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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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64년에 D현에서 일어난 소녀 유괴 살해 사건의 비밀, 

그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찰 내부의 대립,

공소시효 1년 전에 반복되는 모방범죄,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64』를 읽기에 앞서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이 중에서도, “2013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라는 타이틀의 함정(?!)에 이미 빠져버려서 그랬던 것인지, ‘공소시효 1년을 남겨둔 시점에 발생되는 모방범죄’에 모든 것이 집중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외(?!)의 이야기 흐름에 살짝 당황했다. 그저 어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그냥 보통의 미스터리라 생각했는데,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2013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3년 ‘서점 대상’ 2위” 라는 타이틀이 그러하듯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신기하게도 예상했던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래서 당연하게도 뻔하지 않아서 오히려 호기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었고, 그 결과는 큰 놀라움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몇 년 간 매년마다 수십 권의 책들을 읽었지만 그 중에서 별 다섯 개 만점을 줄만한 책은 손에 꼽힐 정도로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그런 책을 올해 반이 지나기도 전에 벌써 만났다는 생각에 커다란 즐거움을 던져준 책이 바로 『64』라는 것이다.

 

‘64.’ 14년 전 ‘아마미야 쇼코 유괴 살인사건’을 가리키는 기호로, D현경 관내에서 처음 일어난 강력 범죄사건이었다. 몸값 2천만 엔을 고스란히 빼앗겼고, 납치된 일곱 살배기 소녀는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직 범인은 붙잡히지 않았다.

 

7일 만에 막을 내린 쇼와 64년은 새로 찾아온 헤이세이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신기루 같은 해였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범인은 그 쇼와 마지막 해에 일곱 살 소녀를 유괴, 살해한 뒤 헤이세이의 새로운 세상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64는 맹세와 다짐은 기호였다.

 

『64』는 '미카미'를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된다. D현 경찰청의 홍보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는 '미카미'는 자신과 닮은 모습에 경멸을 느끼고 급기야 가출까지 하게 된 딸을 찾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일이라도 잘 풀려주면 좋으련만, 어느 중상해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임신부라는 이유로 익명 발표로 한다는 상부의 결정으로 인해서 홍보실 출입기자들과 마찰을 빚게 된다. 이 와중에 공소시효를 1년 남긴 64(육사) 사건을 빌미로(?!) 경찰청장의 시찰이 예정되고, 미카미는 피해자 가족 위문 방문을 원하는 청장의 뜻에 따라 유족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사표를 내고 싶다.

나를 장기 알처럼 멋대로 휘두르는 상사에게 한방 먹이고 싶다.

회사와 상사가 내가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 몰라준다.

비리와 부조리가 가득한 이 세상을 뒤엎어버리고 싶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정의를 지키면 손해 보는 것 같다.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이 있다.

경찰이나 기자를 꿈꿨던 적이 있다.

언론에서 발표하는 일들에 대해 의심을 품어본 적이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천구백팔십사'라고 읽는 것보다 '일구팔사'로 읽는 것이 좋다.

4나 6, 혹은 46, 64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이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소설 『64』와 함께하는 64명의 홍보담당관 모집’ 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글에는 위와 같은 조건들을 제시하면서, ‘이 조건에 한 가지라도 해당된다면 당신은 64홍보담당관이 될 자격이 충분한 사람입니다.’라는 내용이 함께 있었다. 단순히 재미로 넣은 것 같은 문구도 있었지만, 그때는 미스터리 장르인데 왜 사표가 나오고, 왜 뜬금없이 회사와 상사 관련 이야기가 나오나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별생각 없이 그저 뭔가 있겠지, 하고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몇 개나 있는지 체크하고 그냥 넘어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심지어 ‘홍보담당관’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부터….

 

 그렇다. 『64』는 앞서 살짝 언급했듯이 단순히 미스터리 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은 소설이다. 미스터리한 부분도 있지만, 그 속에 경찰청 내부의 미묘한 신경전부터 그 사이에 끼어 어쩌지 못하는 상황들 및 조직생활의 온갖 치부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중요한 사실은 단순히 경찰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느낄법한 다양한 심경들을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경찰 소설이지만 경찰이라는 조직에서 그치는 것만이 아닌 보다 확장된 주제의 소설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거기에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가정의 문제까지 더해서 어떤 선택도 결코 쉽지 않게 만드는 효과까지 만들어 낸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어서 이것을 단순히 몇 줄의 줄거리로 정리한다는 것조차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은 작가의 집필기간만 10년이라는 사실에 미루어 보면 더더욱 그러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평소 내가 생각하는 나라면, 이런 종류의 이야기-미스터리적 요소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경찰 조직 내의 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에 그저 지루하다고 느끼고, 몇 번이나 책 읽기는 멈춰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뭔가 점점 더 궁금해지고, 빨리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고 싶어 잠이 자동으로 줄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놀라운 순간(?!)은 순전히 ‘요코야마 히데오’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12년의 베테랑 기자 출신이라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으레 기자라는 직업이라면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진실을 향한 강한 집념과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정신 등을 바탕에 두고 인간이라는 존재 가치,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 긍정적인 따뜻함을 담아 표현해낸 작품이라서 나에게도 그런 좋은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안타까운 이야기에 짜증도 내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때로는 어쩔 수 없는 딜레마에서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한없이 심각하게 나만의 생각에 빠져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감추어진 비밀들을 한 겹씩 벗겨내는 재미가 더해져서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받았던 좋은 느낌들을 고스란히 표현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책에 담긴 많은 세세한 이야기들을 제대로 언급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직접 이 책을 읽어보라는 추천으로 대신해야 할 것 같다. 작가 자신 스스로 '나 자신의 인생을 집대성한 작품',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퇴고를 거친 끝에 드디어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작품을 써냈다'며 드러낸 자신감에 나 역시 감히 그의 자신감이 충분히 일리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작품, 『6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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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 1 - 봄.여름
로버트 매캐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검은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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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년(혹은 소녀)이라는 이름의 성장기에 있는 이들에게 들려만 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아니, 이미 어른이라는 이름만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들려주고픈 성장 이야기이다. 놀라움과 그 이상의 철학이 가득한, 결코 후회 없는 시간들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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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꽃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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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조차 자신의 판결을 후회한 조선 양반가 간통 사건

목숨 걸고 사랑했던 오랜 연인의 비극적 순애보

 

 어떤 책은 단지 전체적인 스토리-당연하게도 읽기 전이니까 대략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때문에 읽기 싫을 때가 있다. 예를 든다면, 어린이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다룬 이야기나-이 경우 가해자는 항상 힘을 가진 자들이고, 그 힘으로 법의 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이는 결국 나를 비롯해 지켜보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불륜을 담은 이야기-이 경우 비난을 받아야 할 상황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사랑이라고 부를만한 상황도 있겠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뭔가 불편한 느낌이 먼저 들기에 피하게 된다!-이다. 같지는 않더라도 그 누구에게나 피하고픈 이야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단순히 읽고 싶다, 읽기 싫다는 사실을 떠나서 아예 그런 책은 관심밖에 두게 된다. 그런데 가끔씩은 평소의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그런 이야기라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고정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평소의 생각에 작게나마 어떤 균열이라도 안겨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불의 꽃』의 그런 책이었다. 어떤 끌림이 있는…….

 

정사를 보았다. 대사헌 하연이 말하기를, “비밀히 계할 일이 있사오니 좌우의 신하들을 물리치고 의정 이원만을 남게 하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나가니 하연이 계하기를,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柳)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通奸)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라 유씨를 옥에 가두었다.

 

 『불의 꽃』에 담긴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랑을 믿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조서로와 이귀산의 아내 유씨의 관계는 사랑이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시작된 슬프면서도 가슴 찡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말선초라는 불안정한 시기에 가족들을 잃게 된 녹주는 먼 친척벌되는 서로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녹주와 서로는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상처를 함께 보듬어가면서 그들만의 추억과 기억, 그리고 사랑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하지만 녹주의 모습이 탐탁지 않았던 서로의 어머니 경심의 방해로 그들은 떨어진 채 살아가게 되고, 서로가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무렵에야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된다. 오랜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은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그래서 결국에는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아프지만 결코 비켜나갈 수 없는 사랑이 그려진다.

 

“관상감에서 일하는 이들이 그러더라. 별보다 그 별을 찾아 검은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다고…….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보다 그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더 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사랑한다!” -P256 

 

 처음부터 이것이 사랑이다, 라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씩 읽어가면서 내가 서로가 되기도 하고, 녹주가 되기도 하면서 조금씩 그 사랑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거의 없을 것만 같은 사랑이기에 더욱 그랬고, 그래도 사랑이 있다고 믿고 싶기에 더더욱 그랬다. 세상을 살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을 그리워하게 되고,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사랑을 향해 덤비는 그들을 그리게 된다. 그래서 더 불타고 빛나는 사랑을… 그래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불의 꽃』은 그런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실, 『불의 꽃』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다양한 단어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던 단어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와 한글을 읽고 있음에도 외국어를 읽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말이기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고, 언젠가 부터는 오히려 낯선 우리말을 만나는 재미에 빠져들기도 했다. 낯설지만 그저 막연히 낯설지만은 않은 기분이랄까. 낯선 단어,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면서, 이런 단어나 표현들이 있었음에 놀랐고, 반가웠고, 또 감사했으며, 즐거웠다. 그동안 너무 우리말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동시에 하게 되면서 말이다. 

 

 『불의 꽃』은 ‘조선 여성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죄가 되어 처벌을 받는 조선 여성들을 다룬 이야기, 그 두 번째 인 것이다. 비록 죄라고 불려도, 그래서 그 어떤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이 바탕되는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 고마워하고 또 한편으로는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왜 그리도 그것을 의심하고 멀리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지금이라도 서로가, 그리고 녹주가 속삭이는 말에 귀 기울여 봐야 할 것 같다. 사랑을 하고, 또 그것을 믿으라는 그들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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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타이거스 - 2013년 제1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최지운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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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과거에는 충분히 통하던 말이 더 이상은 통하지 않을 만큼 세상을 빠르게 변화되어왔고, 또 그렇게 심화되어 가는 것이다. 무조건 죽어라 노력하면 가능하던 것도, 이제는 죽어라하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깨달아 간다.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는, 용의 자식들만 다시 용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용은 절대 될 수 없음에도 ‘용(龍)공고’ 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매봉산에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옥수동은 둘로 갈라진다. 대한민국 하위 5퍼센트, 즉 가난과 빈곤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기존의 달동네 사람들의 옥수동과 대한민국 상위 5퍼센트의 사람들로 새롭게 꾸려진 서당동으로 나뉘는 것이다. 『옥수동 타이거스』는 나눠진 구역만큼이나 명확하게 빈부와 학벌의 경계가 그어지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위 5퍼센트의 대표격인 용공고 ‘오호장군’과 상위 5퍼센트의 대표격인 중앙외고의 ‘캡틴파이브’의 패싸움이야기로 말이다. 복잡한 생각 때려치우고 그저 재미로 이들의 일인자 다툼을 지켜보는 재미도 꽤 괜찮지만, 그 속에 담긴 다양한 생각들을 하나씩 만나고 곱씹다보면 그 재미는 질적으로 보다 커질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도 이런 자신들의 현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아니, 부정 할 수가 없다. 이런 것들은 깡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싸움은 다르다. 적어도 싸움의 세계에서는 예금 빵빵한 체크카드가 없다고 낙오자가 되는 것 아니다. 마음만 맞고 싸움만 잘하면 아버지가 청소부든 의원님이든, 사는 집이 궁궐이든 판잣집이든 상관없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전교 등수는 물론 인문계, 실업계 같은 구분도 필요 없다. 오직 깡, 깡만이 중요할 뿐이다. 반드시 상대를 꺾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 최강자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싸움의 세계였다. 이 세계로 말할 것 같으면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진리가 유일하게 통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P117~8

 

 사실, 이 책을 펴고 처음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에는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어야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조폭이 영화계를 휩쓸던 기이한 현상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그와 비슷한 고등학교 폭력서클이라는 소재의 이야기에 거부감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게 포장된들, 이런 폭력서클의 이야기가 성장소설(혹은 젊은 소설?!)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까 싶은 우려가 한 몫 했다. 그런데 웬걸. 이야기 자체의 속도와 내가 이야기에 빠져들어 가는 속도가 맞물려 들어가면서 언제 이렇게 되었나 싶을 만큼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그와 동시에 내가 처음에 가졌던 편견이란 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언제나 한 쪽의 이야기만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폭력이라는 것 하나에 이미 내 마음이 기울어 졌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돈과 권력을 쥔 무리들에게 그 어느 것 하나 내밀지 못하고 오히려 정리대상으로 취급받는 이들에게 -내가 그토록 단순하게 부정적으로만 보아오던- 싸움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순간 뜨끔했다고 해야 할까?! 물론 폭력이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폭력을 통해서라도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위험할지도 모를 생각마저 가능할 만큼의 지금 세상이 지닌 부조리에 -항상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만, 다시 한 번!- 울컥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까?!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그 놀라운 진리가 통하는 곳이 있기도 하니 다행이라고 즐거워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진리가 통하는 곳이니 더더욱 그 세계에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고……. 훕!

 

 이 소설은 형식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독특하다. 소설이기에 독특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 일상-특히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책 속으로 옮겨놓은 것만 같아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진다. 인터넷을 하면서 이창 저창을 마구 띄우고 내리며 바쁘게 이것저것을 읽어 내려가듯이 인터뷰 창이 툭 튀어나와서 뭔가 아쉽다싶은 부분을 채워주기도 하고, 채팅창이나 어느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을 직접 보여주면서 보다 이야기의 사실성을 보다 높여간다. 더군다나 허구인 듯 말하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다양한 사건들과 그런 형식들을 얽히게 만들어 단순한 재미와는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작가의 ‘당선 소감’을 보게 되면-아, 이 작품은 ‘제1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비슷하게 생긴-평범한 학생들이 자신에게 닥친 여러 사건들을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이며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보통의 청소년 소설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예전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회 전반에 산재해 있는 부조리나 불평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여야 한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보듯이 그러한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부모·지역·학교에 따라 오늘이 결정되는 기이하고 부조리한 상황……. 부모·지역·학교에 따라 내일도 결정되는 무섭고 잔인한 세상! 이건, 많은 성장소설에서 하나같이 말하는 ‘개인의 내면적 성숙’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당선 소감 中에서…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작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역시 이것이 아니었을까. 청춘은 원래 아픈 것이라고, 그래서 그런 것쯤은 개인적 차원에서 견뎌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라는 세상 속에서, 그런 아픔은 너희들만의 탓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성장이 무조건 참고 견뎌야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나의 짐작이 맞다면, 나 역시 그런 생각에 한없이 지지를 보내주고 싶다.

 

 가볍게 생각하고 읽어나갔던 소설인데, 그리고 실제로 가볍고 즐겁게 읽어나갔던 소설인데, 그 끝맛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옥수동 타이거스』는 그래서 더 놀라운 소설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재미와 깊이를 다룰 줄 알고 문무를 두루 겸비한 메이저급 신인의 출현”이라는 심사평을 보며, 뭐 이렇게 과대 포장을 하나 싶었는데, 직접 읽고 나니 결코 입에 발린 소리만은 아니다 싶다. 다음에는 또 어떤 즐거움과 아픔을 묘하게 섞어놓을지, 이 신인 작가의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메이저급’이라는 수식이 아닌 진짜 ‘메이저’의 모습으로 보다 업그레이드된 놀라움을 던져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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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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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시화’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보통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같은 시집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보다 앞서서, 그것도 강렬한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은 《지구별 여행자》《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다. 그 이야기들이 나를 인도로 이끌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여전히 그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온 몸의 감각마저 인도를 떠올리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까. 물론, 시(時)로 먼저 알게 된 이름이었지만, 여행 에세이로 더 큰 기억에 남아서인지 그가 시집을 들고 나왔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것도 15년의 침묵을 깨고 나온 것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하지만 그런 낯섦도 잠시. 시집이든 여행 에세이든, 그저 좋은 기억을 남겨줬던 그이기에, 낯설어 하기 보다는 친근함으로, 또 이번에는 어떤 느낌으로 오랫동안 전해질까 하는 기대까지 더해서 다가설 수 있었다.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라는 이름의 시집으로….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강박관념이 책을 볼 때 놓치지 않고 전체 페이지를 반드시 보게 만든다. 이 책은 이정도 페이지니까 금방 보겠네, 혹은 이 책은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라는 식으로…. 페이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전혀 필요 없는 생각을 또다시 하고 말았다. 특히나 그런 분량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시집을 들고서 말이다. 아직은 내가 시를 읽을 상태가 아닌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에 쫓기고 있고, 무엇을 보고 있기에 이렇게 서두르기만 하고 가만히 앉아 오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복잡함은 나를 온전히 시 속으로 빠져들지 못하게 했다.

 

 새로운 기대감이라는 설렘이 있었지만, 그것을 가로막는 뭔지 모를 복잡함.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읽는 것뿐이었다. 그저 글자를 따라가는 것으로… 그게 전부였다. 차라리 글자만을 따라가면서 그 자체에만 집중했으면 좋았으련만, 자꾸만 뭔가를 발견하려고 했고 자꾸만 뭔가를 이해하려고만 했다. 시는 그렇게 다가가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시인이 들려주는 언어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머릿속이 가벼워지면서 뭔가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냉정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고, 신비함 깃들어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때로는 마냥 행복해지기도, 때로는 기분 좋은 웃음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고, 또 때로는 무슨 신화 속에 있듯이 몽롱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 느껴졌다. 아직은 배울 것이 많다는 어떤 절실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기대했던 설렘이 그대로 느껴지고, 예상하지 못했던 낯섦에 묘하게 흥분되기도 했다. 때로는 내가 먼저 발견하지 못한 새로움에 아쉬움도 느끼고, 약간의 관심도 없어서 스쳐지나갔던 낯섦에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수백 페이지로 표현해내는 이야기를 몇 개의 단어, 몇 개의 문장으로 표현 하면서도 다양한 맛과 다양한 멋이 있는 시에 새삼 감탄스러워하게 되는 순간의 연속들이었다.

 

 

오늘 나는 달개비에 대해 쓴다

묶인 곳 없는 영혼에 대해

사물들은 저마다 시인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한다

나비가 태어나는 곳이나 생각의 틈새에서 자라는

이 마디풀에게서 배울 점은 다름 아닌

신비에 무릎 꿇을 필요

신비에 고개 숙일 필요

 

- 달개비가 별의 귀에 대고 한 말 中

 

 

‘삶에는 시로써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시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린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싶어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물들은 저마다 시인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만나면서 조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신비에 고개 숙일 필요’를 말하는 시인의 낯선 언어는 어느 샌가 가슴으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짧은 순간들이지만 나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면서, 시험을 위해서만 시를 읽어왔다. 내가 느끼는 그대로의 시를 만난 것이 아니라, 자꾸만 시인의 의도만을, 출제자의 의도만을 따라가기 위해 애썼던 것이다. 물론 시인이 하고자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시를 읽게 된다면 지금 나의 모습들에 나의 상황에 맞는 세상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시를 통해서 나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을 만들어준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에 고마워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뭔가에 쫓기고 있고, 서두르기만 하게 되는 순간에 오히려 더 찾아야 하는 것이 삶의 여유가 아닐까?! 그리고 그 여유 속에서 나의 삶을 찾아가는 또 다른 길, 혹은 안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혼란스러운 많은 생각들 속에서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 어떤 힘을 안겨줄지…. 역시, 직접 만나보라는 말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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