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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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엄마말 잘 듣기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쉬운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일이 바로 '엄마말 잘 듣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면서 공부 열심히해라는 엄마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듣고 자랐는가. 하지만 진정 그 엄마 말씀 때문에 그 이유만으로 공부 열심히 한 사람 그렇게 많이 되겠나 싶다. 그저 듣기싫은 잔소리에만 머무르지 않았던가. 그리고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하고 남들이 다 대학가니까 나도 가고 그런식이 아니었던가. 진정 세상에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서 그리고 그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가슴에서 우러나온 그 공부 열심히 하라던 한마디를 뼛속깊이 이해하게 된 건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요즘에서였다.

 


이 책의 저자인 장회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칠십평생을 쉼없이 공부하며 학문탐구에 정진한 인물이다. 저자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잘할 수 있는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는 '공부꾼'인 셈이다. 하지만 이 저자가 공부를 해 온 과정은 순탄치가 않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양질의 사교육을 받은건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주경야독하며 어렵게 공부를 했던것도 아니다. 그에게는 그 공부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그렇게 자식 하나쯤 학교공부를 시킬 수 없을 만한 형편도 아니었고, 집안에서 제일 똑똑하고 책보고 공부하기를 즐겨했던 저자를 유독 할아버지께서 공부를 못하게 했다고 한다. 결국 장교수님은 남들이 다 다니는 초등학교도 중퇴해야 했었고 2년 가까이 들로 산으로 일을하러 다녀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학교운동회날에는 그곳에 나가서 감을 팔아오라기까지 했다니 어린 소년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는 어땠을까 쉽게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할아버지께서 공부를 못하게 말렸을까. 그 이유는 책 중반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도수 없는 안경'이란 에피소드에서 잘 설명 되어져있다. 할아버지에게 공부란 일종의 자존과도 같은 허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손자가 그렇게 갈망을 하던 '공부'란 것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농사일을 하던 저자에게 '네가 할일은 그런일이 아니다'란 한마디를 건네주던 장면은 특히나 인상깊었다.

 


그런 저자에게 공부란 항상 목마른 그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책 중간에 강희맹이 쓴 '도자설'이 소개되어지는데 아버지랑 같이 도둑질을 하던 중 그 아버지가 아들 도둑을 부잣집 창고에 일부러 갇히게끔한 일을 꾸미게 된다. 그 상황에서 아들 도둑은 쥐소리를 내는 임기응변을 발휘하며 집주인을 따돌리고 호수에 큰 바위를 대신 집어 던지며 추격을 따돌린다. 이에 원망하는 아들에게 아비 도둑은 이렇게 말한다. 남에게 배운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라고. 그래서 그 아들은 훗날 천하제일의 도둑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그 아비가 아들을 직접 부잣집 창고에 가두듯 초등학교 조차도 못 다니게 했던 그 상황에서 배움의 향한 갈망의 창고에서 스스로 쥐소리를 내며 살아남기를 터득했던 '공부도둑'이 되었다. 그런 경험들이 훗날 장교수님이 제도권의 교육을 순탄하게 받으며 남들처럼 그저 그렇게 공부했던 수많은 '공부 잘하는 이'들과 차별되는 자기 분야에서의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끔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산과 들에서 일을하던 순간에도 태양이 지면을 비추는 모습에서 삼각함수를 연상하고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고민해보는 등 이른바 '야생학습'을 통한 그런 공부법을 통하여 물리학에 평생을 바칠 결심을 했다고하니. 역시나 공부란 자기 스스로가 그 필요성을 느끼고 흥미를 가지고 할때 그 효과가 최대치가 되는 것인가 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털어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인 아버지와 미적분학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저자처럼 스스로 공부하던 전력이 있던 저자의 아버지는 농사일이 적성에 맞지않아 단기간에 측량기술을 배우고 토목기사를 했었는데 아무리 혼자 공부를 하여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미적분학이었다고 했다. 저자인 장교수가 고교시절 그 미적분학을 처음 배움으로써 이제 우리 아버지에게도 미적분학을 가르쳐 드릴 수 있겠다고 기쁨에 들떠있던 모습. 또 그러한 아들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그 미적분학을 배우겠다던 아버지의 모습. 진정 공부하는 자로서, 배우는 자로서의 나이와 신분을 초월한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런 저자의 공부에 관한 이야기가 70%쯤 그리고 저자의 전공인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와 온생명과 낱생명, 동양사상등의 이야기가 나머지 30% 정도로 구성되어져 있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후자의 경우는 크게 감흥을 못느꼈다. 그만큼 난 물리학이란 학문 자체에 저으기 거부감과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었었고 그런걸 다 수용할만한 '이해의 틀'이나 그릇이 안되는 탓이리라.

 


하지만 공부하고 배우는 자로서의 장회익 교수가 걸어온 길에 관해서는 곳곳에서 무척이나 느끼는바가 컸었던 책인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공부'란 것은 우리가 평생 해야만하는 그런 과업이 아니겠는가. '엄마말 잘듣기'를 이제서야 깨닫게된 지금. 난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정말 공부를 잘할 자신이있다. 허나 그럴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나. 지금부터라도 학교공부는 아니지만 다양한 인생의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 책은 그런 스스로 공부하는 동기를 유발하게끔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책으로 판단된다.

 


많은 이들이 그런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능동적인 공부를 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학생이면 당연히 학교공부에 충실히 하고 직장인들은 퇴근후에 술마시고 사고치지 말고, 게임하며 낄낄거리지 말고, 테레비보며 멍때리지 말고 책보며 사색하고 영어공부, 인생공부 하다못해 재테크 공부라도 열심히 하도록 하자.

 


그리하여 엄마말 잘듣는 착한 이땅의 자식들로 거듭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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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생태도감 - 본분을 잊은 의사들이 맞이하는 4가지 파국
이노우에 히로노부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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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 목숨이 대게나 우럭보다는 중하지 않겠나

 

 

 

책표지가 특히나 인상깊었다. 이런걸 표본상자라 불러야 하나. 마치 어린시절 여름방학 숙제로 잠자리나 나비 따위를 잡아서 표본상자에 핀으로 고정시켜 놓았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는걸 희화한 표현이아닐까 자의적으로 해석해보았다. 그 미니어쳐 밑에는 각각의 죄목이 적혀있다. 돈으로 아들을 의대에, 교통사고 환자는 돈벌이, 환자와의 사랑, 환자보다 골프.. 그리고 한 줄의 문장으로 이 책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본분을 잊은 의사들이 맞이하는 4가지 파국이라고.

 


이 책을 보기전에 필자가 한 가지 착각한 부분이 있었다. 일전에 독일 의료계의 비리를 다룬 '메디컬 스켄들'이란 책을 보았더랬는데 그 책과 비교 하면서 아마 이 책은 일본판 메디컬 스켄들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젠 한국만 남은건가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엄연히 '소설'이니 읽다가 필자처럼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지 말길 바란다.

 


첫번째 이야기인 '부정입학'을 보면서 바로 위와같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니 이건 칼만 안들었다 뿐이지 명백한 살인행위 내지는 살인교사가 아닌가. 이거 이래도 되나? 독일의 그것보다 어째 판이 좀 커지는 느낌인데라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설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허나 이 책의 저자인 이노우에 히로노부가 젊은 시절 보험조사원으로서 활동하며 병원에서 목격한 그리 떳떳하지 못하거나 낯 뜨거운 실상이 그 창작의 토대가 되었다고 하니 모골이 송연해지는건 피할수 없었다.

 


일본사회에서 수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병원이 가지는 긍지와 의미는 그 가치가 상당한가 보다. '부정입학'에서는 그 지역사회를 위해 반드시 명맥이 유지되어야 하는 오카구라 병원의 부원장인 쇼고의 도가 지나친 사명감으로 인해 자신의 아들 쇼헤이를 의대에 부정입학 시켜 결국엔 의사로 만들어내고 (실제로 그런 대형병원의 후계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경영능력이 최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의사 자격증이 없으면 병원의 경영자가 될 수 없는 법에 의거해 발생한 일임.) 급기야는 원장을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한다는 스토리이다. 특히나 마지막의 반전으로 이 책에 실린 네편의 이야기중 가장 '소설적인' 재미가 훌륭했던 작품이었다.

 


그 외 세번째 이야기인 '섭식장애'에서는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 죄질이 가장 약하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했었다. 솔직히 '사랑'한게 그렇게 때려죽일만큼 잘못한건 아니지않겠는가. 하지만 그 의사가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었고 어느 정도 환자의 병력을 이용(?)한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이시노 아사미의 쓸쓸한 죽음과 이루지 못한 그들의 사랑은 필자를 약간 안타깝게도 했었다. 나머지 두 작품 '경부염좌'에서는 자신의 빚을 갚기위해 소위 말하는 '나일론 환자'를 양산해 내는 부도덕한 의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의료과실'에서는 여자와 골프에만 빠진 나머지 의료사고는 예방이 아닌 사후에 적당히 처리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진 역시나 부도덕한 의사가 된통 당한다는 이야기였다.

 


간략하게 요약해 보았으나 결론은 역자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네명의 의사 모두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의사라는 본분을 망각했었기에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문득 어저께 본 한 시사프로의 한 장면이 떠올랐었다. 모 유명관광지 횟집들에게서 행해졌던 이른바 '두배저울' 사건이었다. 분명히 대게나 우럭, 광어들을 사면서 저울로 달아 보았을때는 10kg이었는데 집에와서 달아보니 5kg이었다는 그런 사건이었다. 저울속의 스프링을 하나씩 빼서 무게가 두배가 나가도록 만든 저울을 집단적으로 사용하다 적발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세상 참 믿을놈 하나도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더랬다. 일일히 물건 살때마다 개인저울을 들고 다닐수도 없고.

 


대게나 우럭도 안심하고 못사먹는 세상. 하물며 사람목숨이 대게나 우럭 따위보다는 더욱 더 소중한것 아니겠는가?

 


풍자라고 가볍게 보아 넘기기엔 그 중요성이 너무 크다. 의료인들 스스로 또한 모든 이들이 각자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소명의식'과 '장인정신'을 항시 견지해야 할것이다. 모든 직업은 '천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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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5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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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고전의 힘'을 생각해 보다가..

 

 

 

얼마전 독서관련 모 인터넷 까페에서 고전을 추천하는 이벤트를 한적이 있었다. 그 때 이 책을 추천하여 상(?)받았었다.

 


필자가 다시금 독서에 취미를 붙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린시절 보았던 이른바 세계문학전집 같은 셋트를 한 세군데 출판사에서 이 책 저 책 조합하여 책장의 세칸정도를 채워넣은 일이었다. 아직 채 반도 보지 못했지만 인생의 매 순간을 대함에 있어 항상 그 '시작'이 중요하다는데 비중을 크게 두는 편이라. 아마 그런 심정의 발로였던것 같다. 하물며 학창시절에도 항상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마음먹으면 매번 수학정석의 '집합과 명제'랑 성문종합영어의 'TO부정사'부터 열심히 들여다보곤 했지않았던가.

 


문득 '고전의 힘'을 생각해 보았다. 필자처럼 모든일은 그 탄탄한 기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것이며, 지식 검색 사이트에 '고전을 왜 읽어야 하나요?'따위의 질문을 해보면 아마도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쌓아온 삶의 지혜가 축적된 보고이며 어쩌고 저쩌고식의 모범답안이 나오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선뜻 대답해 주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어지니 책 읽기에 관한 필자의 내공은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최근에 1억원 고료 모 국내 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책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이 시대 우리나라 대한민국 20~30대 젊은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트렌드를 잘 반영해서 재미있었다는 입장과 대한민국 여자라면 다 저렇게 살아야 하나 한심하다 이게 1억원이란 상금의 가치가 있을까란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필자는 후자쪽에 가까운 입장임을 밝힌다.

 


시대가 변했다. 그러면서 입맛도 변했다. 하지만 변하면 별로 안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있다. 적절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맛있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매일 끼니를 패스트푸드로 해결한다고 치자. 분명 그러다 탈난다. 살찐다. 콜레스테롤 수치 올라간다. 가장 기본이 되는 '밥' 먹어줘야 한다. 김치, 된장찌게 먹어줘야 한다.

 


아마도 그런 마음에서 새삼 펼쳐든 책이었던것 같다. 참 다시 보아도 좋은 책들이 많다. 어린왕자, 데미안 등등.. 물론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처럼 10대때 봐도 어렵고 20대때 봐도 헷갈리며 30대때 봐도 여전히 뭔소리인지 모르는 그런 책들도 있기는 하다. 그런면에서 스탕달의 '적과 흑'은 요즘 젊은이들도 충분히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고전 중 대표적인 책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위에서 거론한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맛과 영양을 고려한 쌀강정이나 꿀떡 같은 소설이다.

 


이 책에 얽힌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하나있다. 작년에 아는 누님의 소개로 조신하고 가정교육 잘 받았다 정평나있던 20대후반의 모 여성과 소개팅을 하게되었다. 필자가 책 좋아한다니까.. 어떤 책이 좋아요란 질문에 하필 바로 이 '적과 흑'이 떠올랐다. 그때 입으로 벌써 이 책의 서평은 다썼던것 같다.

 


중세 프랑스에서 출세의 길은 두가지였다. 적과 흑이란 제목이 의미하듯이 적으로 대표되는 군인의 길과 흑으로 대표되는 사제의 길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왕정 복고 시대의 암울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에 쥘리앵 소렐은 그의 우상이던 나폴레옹의 그림을 스스로 찢고 사제로서의 길을 택하게 된다. 어느 절벽에 위치한 동굴이었나. 그곳에서 출세를 위한 욕망을 키우며 세상을 향해 마음의 칼을 갈던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쥘리앵 소랠은 참 매력적인 케릭터였다. 흔히들 말하는 여자들이 죽고 못사는 '나쁜 남자'로서의 면모와 이 시대의 트렌드인 훈남의 조건을 두루 갖춘 매력남이다. 그래서였던지 그가 택한 출세를 위한 방법에서 우를 범하게 된다. 그 죽고 못사는 여자들을 이용했던것. 결국엔 그 여자들로 인해 몰락을 하는 스토리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란 우리 속담을 그가 그 때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쥘리앵 소랠이란 한 사나이의 부침을 통하여 인간의 욕망에 대해 말하고 있는것이다.

 


자.. 이 이야기가 재미없냐? 이 이야기를 듣고 아주 지루해 죽겠다던 표정을 짓던 그 소개팅녀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일부러 지루하지 말라고 스탕달이 자기 스스로의 마음을 알고자 하기 위해 썼다던 '에고티즘의 회상'이 어쩌니 왜 이 '적과 흑'이 심리적 사실주의가 구현된 최초의 작품이라 일컬어지는지 따위의 이야기는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는데.

 


근자에 서머싯 몸이 쓴 평론집을 보았다. 그 책에 이 '적과 흑'도 소개가 되어있었는데 작품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간 잘 알지 못했던 스탕달이란 인물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도 거론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스탕달이란 이름에서부터 왠지 모르게 좀 땅딸한 느낌이 들어 예상은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스탕달은 별로 멋지지 않은 외모가 컴플렉스 였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여자들에게 인기도 없었고 그런 훈남이 되고픈 욕망이 '적과 흑'의 매력적인 사나이 쥘리앵 소렐을 만들어 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흥미롭지 않은가?

 


진정 책이 좋아 책을 가까이 하곤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고전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은 꽤 즐거운 일일것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책장 가득 꽂혀있는 아직 못다본 고전들중 '적과 흑'과 같은 매력적인 작품이 몇개 더 숨겨져 있을것 같아 사뭇 흥분된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지금처럼 '무엇'을 위한 독서가 아닌 독서 그 자체를 위한 책읽기를 해야지 다짐해 보았다.

 


나도 한때 문학소년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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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샨보이
아사다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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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

 

 

 

소름이 끼치는 순간이 좋다. 그것이 감동으로 인한 소름일때 말이다. 한창 혼자서 영화를 보러 다녔던 시절 그런 경험을 종종 했었던듯 하다.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키스들의 향연에서 그리고 '러브레터'의 마지막 장면 도서반납증뒤의 그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소름끼치는 순간을 접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드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은 그 '러브 레터'를 비롯한 '철도원' 그리고 작년에 보았던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등 필자가 하나같이 재밌게 보았던 영화의 원작자인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집이다. 그러니 기대를 안할래야 안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사다 지로의 책을 보는건 아마 처음인것 같다. 일전에 헌책방에서 사 온 '프리즌 호텔'이 버젓이 책장에 꽂혀 있는데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에 밀려 아직도 본인의 간택(?)을 받지 못했으니..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

 


이 한 문장의 명제가 이 책을 설명해준다. 아사다 지로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가장 큰 핵심이라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 순탄치 않았던 아사다 지로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작품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것 같다. 이 책에 실린 일곱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가슴 깊은곳 저마다의 아픔 하나씩을 간직하고 있다. 그 아픔들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람'이 제일 아름답노라고 말하는 작가가 그 상처를 살포시 보듬어 주는 이야기들이다.

 


표제작인 '슈샨보이'를 비롯하여 '인섹트' , '쓰키시마 모정' , '눈보라 속 장어구이' , '해후'가 개인적으로 특히나 좋았던 작품들이었다.

 


'슈샨보이'에서는 자수성가한 식품회사 사장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아였던 그를 거두어준 구두닦이 노인이 있었다. 그 구두닦이 노인을 따라 이치로가 구두닦이의 길을 걸으려 했을때 좀 더 높은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라 호통치며 반대했던 노인. 슈샨보이라 이름붙인 그의 경주마가 우승을 하던날 그 노인을 찾아간다. 아버지로 모실테니 이제 고생 그만하시고 같이 살자고 해도 한사코 만류하는 구두닦이 노인. 훌륭한 아이는 훌륭하게 자라는게 당연하지만, 훌륭하지 않은 아이가 훌륭하게 되어 더 고맙다는 그간 못다한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노인은 떠나간다. 오랜 세월 구두약에 찌든 검은 눈물. 그리고 못다 부른 이름 '아버지'를 외치는 이치로의 절규가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 외 '쓰키시마 모정'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생적으로 유곽으로 팔려나갔던 미노를 통하여 낙적이라는 개인의 구원보다는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것이 보다 참 된 삶이라는 교훈을 전해주고 있으며 '눈보라 속 장어구이'에서는 필자가 며칠전에 장어구이 초밥에서 장어만 십여개 홀라당 건져 먹을만큼 그 맛나고 몸에 좋은 '요강깨는 풍천장어'를 먹지 않는 사단장의 고백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해후'에서는 만날 순 없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눈을 고치기 위해 안과 의사가 되어 그 치료법을 개발하고 싶다던 어느 의대생의 애절한 사랑이 가슴을 따스하게 했다.

 


이 책을 보고 울었다는 사람도 몇 보았다. 하지만 필자는 울 수 없었다. 당장 다음달에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뛰어버린 강남의 전세값 때문에 온 신경이 거기에만 집중되어 있던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슬프지 않은가. 현실이 감성을 지배해 버리는 순간이..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 했거늘 집앞에 돈앞에 사람이 이렇게 무너져서야..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깔끔하고 꽤 '적절한' 감동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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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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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비겁한 변명입니다

 

 

 

우선 밝혀둘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류의 책들 중에서 '소설'이란 장르에 국한해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과감히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이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즉 그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새 책장을 넘겨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만큼 술술 읽혀져야 하는 소설이다. 거기다가 부수적으로 인생의 교훈과 잔잔한 감동, 마음의 위안까지 전해준다면 내겐 더없는 최고의 '소설'이다.

 


소위 말하는 작품의 '경중'이란 잣대는 누가 정하는건지는 모르겠다. 대중들이 잘 알지 못하던 숨겨지고 묻혀진 소설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했을때 흙 속에 묻혀진 진주를 발견한듯한 그 보석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그 기분을 잘 알리라. 남들이 다 좋다는 책이 내게도 100% 다 좋지는 않다는 그 사실을.

 


워낙에 어렵게 말하는 전문 평론가들의 극찬은 차치하고라도 필자보다 앞서 이 책을 보고 인터넷상에 리뷰를 등재한 50여 누리꾼들의 서평들을 간략하게나마 다 훑어본 결과 7대 3 정도의 비율로 좋았다는 평이 많았던 책인지라 특히나 기대를 많이했던 책이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제목에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독일 문학이란 사실에.. 또한 결론적으로는 마이너스가 되는 결과를 초래한 한없이 만만해 보이고 가벼운 느낌의 책 표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연상시키는 사이즈 등등. 그땐 몰랐다. 만만하게 보다 큰 코 다쳤다. 3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을 황금연휴 중 하루를꼬박 투자하여 겨우 다보았다. 올해 본 소설중에서 가장 집중이 안되는 책이었다.그래도 다 볼 수 있었던것은 아마도 마음 푸근한 황금연휴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 싶다.

 


가장 눈에 띄는 사실은 구성이 참 독특하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뵈를레가 보낸 두통의 편지로 책 한권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것이 정녕 편지라면 받는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편지치곤 너무 길다. 내용이나 어디 쉬운가.

 


전체적인 줄거리를 요약해 보자면 의외로 참 간단하다. 살인사건을 저지른 잘나가는 변호사인 뵈를레가 감옥에서 자신의 변호사인 피아르테스에게 자신이 행한 살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아 보낸 편지이다. 이 뵈를레란 인물은 세상의 모든 일을 '놀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나폴레옹에 비유하곤 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마지막엔 그 변호사마저 이 '놀이'에 끌어들인다.

 


그런 뵈를레가 들려주는 '놀이'로서의 인생에 있어서의 몇몇 에피소드는 꽤 흥미롭다. 어린시절 자신이 어린이란 점을 이용한 성인 여자들과 행한 은밀한 놀이, 이복형제인 후레자식을 이용한 우표장사 등등. 하지만 그외의 대부분의 사항에 있어서는 소위 말하는 뵈를레의 '말빨'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잘나가는 변호사인 케릭터인지라 당연히 말을 잘하겠지만 그 논리에 설득 되기도 전에 그 장황함에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형국이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열심히 집중해서 따라가다 보면 어느순간 무슨 말인지 한참 헷갈리기 시작하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멋지게 한 마디 남기며 편지를 끝맺는다.


'인간은 오로지 놀 때에만 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이런 놀이가 없다면 우리의 짧은 생은 너무나 무료할 것입니다.'

(P.263)


말자체는 멋있다만 글쎄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살해하고 그걸 '놀이'란 이름으로 정당화 한다는것이 과연 보편적인 도덕성의 관점에서 쉽게 납득이 될만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필자는 실미도에서 설경구형이 외친 그 한마디만이 새삼 떠오를 뿐이었다. 그건 비겁한 변명입니다!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갈수록 사는건 참 만만치가 않다는걸 느낀다. 오만상 스트레스 받는 순간순간마다 뵈를레 처럼 세상만사를 즐거운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견디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놀이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 다른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체육대회에서나 행하던 힘겨운 몸짓인 씨름이 강호동씨에겐 '씨름~ 재밌는 놀이' 였던것 처럼.

 


소설읽기는 필자에게 있어 그런 하나의 놀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재미있는 놀이'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좀 더 쉬운 놀이였으면 더 좋았겠다란 아쉬운 마음 금할길이 없다. 시간이 허락 한다면 차후에 재독을 해보겠지만 그냥 쉽게 편한마음으로 지나쳐 보기엔 정말 만만찮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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