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결국 ‘그런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몰라’일 거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안의 의미가 더 별것 아니었다는 걸 감당해내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어쨌든 책으로 하여금 그것이 존재하든 안하든의 문제는 일단 젖혀 두자. 그리고 그 자체로서 내뿜는 것, 이것의 정말 실재할 수도 있는 사건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읽는 내내 책이 하나의 유물이 되고 없던 감정에 가열이 생겨 에너지로 환원되고 정말 큰 아우라를 느끼해주는 과정은 분명 독창적이라 할만 했다. 그러니 기꺼이 사냥꾼이 되어서라도 찾고 말겠다는 동기를 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책은 어떤 특정 개인에 의한 생성이 아니라 온 생애가 발생시킨 작은 역사 그리고 인류의 거대한 역사가 만나 이루는 큰 폭발의 산물이다. 그것을 본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영적 파장을 안겼을지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도는 것, 이쯤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는 책을 진짜 본 자, 눈으로 얼마간 읽어낸 선택된 자만이 그 크기를 가늠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으로 가지게 된 열망이란 본디 보편적인 감정으로 생각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특별하고 선택된 자에게서 생겨날 수 있는 성질이다. 적어도 책의 장을 열고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을 기대하는 자, 또는 열망 없이 시작했어도 한순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황홀을 사랑하는 자 그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책은 내적 열망의 상징이자 위대함의 상징이고 한편으로 욕망의 덩어리인 셈이다. 이런 전제로 보면 <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는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큰 유대를 형성할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은 책을 탐닉하는 자, 거대한 도서관의 수많은 책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열망을 느껴본 자들에게 선보일만한, 말하자면 소수를 위한 책이다.

보는 내내 작가가 얼마만큼의 장서가일지, 독서광일지 가늠해보는 것도 사냥꾼의 뒤를 쫓는 일처럼 흥미롭다. 자료의 수집, 그리고 그 자료들이 이 소설과 연관고리를 찾는 일만으로도 머리가 뻐근해질 정도로 방대한 수준이다. 실재 존재하는 책인지 아닌지는 후반으로 갈수록 궁금하지 않아진다. 위대한 탐서가의 서재를 구경하는 일처럼 존경심이 이는 시간임을 즐기면 되고, 정말 그 책을 찾아보게도 만드는 설득에 종용당하면 되고, 때로 작가가 이룬 거대한 지적인 성에 갇힌 노예처럼 답답함이 들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수많은 책이 있는 곳에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선 미지의 공포랄까, 그것은 저 멀리 존재하는 섬에 점점 도달해가는 마음과도 같았다. 독자가 느낄 괴리감들을 작가가 몰랐을 것 같지는 않고, 어쩌면 이 수많은 책들이 마침내 책이게 된 각각의 배경 그 음험한 세계를 독자가 마음껏 상상하다가 길을 잃게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찾을 수도 없게 숨겨진 혹은 소멸돼 버린 이름 없는 섬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걸까. 어쩌다가 가끔 옹색한 내 서재의 책들을 기웃거리게 된 것도 바로 이 책이 준 이상한 기운의 파장이다. 한권 한권 만약 헌책이기라도 하면 그것이 내 손으로 오게 된 경위와, 누구누구에게 라고 쓰여 있거나 한 사연들에 미소가 지어지고, 누가 쳐놓은 밑줄 부분을 다시 읽어보게 되는 것들 말이다. 책의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아주 이상한 소유욕을 안긴다.

반디는 책에 운명적인 동경을 느꼈고, 그것은 몸의 반응으로도 사소하게 일어난다. 또한 그의 의식을 지배하는 관념들은 제단 위에 오른 책처럼 신성시되고 자체로서의 책으로 맹목성을 띤다. 이것은 애초에 위험한 사냥이었다.
우리가 책을 생각하는 관점은 저마다 다르다. 대상을 보는 관점이 제각각이듯이 그 책에 빠지거나 아니게 되거나하는 것은 제 각자 도달하게 되는 생각의 뿌리에서 시작되어 미친다. 그런데 읽다보면 애초 인물들이 매혹되었던 책의 존재와 의미 이런 것들이 사실상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되는 사냥을 위한 사냥으로 비춰진다. 책이 별을 세는 일만큼이나 부질없고 끝없이 쏟아져 나올 대상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일면 구현한 허무의 증명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나만 느끼는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책의 헌터가 되어 찾아 헤매고 헌터를 쫓는 또다른 헌터가 현실 속에서 뒤죽박죽으로 일을 망치는 걸 바라보는 일이란 참 지루한 책을 읽는 눈처럼 피곤하다. 게다가 현실인지 가상인지 환상인지 점점 모호의 세계로 빠져드는 여러 부분은 책의 종말을 좀 더 극명하게 사멸시키는 행위처럼 보인다. 발사된 적 없지만 사냥꾼 총에 의해 장렬히 전사한 책의 최후처럼 그 존재란 것은 뻔한 것이다.

<레드 바이올린>이란 영화를 보면, 완벽한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의 역사를 추적해봤더니 몇 백년에 걸친 엄청난 사연들이 있었더라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다가 지금의 아름다운 소리까지 갖추게 되었나라는 의문은 역설적으로 추하고, 음탕하고, 가난하고, 아픔과 슬픔의 손길로부터 잉태된 소리라는 것이 밝혀진다. 위대한 책이란 어쩌면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어둠의 태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윤선생의 제안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처럼 위험하다. 반디는 오래 전부터 제가 가져온 열망의 책이 이 상자를 열어야만 나타나리라는 숙명적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니 상자 안에서 펼쳐진 온갖 세상을 감내해야 하는 비운의 사냥꾼이다. 이 책에서 맞서야 한 세상이란 건 생각보다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단지 더 이상 책이 존립하기에 어려운 현실 체계라는 것, 책 사냥에 열중한 나머지 곁을 지키던 사람과 재물은 다 사라져 버리고, 맹목적이고 시시한 인간종에게 배신당하는 어이없는 현실이라는 것 이정도 밖에는. 사실 반디가 모든 것을 잃고 도달하게 된 정점은 어이없게도 열망이 과하게 스파크 된 찰나이다. 전소되고 모든 열망과 기대는 한순간에 재가 되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된 지경이다. 한권의 책으로 바꾸는 거대한 불꽃놀이를 그렇게 지켜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름다움은 금방 소멸되고 이제 다시 애초에 그랬던 것처럼 각자의 마음속으로 사라지는 차례다. 그러므로 문학이 사람을 구원하는 일 따위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반디가 앞으로 펼쳐낼 운명의 한 권을 같이 기대해보는 일만은 지켜보고 싶어진다. 멈출 수 없으리란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러니 여전히 많은 수많은 별 가운데에 시위를 당기는 용기를, 전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