들에 적잖이 기대심이 반감될 가능성이 있다. 뭐 그렇더라도 결국은 화가들 역시 우리와 같은 찌질한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라는 점은 명확해진다. 이 책을 모두 읽고나면 어느 특정한 화가 몇몇은 좀 더 알아내야겠다는 호기심도 인다. 얼마나 찌질한 삶을 살았는지 더 알고 싶고, 그림이 말하는 스토리의 이면을 더 듣고 싶어진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온 몸을 던져 한 폭에 담아내고자 한 어떤 생의 진실이며, 꿈이며, 그림이 곧 ‘자신’의 증거이기 때문은 아닐까. 언제고 이들의 그림을 보게 될 때마다 여덟컷의 짧은 생이 생각나고, 또 아릿한 기분까지 함께할 거란 예감이 든다.  

 

이러한 장단점을 한 데 아우르는 가운데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책이 극히 일부만의 내용을 가지고 전혀 알지 못했던 화가들의 자취를 상상하거나 이해해본다는 취지로는 꽤나 흥미로운 책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수많은 예술가의 전 생애를 다 알 필요도 없는 일이고, 알 수도 없는 일이며 오늘날의 명성과 비교해보는 일이 꽤나 색다르기 때문이다. 단편적이지만 우리가 그를 대표할 만한 에피소드 정도 하나쯤 알게 되는 것은 이 책을 읽는데 충분한 이유와 가치를 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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