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 - 영화 속 디저트부터 만찬까지 한 권에!
정영선(파란달) 지음 / 미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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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요리 매니아? 요리를 좋아하는 매니아?'

 

<시네마 레시피>를 읽으며 책쓴이의 정체에 대한 망설임이 앞섰다. 책 앞에 저자의 간단프로필이 있는데 굳이 책쓴이의 정체를 생각하게 한 것은 책의 내용이 지니고 있는 성격에서 비롯한다. 물론 책 전반의 내용이 양적 측면에서 음식보다는 영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나 그렇다고 딱히 영화에 보다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소개하는 내용에 비해 음식은 제목 그대로 레시피만을 제공하는 수준이었다.

 

책은 총 40편의 영화와 40가지 음식 레시피를 다루고 있었으며,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공간 지칭용어를 사용해 1관~3관으로 구성하였고 ending credit이나 thanks to를 수록함으로써 영화 관련 책으로서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1, 2관은 책쓴이 소개글에 쓰인 것처럼 '장르를 불문한 영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가리지 않고 30편에 대한 영화 소개로 구성하였으며, 3관은 특별히 <남극의 쉐프>, <사랑의 레시피>, <달팽이 식당> 등의 내용 자체에 음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 10편을 소개하고 있다. 

 

그간 들뢰즈의 <영화>, 이진경의 <이진경의 필로시네마>, 고미숙 외의 <철학극장, 욕망하는 영화기계> 등 철학의 눈으로 읽은 영화에 관한 책들이 다수 출간되었고,  정재승의 <물리학자는 영화 속에서 과학을 본다>, 안용태의 <영화 읽어주는 인문학> 등 영화를 과학이나 인문학 또는 문학과 연계한 책들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았지만, 요리와 영화의 만남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네마 레시피>는 기획의도가 돋보이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와 요리 둘 다에 관심을 지니고 있는 독자의 이목을 끌기에 성공하였지만 <시네마 레시피>는 '시네마+레시피'가 아닌 '시네마&레시피'였다.

책을 읽기 전 책의 내용에 대한 예상은, 다양한 영화들과 그 속에 소품(?)으로 사용된 음식의 유기적 연관성을 독창적인 해석으로 풀어놓았으리란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읽고 난 느낌은 '국밥인 줄 알고 시켰는데, 따로국밥이었네'였다.


영화 이야기와 음식 이야기를 '따로'가 아닌 유기적 관계, 예를 들면 왜 그 음식을 그 영화에서 사용했는지(예컨대 감독이 그 음식을 특히 좋아했다던가 그 음식이 영화의 계절이나 장소와 딱 맞아떨어졌다든가...), 그 음식이 사용됨으로써 영화의 분위기 연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음식과 같은 음식이 등장했던 다른 영화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등등을 기대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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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 마르크스에게서 20대의 열정을 배우다
우치다 타츠루 & 이시카와 야스히로 지음, 김경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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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난 건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를 통해서다.

선뜻 이 책을 고르게 된 것은 내노라 하는 철학자들의 아우라 때문이 아니었다. 철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얕은 내 눈을 휘어잡은 것은 '쉽게 읽기'라는 제목이었다. '쉽게'는 교육공학 전공자로서 늘 내 발목을 부여잡고 있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푸코.... 쉽게 읽기>는 쉽다. 구조주의의 개략적인 역사를 친근감 있는 어조로 풀어내주고, 대표적인 네 명의 구조주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문외한이라도 덤벼들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푸코.... 쉽게 읽기>는 '모름지기 안내서는 이렇게 써야 한다'라는 쉬운 글쓰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철학, 언어학, 인류학, 심리학 등 네 철학자의 폭넓은 관할구역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인데, 책쓴이 우치다 다츠루는 마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철학이론들의 실타래를 풀어놨다. 아차! 이 리뷰가 <푸코.... 쉽게 읽기>의 곱씹어보기가 아니지. ㅎㅎ


하여튼 <푸코.... 쉽게 읽기>를 통한 우치다 다츠루와의 인상적인 만남은 그의 다른 저서로 자연스레 연결되었고, 그 중 하나가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이다. <자본론>이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을 읽으라면 마르크스라는 경제학자를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당신'이었겠지만 우치다 다츠루가 들려주는 마르크스라면 결단코 '머리에 쥐날' 일은 없으리란 확신이 앞섰다. 


이 책은 <푸코.... 쉽게 읽기>와 달리, 이시카와 야스히로라는 경제학 전공 교수와 주고 받는 서신을 통해 마르크스의 이론을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다. 건축가와 건축의뢰자인 국어교사가 주고 받은 e-mail을 책으로 엮은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란 책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방식은 자칫 <푸코.... 쉽게 읽기>의 연장선상에서 신선함을 제공했다. 


"더 나은 세계로의 변혁을 꿈꾸던 청년 마르크스의 독창적이고 심대한 사고방식(알라딘 책소개 중)"을 접할 수 있게 하는 <청년이여,...>는 우치다 다츠루의 또하나의 쉬운 글쓰기 전형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ㅇ '공민'이 허구적인 존재이고 '사인'이 현실적인 존재인 한, 인간은 항상 사적 이익의 추구를 우선시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나만 좋으면 나머지는 상관없다'는 본심만 내세우며 살아간다면,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도구로 이용하고 수탈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모든 이의 행복을 배려하는 마음'이 '나 혼자만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과 부딪치다가 결국에는 이기주의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사회 제도를 바꾸거나 법률을 제정하거나 비인도적인 행위를 엄하게 처벌한다 해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면 이 사회는 불공평함을 막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합법적인 수탈의 방식을 궁리할 것이고 대의명분을 내세운 지배 방식을 발명해내겠지요.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좋아지지 않아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르크스는 이 점을 이렇게 생각했어요. "어떻게 인간을 바꿀 것인가. '유적 존재'를 지향하면 바뀐다." -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어라>>, 150쪽

ㅇ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행복과 이익에 신경 쓰는 만큼의 열의로 이웃의 행복과 이익에 신경을 쓰는 '유적 존재'가 되는 것을 '인간 해방의 완수'라고 봤어요.

ㅇ "한 인간이 공과 사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도 의심스러보, 분열된 모습 중에 '이기적인 쪽'이 진짜 모습이고 '비이기적=공명한 쪽'이 가짜 모습이라는 것도 이상할 뿐이야. 그게 아니라 참으로 해방된 인간이 있다고 한마뎜ㄴ, 그것은 분열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웃이나 공동체 전체를 늘 배려하고, 그런 일을 진심으로 기브게 할 것이 분명해. 그리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인간이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인간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닐까?" -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어라>>, 9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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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체
이규진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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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당대 역사, 그리고 화성에 관심 있거나 드라마 <대왕세종> 또는 <뿌리 깊은 나무>를 시청하였거나, 김탁환의 <열하광인>을 읽었거나... 이런 이들에게 추천할만한 작품이었다. 특히 순교도 마다하지 않는 종교적 신념을 소설화한 작품으로 천주교 신자들에게 호응을 얻을만한 작품이었다. 


호기심의 눈길을 끄는 제목과 여백의 미를 강조한 표지디자인을 뽐내는 소설 <파체>는 시청자를 매일 또는 매주 TV앞에 앉게 하는 역사 드라마처럼 틈만 나면 눈 앞에 자신의 책장을 펼쳐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를 마구 쏟아냈다. 

<파체>는 소설이라는 갈래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등장인물로서, 시대적 사실성을 띤 정조임금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분적 한계를 천재성으로 넘어선 태연, 그리고 태생적 비밀을 간직한 정빈과 유겸이라는 가상적 인물을 설정하고 있다. 정조의 '화성 건설'과 '서학(西學) 탄압'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사건으로서, 신분계급사회에서 주어진 사회적 위치가 가하는 제약, 압박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살 수 없는 처지의 두 인간(정조와 정빈)의 내면을 그리며 '신분계급'을 뛰어넘는 '신의와 충성', '우애', '사랑'을 실현하는 소설적 상상력을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작가는 '늘 마음을 빼앗'겨 오던 조선 정조임금 때의 이야기를 수원 화성을 소재로, 등장인물의 내면적 갈등과 등장인물의 외적 갈등의 구도를 역동적인 줄거리에 버무려 읽는이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애민(愛民)'이라는 성정의 발로였다는 점에서, 1794년(정조 18년) 착공되어 1796년(정조 20년) 완공된 수원 화성을 모티브(motive)로 한 2014년 소설 <파체>는 1443년(세종 25년) 창제되어 1446년(세종 28년) 반포된 훈민정음을 소재로 한 2008년 드라마 <대왕세종>이나 2011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닮았다. '오랜 세월 평안[장안문]'하고 '사통팔달[팔달문]하게 할 수 있는' 화성 축조를 통해 백성에 대한 성군(聖君)의 사랑을 실천하고 변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던 정조임금의 치세철학(治世哲學)의 구현(具現)은 극소수의 식자·기득권층에게만 제한되었던 '앎'에의 통로를 <훈민정음>이라는 새로운 문자체계의 발명을 통해 대다수 백성들에게 열어주고자 했던 세종임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하면 소설 <파체>는 읽는 내내 정조임금의 문체반정(文體反正) 사건을 소설화한 <열하광인>을 연상하게 했다. 고문(古文)들을 모범으로 삼기 위해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비롯한 패관소품으로 규정된 서책들을 금서(禁書)로 지정했던 일이나 1785년(정조 9) 서학을 사교(邪敎)로 규정하여 금령을 내리고 서학을 탄압했던 일은 정조에 관한 역사적 사실로 첫 손에 꼽히는 것들로서, 두 작품을 서로 떠올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간 제작·방영됐던 많은 역사 드라마는 역사적 인물 중 누구를 가장 선호했을까. 동아일보 대중문화팀이 1995년부터 현재까지 20년 동안 지상파 3사 역사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회 이상 시리즈 85편에서 주요 배역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이산’을 비롯해 총 다섯 차례 등장한 정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조는 특히 200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꿰찼고, 최근에는 스크린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4월 개봉한 ‘역린’도 정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동아일보 2014.6.16)."라고 한다. 아마 동아일보가 분석 대상을 소설에까지 확대한다면 <파체>도 그 중 한 작품에 반드시 포함되리라 싶다.

끝으로 읽는이를 몰입하게 하기에 부족함 없는 탄탄한 구성력의 한편에 아쉬운 점 몇 가지가 눈에 띄어 재판 참고용으로 정리해본다.

ㅇ 무엇보다 눈에 거슬리는 자간의 '들쭉날쭉'한 편집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ㅇ 비문: "무려 임금의 최측근인•••"(44쪽)
ㅇ 반복으로 지루한 표현: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책에서 이야기를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었다"(41쪽), "햇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서고의 책들을 온몸으로 흡수했다"(104쪽)
ㅇ 존댓법에 어긋난 표현: "자운향의 명성은 누차 들어서 잘 알고 있소. 만나서 반갑습니다."(166쪽) ->> '만나서 반갑소'
ㅇ 오타: "죄인들을 저들끼리 도와가며" ->> '죄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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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에 담긴 ‘앎’을 인연의 그물망(net)으로 엮어 세상과 나누는 지혜의 인드라망`이라는 뜻의 북드라망 출판사가 책을 통해 참다운 삶을 꿈꾸게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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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하고 정주하려고 하는 본능을 2013년 한 해에도 이겨내지 못했다, 끊임없이 탈영토화하기 위해 접속을 멈추지 않는 유목민으로 살고자 했던 다짐을 지켜내지 못한 채.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어느 글귀가 비수가 되어 꽂히는 `13년의 저물녘.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얻고,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는 `14년 새 해를 가꾸기 위해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명저 <천 개의 고원>과 이에 대한 강의내용을 엮은 <노마디즘 1, 2>는 주저함없이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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