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그건 비겁한 변명입니다

 

 

 

우선 밝혀둘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류의 책들 중에서 '소설'이란 장르에 국한해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과감히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이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즉 그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새 책장을 넘겨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만큼 술술 읽혀져야 하는 소설이다. 거기다가 부수적으로 인생의 교훈과 잔잔한 감동, 마음의 위안까지 전해준다면 내겐 더없는 최고의 '소설'이다.

 


소위 말하는 작품의 '경중'이란 잣대는 누가 정하는건지는 모르겠다. 대중들이 잘 알지 못하던 숨겨지고 묻혀진 소설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했을때 흙 속에 묻혀진 진주를 발견한듯한 그 보석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그 기분을 잘 알리라. 남들이 다 좋다는 책이 내게도 100% 다 좋지는 않다는 그 사실을.

 


워낙에 어렵게 말하는 전문 평론가들의 극찬은 차치하고라도 필자보다 앞서 이 책을 보고 인터넷상에 리뷰를 등재한 50여 누리꾼들의 서평들을 간략하게나마 다 훑어본 결과 7대 3 정도의 비율로 좋았다는 평이 많았던 책인지라 특히나 기대를 많이했던 책이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제목에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독일 문학이란 사실에.. 또한 결론적으로는 마이너스가 되는 결과를 초래한 한없이 만만해 보이고 가벼운 느낌의 책 표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연상시키는 사이즈 등등. 그땐 몰랐다. 만만하게 보다 큰 코 다쳤다. 3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을 황금연휴 중 하루를꼬박 투자하여 겨우 다보았다. 올해 본 소설중에서 가장 집중이 안되는 책이었다.그래도 다 볼 수 있었던것은 아마도 마음 푸근한 황금연휴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 싶다.

 


가장 눈에 띄는 사실은 구성이 참 독특하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뵈를레가 보낸 두통의 편지로 책 한권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것이 정녕 편지라면 받는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편지치곤 너무 길다. 내용이나 어디 쉬운가.

 


전체적인 줄거리를 요약해 보자면 의외로 참 간단하다. 살인사건을 저지른 잘나가는 변호사인 뵈를레가 감옥에서 자신의 변호사인 피아르테스에게 자신이 행한 살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아 보낸 편지이다. 이 뵈를레란 인물은 세상의 모든 일을 '놀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나폴레옹에 비유하곤 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마지막엔 그 변호사마저 이 '놀이'에 끌어들인다.

 


그런 뵈를레가 들려주는 '놀이'로서의 인생에 있어서의 몇몇 에피소드는 꽤 흥미롭다. 어린시절 자신이 어린이란 점을 이용한 성인 여자들과 행한 은밀한 놀이, 이복형제인 후레자식을 이용한 우표장사 등등. 하지만 그외의 대부분의 사항에 있어서는 소위 말하는 뵈를레의 '말빨'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잘나가는 변호사인 케릭터인지라 당연히 말을 잘하겠지만 그 논리에 설득 되기도 전에 그 장황함에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형국이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열심히 집중해서 따라가다 보면 어느순간 무슨 말인지 한참 헷갈리기 시작하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멋지게 한 마디 남기며 편지를 끝맺는다.


'인간은 오로지 놀 때에만 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이런 놀이가 없다면 우리의 짧은 생은 너무나 무료할 것입니다.'

(P.263)


말자체는 멋있다만 글쎄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살해하고 그걸 '놀이'란 이름으로 정당화 한다는것이 과연 보편적인 도덕성의 관점에서 쉽게 납득이 될만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필자는 실미도에서 설경구형이 외친 그 한마디만이 새삼 떠오를 뿐이었다. 그건 비겁한 변명입니다!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갈수록 사는건 참 만만치가 않다는걸 느낀다. 오만상 스트레스 받는 순간순간마다 뵈를레 처럼 세상만사를 즐거운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견디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놀이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 다른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체육대회에서나 행하던 힘겨운 몸짓인 씨름이 강호동씨에겐 '씨름~ 재밌는 놀이' 였던것 처럼.

 


소설읽기는 필자에게 있어 그런 하나의 놀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재미있는 놀이'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좀 더 쉬운 놀이였으면 더 좋았겠다란 아쉬운 마음 금할길이 없다. 시간이 허락 한다면 차후에 재독을 해보겠지만 그냥 쉽게 편한마음으로 지나쳐 보기엔 정말 만만찮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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