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인문학 강의 - 전 세계 교양인이 100년간 읽어온 하버드 고전수업
윌리엄 앨런 닐슨 엮음, 김영범 옮김 / 유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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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뭔가를 걱정하고 고민하며 살아간다. 언제나 생각(그것이 단순한 걱정이든 고민이든)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지금까지 겪어왔던 짧은 경험이라는 한계 속에 머물러있다. 그러니 생각이라는 것이 커다란 발전도 없이 계속해서 빙글빙글 맴돌고만 만다. 하나의 생각에서 또 다른 하나의 생각으로 넘어가다가도 다시 이전의 생각으로 돌아가 있고, 어느 때는 이런저런 과정 따윈 다 뛰어넘어 저 끝에 가있기도 한다. 정리는 되지 않고,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해 왔고, 할 수 있고, 앞으로 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아무런 기초 작업도 없이 그저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며 폼만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다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면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발전이라는 것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인문학으로 자꾸만 기웃거리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열린 인문학 강의』라는 제목만으로도 끌렸던 것이 이 책이다. 관심 있는 인문학 강의인데, 게다가 열려 있다고 하지 않나! 그 열린 문틈 사이로 나 하나 지나가지 못할까 싶은 생각에 과감하게(?!)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열린 인문학 강의』 ‘하버드 고전(Harvard Classics)’이라는 총서의 51번째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51번째 책은 ‘하버드 고전’이라는 50권을 완간하고 나서 고전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하려고 기획된 강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독자들이 고전을 읽을 때 느끼는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하는 교육적 배려에서 출발한 강연인 셈입니다. -역자 후기 中에서…

 

 제목도 ‘열린’이고, 고전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고 했기 때문일까, 쉽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전적으로 나의 착각이었다. 결코 쉽지 않았다. 분명 입문서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싶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내가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인문학에 다가서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싶어서, 욕심과 나도 모르게 남아있는 편견 따윈 버리고, 처음부터 무조건 완벽하게 알아간다는 강박감이나 부담감 따위도 지워버리고 인문학 입문에 다가서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럼에도 어려워서 단 한 두 페이지를 읽는 데에도 몇 번이나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또 다른 욕심이겠지만….) 그러다가 문득, 욕심을 버리는 순간, 인문학의 정신(!?)에 비로소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말해서,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인문학으로의 입문 자세를 잡아나갈 수 있었다, 고 한다면 너무 성급한 이야기일까!?

 

『열린 인문학 강의』는 역사, 철학, 종교, 정치경제학, 항해와 여행, 희곡, 그리고 시까지 모두 일곱 개의 분야로 구성되어있다. 각 분야에서도 ‘들어가는 말’을 통해 전체적으로 그 분야에 대해 살펴보기가 가능하게 만들었고, 각 분야별로 그 속에 세부 주제를 정해서 한 단계 더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책을 제대로 보기 전에는, 강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라서 각 분야별로 한 명의 교수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각 분야에서도 세부적으로 들어가 각각의 교수, 그러니까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수준 높으면서도 다양성까지 충족시키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처음 책을 보면서 누구나 그렇듯 목차부터 살펴보는데 구성 자체가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역사, 철학, 종교, 정치경제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행과 항해, 희곡, 시와 같은 주제들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이런 말을 하면 수준이 낮은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뭐 사실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내가 인문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아무런 개념도 없이 덤벼든 것인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놀라웠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런 놀라움은 끄덕거림과 또 다른 놀라움으로 바뀌어 갔다. 특히나 희곡 같은 경우 크게 관심이 가는 분야가 아니었는데, 그 생각이 조금은 바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희곡을 바라보는구나,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렇게 희곡을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 언젠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다가 몇 번이나 포기한 적이 있었다. 고전 읽기의 시작으로 삼았던 책인데 처음부터 힘들어했으니…. 덕분에 나의 목표는 방향을 잃고 그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사라져버렸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용기 내어(!?)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느끼고, 또 이야기하다보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놀라움(?!)은 희곡에서뿐만 아니라 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단순히 시를 통해서 철학을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싶은 정도로만 머물렀으나 시가 아주 긴밀하게 인문학과 연계시켜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앞으로도 여전히 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살아가지 않았겠나 싶기도 하고, 또다시 누군가가 시를 통해서 철학을 이야기한다면 그때도 역시 그저 단순한 생각으로만 머물러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의외의 발견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놀라움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철학종교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들이 찾아왔다. 평소에 가끔씩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도 좀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마구마구 생산해내고 싶다고…. 그러면서도 어떤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저이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났을 거야, 라며….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원하는 것이 힘들지만, 분명 힘들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선은 상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저 상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해방시키고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있는 훨씬 타당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으며, 그래서 철학에 (그것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다면 나 역시도 충분히 그런 기준으로 정신해방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사물에 대한 최초의 자유로운 호기심까지 회복할 수 있다면 더 괜찮을 것이라는 가르침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신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신이 그저 종교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 역시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아니 사실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놀라웠다. 그러고보니,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그로인한 새로운 흥분을 던져주는 것이 이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고전이 애초에 만인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며, 또한 고전은 최고의 작가가 그 시대에 닥친 가장 어려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 해법을 제시한 책이기에 고전에 다가서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렵다 어렵다, 하기 전에 작은 호기심으로 다가선다면 분명 그 어려움도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알던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물론 그 시각이 달라진 것이겠지만…)는 놀라움을 가지게끔 해주는 계기가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테고 말이다.

 

지금은 고전을 읽어야 할 시간인 셈입니다. 고전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배울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 인간답게 사는 법(humaniter vivere)을 정리할 수 있다면, 고전을 읽는 수고를 마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고전을 읽을 때, 의지하고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다면 다가가기가 훨씬 쉬울 겁니다. -역자 후기 中에서…

 

 이 한권의 책으로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크나큰 욕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그저 인문학에 다가서기위한 하나의 발판으로 생각해야 맞을 것 같다. (실제 이 책의 의도도 그런 것일 테고…)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 속에서 흥미를 조금씩 키우면서, 하버드 고전 도서 목록을 하나씩 찾아가며 그것들을 읽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이 책은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책을 부르는 책이랄까!? 중요한 것은, 한 권의 책으로 인해 또 다른 많은 책들을 알아가고 싶다는 호기심의 발로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의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 아닐지…. 인문학이 열려있기를 기대하기보다 내가 먼저 열린 마음이 되도록 만들어 주고, 그런 생각으로 한걸음씩 걸어 나가게 만들어 주는 책, 『열린 인문학 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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