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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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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언제나 나에게...

 

언젠가 나는 말했을 것이다. 작가에 대해 쓴 책을 좋아한다고. 작가가 좋으면 그 작가의 작품을 읽겠지만 나는 워낙에 책 읽기를 버거워 하는 사람이라 그 작가의 책을 다 읽는다는 건 불가능할 때가 많다. 하물며 하루키랴.

 

사실 하루키는 그 명성과 번역되어 나온 책들에 비하면 난 정말 극히 제한적으로만 읽었을뿐이다(그러고 보니 난 그 유명한 '먼 북소리'도 아직 읽지 못했다). 그래도 하루키가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언젠가 난 임경선이 쓴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란 에세이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것은 임경선이란 작가가 써서 읽은 것이 아니라 하루키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그래도 책에 대한 인상이 그다지 강렬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냥 하루키가 너무 좋아 경의를 표하기 위해 쓴 책 같다). 이처럼 그의 작품을 읽어내는데는 자신은 없는데, 사람 자체가 관심인 것은 그의 독특한 문체 때문일 것이다. 일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스럽지 않고, 중간중간 단편적으로 알려진 그의 삶의 이력들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그의 장편소설은 뭔지 모르게 부담스럽다. 그것이 꼭 분량이 많기 때문만도 아닌 것 같다. 이미 그의 단편의 맛을 본 나로선 이렇게 매력적인 단편을 쓰는 사람이라면 장편에 대한 관심도 가질만도 할 텐데 나는 늘 장편은 버겁다. 그 유명한 <1Q84>도 세 권을 다 구입하고도 읽기를 중단한 상태니까. 그런데 그의 <잡문집>이 나왔다니 그것은 또 관심이 갔다. 웬지 이책은 단편에서 읽었던 그 특유의 문장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처음 나올 때부터 관심갔다. 

 

하루키, 소설가에 대해 말하다

 

분류는 에세이에 분류가 됐으면서도 그 스스로는 에세이라 말하지 않고 '잡문'이라고 했다. 진짜 에세이스트들이 들으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에세이가 잘 쓰면 에세이고 잘못 쓰면 잡문이 되는 판국에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자신의 글을 두고 처음부터 잡문이라 했다면 기존의 에세이가 격하된다고 볼멘소리를 하지 않을까? 자고로 잘난 사람이 겸손하기까지하면 못난 사람은 더 못나 보이는 일종의 '질량 격하의 법칙'을 겪게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잡문'이라고 해도 확실히 우리가 생각하는 잡문이 아니고, 그만의 이유있는 잡문인듯 싶다. 무엇보다 그는 그가 여기저기 기고했던 글들을 그러모은 일종의 문집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그가 소설가인만큼 '소설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 나름의 정의, 생각등이 여기저기 많이 들어나있다. 

우선 그는 '자기란 무엇인가'란, 자신의 책이 아닌 타인의 책에서 그책의 해설격으로 쓴 글에서 소설가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답을 하고 있다.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입니다."

 

 소설가는 왜 많은 것을 관찰해야만 할까? 많은 것을 올바로 관찰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올바로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쪽은 늘 독자이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역할은 마땅히 내려야 할 판단을 가장 매력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독자에게 은근슬쩍(폭력적이라도 상관은 없지만) 건네주는 데 있다.(중략)

소설가가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지극히 간단히 말하자면, 결론을 준비하기 보다는 그저 정성껏 계속해서 가설을 쌓아가는 것이다.(19P) 

난 이런 글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에 대한 정의도 좋지만)'소설가'대한 정의를. 세상엔 객관적으로 봐도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도 많지만 그 직업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작가는 나의 영원한 로망이다. 내가 이런 글을 싫어하는 때가 온다면 그건 두 경우일 텐데, 하나는 내가 작가의 심원한 경지에 올랐을 때나 이 로망을 버렸을 때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 예루살렘상을 수상하고 수상소감에서 소설가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거짓말이 일반의 그것과 다르고 오히려 교묘하면 교묘할수록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찬사를 받는다고 했다. 왜 그럴까?

소설가는 뛰어난 거짓말을 함으로써, 현실에 가까운 허구를 만들어냄으로써, 진실을 어딘가 다른 곳으로 끌어내고 그곳에 새로운 빛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89p)

라고 했다. 하루키, 그에게 있어서 소설가의 정의는 이런 것이다.

 

하루키, 문체에 대해 말하다

 

하루키의 문체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좀 엉뚱한 곳에서 시작해서 그것의 타당성을 중층으로 쌓아가는 그래서 위트를 더해가는 문체라고나 해야할까? 이 소설가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굴튀김이 뭐가 필요했을까? 그런데도 그는 굴튀김을 굳이 끄집어 내고 그것으로 '자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한 꼭지의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대단하기도 하지만 그의 그런 엉뚱한 가설이 재밌기도해 웃음이 비어져 나오기도 한다. 보라.

나는 무엇보다 내가 굴이 아니고 소설가라는 사실이 기쁘다. 기름에 튀겨 양배추 옆에 누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음 생에 굴이 될지도 모른다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33p)

 

내가 그의 문체를 인상 깊게 기억하는 건 적어도 그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을 20년 전 무렵엔 그 같은 문체를 구사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그의 문체를 흉내내는 작가들이 생겨났고, 지금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아무튼 그땐 정말 놀랍기도 했다. 내가 놀랬던 건 무엇보다 그는 단편을 일본스럽게 쓰는 것이 아니라, 미국스럽게 쓴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인도 인정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자국민으로서 그렇게 쓰는 것을 거부한다고도 말했다. 나는 바로 이점 때문에 하루키를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알겠지만 하루키는 재즈광이다. 재즈가 좋아 젊은 시절 작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카페를 운영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그의 문체가 미국스럽다고 단순히 평가했는데 그것은 그의 문체에 완전한 답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의 어느 책을 뽑아 읽어봐도 곧 문체의 자유스러움이 느껴지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던 그 순간 어떤 작품을 써야지 하고 머리속으로 그리는 바를 써 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냥 그날그날 쓰고 싶은대로 쓴다고 했다. 정말 그의 문체는 어떤 사변을 증명하거나 사건을 다루기 위해 앞뒤 문맥을 이해하고 파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재즈의 즉흥연주와도 흡사하다. 그렇더라도 리듬만큼은 놓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문체를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주로 재즈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요컨대 적확한 어휘의 배열이 뒤따른다. (중략)-즉흥연주다.

 

이처럼 나는 글쓰기를 거의 음악에서 배웠다. 역설적이지만, 그토록 음악에 빠져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가가 된지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소설 창작의 많은 방법론을 뛰어난 음악에서 배우고 있다. (중략)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 깃든 뛰어난 자기 혁신성은 지금도 내가 문학적 규범의 하나로 우러르는 것이다.

텔로니어스 멍크는 내가 가장 경애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데, "단신의 연주는 어떻게 그렇게 특별하게 울리나요?"라는 질문에,

"새로운 음note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

 

소설을 쓰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 지극히 예사스러운 평번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 우리 안에는 아직도 드넓은 미지의 지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는 비옥한 대지가 개척을 기다리고 있다.(405~407p)  

그제야 난 하루키를 이해하는데 한걸음 더 내딛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작가들

 

공교롭게도 하루키가 우리나라에서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하루키를 닮은 글쓰기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생김이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선생님 역시 하루키와 밀란 쿤데라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선생님이 어느 날 수업 시간 전 평소 보다 일찍 강의실에 도착한 나에게 시업 시작 전 한담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스텔라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지?"라며 나로선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불쑥 물으신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 작가가 된다면 좋아하는 작가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모두 만만히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 안가서 그것을 후회했다. 분명 나도 그 당시 좋아하는 작가들이 없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에게서 배우려는 자세가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무슨 배짱인지 그렇게 말하고만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루키를 닮은 선생님은 내 말에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선생님의 그 질문은 꼭 작업거는 멘트 같았다. 

그 잘난 콧대의 나의 글선생도 좋아하는 작가가 하루키라고(지금은 아마 그것이 바뀌었을 것이다)하는데 나도 좋아하는 작가 한 둘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지금 그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해야할까? 박범신? 김훈? 아, 그렇게 말해버리기엔 뭔가 꼴린다. 그들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더 근사한 작가는 없을까? 갑자기 이 넓고 넓은 문학의 바다에 나는 새끼 발가락 조차 제대로 담그지 않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확 밀려온다. 

 

하루키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이 있다. 

익히 잘 아는대로, 스콧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카버와, 셀린저와 그레이스 페일리(이 사람은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스티븐 킹과 폴 오스터 등. 그리고 하루키는 이 좋아하는 작가를 번역하기도 했다. 갑자기 "젠장!"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젠장'은 욕이 아니다. 그건 열등감 촉발 감탄사다). 이 사람은 자국어로 쓰는 소설이나 잘 쓸 일이지 번역도 해서 사람 기를 죽여 놓는다. 그런 사람이 자랑도 아닌 것이 그냥 담담하게 말하면 더 얄밉다. 그런데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경의에 차서 머릿말처럼 썼던 글들을 보라. 얼마나 우아하던지. 그것은 이책 '번역하는 것, 번역되는 것'에 잘 나와 있다. 더구나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카버는 각각 두 번씩이나 실렸다.

내가 볼 때 그 챕터는 이책 전체를 통털어 가장 우아한 쳅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앞서도 밝혔지만 나는 작가에 관한 글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니 이 쳅터는 덤으로 얻는 기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우아해서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정도다. 젠장! 나는 평생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이렇게 써 볼 수나 있을까(하긴, 그래도 내가 박범신 작가에 대해선 이렇게 저렇게 쓰고 약간의 재미는 좀 보았다. 그래봐야 새발의 피도 안되지만.ㅋ)?

 

하루키에게 있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는 '온기를 자아내는 글(455p)'에서, 한때 그는 도쿄 근교의 외풍이 심한 집에서 산적이 있었다고 했다. 얼마나 춥던지 아침이면 부엌의 얼음이 땡땡하게 얼 정도였는데, 그때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다고 한다. 그것들을 끼어안고 자면 온기가 느껴졌고, 나중에는 네 마리가 되어 아내와 함께 하나 앞에 두 마리씩 끼고 잤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렇게 온기가 느껴지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래 전 그의 단편 '치즈케잌의 모양을 한 나의 가난'(확실히 제목이 맞는지 모르겠다)이 떠올랐다. 내용은 확실히 기억이 안 나는데 추위에 따뜻한 온기나, 궁색한 것에서 누려지는 의외의 호사 뭐 이런 상반된 이미지가 상당히 위트있게 그려져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다. 

 

작가에게 있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말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자기만의 일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중략) 상대가 그곳을 아주 마음에 들게하는 것, 마치 자기만을 위한 장소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뛰어나면서도 바람직한 이야기의 본디 그대로의 모습일 것입니다.

(중략)

공유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세상사를 서로 나눠가진다는 뜻입니다.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뜻입니다. 내게는 그것이 이야기의 의미이며 소설을 쓰는 의미입니다.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 그런 생각은 소설을 시작한 이래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444p)

앞서 말한 하루키를 닮은 나의 글선생님은 분노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선생님의 그말이 세상을 살면 살수록 진리 같이 느껴지는데 하루키는 확실히 고상해도 너무 고상하다. 나는 나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을 꼭 글로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마치 고자질하듯 내가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고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끌어내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것에 아직까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처럼 하루키의 고상한 타당성이든, 나 같이 질 낮은 타당성이든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타당성을 구축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나는 하루키 같은 고상한 타당성으로 이행해 갈 수 있을까? 적어도 난 여러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도 이책은 잡스럽긴 하다 

 

자서전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자신이 자신에 대해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책은 여기저기 저자가 쓴 글들을 그러모은 문집이다. 이것을 한권으로 묶을 생각을 했을 때 그는 마치 자신을 퍼즐 맞추기라도 하는 느낌은 아니었을까? 부스러기 같은 잡스러운 것들을 모아 자신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옛 원고를 들췄을 때 좀 놀라진 않았을까? 내가 언제 이런 글을 썼지? 생각해 보니 그런 글을 쓰긴 쓴 것 같군. 뒤통수를 많이도 쓰러내렸을지 모를 일이다. 가끔 과거에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누군가 그랬다고 말했주면 그게 과연 나였을까? 잊고 있던 나에 대해 화들짝 놀란다. 그것은 또한 낮선 나를 만나는 스릴이기도 하다.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것 같아 나름 즐거웠다.

 

그런데 이책은 진짜 좀 잡스럽기도 하다. 어느 부분은 뭐 이런 것까지 넣었어야 했을까 싶게 잡스럽다. 특히 '회색 쥐와 깜장 토끼'에서 와다와 안자이가 나눴던 대담 같은 건 좀. 뭐 나름 이것을 실은 저자만의 깊은 뜻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별로 나에겐 와닿지 않는 부분이었다.

아, 잊을뻔 했는데, <언더그라운드>의 집필 배경에 대해서도 난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물론 당연 그책은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별로 읽을 것 같지 않았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봤더니 옴진리교 사건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관심이 갔을까? 하긴, 난 신흥종교에 대해선 관심이 없으니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했어도 그냥 좀 놀라다 넘어갔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독자의 주관적 잡스러운 부분을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고 해도 이책은 확실히 읽을만 하고 매력적이다. 이 매력적인 작가의 <1Q84>를 다시 붙들어야 할 것 같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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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0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0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1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1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1-20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이라는 장르에는 정말 취약한 문외한이나 다름이 없습죠 ㅠ.ㅠ
제게는 소설을 분석하는 일이 꽤나 어렵게 느껴지고
무척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랍니다.

스텔라님의 소설에 대한 분석력은 그저 제게는
감탄스러울 뿐이랍니다 ㅠ.ㅠ

강력 추천드리고 갑니다~

stella.K 2012-01-20 18:20   좋아요 0 | URL
아이고, 왜 이러셔요...쑥스~ㅋ
소설도 자꾸 보면 늘어요.
한때 저는 소설이 하도 같지 않다고 느껴져서 안 읽었던 적도 있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나름 열심히 읽으려고 하는데
진짜 읽는 분들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죠.
차트랑공님도 슬슬 읽어 보세요. 재미있어요.^^

이진 2012-01-2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나는 아직껍데기만 벗겨놓고서는 펼쳐들지도 못했는데 ㅠㅠ
이제 미셸 투르니에...? 그사람 에세이 읽고있어요.
엄청나게 어렵다고해서 걱정했는데. 이해도 잘 되는거 같구요.
초반이라서 그럴지는 모르겟지만 후후...

나도 강력 추천 콕하고 박고가야징 ㅎㅎ

stella.K 2012-01-21 10:55   좋아요 0 | URL
왜 이렇게 늦어?
마감 지난지 한참 됐는데.
하긴 마감내 리뷰 올리는 사람 별로 없긴 하더라.
나도 이 리뷰는 좀 늦긴 했지.
미셸 투르니에 이해가 가니? 난 영 좀...ㅠ

이진 2012-01-21 21:20   좋아요 0 | URL
웅?! 마감이 지났다구요?
마감 25일까지잖아요!!

stella.K 2012-01-22 13:36   좋아요 0 | URL
헉, 이게 언제 25일로 됐지?
그럼 18일까지라고 본 건 뭐야?
에이, 괜히 억울해지네.
이상하다. 기간 3주 주던데...ㅉ

숲노래 2012-01-2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님 수필책을 읽어 보면
글을 참 잘 쓰는구나,
당신 삶을 참 잘 되새기면서
사람들이 즐거이 읽도록 이끄는구나
하고 느껴요..

stella.K 2012-01-21 10:56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사람 에세이나 단편이 좋아요.
장편은 좀...
분명 매력적인 작가죠.
자신만의 확실한 세계가 있는.^^

페크pek0501 2012-01-2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신간평가단 책이었군요. 그런데 이게 신간은 아니잖아요. 나온 지 좀 되었는데...ㅋ
그런데 리뷰를 이렇게 길게 쓰시다니... 페이퍼라면 몰라도...
저는 리뷰를 잘 쓸 자신이 없어서 주로 페이퍼 쓰는데, 페이퍼 쓸 때에 여백을 많이
넣어 쓰기에 글의 양은 사실 많지 않은데, 이 글은 글의 양이 꽤 많네요.
그래서 읽는 이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시는군요.

우리가 하루키의 잡스러운 문장에 너무 열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쨌든 그는 매력적인 작가이긴 한 것 같아요.

설날 연휴는 잘 보냈나요? 저는 이제야 좀 피로가 풀린 듯해요. 지방에 3일간 가 있었고... 차 타고 왔다갔다 하는 것만 해도 피로했어요. 서울에 와서도 인사 다니느라 바빴고요.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행복하네요.
그래서 스텔라님의 이 긴 글을 즐겁게 읽었다는... 꽉 눌러 주고 갈게요.


stella.K 2012-01-26 13:50   좋아요 0 | URL
헉, 이번에 나온 거 아니었나요?
하루키의 장편을 버거워하는 저로선 제 수준에 딱 맞는 글이란 생각을 했어요.
아마도 그의 단편이 좋아서일 거예요.
제가 또 모든 리뷰를 길게 쓰진 않지요.
이건 좀 공들여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절에 지방 다녀오셨군요. 힘드셨겠어요.
글치 않아도 보고 싶었는데...ㅋ
고맙습니다.^^

아이리시스 2012-01-2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의 욕심. 저는 앞으로 집에서 돌아다니는 주황색 책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ㅋㅋㅋ 하루키라면 거짓말 보태 벌떡 일어나서 읽지만 이건, 이건 정말로 아니예요. 아닌 건 아닌 거지요ㅋㅋㅋ 리뷰 잘 읽었어요, 스텔라님^^

stella.K 2012-01-27 13:23   좋아요 0 | URL
ㅋㅋ 주황색 책표지 의외로 많아요. 정미경의 <아프리카의 별>이
대표적 예죠. 그책은 괜찮을 것도 같은데.

대체적으로 왜 별론지 이해는 가요.
저도 하루키를 되게 좋아했다면 정말 별로라고 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어느 부분은 정말 별로였거든요.
그래도 누구 선물인데 별로라고 하겠습니까?ㅋ
암튼 전 대체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