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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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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렇게도 가혹하고 소외된 상상을 부려도 되려나 싶다. 적어도 이 작가에게 걸었던 애초의 상상력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기에, 사실은 좀 밉기까지 하다. 몽환적이거나 애잔한 아픈 사연쯤을 품을 줄 알았지 숨죽이며 확장되는 문제들을 넋 놓고 바라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예컨데 삶과 죽음의 무게와 순환, 존재의미와는 거리를 둔 다른 주제. 그런데 그게 정말 보이지 않더라. 이 소설은 모르긴 몰라도 작가가 진짜 하려는 의미를 찾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소설이다. 어쩌면 가장 알고 싶지 않은 감정의 요동같은 것만 명확하게 짚어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생각들을 충분히 이야기해내는 고집같은 것, 어쩌면 그이기에 뜻밖의 정경도 만들어 내는것 같다. 물론 이 책의 문체와 시선들이 전작에 비해 크게 끔찍하거나 황당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 아니다. 아무리 눈쌀찌뿌려 지는 장면이라도 그의 시선은 현실의 무게보다 훨씬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는 면이 있다. 생경하기 짝이 없는 사건들과 거짓말같은 기록들을 판단하는 것은 확실성 보다 모호성을 주기 때문에 이 소설의 몽환적인 느낌을 강조하는데는 틀림이 없다. 마치 작가는 이 세상에 명확한 근거는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당황스럽고 뭔가에 대한 반응의 파문만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언제나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던 종국의 따뜻한 감정을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른, 뭔가 가기 꺼려지는 지점으로 데려다 놓는 시도를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꽤 걸린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뒤죽박죽도 아닌 이야기를 가지고 나는 호되게도 어리둥절해 했던 것 같다.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겁이 잔뜩 서린 무지랭이의 얼굴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그만큼 폴오스터의 작품은 매번 다른 충격과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주변인 애덤 워커는 현실의 중심에서 비껴 나온 소외의 인간이다. 소외의 골이 깊어지던 찰나 만나게 된 보른과 마고는 평온했던 그의 삶에 닥친 시련의 장애다. 전에 없던 허기를 느끼게 되고 아무런 온도를 지니지 못한 워커의 눈에 에로티즘이란 것이 싹튼 것도 이들에 의해서다. 사실 이 소설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당시 사회적 상흔에 의한 정치적, 문화적 여러 요인들과 한 인간이 어떤 식으로 맞물려 나아가는가를 담고 있다. 정치적 부조리에 의한 혼란과 전쟁, 특히 이 소용돌이에서 잉태된 보른이라는 괴물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보른에게서도 드러나지만 워커도 차츰 이러한 결핍과 한 몸인 욕구의 충족에 혈안인 모습을 보면 전이의 무시무시함이 느껴진다. 결국 워커에게 무의식적으로 발생되는 에로티즘이란 것은 소외의 밑둥에서 자란 거대한 암덩어리인 것이다. 때문에 관습이라는 이성적 사고에 의한 억제의 감정과 결핍에 대한 충족의 욕망은 공존하면서 워커를 내내 종용하고 기이한 인간으로의 성장을 낳는다. 중심에서 이탈하여 아주 후미진 곳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키우게 된 명확한 감정은 에로티즘이었다. 이는 주변의 사람들을 자신의 세계에 가두고 걷잡을 수 없는 환상의 자궁을 만든 요인이 된다. 이것이 무엇에 대한 아픔이든, 소외에서 온 결핍의 발산이든 워커에게 남겨진 과제는 이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길만이 남는다. 2부에서 본격적으로 태동하게 된 누이와의 사랑은 워커에게 그 욕망의 근원이 얼마만큼 기이하게 펼쳐지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타자와의 분리를 인식하게 될 뿐, 자신의 실존적 모순을 자각하기에는 분명함이 없다. 오히려 그들과의 분리를 의식하게 됐을때 에로티즘은 자신을 고립하게 만든 원인임을 이해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에게 교감이란 것은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과 융화되는 안도의 세계가 아니라 타자와 나를 분명하게 할 뿐인 단절의 수단이었던 것을 처참히 말해준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역시 시점의 이동일 것이다. 시점이나 시시각각 변하는 사실의 왜곡과 감정의 선이 아무리 훼방 놓여지고 있다지만 결국 지극히 한 사람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우리 각자에게 극치의 착각을 보도록, 그 극한의 환상은 애처롭지만 동시에 아름답기도 한 아픈 역사, 그리고 그 아픔이 낳은 어떤 쓸쓸하고도 고립된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 보게 한다.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 보이지 않는 세계로 걸어가고 있다. 그가 괴물이든, 병자든 그 누구든 그런 사람을 만나면 따뜻한 눈길이라도 보내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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