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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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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해 탄복하는 소설을 만나면 도저히 그 책과 이별할 자신이 없어진다. 일방적인 결별통보를 받은 순간처럼 믿을 수 없는 '끝'이라는 단어에 털썩 주저앉아 좀 더 함께 해줄수 없냐고 애원하고 싶어진다.
이윽고 그간의 감정들을 정리하여 어렵게 책이 덮어지는 순간에, 알게되는 깨달음이 있다. 그건 끝이라기보다 시작점에 다시 놓이는 일이라는 것, 그러니 기꺼이 떠나 보내는 용기를 얻고 또다른 세계의 문에 설 수 있는 거라는 걸 말이다. 시간이 지나 가끔 떠올린다면 지금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조그맣게 물어보는 일, 영락없이 소설은 안부의 안내자인 것이다. 

 
<독고준>은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과 <서유기>의 주인공을 생각하며 그 이후를 상상해본 소설이다. 원작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성과를 긍정적으로 기대할 기준치가 높아짐을 의미한다. 비교 당하기 일쑤고 그것을 뛰어넘기란 장벽을 오르는 일과 같아서, 그저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보여도 다행일 것이다. <독고준>은 그 이후의 삶이란 점에서 원작과 비교될 일은 적지만 읽고 난 소감을 말하면, 참 단정한 소설이란 인상이었다. 말하자면 최인훈선생의 이름에 큰 누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단 소리다. 이러저러한 고민이 있었을 것임에도 오히려 이런 독특한 실험을 해준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 두 작품을 읽기 전이긴하지만 적어도 아류작이라거나 글러먹은 오마주란 말을 앞세우지는 않게 될 것 같다. 고민의 흔적이 책을 읽는 내내 향기처럼 생각밑을 맴돌았다.  

<독고준>은 독고원이 아버지가 선택한 자살의 의문을 안고 어머니께 건네받은 수십년간의 일기를 읽으며 생각을 덧붙이는 플롯이다. 아버지의 진짜 생각, 죽음의 까닭을 찾고자 한 부채의 기록이다. 일기라는게 감상적이고 사변적인 글이 대부분인데 그게 또 매력이라면 매력이겠다. 어쩌면 소설을 읽는 독자 중에는 인물을(실재하는) 비판하는 말이라거나, 정치적 이견 따위로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반응 또한 재미있는 일이다. 독고준의 생각이 오만하거나 아집으로 보일 수도, 어떤 부분에선 솔직한 진실임에 동조하기도 하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입으로는 결점없는 말을 할 수는 있어도 마음으로는 흔들림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속마음끼리 서로 부딪히고 튕겨져 나가는 일이 격렬할 수록 즐길 수 있는 장이 커지지 않나 싶다. 일기란 원체 대중적인 시각과 보편적 가치, 시류에 염두하기 보다는 제 안에 쌓인 탑의 시각에 근거하는 것이다. 일기이므로, 일기이기 때문에 수십 편의 그의 생각을 읽어 내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부딪히고 때로 따뜻하게 맞닿은 느낌에 감동하는 일, 우리는 그를 따라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독고준의 공식적인 글은 아마 이런 단정적인 투의 언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유난스런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갚지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정치적인 사안이 있을 때 좋아하는 작가나 명사들의 개인 소견은 어떨까 종종 궁금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어느 정도 해갈이 된 느낌이 들었다. 그들도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던거로구나 하는 새삼 놀란 부분도 많았으니 우스운 일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작가란 원체 가장 민감한 사람들인데 그들이 침묵하는 방식을 의심했다니 반성할 일이다. 그들은 그들의 도구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해본다.
주로 어느 쪽인지를 묻는 정치적 질문에 대해 문인들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어서(질문의 경박성을 경멸하므로 그럴 것이다) 특히 소설가의 노골적인 생각을 엿보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살아있는 증거라는 느낌, 매일 무릎을 꿇고 '어른'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때때로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들이나 일상의 언급을 읽을 때는 고종석이란 작가의 창작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말 어딘가 존재했던 독고준이란 작가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특히 실재 인물들을 거론하는 게 현실감 있어선지 퍽 재밌게 느껴진 것이다. 문학의 계보를 읊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선 현대사의 크고 작은 일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누리게 된다. 또한 시간의 순차적 흐름이 아닌 사계에 맞춰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다시 과거를 넘나드는 구성이 퍽 흥미로웠다.

독고준이란 인물은 어느 한 곳에 머물기를 거부한 사람이다. 결국 양쪽에서 볼 때는 '자기네 사람은 아닌' 이방인으로 비춰졌을테고 때로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독고원은 아버지의 이런 성향이 오히려 수용하는 삶이었다고 본다. 실제로 고종석이란 작가의 성향을 생각해봤을때 독고준의 보수와 진보 또는 경계의 선을 넘나드는 다양한 체득된 삶을 말한다는게 무척이나 의아했다. 깊이있는 고민없이 자기와 다른 성향의 사람인 전 생애를 설계하고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 보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독고준의 시각을 두고 고종석작가의 정치적 소양에 비교한다거나 의심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일테다. 작가가 인물의 속깊은 내면을 창조하고 평생에 걸친 일상의 기록을 설계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소설임에 충실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름을 상상해보는 일은 소설가의 기본 중 기본이리라.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의 기복없이 담담한 역사의 기록을 말한다. 이는 어쩌면 무수히 많았던 현대사의 잔인한 일화들을 독고준이 살아온 발자취처럼 담담히 기록하려 한 일일지 모른다. 독고준의 글쓰기는 일기라해도 모든 생각을 다 엿볼 수 있는 글은 아니다. 특히 정치인의 죽음을 다룰 때 단 한줄의 사실적 기록 외에 개인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마치 누군가 읽을 수도 있는 전제를 둔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죽기 전에 태워 버리거나 하지 않은 게 '원'이 말한 것처럼 공개를 염두해 두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평생 외곬수같던 인생을 대중에게 최소한의 이해라도 구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그보다 아내와 딸들에게만이라도 그것이 탄로나기를 기대하면서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일기는 유언인 동시에 일종의 해명의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현실은 어떤 삶이었을까. 언제나 변두리에서 이방자의 삶을 원칙했던 독고준. 최후 마저도 그는 여태껏 살아온 삶의 발자취처럼 요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살면서 해보지 못한 가장 크고 격렬한 외침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는 뜻한 바를 조용히 옮기는, 그리고 자신이 좌초한 선택의 대가를 치르는 자유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죽음은 마치 수순의 흐름이듯이 느껴진다. 결코 마지막일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일기가 끝나버리지만 이상하게도 격정적이거나 감내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그와 닮은 고요하고도 외로운 슬픔 정도로 인식된다. 이 황당한 무덤덤함이 그의 실체일까. 독고원은 아버지와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며 까닭을 찾고자 했으나 역시 다 알수는 없는 것 같다. 세상은 계속 반복되는 역사를 살아내는 것이라고, 그의 일기만이 유언처럼 남겨졌다.   

책을 덮지만, 일기에도 차마 담아내지 못한 독고준이 본 현실의 실체 감정의 막다름들을 좀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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