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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누구하나 제정신인 사람이 없다. 오랜 일상의 반복이던 고요한 마을의, 아니 조용하고 평화롭다 못해 권태로움이 산을 이룬 코브마을에 이 무슨 해괴한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평범한 직업으로 돈을 벌고, 멀쩡한 집에 살며, 어제와 다르지 않은 식사를 하는 코브마을의 사람들이지만 소설은 그 평온한 얼굴 뒤에 감춰진 '우울의 그림자'를 서두부터 흘린다. 그것은 한 여성의 자살사건으로부터 툭- 터져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이상 어제와 같은 오늘로 살아갈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미 내면에 포화 상태로 그득한 암울한 기운은 마을을 기괴하고 떠들썩하게 변화시킨다. 어쩌면 집단으로 투약되던 약의 정체때문일 수도 있다. 항우울제를 먹어서거나 유출된 방사능때문이거나 여기 나오는 인간과 바다생명체는 뭘 먹고 미친 존재들이긴 하다. 그렇지만 약만으로 단지 환각에 빠지고 금단증상으로 성적변태가 되던가 말던가는 소심한 의사 잭의 애송이같은 처방전처럼 제대로 된 진단일리 없다. 
생각보다 더 이상한 기운으로, 마을 전체를 감도는 그 무엇을 알아 내야만 했다. 그걸 알고 싶다면 사람들처럼 엉터리 약이라도 삼키고 시오의 옷자락을 잡으며 따라 나설수밖에 없다.   

유쾌하고 짓궂은 인물들의 말과 기괴한 행동들 바다괴물의 도발과 귀여운 도술력, 작가는 도무지 어울리지도 않는 상상의 결합을 시도때도 없이 선보인다. 과연 듣도 보지도 못한 마을의 분위기를 기막히게 독창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해괴한 판타지 이야기로 읽다보면 진지한 풍자소설인가 싶기도 하고 우왕좌왕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비웃는 듯이 우화 하나를 들려준다. 가수 캣피쉬가 '블루스 정신'을 찾아 동료와 함께 겪게 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네 다리 중에 두다리는 누구것인가 하는 처용가가 언제부터 블루스 정신의 관문이었나 싶고, 인생의 온 쓴맛은 마다할 것 없이 저지르는 두 사람의 인생사는 직업정신의 함양을 넘어 눈물겨운 수도생들의 진리탐구의 여정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신세계란게 역시 일부러 체득되는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과연 캣피쉬가 부르짓는 블루스 정신이라함은 무엇이던가? 그것은 인생의 고통, 우리말로 하면 '한'을 느끼는 일일테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마음 안에 달린 문제이지 억지로 깨우쳐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뭔가 그래야만 하는 관념의 틀을 벗어나 나만의 것을 찾은 그 뒤에라야 정신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캣피쉬도 진짜 블루스정신을 알기나 했을까. 그걸 실패했기 때문에 그도 자책에 시달리며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여기 우화에서 말해주는 궁극적인 물음의 단서가 하나 포착된다. 나만의 고유한 정신이라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이건 어디에서 오는 거지?  

 
싸구려 배우 노릇의 몰리는 비록 가장 미쳐 보이긴 하지만 자신이 하고싶은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랬기 때문에 가장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고 다른 세계를 받아 들인 최초의 인물이 된다. 서서히 사람들도 자신의 물음들을 건져 올리기 시작한다. 도통 대마초없이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던 시오도, 우울을 먹고 사는 메이비스와 게이브, 윈스턴, 에스텔 그리고 제 놀던 밭을 떠나온 바다괴물 스티브도 모든 인물들의 문제 저변에 '상실'이 숨어 있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채 자꾸 채워내다 보니 그것은 폭력적이게 변해간 것이다. 자학을 하기도 했고, 타인을 향해 냉소를 취하거나 세상과 단절하는 그야말로 미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의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결국 소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제자리를 찾게 되는 해피엔딩을 말해준다. 살다보면 방사선이 온 바다를 서서히 물드는 일처럼 우리에게 우울의 기운이 온 정신을 마비시켜 정지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문에 뭔가에 의지하고 세상을 향해 냉소나 날린다면 결코 그 늪을 빠져나올 수 없다고 경고한다. 병들어 죽어가거나, 잃어버린 태초의 내 정신을 다시금 가다듬어 보는 일,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탈출 방법은 아닐까. 코브마을 사람들도 자각에 이르는 순간 각각의 응어리져있던 마음의 문제들로부터 스스륵 풀려나게 되었다. 이제야 사람들과 바다괴물은 저마다의 레이더망으로 상실했던 제 본 모습에 좀 더 가까이 가 볼수 있게 되었다. 
오롯이 혼자서 촉수를 곤두세우면 되는 이 간단한 노력을 사람들은 한바탕의 큰 신고식을 치뤄서야 찾게 된다.  

에둘러서 아주 길게 돌아온 여정이었지만 각자 돌아갈 곳을 알맞게 찾아간 해피엔딩의 이야기인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사람은 본디 온정을 품은 마음을 가지면 되고, 냉소 따위는 넓은 바닷물 속으로 던져 버리라고 스티브는 전령처럼 나타났던 것일까? 제 짝과 바닷속 어딘가를 유영하고 있을 녀석의 힘찬 물질처럼 사람들도 크게 한 발 내딛는 용기를 얻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를 있게 해준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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