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반짝반짝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손짓 하나에도 마음이 설레고 무심코 던진 말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아마도. 하지만. 정말로?

 

나이를 먹어도 확신은 생기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더 없어지는 걸수도.
한때 나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줄 알았다. 지금 나는 어른이고 미궁에 빠졌다.

 

그들의 첫사랑이 마냥 풋풋해 보이지만은 않았던 건 내가  그 시절의 사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나이인 나는 그들처럼 이십대 초반이었었고 신촌 거리의 수많은 인파에 묻혀 다녔으며 내 미래는 평온할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 그들처럼 괜찮은 척 하며 수많은 후회와 망설임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있다. 과거를 마냥 후회하기에도, 그렇다고 무언가를 해보기에도 너무나 어쩡쩡한 위치에서 말이다.

 

시간은 흘러야 하고 과거는 잊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갈 수 없다. 나의 어리석음을 평생 되씹으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간은 약이다. 버티고 견디다 보면 모든 것은 희미해진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예고 없이 과거가 불쑥 찾아올 때면 어쩔 수 없이 그 해결책도 과거에서 찾아야한다. 내가 너무나 익숙한 그래서 따뜻한 과거 말이다. 내 어린 시절의 어리석음을 거의 모두 알고 있는 내 이십 년지기 친구. 그녀와 나는 아마도 조만간 추억 여행을 갈 거 같다. 바로 그 신촌 앞으로 그 시절의 음악을 들으며 그 시절의 음식점을 찾으며 말이다.

 

우리는 그때 어리고 무지했다. 하지만, 계산없이 따뜻하기도 했다. 그러니 아마도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세실 2012-05-02 13:15   댓글달기 | URL
오랜 친구와 따뜻한 과거를 찾아보는 추억여행..... 좋아요.
행복한 시간 되시길^*^

토트 2012-05-02 23:22   URL
아주 기대하구 있어요.
세실님도 행복한 시간 많이 보내세요~ ^^

머큐리 2012-05-02 19:52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남자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여성분들에게도 뭔가를 던지는군요..

토트 2012-05-02 23:23   URL
네. 남자들과는 좀 다른거 같지만, 그래도 옛날 생각이 나더라구요.^^
 

화사한 색의 꽃다발을 사고 싶고,

날아갈 것 같은 팔랑팔랑한 원피스를 사고 싶고,

화려한 컬러의 완벽한 모양을 가진 메리제인 구두를 사고 싶고,

다시 쿠키를 굽기 위해 오븐을 새로 사고 싶고,

그 쿠키와 같이 마실 향이 아주 좋은 커피 원두를 사고 싶고,

청량한 느낌의 향수를 사고 싶고,

생각은 안해도 되니 무조건 재미있고 아주 두꺼운 추리소설을 사고 싶고,

지금 당장 마실 맥주와 프레첼을 사고 싶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려려니 하는 무신경을 사고 싶다.

 

봄비.가 내리는 새벽이다.

 



 
 
하늘바람 2012-04-22 11:54   댓글달기 | URL
아 어쩜 저랑 하고 픈게 똑같나요

토트 2012-04-23 14:54   URL
하늘바람님도 저하고 요즘 마음이 똑같나봐요..^^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오늘 문득 떠오른 시.

 

하지만,

이 시집은 내가 다시 펼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아름다움의 과학 - 미인 불패, 새로운 권력의 발견 과학전람회 9 
울리히 렌츠 지음, 박승재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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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미의 구성요소를 찾아 나서면서 조금씩 발전해왔다. 그러나 결국 한 가지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것은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바로 목표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목표가 점점 더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언어나 학문의 힘을 빌어 아름다움을 묘사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절대 손에 잡지는 못한다.
특히 완벽하다고 생각한 아름다움의 리스트에는 무언가가 하나씩 꼭 빠져 있다. 그것은 바로 비밀이다. 아름다움이 어떤 비밀을 간직할 때, 그러한 아름다움이야말로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도식이나 완벽한 형태에서 벗어난 모습이고, 관찰자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달리 보이는 기묘함이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보는 눈을 자극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하나씩 뜯어보면 흠이 되는 부분까지도 아름다움에 포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에는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79쪽


 
 
 

솔직히, 오늘은 집에서 쉬려고 했다.

컨디션도 안 좋았고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투표하러 가려면 2시간이나 지하철을 타야한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발끈했다.

 

나는 알람에 맞춰 일어나서 빵 한쪽을 들고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한산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했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피어있는 꽃을 보며 혼자 커피를 마셨다.

스마트폰으로  총선 뉴스를 확인하면서 2시간에 걸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맥주를 마시며 개표방송을 보고 있다.

아... 참.. 할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