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체
이규진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정조와 당대 역사, 그리고 화성에 관심 있거나 드라마 <대왕세종> 또는 <뿌리 깊은 나무>를 시청하였거나, 김탁환의 <열하광인>을 읽었거나... 이런 이들에게 추천할만한 작품이었다. 특히 순교도 마다하지 않는 종교적 신념을 소설화한 작품으로 천주교 신자들에게 호응을 얻을만한 작품이었다. 


호기심의 눈길을 끄는 제목과 여백의 미를 강조한 표지디자인을 뽐내는 소설 <파체>는 시청자를 매일 또는 매주 TV앞에 앉게 하는 역사 드라마처럼 틈만 나면 눈 앞에 자신의 책장을 펼쳐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를 마구 쏟아냈다. 

<파체>는 소설이라는 갈래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등장인물로서, 시대적 사실성을 띤 정조임금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분적 한계를 천재성으로 넘어선 태연, 그리고 태생적 비밀을 간직한 정빈과 유겸이라는 가상적 인물을 설정하고 있다. 정조의 '화성 건설'과 '서학(西學) 탄압'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사건으로서, 신분계급사회에서 주어진 사회적 위치가 가하는 제약, 압박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살 수 없는 처지의 두 인간(정조와 정빈)의 내면을 그리며 '신분계급'을 뛰어넘는 '신의와 충성', '우애', '사랑'을 실현하는 소설적 상상력을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작가는 '늘 마음을 빼앗'겨 오던 조선 정조임금 때의 이야기를 수원 화성을 소재로, 등장인물의 내면적 갈등과 등장인물의 외적 갈등의 구도를 역동적인 줄거리에 버무려 읽는이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애민(愛民)'이라는 성정의 발로였다는 점에서, 1794년(정조 18년) 착공되어 1796년(정조 20년) 완공된 수원 화성을 모티브(motive)로 한 2014년 소설 <파체>는 1443년(세종 25년) 창제되어 1446년(세종 28년) 반포된 훈민정음을 소재로 한 2008년 드라마 <대왕세종>이나 2011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닮았다. '오랜 세월 평안[장안문]'하고 '사통팔달[팔달문]하게 할 수 있는' 화성 축조를 통해 백성에 대한 성군(聖君)의 사랑을 실천하고 변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던 정조임금의 치세철학(治世哲學)의 구현(具現)은 극소수의 식자·기득권층에게만 제한되었던 '앎'에의 통로를 <훈민정음>이라는 새로운 문자체계의 발명을 통해 대다수 백성들에게 열어주고자 했던 세종임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하면 소설 <파체>는 읽는 내내 정조임금의 문체반정(文體反正) 사건을 소설화한 <열하광인>을 연상하게 했다. 고문(古文)들을 모범으로 삼기 위해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비롯한 패관소품으로 규정된 서책들을 금서(禁書)로 지정했던 일이나 1785년(정조 9) 서학을 사교(邪敎)로 규정하여 금령을 내리고 서학을 탄압했던 일은 정조에 관한 역사적 사실로 첫 손에 꼽히는 것들로서, 두 작품을 서로 떠올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간 제작·방영됐던 많은 역사 드라마는 역사적 인물 중 누구를 가장 선호했을까. 동아일보 대중문화팀이 1995년부터 현재까지 20년 동안 지상파 3사 역사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회 이상 시리즈 85편에서 주요 배역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이산’을 비롯해 총 다섯 차례 등장한 정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조는 특히 200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꿰찼고, 최근에는 스크린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4월 개봉한 ‘역린’도 정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동아일보 2014.6.16)."라고 한다. 아마 동아일보가 분석 대상을 소설에까지 확대한다면 <파체>도 그 중 한 작품에 반드시 포함되리라 싶다.

끝으로 읽는이를 몰입하게 하기에 부족함 없는 탄탄한 구성력의 한편에 아쉬운 점 몇 가지가 눈에 띄어 재판 참고용으로 정리해본다.

ㅇ 무엇보다 눈에 거슬리는 자간의 '들쭉날쭉'한 편집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ㅇ 비문: "무려 임금의 최측근인•••"(44쪽)
ㅇ 반복으로 지루한 표현: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책에서 이야기를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었다"(41쪽), "햇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서고의 책들을 온몸으로 흡수했다"(104쪽)
ㅇ 존댓법에 어긋난 표현: "자운향의 명성은 누차 들어서 잘 알고 있소. 만나서 반갑습니다."(166쪽) ->> '만나서 반갑소'
ㅇ 오타: "죄인들을 저들끼리 도와가며" ->> '죄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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