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인문학 강의 - 전 세계 교양인이 100년간 읽어온 하버드 고전수업
윌리엄 앨런 닐슨 엮음, 김영범 옮김 / 유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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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뭔가를 걱정하고 고민하며 살아간다. 언제나 생각(그것이 단순한 걱정이든 고민이든)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지금까지 겪어왔던 짧은 경험이라는 한계 속에 머물러있다. 그러니 생각이라는 것이 커다란 발전도 없이 계속해서 빙글빙글 맴돌고만 만다. 하나의 생각에서 또 다른 하나의 생각으로 넘어가다가도 다시 이전의 생각으로 돌아가 있고, 어느 때는 이런저런 과정 따윈 다 뛰어넘어 저 끝에 가있기도 한다. 정리는 되지 않고,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해 왔고, 할 수 있고, 앞으로 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아무런 기초 작업도 없이 그저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며 폼만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다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면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발전이라는 것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인문학으로 자꾸만 기웃거리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열린 인문학 강의』라는 제목만으로도 끌렸던 것이 이 책이다. 관심 있는 인문학 강의인데, 게다가 열려 있다고 하지 않나! 그 열린 문틈 사이로 나 하나 지나가지 못할까 싶은 생각에 과감하게(?!)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열린 인문학 강의』 ‘하버드 고전(Harvard Classics)’이라는 총서의 51번째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51번째 책은 ‘하버드 고전’이라는 50권을 완간하고 나서 고전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하려고 기획된 강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독자들이 고전을 읽을 때 느끼는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하는 교육적 배려에서 출발한 강연인 셈입니다. -역자 후기 中에서…

 

 제목도 ‘열린’이고, 고전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고 했기 때문일까, 쉽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전적으로 나의 착각이었다. 결코 쉽지 않았다. 분명 입문서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싶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내가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인문학에 다가서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싶어서, 욕심과 나도 모르게 남아있는 편견 따윈 버리고, 처음부터 무조건 완벽하게 알아간다는 강박감이나 부담감 따위도 지워버리고 인문학 입문에 다가서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럼에도 어려워서 단 한 두 페이지를 읽는 데에도 몇 번이나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또 다른 욕심이겠지만….) 그러다가 문득, 욕심을 버리는 순간, 인문학의 정신(!?)에 비로소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말해서,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인문학으로의 입문 자세를 잡아나갈 수 있었다, 고 한다면 너무 성급한 이야기일까!?

 

『열린 인문학 강의』는 역사, 철학, 종교, 정치경제학, 항해와 여행, 희곡, 그리고 시까지 모두 일곱 개의 분야로 구성되어있다. 각 분야에서도 ‘들어가는 말’을 통해 전체적으로 그 분야에 대해 살펴보기가 가능하게 만들었고, 각 분야별로 그 속에 세부 주제를 정해서 한 단계 더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책을 제대로 보기 전에는, 강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라서 각 분야별로 한 명의 교수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각 분야에서도 세부적으로 들어가 각각의 교수, 그러니까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수준 높으면서도 다양성까지 충족시키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처음 책을 보면서 누구나 그렇듯 목차부터 살펴보는데 구성 자체가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역사, 철학, 종교, 정치경제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행과 항해, 희곡, 시와 같은 주제들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이런 말을 하면 수준이 낮은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뭐 사실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내가 인문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아무런 개념도 없이 덤벼든 것인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놀라웠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런 놀라움은 끄덕거림과 또 다른 놀라움으로 바뀌어 갔다. 특히나 희곡 같은 경우 크게 관심이 가는 분야가 아니었는데, 그 생각이 조금은 바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희곡을 바라보는구나,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렇게 희곡을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 언젠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다가 몇 번이나 포기한 적이 있었다. 고전 읽기의 시작으로 삼았던 책인데 처음부터 힘들어했으니…. 덕분에 나의 목표는 방향을 잃고 그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사라져버렸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용기 내어(!?)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느끼고, 또 이야기하다보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놀라움(?!)은 희곡에서뿐만 아니라 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단순히 시를 통해서 철학을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싶은 정도로만 머물렀으나 시가 아주 긴밀하게 인문학과 연계시켜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앞으로도 여전히 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살아가지 않았겠나 싶기도 하고, 또다시 누군가가 시를 통해서 철학을 이야기한다면 그때도 역시 그저 단순한 생각으로만 머물러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의외의 발견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놀라움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철학종교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들이 찾아왔다. 평소에 가끔씩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도 좀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마구마구 생산해내고 싶다고…. 그러면서도 어떤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저이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났을 거야, 라며….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원하는 것이 힘들지만, 분명 힘들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선은 상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저 상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해방시키고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있는 훨씬 타당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으며, 그래서 철학에 (그것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다면 나 역시도 충분히 그런 기준으로 정신해방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사물에 대한 최초의 자유로운 호기심까지 회복할 수 있다면 더 괜찮을 것이라는 가르침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신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신이 그저 종교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 역시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아니 사실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놀라웠다. 그러고보니,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그로인한 새로운 흥분을 던져주는 것이 이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고전이 애초에 만인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며, 또한 고전은 최고의 작가가 그 시대에 닥친 가장 어려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 해법을 제시한 책이기에 고전에 다가서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렵다 어렵다, 하기 전에 작은 호기심으로 다가선다면 분명 그 어려움도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알던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물론 그 시각이 달라진 것이겠지만…)는 놀라움을 가지게끔 해주는 계기가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테고 말이다.

 

지금은 고전을 읽어야 할 시간인 셈입니다. 고전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배울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 인간답게 사는 법(humaniter vivere)을 정리할 수 있다면, 고전을 읽는 수고를 마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고전을 읽을 때, 의지하고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다면 다가가기가 훨씬 쉬울 겁니다. -역자 후기 中에서…

 

 이 한권의 책으로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크나큰 욕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그저 인문학에 다가서기위한 하나의 발판으로 생각해야 맞을 것 같다. (실제 이 책의 의도도 그런 것일 테고…)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 속에서 흥미를 조금씩 키우면서, 하버드 고전 도서 목록을 하나씩 찾아가며 그것들을 읽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이 책은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책을 부르는 책이랄까!? 중요한 것은, 한 권의 책으로 인해 또 다른 많은 책들을 알아가고 싶다는 호기심의 발로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의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 아닐지…. 인문학이 열려있기를 기대하기보다 내가 먼저 열린 마음이 되도록 만들어 주고, 그런 생각으로 한걸음씩 걸어 나가게 만들어 주는 책, 『열린 인문학 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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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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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링과 위로의 말들을 담은 책들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요즘, 너무 한쪽으로만 이야기들이 치우치는 것 같아 의도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을 기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것들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어떤 생각에서 그것을 좋다, 싫다 하든 말든 궁극적으로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설사 잠깐일지라도- 위안을 얻고, 다시 새롭게 힘을 내어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히 할 일을 해낸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에 변화를 준 것이 바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책 속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항상 그곳에서 찾았던 것은 답을 찾기 위한 머나먼 길이었기에, 혼란스러운 나에게 명확하게 답을 들려주진 못했었다. 때로는 힘들게 찾은 답이 내가 원하는 것과는 기본적인 상황이나 그 방식이 다르기도 했었다. 어쩌면 내가 답이라는 것을 제대로 찾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 요즘의 내가, 오늘의 내가 하던 고민들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누군가가 슬쩍 던져주는 답은 이미 답으로써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라 생각도 했었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적으로 -비록 짧은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어제의 나와는 다른 오늘의 나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 첫 번째 걸음

 

마음이 바쁘면 그 바빠하는 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마음이 짜증을 내면 짜증내고 있음을 알아채고

화가 나면 화내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알아챔은 바쁨, 짜증, 화에 물들어 있지 않아

아는 순간 바로 그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는 작용 자체는 본래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그런지, 직접 해보세요. -P42

 

 언제부터인가 짜증이 부쩍 늘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짜증내고 화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짜증내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또 짜증내고 만다. 짜증이 또 다른 짜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 안에서도 짜증은 전염되는데, 함께 일하는 이들을 비롯해 그저 내 주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되는 이들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된다 싶으면서도, 짜증을 멀리해야겠다는 교훈을 얻기보다는, 한없이 좁아터진 마음을 가진 나를 발견하고서 또다시 거기에 머무르고 만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순간 욱! 하고 올라오는 짜증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그 마음을 알아채고,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기 위해 노력했다. 뭐 그런다고 그런 상태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겠어?, 라는 마음과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하는 마음이 함께 존재했지만 그렇게 해본다고 손해 볼 건 없었으니까 계속해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짜증을 그저 지켜보며 웃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좋은 출발이었다.

 

- 두 번째 걸음

 

몸을 구겨서 지하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앞뒤, 옆, 사람이 꽉 찼네요.

이 순간 우리 마음은 짜증을 부릴 수도 있고

헤헤, 손잡이 잡지 않아도 된다고 재미있어할 수도 있습니다. -P38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평소 조용하던 시간에만 지하철을 이용해서 그랬던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것이 그다지 상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문뜩 생각났다. 혜민 스님의 ‘헤헤’ 정신(뭐, 내 마음대로 이름 지었다!)이….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머리로는 항상 생각하면서도 마음에서는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일 텐데,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한 내가 마음으로 해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인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역시 놀라운 한 걸음이 아닌가?! 어쩌면 이런 생각도 습관의 일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습관이라는 이름이 될 ‘헤헤’ 정신을 기억하며, 또 한 걸음을 내딛어 본다.

 

- 세 번째 걸음

 

사람 때문에 입은 상처는 사람에 의해 다시 치유된다는 말,

절대로 틀리지 않아요.

하지만 그 전에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 없이 바로 새 사람을 만나면

새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잘못하면 이용하는 것이 됩니다. -P185

 

 평소에 하던 생각을 글로 만나니 반가움이 앞섰다. 사람에게서 입은 상처는 그래도 다시 사람을 통해서 치유될 수 있다고, 결국에는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하지만 나의 생각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뭔가를 더 생각하고 행동을 이어나가야하는데 나는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혜민 스님은 나의 그것보다 한 걸음 더 깊숙한 곳까지 생각이 닿아있었다. 자동적으로 나에겐 좋은 배움과 반성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을 통하기 전에 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마음 속 깊이 새겨 넣었다. 그렇게 또 다른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 가야할 길, 하나

 

위로받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니

삶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요?

자꾸 위로받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 누구도 내가 만족할 만큼 위로를 해주지 못해요.

차라리 마음 굳게 먹고

내 기도를 통해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남도 위로해줘야지,

마음먹으세요.

그때 위로가 되고, 그때 힘이 납니다. -P27

 

 요즘 유행(?!)이라서 그런가, 이런저런 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중얼거린다. 힐링이 필요해, 힐링이 필요해…. 대세를 따르지 않겠다는 주관도 아닌 얄팍한 자존심을 앞세우면서도 정작 내가 했던 일은 힐링이 필요해를 외치면서, 그저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주지나 않을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나 자신을 위로하고, 가끔씩 내 어깨를 토닥여줄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만난 이 책, 이 글들은 뜻밖의 위로로 다가왔다. 나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이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준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정작 혜민 스님은 자신은 스스로가 위로해야한다고 한다. 나 스스로를 위로해야한다고 배우면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은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것이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위로를 받으면서, 그 힘으로 다시 나 스스로를 위로할 힘까지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직은 쉽지 않은 길이기에 나 자신을 위로하기보다 위로받기를 원하지만, 꼭 가야할 길 중 하나일 것이다.

 

- 가야할 길, 둘

 

무조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모든 일이 자기 원하는 대로 쉽게 되면

게을러지고 교만해지며, 노력하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 어려움도 모르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은

내 삶의 큰 가르침일지 모릅니다. -P118

 

 가끔씩 꿈을 꾼다.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모든 이들이 나의 뜻대로 움직이고, 모든 것들이 나의 필요에 따라 공급되는 세상을…. 하지만 역시나 깨고 나면 나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세상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 무조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만은 않는 세상 속에…. 어쩌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좀 더 부지런해지고 겸손해야하며, 노력하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적어도 이제부터는, 당장 오늘뿐만이 아니라 내일 다가올 어려움도, 매일 얻게 되는 가르침 하나하나로 남겨질 것이다. 꿈속에서 헤매는 것이 아닌 현실 속에서 나를 마주하며 매일매일의 가르침 속에서 당당히 걸어갈 것이다.

 

- 가야할 길, 셋

 

나를 배신하고 떠난 그 사람,

돈 떼어먹고 도망간 그 사람,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나에게 했던 그 사람,

 

나를 위해서

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서

정말로 철저하게 나를 위해서

 

그를 용서하세요. -P51

 

 요즘 가장 큰 걱정이자, 가장 절실하게 해답을 찾아 헤매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물질적인 것을 떠나서, 내가 베풀었던 마음을, 결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짓으로 돌려줬던 누군가로 인해서 겪게 되었던 실망, 배신감, 그로인해 겪게 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두려움들 속에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해왔던 것. 이렇게 깔끔하게 결론을 내려도 되는 것인가 싶은 만큼 심플하면서도 명확한 대답을 만난 것이다. 분명, 간단명료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은 일임은 확실하다. 그래도 그런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 100%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용서’ 라는 그 온전한 위대함에 도달해있는 나를 만나게 되길 소망해본다.

 

- 그리고, 여전히 가야할…

 

마음을 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이들이 많아요.

‘마음을 비워야지….’ 하고 마음먹고 마음을 비우려 하면

오히려 더 마음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왜냐하면 ‘비워야지….’ 하는 것도 사실은

비워야 할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쉬어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요?

정답은, 올라오는 그 생각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돼요.

지켜보는 순간, 생각은 쉬고 있습니다. -P191

 

 내 마음에 귀기울여본 적이 있었던가? 방법을 몰라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닿지도 않는 심장가까이에 귀를 가까이 가져가보기도 했던가? 하지만 문득, 내 마음을 제대로 알기위해서는 그 이전에 마음을 비워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우선적으로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해봤다. 역시 쉽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비워야지, 비워야지,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글귀를 보고 다시 시도해봤다. 올라오는 생각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을….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생각은 쉬고, 나는 졸고 있었다. 휴….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싶은 생각이 앞섰다.

 

 아직은 마음을 비운다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확실하지만, 작은 것들부터 한걸음 두걸음, 벌써 내딛었고, 또 다른 걸음, 아직 가야할 걸음을 앞두고 있기에 오히려 더 설렌다는 느낌도 든다. 인생은 미완성이기에 더 아름답다는 말이 오늘처럼 절실하게 느껴졌던 일은 없었던 듯하다. 미완성이기에 완성을 기대할 수 있고, 그 완성을 위해 살아가는 오늘과 내일은 더없이 설레고 흥분되는 날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 설렘과 흥분이 가득한 날들에 ‘멈춤’은 앞으로의 날들을 보다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바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도 많은 이들이 가끔은 ‘멈춤’의 지혜를 떠올려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또한 나 자신도 가끔씩은 멈추어 서서 내 주위 많은 것들이 보여주는 놀라움에 감사하고 행복해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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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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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17~18세기 조선이 직면했던 역사적 과제가 변화와 발전이었다면,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 또한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 당시 조선이 한계를 보이며 몰락과 비극을 초래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향해가는 곳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조선이 그랬듯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비극적인 역사가 다시 반복될 것인가?! 조선이 가졌던 한계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한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니, 차이가 있기나 한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조금의 변화에도 짜증내고 견디지 못하는 모습들…. 한 단계 발전하기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도 감수해야하는 것일 텐데 싶은 생각도 들고….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지도 못하면서, 큰일을 이루기위해서 어느 정도의 희생은 필요하다는-그런 정당화에 놀아나는?!- 사람들의 생각은 도대체 뭘까 싶어서 한숨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숨만을 쉬며 가만히 있기에는 아직 해야 할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뭔가를 하기 전에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읽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조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역사 속 인물, 박제가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있다. 박제가의 어린 시절, 소위 백탑파로 불리는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담은 성장과정을 비롯해 정조의 부름을 받아 검서관으로 살아간 관료시절,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1, 3, 4부를 차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느낀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2부인데, 이는 박제가가 바라본 조선 사회를 담은 이야기이다. 단순히 조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날선 비판이 더해진다. 누군가에게는 속이 시원하다 싶은 정도의 이야기일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전자이지만…. 이처럼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박제가의 삶과 그의 사상들을 나름의 체계로, 그리고 다양한 문헌들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특히 곳곳에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이 더해져 이 책의 가치를 더 높이는 듯했다.

 

 사실, ‘박제가’라는 이름은 내 기억에 그저 교과서에서 ‘박제가 - 북학의 편찬, 청과의 통상 확대, 상공업 진흥 주장’이라는 한 줄로 정리되던 이름에 불과했다. 적어도 교과서에서는 그를 그 이상으로 알기란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뭐 여기저기서 주워서 들었던 것은 더하자면, 《북학의》라는 책은 그 당시의 주류에서 벗어나 선진적이고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정도였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에서 만난 박제가는 놀라운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서얼이라는 신분적 차별 속에서 그가 비웃었던 조선, 그 틀을 깨고자 했던 수많은 생각들은 이미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바라봐도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박제가가 조선의 현실을 답답하게 느낀 것은 오직 신분적 장애, 출세의 한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박제가의 남다른 점이다. 보통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겪는 사람, 그것이 한이 된 사람은 오히려 그 한에 매몰되어 서얼제도 철폐와 피해보상 같은 자기 문제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박제가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조선의 차별과 한심함과 답답함이 조선 사람들의 심성이나 한두 가지 잘못된 법이 원인이 아니라 조선의 폐쇄적이고, 단조롭고, 역동성이 결여된 사회구조에서 기인했다고 보았고, 사회 전체의 환골탈퇴를 추구했다. -P120

 

 박제가에게서 느꼈던 놀라운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실, 이는 내가 항상 느꼈던 답답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자신의 문제에만 집착해서 더 큰 것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항상 느꼈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제를 큰 틀에서 해결하면 그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의 문제 해결에만 집착하며 아등바등하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많은 이들이 박제가가 했던 생각을 따라간다면, 아니 적이도 박제가의 생각을 접할 기회가 있는 이들만이라도 많은 것들을 자신만의 문제에서 벗어나 큰 틀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지금의 현실이 어떻게 달라질까, 생각해본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쉰다.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 노래의 교훈은 백성들이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정치,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편안하게 살게 해주는 정치가 가장 훌륭한 정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훈에는 함정이 있다. 현실적으로 이런 사회가 가능하려면 발전도, 욕구도, 추구하는 것도 없어야 한다. 모든 것이 풍족해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다. -P203

 

 지난 대선을 앞두고 아는 이와 정치이야기를 하다가 뜻하지 않게 논쟁적으로 변해버린 순간이 있었다. 보수니 진보니, 오른쪽이니 왼쪽이니, 등등 한참을 주고받다가 상대방이 불쑥 내뱉은 한마디에 그냥 모든 걸 그만두고 말았다. 그 말이라는 것이, -내가 결코 지지하지 않는!- 어느 특정세력이 만들어낸 오늘날의 우리의 국력과 경제력이 결코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나 그들이 행할 많은 것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대로 만족스러우니까 문제가 없다는 것일까?! 어쩌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전제부터가 달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욕구’라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던가. 세상이 좀 더 발전하기를,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좀 더 잘 살기를 바라면서-사실은 같은 말이지만…- 세상은 지금의 구조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직도 조선의 그 모습처럼, 스스로 욕망을 거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전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즉 욕망을 거세한 사회를 여전히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제가도 한국 사회가 단 몇십 년 만에 완전한 산업사회와 무역국가로 변신하고도 여전히 그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에 비판적이거나 그 주변사람들과 똑같이 편협하고 무지한 국수주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제가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박제가의 진정한 불행은 그의 외침이 이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P307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로 만난 박제가의 삶과, 《북학의》를 비롯한 그의 삶 속에 담긴 사상들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습과 조선사회의 한계가 겹쳐 보이는 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기존의 것들을 지키려만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묵묵히 이끌려만 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박제가가 그러했듯이 어디선가 뭔가를 외치고 있다. 나는 그 누군가들 중 어디에 속할 것인가?! 아직 끝나지 않은 박제가의 외침이 더 크게 들리는, 아니, 꼭! 그래야만 하는 오늘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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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식, 세계 최강의 팀을 만드는 힘
야스다 유키 지음, 곽지현 옮김 / 에이지21 / 2012년 12월
절판


“나 좀 도와줘”라는 말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이런 일쯤은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어, 라는 생각만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다가 힘이 들면 쉽게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지금생각해보면, 그저 주위의 누군가에게 도와달라는 말만해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생각했다. “나는 왜 주위에 믿을 만한 동료가 없을까…?!” 여전히 그런 생각,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돌아봐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는 생각이 든다. 내가 스스로 그런 동료를 만들지도 못하는데, 동료를 찾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내가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내가 너의 동료가 되어줄게”, 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한 동료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믿을 만한 동료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역시 그 방법들을 알아가는 것이다.


- 만화를 통해서 ‘동료파워’를 이야기하다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에서 벗어나야지 보다 높고 멀리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 중 하나가 만화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만화란 그저 한 번 웃고 즐기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간이 나더라도 만화를 보는 것 보다는 다른 일을 선택하고는 했다. 《원피스》라는 만화 또한 마찬가지 였다. 충분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몇 번 슬쩍슬쩍 보다가 치우곤 했다. 그러면서 저게 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 싶었다. 근데 지금에 와서는, -물론 아직까지도 《원피스》를 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원피스식, 세계 최강의 팀을 만드는 힘』이라는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만나 본 《원피스》는 충분히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매력적면서도 또 다른 힘-콕 찍어 말하자면, 동료파워?!-까지 전해주니까 말이다.

- 《원피스》는 왜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을까?!

이 책의 저자도 이런 의문부터 던진다. 도대체 아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말 그대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가 뭘까?! 물론 단순하게 재미를 그 이유로 꼽을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저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원피스는 왜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을까요
게다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말 그대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재미있으니까’라는 이유만으로는 이렇게까지 큰 인기 현상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합니다.
아마도 인기의 비밀은 원피스의 중심 테마가 ‘동료’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프롤로그 中에서…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인 ‘루피’를 보면서 저자는 ‘동료 파워’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누군가 지나가면서 했던, “루피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의 의미를 하나씩 파헤쳐보는 것이다. 루피처럼 동료를 모으고, 인연을 맺고, 동료와 함께 큰 꿈을 실현시키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일본의 간사이 대학에서 사람과 조직의 관계법을 분석하는 네트워크 이론을 연구하며 강의한다는 저자이기에, 이 책이 단순히 《원피스》의 인기에 슬쩍 기대려한다는 느낌은 지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누군가와 함께 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항상 어떤 필요를 느끼지만, 그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기에 항상 아쉬운 것이 후자임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내린 결론처럼 동료와 함께해야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료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동료란 ‘혼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함께 발전해나간다면 결국에는 모두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동료를 모으는 것이지, 동료를 모으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원피스》에서 얻은 동료 파워!

저자는 《원피스》에서 힌트를 얻어 ‘동료 파워’를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우선 구체적인 방법에 앞서서 「동료 관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며 마음가짐부터 바로 잡게 해준다. 이어서 바로 「동료를 모으는 방법」, 「동료와 서로 돕는 방법」, 「동료와 신뢰를 쌓는 방법」, 「동료와 함께 성장하는 방법」이라는 각각의 주제로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책의 시작이 된 《원피스》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실제 만화 속 대화도 삽입하며 자칫 지루할 수도 있을법한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원피스》를 바탕으로 해서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들 전해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지루하다면 그저 외면하고 말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은 점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성공-물론 그 속에 수많은 의미와 또 다른 단어들이 있겠지만…-을 이야기하면서 ‘동료’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 혼자가 아닌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사실이 정말 좋게만 다가왔다. 자신만 인기를 얻고, 자신만의 인맥을 넓히고, 자신만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기술에 관한 서적은 많지만, 진정한 동료를 모으기 위한 방법,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 그리고 동료와 함께 꿈을 이루는 방법에 관한 서적은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한쪽방향으로만 너무 나가있던 삶의 방법론적 이야기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이 들었다.

- 그리고, ‘부탁’이라는 또 다른 테마

동료를 모으고, 서로 돕고, 신뢰를 쌓고, 그렇게 결국은 성장하는 이야기의 그 하나하나가 전부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무슨 뻔 한 이야기인가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뻔할법한 이야기가 전혀 뻔 하지 않은 것이 또 바로 이 책이다. ‘동료’나 ‘자유’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저자는 마지막에 ‘부탁’이라는 또 다른 테마를 이야기한다. 이 부탁을 통해서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그 윗세대에게까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깊은 고민이 아니라면 쉽사리 나오지 않을 내용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제는 서로의 겉만 바라보고 평가내리는 관계에서 벗어나 속을 깊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진정한 ‘동료’를 찾아 나설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 시작을, 단순히 웃고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원피스》 속에 녹아있는 지혜를 풀어낸 『원피스식, 세계 최강의 팀을 만드는 힘』을 통해서 해보기를 추천한다. 동료의 소중함을 느끼며, 나아가 인생의 풍요로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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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충고 - 세상에는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더 많다
마디 그로시 지음, 문수민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유난히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만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냐 만은, 문제는 그런 기운이 나를 포함한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퍼진다는 사실이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요즘과 같은 세상에, 서로 좋은 기운으로 ‘으쌰으쌰’ 해도 부족할 판에 힘이 쭉쭉 빠지는 순간을 안겨주는 사람과 그의 그런 행동을 누가 좋아하겠냐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저 ‘부정’이라는 의미가 깃든 것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연스럽게 피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독한 충고』를 보면서 가졌던 첫 느낌이 ‘부정’의 그것이었다. ‘세상에는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더 많다.’ 라는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지만, 긍정보다는 부정 쪽으로 기울었던 것이 사실이다. ‘절대 ~ 하지 마라’ 라는 식의 충고는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다. 긍정보다도 부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절대’라는 말로 시작되는 충고들이 담긴 책. 과연 괜찮을까, 싶었다. 하지만 때로는 꼭 모든 것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절대’라는 말을 싫어하면서도 나는 ‘절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가령 끝까지 최선을 다해라, 라는 말보다는 절대 끝까지 포기하지 마, 라는 말이 좀 더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네버리즘(Neverisms)’ 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될 것이다. ‘절대(Never)’가 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고 있다면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 단어를 알고싶어도 사전에서는 결코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가 만들어낸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만일’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명언 모음집을 쓰면서 ‘이퍼리즘(if+erism)’이라는 말을 만든 적이 있다는 설명을 곁들인다면 ‘네버리즘(Neverisms)’의 뜻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될까?!

 

 저자는 수십 년 전부터 명언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그중에서도 ‘절대’로 시작하는 명언을 모은 파일은 20여 년이 넘도록 꾸준히 업데이트 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네버리즘(Neverisms)’으로 정리해서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마디 그로시 박사가 전하는 2,000개의 Neverisms’ 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듯이, 『독한 충고』는 ‘절대’가 들어가는 수많은 격언들을 담아놓았다. 각 장에 ‘절대’로 시작되는 제목들이 있고, 그 속에 더 많은 ‘절대’ 들을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격언들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므로 인해서 보통의 격언 모음집이 가질 수 있는 딱딱함을 벗어나게 해준다.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각 장의 핵심이 되는 주제들과 관련되는 격언들을 마구 풀어놓는 것이다. 밑줄 쫙~ 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글을 발견하게 되면서 뭔지 모를 뿌듯함도 느끼고, 때로는 그저 웃음만 나는 글들로 인해 즐거워지기도 한다. 가끔씩은 이해하기 힘든, 그래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붙여줘도 좋을 듯 한 글들도 있지만, 많은 양의 또 다른 격언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준다는 느낌도 든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 속에서 인생의 독한 충고는 한 걸음씩 의미 있게 다가온다.

 

 좋은 말이 많이 담겨있어서 좋은 책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것만 한없이 나열되어있으면 그 진가를 잃게 되는 법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너무 많은 격언들이 그로인해 빛을 잃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금의 나에게만 해당되는, 그래서 나의 가슴에 팍팍 박히는 격언들은 분명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한 번만 읽고 던져놓을 책은 아닌 것이 분명할 것이다. 변해가는 나의 모습과 나의 상황에 따라 볼 때마다 나에게 다가오는 말들이 달라지는 그런 변화무쌍한 책이 바로 이 책, 『독한 충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입맛대로 골라 읽을 수 있고, 때로는 아무 페이지나 손에 닿는 대로 읽어나가도 상관없을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이 책을 읽어나가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읽다보니 ‘네버리즘’이라는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뭔가 내 가슴을 후벼 파는 충고를 발견하고 말 것이라는 강한 소망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보다는, 좀 가볍게 다가서서 읽어도 충분히 괜찮을 듯하다. 진짜 충고라면, 그런 가벼움 속에서도 언제든지 나에게 다가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절대 여러분 삶에 대한 그 누구의 정의도 받아들이지 마라.

자기 삶은 자기 스스로 정의하라. -P51

 

 아무리 누군가가 좋은 조언을 해준다고 해도, 그 결과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현재의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 또 앞으로 바꿔나갈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길 위를 그대로 따라가면 그보다 쉬운 일이 없겠지만, 그런 길 조차도 내가 가는 상황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조언이 어느 정도의 힘은 되어주겠지만,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길은 나 자신만이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이가 걸었던 길을 그들만의 정의로 걸어 나갔다면, 결국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나만의 정의가 통할뿐이니까. 수많은 충고 속에 빠져있더라도 이 하나만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충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내 삶은 나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는 것! 수많은 정의를 담은 수많은 충고만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그 충고를 통해서 그 이상의 지혜로 채워진 나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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