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랩소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
토마토 랩소디
애덤 셸 지음, 문영혜 옮김 / 문예중앙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도시에서 나고 자라 매일 식탁에 올라오는 잎사귀하나 깻잎인지 시금치인지 구별해내지 못하는 무지함은 생각해보면 얼마나 딱한 일인가. 허물어져 새 빌딩이 들어선 고향 터 대신, 발길이 뜸할 것 같은 고갯마루를 한참이나 올라가 서서 나무와 바위 하나에도 신성한 전설이 살아있는 내 고향땅 바로 그런 곳이 어딘가에는 정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참 이 소설을 읽다보니 매일 먹는 쌀과 보리의 모양새도 가까이서 본 적 없는 삶은 삭막하다 못해 울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요로운 전원의 땅, 사람이라면 응당 이런 곳에서 나고 자라는게 맞지 싶어지며 황금색로 물든 곡식의 목처럼 한없이 고개가 숙여지고 만다. 맨발로 흙을 디디고, 밭을 일구고, 열매를 따고, 가축을 길러내고, 자연을 보고 자란다는 것, 이는 분명 인간이 꼭 누려야할 자산이며 사명처럼 보인다. 냄새를 맡고, 보고, 먹고, 느끼는 시간들을 누리지 못하면 당연히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거나 미약하게 갖게 되고 이는 인생의 가장 큰 맛을 모르고 보내는 일처럼 허망해 보인다. 그렇기에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시골의 풍경과 이야기가 더없이 소중하게, 마치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유심히 그리고 수선을 떨어가며 지켜볼 일이다. 추억이 없는 이들에게 <토마토 랩소디>는 생생하고 흥미로운 시골 생활이 어떤지, 그 묘미를 마음껏 맛보게 해준다.
<토마토 랩소디>는 입체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구성의 오케스트라다. 평범해 보이는 시골마을과 그곳의 순진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이야기. 이 외에 반전은 없다. 완벽한 플롯과 응집되는 폭발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란 소리다. 다만, 이 소설의 이야기에는 저마다 깊고 유려한 역사가 존재한다. 개성있는 성격의 캐릭터가 인상적인 배경을 펼쳐 보이고 그냥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함이 오히려 돋보이는 소소한 개성을 말한다. 자신의 추억담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통해서 가늠하는 정도이지만 작가가 얼마나 개인사에 공을 들였는지 그 장엄한 역사성에 놀랍기만 하다. 개인사든 그들이 살아온 시대든 이런 이야기가 한데 모여 소설의 깊이감을 더해주는 것이다. 때문에 인물이 주는 묘미는 독자로 하여금 그 시대와, 그들의 지난 역사, 인생사를 모두 맛보게 해주는 넉넉한 인심이 참 기분 좋은 맛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만 봐도 거대한 사건을 부여해서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은 왜 이 소설이 안정적인 흐름으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인지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만약 이 마을에 거대한 일이 벌어졌다면 분위기는 오히려 풍자와 익살스러움을 포기한 어중간한 이야기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게도 주변에 흔히 일어날만한 설정들 즉, 중심과 주변의 갈등이라던가, 문화적 충돌, 인종(?)갈등, 로맨스, 치정, 욕망 등 다양하게 존재할만한 인생사 갈등들이 각각의 인물들에 의해 잘 버무려진다는 점은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과 이야기들이지만 오히려 맛있는 코스 요리가 하나씩 꺼내지는 구성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입체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전체적인 인상을 선택하는 대신, 한 개인에게 부여되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어느 한 인물만을 전면으로 내세운 구성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렇더라도 전체 요리의 맛은 아주 일품이다.
이 소설이 선사하는 또 다른 묘미라면 희극과 비극을 버무려 놓은듯한 연극적인 요소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는 가장 핵심적인 인상을 부여해주는 재미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몇 백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정통적인 숭고함을 느끼게도 해주고, 신화적인 요소들이나, 마법, 모험담 등은 놀라우리만치 개연성과 섬세한 이야기로 표현되는데 이것이 연극적인 요소들로 인해 무대 중심에서 연기하는 배우에게 익살과 풍자의 시선을 과감하게 던지는 아우라를 형성해준다. 고전적인 미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소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설정이다.
또한 중간중간마다 독자에게 전하는 말따위를 섞어서 무대 위의 배우들과 거리감을 두어 가까이서 지켜보게 하는 장치는 새롭고 현대적이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에서는 상당히 치밀하고 현대적 감각의 묘사가 돋보여서 옛스러움과 현재의 강점을 아우르는 힘을 느낄수가 있게 된다.
<토마토 랩소디>는 무엇보다 감각의 발현이 충만히 빛난다는 점이 놀랍다. 토마토라는 소재를 통해 작가가 만들어낸 이 엄청난 상상력의 뿌리를 타고 여행하는 기분은 정말이지 놀라움의 연속이다. 토마토를 싣고 미지의 영토로 향했던 논노의 여정처럼 이야기가 전해주는 나래는 그들이 사는 풍경만큼이나 끝을 알 수 없게 넓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작가는 거의 모든 문장에서 시각적이고 촉각적이며, 후각적인 원초적 감각들을 일으켜 세운다. 요리를 묘사하는 장면이라던지 인물의 생김을 묘사하는 장면, 전원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장면 등에서 그 능력은 정말 탁월하게 빛난다. 여기서 표현되는 말처럼 온몸의 감각이 일어나고 깨어나며 고양되는 그런 느낌을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다. 또한 토마토가 주는 색감의 느낌처럼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발산되는 본능적이고 섹슈얼한 감각은 마침내 소스가 되어 사람들의 입맛에 쾌락을 던져주는 일만큼이나 농축된 감각의 여정을 잘 표현한다. 빛과 맛, 햇볕과 토마토나 올리브가 빚어낸 이 시골마을의 한바탕의 꿈은 끊임없이 순환할 자연의 생리처럼 고요하지만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감각의 요람이다. 욕망의 덩어리 사랑과 애증의 덩어리 증오와 어리석음의 덩어리 그것의 열매는 정말이지 붉고 아름답다.
결국 젊은이들은 원하는 사랑을 쟁취하고 악인은 벌을 받고, 우둔해 오해를 일삼던 대중은 그것을 바로 잡을 수있게 된다. 시골마을의 짓궂은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이상적으로 아름답운 빛깔로 행복을 전해준다. 이들의 오해의 역사와 화해가 담긴 따끈한 피자의 맛, 모든 감각들이 일어나 춤을 추는 이 아름다운 땅에서 붉은 즙이 만들어낸 그 융합의 맛을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싶어진다. 온 몸의 감각들이 일어설만한 그 붉은 맛 붉은 바이러스의 위력이 새삼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