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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말 잘 듣기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쉬운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일이 바로 '엄마말 잘 듣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면서 공부 열심히해라는 엄마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듣고 자랐는가. 하지만 진정 그 엄마 말씀 때문에 그 이유만으로 공부 열심히 한 사람 그렇게 많이 되겠나 싶다. 그저 듣기싫은 잔소리에만 머무르지 않았던가. 그리고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하고 남들이 다 대학가니까 나도 가고 그런식이 아니었던가. 진정 세상에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서 그리고 그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가슴에서 우러나온 그 공부 열심히 하라던 한마디를 뼛속깊이 이해하게 된 건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요즘에서였다.
이 책의 저자인 장회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칠십평생을 쉼없이 공부하며 학문탐구에 정진한 인물이다. 저자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잘할 수 있는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는 '공부꾼'인 셈이다. 하지만 이 저자가 공부를 해 온 과정은 순탄치가 않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양질의 사교육을 받은건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주경야독하며 어렵게 공부를 했던것도 아니다. 그에게는 그 공부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그렇게 자식 하나쯤 학교공부를 시킬 수 없을 만한 형편도 아니었고, 집안에서 제일 똑똑하고 책보고 공부하기를 즐겨했던 저자를 유독 할아버지께서 공부를 못하게 했다고 한다. 결국 장교수님은 남들이 다 다니는 초등학교도 중퇴해야 했었고 2년 가까이 들로 산으로 일을하러 다녀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학교운동회날에는 그곳에 나가서 감을 팔아오라기까지 했다니 어린 소년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는 어땠을까 쉽게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할아버지께서 공부를 못하게 말렸을까. 그 이유는 책 중반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도수 없는 안경'이란 에피소드에서 잘 설명 되어져있다. 할아버지에게 공부란 일종의 자존과도 같은 허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손자가 그렇게 갈망을 하던 '공부'란 것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농사일을 하던 저자에게 '네가 할일은 그런일이 아니다'란 한마디를 건네주던 장면은 특히나 인상깊었다.
그런 저자에게 공부란 항상 목마른 그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책 중간에 강희맹이 쓴 '도자설'이 소개되어지는데 아버지랑 같이 도둑질을 하던 중 그 아버지가 아들 도둑을 부잣집 창고에 일부러 갇히게끔한 일을 꾸미게 된다. 그 상황에서 아들 도둑은 쥐소리를 내는 임기응변을 발휘하며 집주인을 따돌리고 호수에 큰 바위를 대신 집어 던지며 추격을 따돌린다. 이에 원망하는 아들에게 아비 도둑은 이렇게 말한다. 남에게 배운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라고. 그래서 그 아들은 훗날 천하제일의 도둑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그 아비가 아들을 직접 부잣집 창고에 가두듯 초등학교 조차도 못 다니게 했던 그 상황에서 배움의 향한 갈망의 창고에서 스스로 쥐소리를 내며 살아남기를 터득했던 '공부도둑'이 되었다. 그런 경험들이 훗날 장교수님이 제도권의 교육을 순탄하게 받으며 남들처럼 그저 그렇게 공부했던 수많은 '공부 잘하는 이'들과 차별되는 자기 분야에서의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끔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산과 들에서 일을하던 순간에도 태양이 지면을 비추는 모습에서 삼각함수를 연상하고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고민해보는 등 이른바 '야생학습'을 통한 그런 공부법을 통하여 물리학에 평생을 바칠 결심을 했다고하니. 역시나 공부란 자기 스스로가 그 필요성을 느끼고 흥미를 가지고 할때 그 효과가 최대치가 되는 것인가 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털어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인 아버지와 미적분학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저자처럼 스스로 공부하던 전력이 있던 저자의 아버지는 농사일이 적성에 맞지않아 단기간에 측량기술을 배우고 토목기사를 했었는데 아무리 혼자 공부를 하여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미적분학이었다고 했다. 저자인 장교수가 고교시절 그 미적분학을 처음 배움으로써 이제 우리 아버지에게도 미적분학을 가르쳐 드릴 수 있겠다고 기쁨에 들떠있던 모습. 또 그러한 아들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그 미적분학을 배우겠다던 아버지의 모습. 진정 공부하는 자로서, 배우는 자로서의 나이와 신분을 초월한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런 저자의 공부에 관한 이야기가 70%쯤 그리고 저자의 전공인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와 온생명과 낱생명, 동양사상등의 이야기가 나머지 30% 정도로 구성되어져 있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후자의 경우는 크게 감흥을 못느꼈다. 그만큼 난 물리학이란 학문 자체에 저으기 거부감과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었었고 그런걸 다 수용할만한 '이해의 틀'이나 그릇이 안되는 탓이리라.
하지만 공부하고 배우는 자로서의 장회익 교수가 걸어온 길에 관해서는 곳곳에서 무척이나 느끼는바가 컸었던 책인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공부'란 것은 우리가 평생 해야만하는 그런 과업이 아니겠는가. '엄마말 잘듣기'를 이제서야 깨닫게된 지금. 난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정말 공부를 잘할 자신이있다. 허나 그럴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나. 지금부터라도 학교공부는 아니지만 다양한 인생의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 책은 그런 스스로 공부하는 동기를 유발하게끔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책으로 판단된다.
많은 이들이 그런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능동적인 공부를 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학생이면 당연히 학교공부에 충실히 하고 직장인들은 퇴근후에 술마시고 사고치지 말고, 게임하며 낄낄거리지 말고, 테레비보며 멍때리지 말고 책보며 사색하고 영어공부, 인생공부 하다못해 재테크 공부라도 열심히 하도록 하자.
그리하여 엄마말 잘듣는 착한 이땅의 자식들로 거듭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