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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 편지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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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천국이라는 것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땅 아래 지옥 또한 없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다고 생각하세요.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상상 해봐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에 충실하며 사는 세상

- John Lennon의 「Imagine」中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내 두 손으로 직접 만지고, 내 온몸으로 직접 느끼고픈 곳이 말이다.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의 프롤로그에는 “이 지구상에 어떤 나라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합니다.”로 시작하는 ‘어 드림(A Dream)’, 꿈이 담겨져 있다. 이것은 1954년 8월, 마더(인도에서는 영적 스승 역할을 하는 여인을 마더라고 부른다)라고 불리는 한 여인이 말하는 꿈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곳. 명품 가방이나 옷 따위의 허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곳. 온전한 나를 만나는 곳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타인과 ‘함께’살아가는 곳. John Lennon이 Imagine에서 그리던 세상과 가까운 곳. 물론 나만의 해석으로 몇몇 예를 든 것이지만, 어찌됐든 마더가 말하는 그 ‘꿈’은 오늘날 현실이 되어, ‘오로빌’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 오.로.빌.!!

 

 ‘오로빌’이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아니 그런 이름조차도 들어보지 못했던 나였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운 좋게도 좋은 기회로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라는 책을 만나게 되고, 오로빌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라는 사실을 조금(!) 알게 되면서부터 갑작스러운 흥분과 기대감에 휩싸였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 오로빌이라는 곳을 조금 더(?!) 알게 되면서는 또 다른 -보다 깊은-생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진짜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파라다이스는 없지만, 또 다른 꿈이 있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

 

왜 오로빌에 오게 된 거? 파라다이스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왜 과거형? 살아보니까 파라다이스가 아니거든. 기대했던 파라다이스가 아닌데 왜 안 떠나? 오로빌 바깥은 더 엉망진창이니까.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하는 눈빛.) 세상 어디에도 파라다이스는 없어. 우린 다만 꿈꿀 뿐이지. 조금씩 더 좋아지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꿈꾸고 노력할 뿐야.  -P83

 

 내가 꿈꾸던 세상이라고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파라다이스도 아니고, 근심이나 걱정, 다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불완전을 바탕으로 꿈꾸던 세상으로 다가가는 곳이 바로 오로빌인 것이다. 오로빌의 시작이 된 마더스리 오로빈도의 생각처럼 인간이 자연계의 최상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과 미완성 존재로서의 인간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 이를 바탕으로 어떤 완전함을 추구 해나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소중함들을 통해서 또다시 한 차원 높은 인간의 모습을 스스로 찾아나서는 것이다. 인간의 변화가능성을 믿으며 말이다. 오로빌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들마저 어느새 오로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부러움으로 번져나갔다. 사회 시스템에서부터,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하나하나의 고귀함에 더더욱… 



 오로빌이라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났기 때문인지, 아님 그런 세상을 함께했던 작가의 글을 만났기 때문인지-뭐 그 말이 그 말이지만…- 그녀의 글귀 하나하나가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자연과 대화하고,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며 큰 의미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오롯이 글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뻑 갔다’거나 ‘솔까말’이라는 아주 현실적이지만 시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런 표현까지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앞서 가보고 싶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곳이 생겼다고 했지만, 어쩌면 가보고 싶은 -물리적인- 곳이 새롭게 생겼다기 보다는, ‘되고 싶은 나’가 더 많아 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내가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사는 나. 삶의 노예가 아닌 삶의 주인이 되는 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자신의 욕망이라고 착각하지 않을 수 있는 나. 등등의 되고 싶은 나… 그리고 결국에는 그런 나를 통해 ‘행복의 감각’이 풍성하게 깨어나길…!!

 

“오로빌은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을 환영합니다.
더 놓고 진실한 삶을 열망하며 진보를 갈구하는 모든 이를 오로빌에 초대합니다.”



 어떤 특정인의 것이 아니라 전체 인류의 것이라고 하는 오로빌.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가 되고자 하며, 인류의 일체성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살아 있는 본보기를 만들기 위한 물질적, 정신적 탐구의 장이 될 것-이미 그런지도…-이라는 오로빌. 지금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내 마음 속, 나만의 오로빌을 만들며 달래어 본다. 그렇게나마 오로빌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기를… 그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지금 이곳에 큰 걸음이 만들어지기를… 그리고 결국에는 그 큰 걸음으로 만든 또 다른 오로빌에 당신을 초대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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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기행문 -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
유성용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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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금없지만 작은 문제부터 하나 내본다. 다음 단어들에서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딸기, 초양, 가인, 앵두, 향록, 강변, 호수, 묘향, 용궁, 인어, 장미 ……. 단어만 본다면 쉽게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눈치는 챘을 것이다. 이 어여쁜 단어들은 『다방기행문』에서 만날 수 있는 다방들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방(茶房)’이라…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면서도 낯설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 이름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다방이라는 공간보다는 커피전문점이 더 친숙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세상에서는 나만의 개인적인 친숙함만은 아닌듯하다.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수많은 커피전문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방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과 비슷하게 수많은 커피전문점들도 사라지지만, 또 다른 수많은 거피전문점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요즘이다. 그런 세상에서 왜 뜬금없이 다방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분명 전국의 다방을 다니면서 이 다방은 상호부터 비롯해 인테리어가 어쩌고, 맛이 어쩌고, 또 저 다방은 가격이 어쩌고저쩌고 등을 이야기하는, 요즘 많은 블로거들이 하는 그런 탐방은 같은 것이 목적은 아닐 텐데 말이다. 나의 이런 의문에 이 책의 저자는 ‘다방이 사라져가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고 하는데… 사라져가는 것들, 버려진 것들, 그 풍경들은 오늘날 우리 삶에 어떤 추억과 의미를 안겨줄까?! 

 

한마디로 다방은 배울 게 별로 없는 곳이다. 물론 커피도 맛없고.
하지만 그곳은 어쩌면 사라져 가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P91   

 

 『다방기행문』은 ‘여행생활자’라고 불리는 저자가 2007년 10월부터 2010년 2월까지 28개월간 떠났던 전국 다방 기행이다. 전국 여기저기 다방이 있어서 다방을 가는 것이라며 떠난 여행이다. 작은 스쿠터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다방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이사람 저 사람과 함께,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보는 시간들이다. 전국 각지에 있는 다방의 수많은 ‘~양’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아주 작지만 소중한 일의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사라져만 가는 공간에서, 버려지는 기억들 속에서, 그 사라짐과 버려짐을 아쉬워하며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 듯 한 모습. 잊고만 지냈던, 아니 아직도 이런 모습들이 남아있을까, 싶은 우리네 모습들도 만나게 된다. 흔히 여행의 순간에서 만날 수 있는 흥분과 설렘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히, 정말 사람의 냄새가 제대로 느껴진다고 표현해야만 할 것 같다.   

 

 처음에는 어느 곳이든 스쿠터가 이끄는 대로 떠나는 여행은 참 자유로울 것이라며, 그런 외향적인 모습만 부러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신체의 자유보다도 다양한 생각의 자유를 훨씬 더 부러워해야 할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라면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지나가는 많은 것들에 저자는 많은 의미를 불어넣는다. 확실한 목표가 있어서 뭔가를 찾아 나서고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는 것들 속에서 그 순간순간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다방이나 여관, 이발소의 간판이나 사람들의 어렴풋한 모습을 통해서 더 큰 세상을 만나고, 길을 잘못 들어서 만난 거대한 자연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 이쯤 되면 이건 그냥 단순한 다방기행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저자도 스스로 다방은 구실이라고 말하니까….   

 

 

  다방이라니까, 커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커피는 분위기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제아무리 비싸고 좋은 커피든, 저렴한 자판기 커피든, 혹은 다방의 커피든, 어느 장소에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어느 샌가 사라지고 지워지는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그것들을 이어주는 것은 역시 사소한 기억들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다방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소중한 추억으로, 그리고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오는 그런 기억들 말이다. 그 추억, 옛 기억을 찾아서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을 한 번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순간을 함께하는 커피라면, 그 어떤 커피라도 맛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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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페어
하타 타케히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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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어느 날 밤, 신주쿠 구 도야마 공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두 사람으로 42세의 회사원과 17세의 여고생이다. 유요한 단서나 목격자도 찾기 힘든 상태에서 수사진에 단 하나의 단서-인지도 확실하지는 않지만…-가 남겨진다. 그것은 밋밋한 하얀 종이에, 간소한 인쇄로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책갈피이다. 범인의 메시지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 너무나도 적은 단서로, 심지어 두 피해자 간의 접점도 찾지 못해 그 어떤 추리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사키 출판 주최의 ‘문학신인상’수상 파티에서 한 남자가 죽게 되고, 파티 참가자 중 한 사람의 양복 주머니에서 책갈피가 발견된 것이다. 역시나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같은 문구가 있는… 그런데 이 사건, 소설로도 그대로 재현된다. 소설 속에 소설이 있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출판사와 경찰에 도착한 《추리소설》이라는 제목의 소설. 앞서 발생한 살인 사건들과 똑같으며, 심지어 경찰관계자나 범인이 아니면 절대 모를 상세한 정보가 들어가 있는 소설이다. 범인인지도 모를 이 《추리소설》이라는 제목의 소설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거액의 돈을 주고 낙찰을 하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살인을 하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두뇌 게임은 시작된다.



“불공정한 것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
“…….”
“……자기 자신을, 정의의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이겠죠.”
유키히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불공정한 행위는 항상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P101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남겨진 몇 개의 단서, 게다가 범인은 자신의 소설을 낙찰하지 않으면 또 다른 살인을 하겠다고 예고까지 한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투입된 형사‘유키히라 나츠미’와 ‘안도 가즈유키’. 『언페어』에서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유키히라가 눈에 띈다. 경시청 수사 1과에서 검거율 넘버원에 ‘쓸데없이’미인이라는 말을 듣는 캐릭터이면서, 어떤 사건으로 인해 어린 딸에게 살인자로 낙인찍혀 원만하지 못한 가족관계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도 수사에 있어서만큼은 최고인 바,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주어진 단서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범인을 추적해 간다. 불공정한 것은 무엇이며, 또 누구인가?!

 

‘추리소설’처럼 따분한 소설은 없다./ 왜냐고? 읽기 전부터 결말이 드러나 있으니까.

사건은 반드시 해결된다. / 범인은 반드시 밝혀진다.
게다가 진범은 반드시 초반부터 등장하고,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반드시 맡고 있다.
복선은 항상 그럴듯하게 적혀 있고, 조금이나마 소설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때부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할 수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수상한 인물은 항상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기호거나, 제2, 제3의 피살자로 이미 정해져 있다.
독자들은 보수적이라, 작가에게 항상 공정할 것을 요구한다. 공정하게 웃겨라. 공정하게 놀라게 하라.
예컨대 ‘밴 다인의 20법칙.’ / 예컨대 ‘로널드 녹스의 10계’
요구되는 것은 항상 예정 조화적 ‘대반전’.
그러면서 그것들은 동시에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독자는 말한다.
혹은 독자와 대리인인 편집자는 말한다. -P89~90 

 


 범인은-혹은 작가는?!- 《추리소설》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추리소설’처럼 따분한 소설은 없다고 말이다. 사건은 반드시 해결되고, 범인은 반드시 밝혀지며, 진범은 반드시 초반부터 등장하고,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도 반드시 맡고 있다는 식의 추리소설의 여러 가지 공식과도 같은 이유들을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리얼리티가 있고, 독창성이 있는 소설에 도전한다고 한다. 복선이 뭔가를 암시해주지 않고, 결말에 반드시 사건이 해결되지도, 범인이 밝혀지지도 않는 소설을. 비록 그것이 더 현실적이라서 독자들이 읽지 않고, 팔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언페어』는 그런 작가의 생각, 범인의 생각-둘 모두 같은 것일지도…-을 그대로 따라가 전형적인 추리소설을 비판하면서도 공식의 틀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또다시 그 틀을 깨버리는 형태를 취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작가는 다양한 이들에게 칼을 겨눈다. 낙찰을 통해 돈으로 살인을 막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목숨보다 자신들이 낙찰 받은 소설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는가하는 계산을 하기에 바쁜 출판사들. 그저 이슈 만들기에만 급급한 언론들. 제대로 수사 방향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경찰. 작가는 그들을 조롱하며 그들에게 큰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와 더불어 출판사와 언론, 경찰,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언페어』는 소설 속에 소설이 들어있고, 거기에 더해 소설 속의 살인사건이 실제로도 똑같이 발생한다는 설정이 아주 흥미롭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더군다나 이를 통한 추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이들을 향한 비판까지 더해져 자칫 가볍게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에 어떤 무게감을 더해준다. 공정과 리얼, 리얼과 재미, 재미와 불공정 등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게끔한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들에 대한 결론-혹은 아직 진행 중인지도…-으로 『언페어』는 가볍지 않은 재미로 향하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책이 아닌 다른 모습을 통해 만나는 『언페어』는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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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크 저택 살인 사건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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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방에게 당신을 속일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서도 그 상대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자 상당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반대로 상대가 나를 속일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결국 속고야마는 것은 상당히 황당하면서도, 놀랍고, 그 속에서 나름의 쾌감까지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가 문제를 내면 반드시 그 문제를 풀고 말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덤벼든다. 하지만 풀지 못한다… 풀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일을 조금 전에 했다. 흠… 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려나?! 암튼, 황당하면서도 놀랍고 그 속에서 나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제목하야,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 제목부터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당신을 속이고 말겠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저택이 나오고 살인사건이 나온다면?! 그렇다, 밀실 살인 사건이다. ‘로트레크 저택’이라고 불리는 한정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 더군다나 첫 번째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살인 사건의 수사를 위해 경찰이 있는 동안에도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이 일어난다. 여기까지라면 다른 작품들에서도 만났던 이야기들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겠지만, 또 다른 트릭까지 더해져있다. 그것이 지금 내가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술~술~ 풀어내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쉬우니까, 대충 설명하자면 이렇다. ‘로트레크 저택’에서 청년들과 미모의 아가씨들, 그리고 몇몇 아가씨의 부모가 함께 하게 된다. 그런데 아가씨들이 하나씩 죽어나간다. 첫 번째 사건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 번째 사건부터는 -앞서 말했다시피- 경찰도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데 말이다. 뭔지 모를 비밀이 가득한 저택이기는 하지만 그 비밀마저도 시작부분에 친절하게 설명해주다보니 독자들은 더 미치게 된다. 분명 뭔가를 알 것 같은데 쉽게 잡히지 않으니 말이다. 자, 당신은 어떨까?! 178의 아이큐라는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와의 두뇌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앞서 이 책을 ‘당신을 속이고 말겠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 메시지를 보다 강력하게 만들어 도전 의식을 불태운 것이 있었으니 첫 번째는 “반드시, 그 누구라도 처음부터 다시 읽을 수밖에 없다!”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그것이고, 두 번째는 이 책에 봉인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봉인을 푸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설마 이렇게 정신 차리고 보는데 당할까 싶었다. 하지만, 두 눈 멀쩡히 뜨고 그냥 당해버렸다.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나 당했다. 봉인 속에는 우리를 그토록 미치게 만들었던 답답함을 말끔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어느 페이지 몇 번째 줄에 그 내용이 있다는 말을 덧붙여가며 설명을 해준다. 당했다는 생각에 그런 친절함이 얼마나 얄밉고 짜증나게 느껴지던지…

 

 도대체 ‘쓰쓰이 야스타카’라는 이 작가는 누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큐 178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했었는데 알고 보니 많이 알려진 《시간을 달리는 소녀》, 《파프리카》의 작가이다. 내가 알고 있던 이 작품들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같은 작가라고는 전혀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작품 그 자체로 한 번 놀라고, 작가 때문에 또 한 번 놀라고… 이런 놀라움을 직접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 놀라운 경험보다는, 작가와의 두뇌 싸움에 대한 도전을 먼저 생각하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아무튼, 조심해라! 당하지 않도록… 아니면 나처럼 그가 불러주는 페이지를 찾아 오락가락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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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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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편안함을 안겨주던 익숙한 풍경이 슬픔이 되어 숨통을 조이게 될 수도 있고, 어딜 가도 내 집 같던 동네가 더 이상 그런 느낌이 들진 않게 될 수도 있다. 아마도 그것은, 그 편안하고 익숙하던 공간이 아픔의 시작이 되는 공간으로 바뀐 탓이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삶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일 것이다.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사건 역시 한순간에 누군가의 삶 전부를 바꿔버리는 예상치 못했던 사고였다. 전혀 흔하지 않은, 아니 흔할 수 없는… 그것도 아주 끔찍한 사고였다. 더군다나 어린 여자 아이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이혼을 하고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우는 ‘프레드리크’는 나름의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발생하게 된다. 어린이집에 딸 ‘마리’를 데려다주고 작업실을 찾은 그가 마주한 것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한 남자의 사진이었다. 그는 다수의 미성년 성폭행 및 강간 혐의로 수감되어 있던 ‘벤트 룬드’라는 인물로, 정신감정과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호송되던 도중 호송차량을 탈취해 어디론가 도주한 상태였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바로 마리가 다니는 어린이집 정문 앞 벤치에서 프레드리크와 두 번씩이나 인사를 주고받았던 바로 그 남자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찾아간 어린이집에서 마리나 벤트 룬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마리는 끔찍한 상태로 발견되게 된다.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정의는 꼭 실현되어야 하니까. -P287

 

 지금까지의 내용은 범죄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에서 이미 많이 접했던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잔혹함의 강도는 다르겠지만… 평범하던 일상에 예상치 못했던 사건 속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하지 못하리라 생각되는 사랑하는 사람, 나의 전부였던 사람을 잃게 된 상실감,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 자책 등의 감정과 여전히 어딘가에서 또 다른 어린 아이들을 노리며 돌아다닐지도 모르는 범죄자에 대한 분노, 그것을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사회를 향한 분노라는 감정들 사이에서의 혼란, 그리고 어떤 선택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이 외에도 사고 이후의 상황들에 대한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이 더해지지만, 『비스트』는 독자들에게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내민다. 나를 원망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상황을 만든 범죄자나 사회에 맞설 것인가, 사이에서 선택을 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비스트』는 친절하게도 그 어려운 문제에 대한 보기를 보다 자세하게 제시한다. 사회도 막지 못하는 범죄를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그 상대에게 죽음을 남겨주는 ‘프레드리크’라는 보기와 아무리 짐승 같은 놈이더라도 법은 지켜야 하는,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감히 생사여탈권이 주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보기를 말이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쉬어가자. 보통 ‘비스트(The Beast)’라는 단어는 덩치가 크고 위험한 짐승이나 야수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비스트(The Beast)』는 범죄자 중 성폭행범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짐승만도 못한’이라는 표현을 쓰듯이 스웨덴에서도 이와 같은 표현을 쓴다고 한다. 그렇다. 『비스트(The Beast)』는 스웨덴 소설이다. 출간되자마자 14주간 베스트셀러를 차지했으며, 유럽에서만 26만 부가 팔렸고, 세계적으로는 20개국에 판권이 판매된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북유럽 최고의 장르문학에 수여하는 글래스키(Glass Key) 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스웨덴 공영방송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소설로 만나는 스웨덴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이 이미 스웨덴만의 작품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보면 그리 낯설게 느껴질 것만도 아닌 듯하다.

 

 쉬는 김에, 『비스트』의 작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의 작가는 , 10세가 되기 전 세 차례 성폭행을 당하고 범죄의 길로 빠져 전과자가 된 ‘버리에 헬스트럼’ 과 스웨덴 공영방송 사회부 기자로 활약하면서 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안데슈 루슬룬드’로 모두 두 명이다. 그들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찌되었든 범죄에 대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나서 범죄를 이야기하고, 사회를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지 못할 세밀한 부분들을 담아서 이야기 한다. 혹시나 해서 미리 밝혀두는데, 이미 『비스트』외에 다른 작품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는 작가들이니만큼 오직 그들의 독특한 이력에만 눈길을 던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흠… 한 숨 돌렸으니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딸아이를 잃은 아버지가 그 살인범에게 복수를 감행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복수로 비쳤겠지만, 그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 살인범은 이미 또 다른 아이들을 노리고 있었다는 증거까지 발견되었다. 뭐 사실이야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딸의 복수를 하고, 사회의 쓰레기인 짐승을 없앤 이 남자를 영웅으로 대접한다. 옳은 일을 했다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상대가 누가 되었든 그 역시도 또 다른 살인을 한 것뿐이다. 법이 있는 사회에서 자의적으로 사건을 구성하고, 누군가의 생사여탈권을 결정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아주 오랜 시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논의되어야할 이야기들이다. 어린이집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생명과 교도소에서 탈옥한 뒤 어린아이를 강간하고 잔인하게 살해할 계획을 가진 변태의 목숨이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저들도 만약 스테판손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방아쇠를 당겼을까? 

누군가의 생명이 다른 누군가의 생명보다 값어치 있다고 여기고 있을까? -P399

 

 그 어느 것도 명확한 정답은 없는 듯 보인다. 결국 판단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다만, 그 판단에 다양한 보기와 생각들을 전해주는 『비스트』가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그 어떤 것보다 생생한 상황 속에서, ‘만약 당신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져주며 다양한 생각들을 스스로 해보게끔 하는 소설… 끔찍하고 역겹게만 느껴지는 사건에서 시작해 마찬가지일지 모르는 사회에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풀어야만 하는 어려운 숙제… 우리는 이제 이 문제는 어떻게 풀면서 이 세상을 살아나가야 하는 것일까?! 뭔가 큰 돌덩이가 내 마음 속에 내려앉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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