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차일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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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친구들과 만나면 어릴 적의 추억을 이야기하고는 한다. …… 우리 어릴 적에 기억 나냐?!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도롱뇽, 하다못해 도롱뇽 알이라도 잡으려고 설치고 다녔는데 말야… 좁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야구하다가 유리창을 몇 번이나 깨먹고 도망치고, 또 자수(?!)하기도 했었지… 그것도 기억 나냐?! 몇 십 원, 몇 백 원 들고 떡볶이 사먹고, 뽑기도 하고, 모여 앉아서 프로레슬링도 보던… 난 워리어 팬이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조금 지나서는 비비탄 총도 유행했었지… 어, 나도 기억나. 누구누구는 M16같은 큰 비비탄 총 가지고 자랑하고 나도 부러워 엄마한테 사달라고 며칠을 졸라대고는 했었는데 말야… 어쩌고저쩌고 ……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들려줄법한 그런 오래된 옛 추억은 아니지만, 나름 아련하면서도 신나는 기운도 깃들어있는 그 시절의 추억들을 서로 앞 다투어 내놓고는 했다. 그리 특별나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평범하지도 않았던 나의 어릴 적. 적당히 추억하고, 적당히 그리워하고, 가끔씩은 다시 돌아가고픈 어린 시절을…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니, 특별히 그런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내 주변의 대부분이 그러했기에, 더 큰 세상-내가 알던 더 큰 세상도 사실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것이었지만…-도 그러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던 것 같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할 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그런 당연하지 않은 사실(?!)도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왔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 나름 내 주변을 돌아보며, 현재 나의 상황보다도 못한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관심을 가지며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나에게 뭔가 직접적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기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한 권의 소설로 뭔가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직접적으로 뭔가를 경험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적어도 뭔가를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직접적 계기는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흔한 일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며, 더군다나 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야기를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는 하느님보다 더 오래된 신들이 필요했다. -P155

 

 독수리의 깃털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길을 나서는 소년이 있다. 버스를 타고, 아스팔트 도로를 걷고, 자갈길을 걸으며 헤매던 그는 결국 높은 나무 위에 있는 독수리 둥지를 하나 찾아낸다. 많은 것도 아닌, 그저 깨끗하고 흰 꼬리 깃털이나 날개에서 나온 거대한 갈색 깃털 하나를 원하는 소년. 그는 조심스럽게 둥지를 향해 나무에 오르기 시작했고, 둥지에 다다를 때쯤에는 뜻하지 않게 그 속에 있던 두 마리의 독수리 새끼를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어디선가 독수리가 달려들어 날카로운 발톱이 소년의 살에 박히고, 그와 동시에 소년은 독수리와 함께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 옷이 찢겨지고 여기저기 상처도 난 채,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버스를 탄다. 마법을 위해 필요하다던 독수리의 깃털은 구한 듯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소년은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자신 때문에 홀로 남겨질 두 마리의 새끼 새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겹쳐지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 먹먹한 이야기의 시작. 과연 이게 내가 원했던 장르의 소설이 맞는가,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 책의 장르로 봐서는 이렇게 시작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들다가 겨우 빠져나올 때쯤이면 처음에 했던 생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오히려 그 시작에서 아무런 감동이나 아픔을 느끼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으니 말이다.

 

 앞서 독수리의 깃털을 구하러 다니던 소년의 이름은 ‘조니’이다. 그에게는 그와 쌍둥이인 여동생 ‘앨리사’가 있다. 아니, 있었다.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앨리사. 그녀가 실종된 것은 1년 전으로,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 누구보다도 특별한 감정을 공유했던 남매였지만, 여동생 앨리사가 사라지면서 그런 감정들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실종으로 아빠는 집을 나가게 되고, 엄마는 마약에 빠지게 되면서 지금은 한 남자에 발목 잡혀 비참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조니만이 그의 나이답지 않은 강인한 모습으로 여전히 여동생을 찾으러 납치범을 조사하고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다리에서 오토바이와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조니는 그 남자를 통해서 “내가 그녀를 찾았어.”… “그 유괴된 여자아이”… 라는 놀라운 말을 듣게 된다. 조니는 그가 말하는 그 여자아이가 앨리사라는 생각에 희망을 찾게 되지만, 그날 또 다른 유괴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면서 이야기는 정신없이, 하지만 결코 정신을 놓을 수 없는 순간들로 흘러간다.

 

 쌍둥이 여동생을 잃은 열세 살짜리 소년. 세상의 좋은 것들보다 나쁜 것들을 더 먼저, 그것도 아주 명확하게 겪으며 세상을 깨우쳤다는 이 소년. 세상에 안전한 곳은 결코 없으며, 그를 보호해줄 사람도 없다고 믿는 소년. 신이라는 존재는 적어도 어린아이들의 고통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리고 정의나 인과응보, 지역공동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소년. 심지어 결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냉정함과 침착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소년. 무엇이 이 소년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안타깝게도 이 소년이 겪을 일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래도 결국에는 어쩔 수 없는 아이이기도 한 소년에 불과한데 말이다….

 

“아무리 기도해도 앨리사가 집에 오지도 않았고, 아빠도 오지 않았어요. 아무리 기도해도 집이 따뜻해지지도 않았고, 켄이 와서 엄마를 다치게 하는 걸 막아주지도 않았어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등을 돌렸어요. 엄마가 내게 그렇게 말했잖아요. 기억나요?” -P247

 

 특별히 믿는 신은 없지만,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라면 아무 신이나 찾으며 기도를 하게 된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 그리고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신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다. 적어도 그 수많은 신들을 불러내는 동안, 그리고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기도하는 그 순간의 절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별히 믿는 신도 없는 나조차도 어느 순간-특히나 인간이라는 이름이 무기력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에는 신에게 기대게 되는데, 평소 하느님을 믿고 따라온 어린 아이의 경우라면 오죽할까. 기도한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소원이 아닌 어린 아이가 충분히 원할 수 있는, 아니 충분히 그래야만 하는 소원을… 하지만 그토록 절실하게 기도하고 기도했지만, 그가 믿는 하느님은 아무런 대답도 없다. 그가 원하는 것들 중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의 반복 속에서 소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보통의 아이라면 그저 주저앉고야 말 순간에도 이 소년은 자신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당장 그 소년이 내 앞에 있다면, 대견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 할 것 같지만, 그 머리에 얹을 내 손이 먼저 슬픔에 울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그저 먹먹하다, 슬프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또 부족할 수밖에 없으리라. 부당하고, 비극적이고,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 넘쳐나는 게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공간 속에서 세상을 깨우쳤다고 말할 수 있는 소년의 삶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이 소년의 삶이 이렇게 된 것 누가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가족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그런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나, 그리고 나와 친밀하게 연관된 사람들만 소중하다는 생각은 결국에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크나큰 슬픔, 분노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은 왜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갈까?! 이것을 그저 -내가 아닌- 냉혹하고 비열한 다른 사람들과 그들에 물들어버린 세상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것일까?!

 

 조니가 그래도 끝까지 여동생은 살아있다고 믿으며 그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통해서, 힘든 시간 속에서도 뭔가 작은 희망이라도 찾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단순한 생각이며,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조니와 같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의 어린 시절이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차 상처로 남겨진 ‘악몽 같은 기억’이 아닌, 언제든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그 무엇보다도, 모든 아이들이 어린 시전을 ‘추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위한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고, 또 행동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나와 내 주변의 몇몇 사람만을 위한 세상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하는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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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치여자 NFF (New Face of Fiction)
사비나 베르만 지음, 엄지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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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때 우리학교 문과반이 한 과목에 있어서만큼은 전국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 과목은 화학이었고, 이과도 아닌 문과반이, 다른 과목도 아닌 화학에서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 뭔가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실이니까… 아무튼! 그 놀라운 사실(?!)의 중심에는 화학과목 담당 선생님이 있었다. 그저 쉽지 않은 과목이라 생각했는데, 그걸 완전 쉽게, 그래서 성적이 하위권인 아이들도 화학만큼은 재미있고 쉬운 과목으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이었다. 갑자기 왜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절거리는가 싶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어렵게 느껴지는 뭔가를 쉽게 다가가게 하면서 그만큼의 성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란 게 결코 쉽지 않지만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렇게 하기위해서 뭔가를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것을 나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 참치여자』가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 화학을, 그리고 이 책의 작가 ‘사비나 베르만’이 그 시절의 화학 선생님을 떠올리게 했다. 다가가기 쉽지 않을 것만 같은 주제를 가지고 그 핵심을 빠뜨리지 않으며 쉽게 다가서게 하는 책이 바로 『나, 참치여자』이며, 그 작가가 ‘사비나 베르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사비나 베르만’이라는 작가는 『나, 참치여자』에서 ‘카렌’을 통해서 나에게 그 시절 화학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의 주인공 ‘카렌’은 어느 지하실에서 살아가던 여자아이, 아니 짐승 그 자체였다.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참치회사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된 이모가 찾아오게 되면서 그녀는 점차 인간의 모습, 그리고 남들과 다르지만 매력이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사실 그녀는 자폐증으로 인해 말도 할 줄 모르는 수준이었지만 이모의 보살핌을 통해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시작으로, 책도 읽게 되고, 대학까지 가게 되며, 참치 여자(?!)로 태어나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그녀에게 있던 자폐증은 그녀를 “스탠더드한 사람들”의 무리에 들어가게 하지는 못했다. 아니 그들 속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그녀가 그녀만의 독특한 생각과 방식으로 참치회사의 경영에 참여해 나가면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이 『나, 참치여자』에 담겨있다.

 

 사실, 『나, 참치여자』라는 제목만 단순히 놓고는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쉽사리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 한 아이가 바다를 바라보며 ‘나’라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모습이나, 이 책의 원제가 《세상의 중심으로 잠수해 들어간 여자(La mujer que buceó dentro del corazón del mundo)》라는 사실, 혹은 프랑스어판 제목이 《나(Moi)》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왜 카렌이 그토록 ‘나’를 찾기 시작하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며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 과정 속에서, 짐승 같은, 결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의 한 아이가 점차 인간으로서, 그리고 오히려 스탠더드한 사람의 대부분은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나’를 고민하고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카렌의 ‘나’가 아닌 진짜‘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불어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 물들었다는,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되어간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물들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울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그때의 내 마음과 다르게 웃고 말하는 모습들… 그런 모습들을 시원하게 깨뜨리는 것이 ‘카렌’이라는 인물이다. 『나, 참치여자』라는 책 자체는 ‘카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상상을 하지 않는, 그래서 쓸데없는 걱정 따윈 없는 그녀. 알고 있는 것만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에 대한 지극히 스탠더드한 생각을 깨고, “나는 존재한다, 고로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가 오히려 더 사실에 가깝다고 믿는 그녀. 그리고 이런 행동과 생각들을 더듬더듬 말하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할 줄 아는 그녀. 흠… 표현이 부족해서인지 ‘카렌’의 매력을 제대로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절대 나의 표현력에만 머무르는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단순히 내용만을 보면, 어떤 영화에서 그려졌던, 자폐증을 가졌지만 전채적인 두뇌를 지닌 사람의 사회생활 적응기로 보여 딱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뭐, 적어도 나는 조금 그렇게 생각했다. 또한 세계 문학계의 새로운 작가들의 색다른 소설을 소개하는 시공사의 ‘New Face Fiction’시리즈라 살짝 긴장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NFF시리즈 내용이야 괜찮지만 그 풀이의 과정이 정말 색달라 쉽사리 적응하기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책을 읽기 전 생각이야 어쨌든 지금에 와서 다시 돌아보는 이 책은 걱정할 것이 하나 없으며, 놀라울 만큼의 매력을 가진 작품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을 탄생시킨, 놀라운 모습의 작가 ‘사비나 베르만’은 ‘멕시코 희곡상’ 4회, ‘후안 루이스 알라르콘 문학상’ 4회, ‘멕시코 언론상’ 2회 수상에 빛나는 화려한 경력의 작가라고 한다. 그런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서 그런가?! 아니, 반대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에 그런 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는 사람이 나를 제일 잘 알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나이기에 나 자신을 가장 모른다고 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나, 참치여자』는 인간의 모습에서 바라보는 인간이 아닌, 인간이지만 다른 모습을 볼 줄 아는 누군가가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인간이지만 보통의 인간-즉 스탠더드한 인간-과는 거리가 먼 모습의 인간이 바라보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나’를 심각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멋진 기회를 가져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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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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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소설은 그저 가볍게(!?) 읽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물론 작가가 꼭 말하고픈, 그리고 당연히 있어야만 하는 큰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에 소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메시지를 하나하나 다양한 각도로 심각하게 생각하면서까지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소설 읽는 방법』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소설을 읽는 것에도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 그저 단순하게만 읽어왔던 소설들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재미들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가 인정하는 작품인데 나는 도통 뭐가 뭔지 이해하지 못할 때라든가, 분명 눈앞에 보이는 단순한 사실 이상의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감을 잡지 못할 때와 같은 상황들에 빠졌을 때의 순간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이런 나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들을 많이 하는지 저자도 이에 대한 언급을 한다. 소설이란 이런저런 생각보다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하는 기본적인 생각에 동의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소설을 바라본다면 소설을 사랑하는 방법이 변화하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설 읽는 방법』을 통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로 소설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 또한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 읽는 방법』은 크게 1부(‘소설을 읽기 위한 준비’) 기초편2부(‘어디를 바라보고,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실천편으로 구성되어있다. 1부에서는 니콜라스 틴베르헌이 동물행동학의 기본으로 제시한 네 가지 질문인 ‘메커니즘, 발달, 기능, 진화’를 소설 접근법에 적용하며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아홉 편의 실제 소설의 예문을 통해서 하나하나 직접 소설 읽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특히나 대부분 현재 활약 중인 소설가-이사카 고타로, 와타야 리사,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등-를 이야기하면서 좀 더 친숙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하는 소설의 정의(?!)이다. 소설(小說)이라는 한자를 뜻 그대로 ‘작게小 이야기하는說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세상이라는 이름의 큰 공간을 작은 사이즈로 압축해서 농밀한 시간과 함께 체험까지 하게 해주는 것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소설 읽는 방법』을 통해서 소설을 읽고, 다시 그 속에서 삶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양한 소설의 소개를 통해서 얻게 되는 공통점 비슷한 것이랄까. 소설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 그 공간들을 채우는 수많은 방법들이 소설로 태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세상을 작게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그저 눈앞에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궁금함을 해소하기 위해 속도를 올려서 앞으로 달려가는 독서만 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한 문장 한 문장이-심지어 이건 정말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그냥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은 문장들까지도…- 해석하기에 따라서 다양하면서도 큰 의미로-작가가 의도한대로든 아니든 상관없이…-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소설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아직도 ‘~법’이라는 이름의 책들에 대한 반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당연하게도(?!) 당분간은-또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히라노 게이치로’가 제시하는 『소설 읽는 방법』의 틀 속에서 소설을 읽는 것이 익숙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다시, 누구나가 인정하는 작품인데 나는 도통 뭐가 뭔지 이해하지 못할 때나 분명 눈앞에 보이는 단순한 사실 이상의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감을 잡지 못할 때와 같은 상황을 벗어날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언젠가 나에게 새로우면서도 큰 힘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깊이 있게 소설을 이해하기를 소망한다면 꼭 만나봐야 할 책, 『소설 읽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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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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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이야기하는 책!! 책을 읽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 속에서, 내가 읽었고 소장하고 있는 소중한 책들을 만나게 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고, 촌스러운 표지라며 전혀 보지도 않던 책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으며,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책을 만나 황홀해지는 멋진 순간의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남겨지는 것은 남모를 뿌듯함과 쌓여가는 장바구니의 도서 목록들과 내방에 쌓여갈 책들이지만 말이다. 책을 통해서 책을 알고, 다시 그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책을 알아간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그런 나이기에, 결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바로 『오래된 새 책』이다. 오래된 새 책이라니, 책에 관한 책인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무슨 책일까?! 

  『오래된 새 책』은 책에 관한 책 중에서도 독특하게도 책 수집가의 책 이야기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읽기까지 책을 구하는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이런저런 어려움과 귀한 인연, 그리고 더없이 소중한 책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다. 특히나 여기에서 이야기되는 대부분의 책들은 오래되고 구할 수 없는 책들이다. 그 중에서도 그래도 다행스럽게 다시 출간이 된 책을 ‘오래된 새 책’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오래되고 구할 수 없는 책들 모두가 ‘오래된 새 책’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며 덧붙이고 있다. 그런 저자의 소망을 만들어낸 책들은 과연 어떤 책들일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라는 부제가 달린 『오래된 새 책』은 저자만의 개성담긴(?!) 분류로 다양한 책들을 소개한다. ‘내 생에 잊지 못할 그 책’이라는 제목의 1장에서부터, ‘오래된 서가를 뒤지다’, ‘그분의 삶은 향기로웠습니다’, ‘글맛기행’, ‘금서라는 훈장’, 그리고 ‘책 사냥 일지’까지… 책을 소개하지만, 이러이러하니 이건 꼭 봐야한다, 가 아니라 자신만의 사연을 담은 이야기로 그 책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너무 개인적인 것으로 공감을 얻어내지 못할 법한 이야기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진짜 책의 냄새인 것만 같아 좋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결국에는, 책에는 진짜 그 책만의, 혹은 내가 바라보고 담아낸 그 책만의 냄새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빠져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요즘, 그만큼의 책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책들 중에서 간혹 이 책만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책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그런 책들이 독자들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가 중심이 되는 현실 속에서 놀라우면서도 정말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일들은 아주 제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책을 절판시키는 것도, 절판된 책을 다시 살려내는 것도 모두 독자의 몫이다!’라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은 역시 독자의 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텐데, 과연 나는 어떤 수준에 있는 것일까?! 역시 필요한 것은, 책을 제대로 보고, 골라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나처럼 많은 것이 부족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책 소개를 -『오래된 새 책』이 충실히 해내고 있는- 받으며 그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가장 유용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절판된 책이나 오래된 책들을 탐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실, 책을 좋아하고 그만큼-혹은 그이상의- 책에 욕심이 있는 나이지만, 나에게 필요한 책 혹은 지금 당장 보기에 나 스스로에게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책 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구하고 본다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아직까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어딘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책을 찾아다닐 정도의 책에 대한 안목을 가진 내가 아니기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 책의 마지막 즈음에 있는 ‘책 수집가를 위한 변명’을 보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에는 나 역시도 언젠가 어느 먼지 속에 모셔져있는 어떤 책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니 그 정도의 안목이 길러지길 소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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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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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저 낯설기만한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시를 철학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면 -평소의 나였다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고개 저으며 뒤돌아섰을 것이 분명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접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이라는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전혀 평소의 나답지 않게 말이다. 평소와 같지 않은 행동과 생각,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뿐만이 아니라, 현재라는 지금 이 순간순간 마저도 흐릴 뿐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같은 것… 뭐, 이유야 어쨌든 조금이라도 다른 나를 위해 시도한 작은 선택인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반갑고 고마운 만남?! 뭐, 이 정도라면 한없이 부족한 표현력을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 괜찮은 표현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도 꽤 괜찮은(!?) 멘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누구도 가지 않은 나만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데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 괜찮을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 나만의 삶이란 게 과연 똑바로 가고 있는가, 라는 또 다른 걱정에, 힘이 되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아직까지 이 사람이다 싶을 멘토를 못 찾은 이유도 있겠지만, 꼭 멘토가 있어야하나 싶은 생각이 다시 든다. 중요한 것은 결국 누군가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삶을 사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다른 누구도 흉내 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영위하고 그것을 표현하라!”고 말이다. 또한 그것이 인문정신의 소망이라며… 자신이 느끼고 고민했던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면, 언젠가 자기만의 삶을 긍정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인이나 철학자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시와 철학을 읽는 이유는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친구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는 이제 그 대화를 시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책,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을 통해서 말이다.

 

 사실, 가볍게 대화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괴로움’이라는 말이 결코 뭔가를 포장하기 위해서만 언급된 말이 아님은 확실한 것 같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며 뭔가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이 단순히 즐겁기 만한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괴로움을 왜 자초하며 이 책을 읽어나간 것일까!? 나의 이런 저런 이야기보다 이 책의 저자가 한 말을 직접 언급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는 말한다. “괴로움을 잘 이겨내면, 우리는 자신만의 즐거움을 얻게 될 겁니다. 어쩌면 인간에게 즐거움은 항상 괴로움이란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할 때에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라고 말이다. 그래, 괴롭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아니 조금만 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새로움과 놀라움, 그리고 즐거움으로 이어질 것임이 틀림없다. 이성복이나 문정희, 김행숙, 허연과 같은 시인, 그리고 그들을 위해하기 위한 라캉이나 시몬 베유, 바르트 등의 철학자들과의 만남이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그들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표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친숙함을 넘어선 즐거움으로 나타날 것이다. 어둡고 긴 터널이지만, 그것이 곧 나만의 즐거움을 찾는 길이되리라는 사실은 이 책이 가진 놀랍고도 즐거운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은 시를 통해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철학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또다시 철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랑과 자유의 이야기로 향하게 된다. 시를 통해서 사랑을 이야기함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철학을 통해서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솔직히 의외였다. 물론 그만큼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그러고 보면 내가 철학이라는 것에 얼마나 많은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 책과 함께한 시간은, 실제와는 다르게 그저 어렵고 다가가기 힘들게만 느껴지는 철학이라는 이름을 어렴풋하게나마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이 책으로 하여금 우리가 그동안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밖에도 순간순간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잊지 말아야할, 그리고 반드시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야 할 것 하나는, 나의 삶을 정직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나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그것을 정직하게 표현하며 사랑할 수 있을 때, 그 사랑이 넓게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우리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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