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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책 고르기에 가장 결정적 요인은 무엇일까.
눈길을 사로잡는 제목?
빨려들게 하는 글솜씨?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주제?
베르나르 키리니는 `첫 문장`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명저들의 멋드러진 첫 문장 같은 첫 문장을 쓰고 싶어 고민하다, 결국 (••••)로만 채워진 책을 한 권 쓰고 말았으니.
첫 문장만 못 쓰는 남자는 그나마 낫다, 첫 문장도 못 쓰는 남자에 비하면.
기발한 글감과 풀어내기가 돋보이긴 했지만 그다지 여운이 남지 않는 아쉬움을 간직한 책이었다.
굴드는 짜증이 났다. 불안에 사로잡힌 그에게 훨씬 더 획기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첫 문장을 괄호로 처리한다면 두번째 문장이 첫 문장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두번째 문장 역시 괄호로 처리하는 거다. 그러면 세번째 문장이 첫번째 문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번째 문장 역시 괄호로 처리할 것이고, 네번째와 다섯번째 문장도 괄호로 처리하는 거다. 흥분의 절정에 다다른 굴드는 책의 첫 세 단락을 단숨에 써내려갔다. "(•••) (•••) (•••) (•••) (•••) (•••) (•••) (•••) (•••) (•••) (•••) (•••) (•••) (•••) (•••) (•••) (•••) (•••)" 그는 단 하루 만에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는 자랑스러움에 취해 그것을 두 번 되풀이해 읽고 나서 지쳐 쓰러졌다. 그렇게 해서 굴드는 한 권의 소설을 써낸 작가가 되었다.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없어서 결국 아무 내용도 쓰지 못한 소설의 작가.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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