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퍼케이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이퍼케이션 1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그럴 수만 있다면 이런 류의 이야기에는 뭔가 상징하고 은유로 내포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 수록 훨씬 그럴 듯 해진다. 아무리 사소한 단서라도 감추고 일단은 속여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도 생각지못한 스토리를 연결하고 그 안의 여러 상징들을 부여하며 질러내기 보다는 은은하게 전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좋은 글이요 예술이리라. <바이퍼케이션>은 설명보다는 인물간의 문답이 주를 이루는데도 표현 하나하나 내포하고 있는 뼈의 순도가 깊고 증폭되는 여운이 크다. 3권이라는 방대한 장편소설임에도 작가는 그 의미하는 바를 시적으로 담백하고 철학적이면서 아름다운 말로 전달해준다. 그래서인지 그 안의 의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광기어린 살인장면의 묘사라던가 세상의 온갖 끔찍한 사건들의 집대성과 같은 표현들은 온 세포를 팽창시키면서 읽기를 두렵게도 만들지만 이내 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일도 그만두게 된다. 내성이 생기듯 간결한 이미지로만 남아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것은 <바이퍼케이션>을 경험하는 독자라면 통과의례처럼 느끼게 되는 고비이자, 탄복의 순간이 될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악행에 혐오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마음이 나중에는 오히려 불쌍한 영혼이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가의 재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자를 긍휼이 여기라는 얘기는 단 한줄도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악마라는 존재의 근원이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그들은 어쩌면 우리들 한명한명이 내뿜은 '악'의 기운이 모여 만들어진 씨앗의 성장물은 아닐까 그렇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은 정말 이렇게도 엄연히 다른 막다른 길로의 초대를 한다.   

장마다 서두에 배치한 신화 얘기나 살인마들 얘기를 보고 있으면 넋을 놓아버릴 만큼 몸서리 치는 아찔함을 느끼게 된다. 신화 얘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세계 어딘가에 있었던 살인마들의 실제담은 도저히 인간의 탈로는 상상할 수 없는 만행들이다. 인간이기 보다는 상상만으로 존재하는 '악마' 그것의 재림같다. 여기 나오는 헤라클레스, 탄탈로스, 하이드라 등 상징되는 신화 속 인물들은 모두 이 살인마들의 면면에 닮은 구석이 있다. 아마도 이 '악마'들의 근원을 하나로 몰아가기 보다는 여러 살인마의 여러 모습으로 즉 12개의 머리를 한 뱀의 모습처럼 그려내고 싶었던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악마를 추격해나가기 위해 FBI요원인 천재 에이들과 강직한 형사 가르시아는 목숨까지 내던지며 폭주하는 악마의 힘과 맞서 싸운다. 가르시아와 에이들 둘 다에게 아픈 과거가 있고, 여기 죽거나 살인자가 된 인물들도 모두 각각의 어두운 과거가 있다란 공통점이 있다. 악마는 인간을 좀비처럼 영혼없이 제 뜻대로만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데 그것은 모두 그들이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악마 그도 온전한 육신은 없는 결핍된 자다. 그를 포함은 모든 자들에게는 마음 속의 어둠이 있고 그것은 무언가로부터 결핍된 상실의 증거다. 바로 이 불신과 불행의 씨앗이 증폭되어 악마를 키워냈고, 당연하듯이 참극이 벌어진 것 뿐이다. '신화는 과거의 거짓일 뿐, 영웅놀이는 가족의 사랑같은 거짓 진실보다도 더 거짓이다. 너의 가식어린 사랑만큼이나'라고 경고하는 말처럼, 표면에 보이는 그럴 듯한 이해와, 사랑과, 진실이 사실은 가식일수도 있으며 본질은 어쩌면 이기의 산물에 더 가까울 수 있다란 무시무시한 언질을 해준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발산하느냐가 문제다.
사람들을 가장 공포에 떨게 하던 것, 자신을 해하게 되거나 누군가를 해하는 일. 이것이 악마의 종용이라고 믿지만 이것도 착각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너의 본질을 건드린 건 아냐, 내가 건드린 본질은 네가 아니라 권총이었어.'라고 말한 것처럼 내 안에 어두운 마음이라는 두 본질을 깨닫는데 사람들은 익숙치 못하다. 양면의 얼굴을 하고 끊임없이 이성과 질서의 기준에 의해 이기를 억눌러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믿기 힘들 것이다. 이런 면에서 소설은 신화속 주인공들의 과업이나 숙명들을 통해 그들을 닮은 인간의 본질 그 철학적인 물음에 더 가까이 가보라고 권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몇번이고 놀라게 되는 것은 전혀 예측가능하지 않다란 점이었다. 만약 헤라클레스가 누구인지, 리온은 어떤 자인지, 하이드라가 누구인지 궁금증을 갖는 순간 가장 가까운 곳의 인물부터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예상을 가능하지 않게 했다. 작가는 가장 독창적이면서 그럴 듯한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새롭고 보다 강력한 파워를 가진 인물을 상상해냈다.
오랜 구상 기간을 걸친 작품답게 헛점을 드러내지 않는 치밀한 구성과 상징하는 철학적 의미들로 여러번 곱씹어 보게 만들고, 가능한한 독자가 어렵고 지루해 하지 않도록 쉬운 말로 설명해준다. 작가가 근본적으로 의도했다던 재미를 위한 소설임에 틀림이 없었고 그래서 어렵지 않았다.  

세상이 우리가 믿는 오감, 육감 차원을 넘어선 다른 감각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있다면 바로 <바이퍼케이션>에서 말하는 알 수 없는 '힘'의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분명 이 소설은 우리가 믿어의심치 않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무시무시한 도전을 대리해준다. 느끼고 아는 것만 진실이라 명하고 본질이라 착각할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차원의 감각도 진실일 수 있다고 의심하라. 아무도 헤라클레스를 못보았지만 어딘가에서 과업을 마저 이루려는 그 힘을 한번쯤 의심하고 상상할 자유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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