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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문지 푸른 문학
김도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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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학교를 찾아 운동장의 마른 흙을 밟고, 몇 안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가만히 듣고, 교실 안을 들여다 보는 그런 아득한 느낌을 상상해보라. <삼십년뒤에쓰는반성문>은 그 창문 안의 고즈넉한 얼굴을 한 소설이다. 독자에게 오랜 추억의 물건이 있는 다락방으로 안내하는 계단이 되어주는 미담같다. 폴폴 날리는 먼지 마저도 그 시절을 담은 유물인냥 싫지 않은 나만의 장소, 기꺼이 시절을 들추어선 오늘의 나를 있게해줌에 고마운 미소를 짓게 된다.  

제목에서처럼 주인공은 병환으로 누워계신 은사를 찾았다 까까머리 중학 시절의 잘못을 듣고 삼십년만에 반성문을 제출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기본적인 플롯으로야 소설이나 수필 등에서도 숱하게 봐온 것이어서 은사의 죽음이나, 소소한 감동 등의 예상을 품게 한다. 물론 보기 좋게 빗나간다면더 좋았겠지만 이는 소설의 그리 큰 걸림돌은 아니다. 분명 들어서 알거나 뻔한 스토리라는 걸 예측하면서도 몰랐다던마냥 연신 재밌다란 말을 품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이 '어떻게'를 충실히 행함으로도 충분히 좋은 전달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삼십년뒤에쓰는반성문>이 잔잔한 스토리를 가지고도 보편적이고도 대중적인 동감을 유발하는 것은 분명한 매력이다.    

작가의 말에도 밝혔듯이 작가는 학창시절 글을 훔쳐와 상을 받은 일이 있었고 몇십년이 흐른 뒤에 그 감정들이 사그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를 한다. 소설 속 인물처럼 작가 본인도 칭찬을 계기로 소설가가 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회고하며 소설로써 그 여남은 감정들을 털궈 내는 게 분명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만한 일(사소한)로 시작되었지만 어린 소년에게는 말하자면 최초의 양심의 씨앗이 생긴 '사건'이다. 
남의 글을 도둑질한 소년도, 굴욕의 상처를 안고 자기만의 방에 갇힌 선생도 일을 계기로 뭔가 자극점이 됐었을 것이다. 그럴듯하게 보일 욕심으로 남의 생각을 흉내내는 일이라는 건 의도했건 본인도 알지 못한 새에 벌어졌건 충분히 벌어질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를 크게 마음에 두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다. 누구나 자극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마다 풀리지 않는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처럼 조력자는 구하기 힘들더라도 그걸 푸는 일은 오래도록 계속되거나 혹은 영영 힘들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삼십년을 기다려준 선생의 존재와, 그의 글을 자랑스러워 하고 고마워 하는 모습은 정겹고 아름다워 보인다.  

단편 <진부의 송어낚시>를 읽으면서도 같은 맥락의 소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삼십년뒤에쓰는반성문>의 소년이 소심하고 오랜 시간을 밟으며 성장하게 된 면모를 보인 소설이라면, <진부의 송어낚시>의 소녀는 당당하고 솔직한 매력으로 즉흥적인 맛을 느끼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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