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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17~18세기 조선이 직면했던 역사적 과제가 변화와 발전이었다면,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 또한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 당시 조선이 한계를 보이며 몰락과 비극을 초래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향해가는 곳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조선이 그랬듯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비극적인 역사가 다시 반복될 것인가?! 조선이 가졌던 한계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한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니, 차이가 있기나 한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조금의 변화에도 짜증내고 견디지 못하는 모습들…. 한 단계 발전하기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도 감수해야하는 것일 텐데 싶은 생각도 들고….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지도 못하면서, 큰일을 이루기위해서 어느 정도의 희생은 필요하다는-그런 정당화에 놀아나는?!- 사람들의 생각은 도대체 뭘까 싶어서 한숨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숨만을 쉬며 가만히 있기에는 아직 해야 할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뭔가를 하기 전에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읽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조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역사 속 인물, 박제가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있다. 박제가의 어린 시절, 소위 백탑파로 불리는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담은 성장과정을 비롯해 정조의 부름을 받아 검서관으로 살아간 관료시절,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1, 3, 4부를 차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느낀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2부인데, 이는 박제가가 바라본 조선 사회를 담은 이야기이다. 단순히 조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날선 비판이 더해진다. 누군가에게는 속이 시원하다 싶은 정도의 이야기일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전자이지만…. 이처럼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박제가의 삶과 그의 사상들을 나름의 체계로, 그리고 다양한 문헌들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특히 곳곳에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이 더해져 이 책의 가치를 더 높이는 듯했다.
사실, ‘박제가’라는 이름은 내 기억에 그저 교과서에서 ‘박제가 - 북학의 편찬, 청과의 통상 확대, 상공업 진흥 주장’이라는 한 줄로 정리되던 이름에 불과했다. 적어도 교과서에서는 그를 그 이상으로 알기란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뭐 여기저기서 주워서 들었던 것은 더하자면, 《북학의》라는 책은 그 당시의 주류에서 벗어나 선진적이고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정도였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에서 만난 박제가는 놀라운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서얼이라는 신분적 차별 속에서 그가 비웃었던 조선, 그 틀을 깨고자 했던 수많은 생각들은 이미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바라봐도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박제가가 조선의 현실을 답답하게 느낀 것은 오직 신분적 장애, 출세의 한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박제가의 남다른 점이다. 보통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겪는 사람, 그것이 한이 된 사람은 오히려 그 한에 매몰되어 서얼제도 철폐와 피해보상 같은 자기 문제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박제가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조선의 차별과 한심함과 답답함이 조선 사람들의 심성이나 한두 가지 잘못된 법이 원인이 아니라 조선의 폐쇄적이고, 단조롭고, 역동성이 결여된 사회구조에서 기인했다고 보았고, 사회 전체의 환골탈퇴를 추구했다. -P120
박제가에게서 느꼈던 놀라운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실, 이는 내가 항상 느꼈던 답답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자신의 문제에만 집착해서 더 큰 것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항상 느꼈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제를 큰 틀에서 해결하면 그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의 문제 해결에만 집착하며 아등바등하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많은 이들이 박제가가 했던 생각을 따라간다면, 아니 적이도 박제가의 생각을 접할 기회가 있는 이들만이라도 많은 것들을 자신만의 문제에서 벗어나 큰 틀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지금의 현실이 어떻게 달라질까, 생각해본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쉰다.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 노래의 교훈은 백성들이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정치,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편안하게 살게 해주는 정치가 가장 훌륭한 정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훈에는 함정이 있다. 현실적으로 이런 사회가 가능하려면 발전도, 욕구도, 추구하는 것도 없어야 한다. 모든 것이 풍족해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다. -P203
지난 대선을 앞두고 아는 이와 정치이야기를 하다가 뜻하지 않게 논쟁적으로 변해버린 순간이 있었다. 보수니 진보니, 오른쪽이니 왼쪽이니, 등등 한참을 주고받다가 상대방이 불쑥 내뱉은 한마디에 그냥 모든 걸 그만두고 말았다. 그 말이라는 것이, -내가 결코 지지하지 않는!- 어느 특정세력이 만들어낸 오늘날의 우리의 국력과 경제력이 결코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나 그들이 행할 많은 것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대로 만족스러우니까 문제가 없다는 것일까?! 어쩌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전제부터가 달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욕구’라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던가. 세상이 좀 더 발전하기를,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좀 더 잘 살기를 바라면서-사실은 같은 말이지만…- 세상은 지금의 구조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직도 조선의 그 모습처럼, 스스로 욕망을 거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전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즉 욕망을 거세한 사회를 여전히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제가도 한국 사회가 단 몇십 년 만에 완전한 산업사회와 무역국가로 변신하고도 여전히 그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에 비판적이거나 그 주변사람들과 똑같이 편협하고 무지한 국수주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제가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박제가의 진정한 불행은 그의 외침이 이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P307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로 만난 박제가의 삶과, 《북학의》를 비롯한 그의 삶 속에 담긴 사상들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습과 조선사회의 한계가 겹쳐 보이는 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기존의 것들을 지키려만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묵묵히 이끌려만 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박제가가 그러했듯이 어디선가 뭔가를 외치고 있다. 나는 그 누군가들 중 어디에 속할 것인가?! 아직 끝나지 않은 박제가의 외침이 더 크게 들리는, 아니, 꼭! 그래야만 하는 오늘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