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1 마녀 1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해 늦가을,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가 출판되었다. 두 권으로 묶여있는 이 단편집에는 작가 특유의 철학적이고도 몽환적인 작품들로 가득하다. 자연과 인간의 연결고리가 되는 마녀들의 삶은 인간의 이성과 논리에 의해 죽어간 감성과 직관의 세계를 다시금 보여준다.




 나이든 마녀는 어린 마녀에게 말한다.

 ‘숲은 그 곳에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라 그 곳에 있는 모든 생명, 빛이나 시간이 형태를 이룬 것이지. 그곳에 있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누구든 그 숲의 일부가 돼.‘

 또 다른 작품에서는 그 메시지에 붉은 핏빛을 입혀낸다.

 대규모 폭격과 벌목으로 죽어버린 숲, 그 숲에서 풀이 자라고, 그 풀을 소가 먹는다. 소들은 다시 죽어서 팔려나가고 아이들의 햄버거 빵 사이에 그 육신을 누인다.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행버거에서 작은 손이 하나 뻗어 나오고 마지막 컷에는 숲의 동식물들의 모습이 확대된다. 

 ‘우리를 먹지 마!’




 중세시대 마녀들은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유럽을 휩쓴 페스트, 급격한 인구 증가, 빈부의 차에서 생겨난 갈등과 분노 따위들을 덮기 위해 권력자들은 ‘가난한 여성’들을 제물로 바쳤다.

 가슴 아픈 것은 어느 시대나 희생양이 가장 약한 존재들이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섬뜩한 진실이 있으니,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배자의 교묘한 술책이지만 그것을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은 피지배자의 불안이란 것이다.




 여유를 게으름이라 부르며 저주하고, 가까이 있는 작은 행복은 구질구질한 일상이라 치부하고, 미래 따위는 일찌감치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 경쟁의 원형경기장에서 상대가 죽어나갈 때까지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하루하루.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의 불안감은 지금 어떤 희생양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이 시대 가장 약한 존재는 누구인가? 변론할 입도 없고, 휘저을 손도 없고, 달아날 발도 없는 존재들. 그러고 보니, 대운하 계획을 세운 것은 그들이었지만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바로 자본주의 경제동물로 살아가는 우리의 불안이 아니었을지….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03-2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 때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거 같아요.. 산딸나무님


산딸나무 2008-03-2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쬐끔 힘드는데
그래서 그런지 자기자신을 더 많이 돌아보게 되네요.
개인적인 일 때문에 서재에 당분간 좀 뜸할 것 같은데
한사님을 자주 못 뵙는 게 제일 서운할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8-03-2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시기를, 산딸나무님
사람이 성의를 기울여 해결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를 제외하고요..
땅끝에서 봄기운을 올려보내며 응원합니다. 하하


산딸나무 2008-03-27 09:25   좋아요 0 | URL
며칠 그나마 기운이 났던 게
땅끝에서 보내올려준 파릇파릇한 봄기운 덕분이었군요.
고맙습니다^^

산딸나무 2008-03-27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지요.
고통이 큰 만큼 행복도 깊어지지요.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 '88만원 세대'를 넘어 한국사회의 희망 찾기
우석훈.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석훈, 지승호.

내 주위 젊은(어린?) 후배들이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났다.

두 사람의 글쓰기에 후배들이 열광하는 걸 보면서 나는 내가 꼰대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 왜 재미없지? 왜 자꾸 가볍단 느낌이 먼저 들까? 왜 자꾸 '그래서?'라고 묻게 될까?

대담집이란 형식이 가지는 특성을 인정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로 책을 내다니...' 이번 책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후배에게 "야, 네 또래는 이렇게 써야 읽니?" 했더니, 픽 웃는다.

"읽으면 다행이게요. 어떻게 써도 읽는 놈은 몇 없어요."

그렇지, 어떻게 써도 읽는 이가 별로 없는 책. 그 책을 그나마 이렇게 줄창 내고 있다는데 점수를 줘야 하겠지.

근데, 정말 이십 대는 이 책을 읽고 무슨 희망을 찾을까? 나는 아무리 눈 부릅 뜨고 봐도 희망 따윈 없던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02-27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 지승호..
뭐하는 분들인가요? 진짜 old man이 묻습니다.


산딸나무 2008-02-2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우석훈씨는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이고,
지승호씨는 인터뷰어입니다.

금강초롱 2008-04-12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눈에 띄는 것은 경제시스템에 농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농업의 사활을 국가경제와 결부시킨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데여,촌에 할매,할배들 다 돌아가시면 누가 농사짓냐? 그 농사란 것이 별거 아닌것 같아도 정말 예민하고 예술적인 일인데 첨단기술이라고나 할까?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천시하는 풍조가안타깝군여.농약뿌리는 일만 빼고 .....

산딸나무 2008-04-1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사만한 예술이 없지요.
님의 안타까움에 저도 동감합니다.
 
설득 게임 - 도다 세이지 단편선 2
도다 세이지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도다 세이지의 작품을 읽으면 참 심심하다. 이렇게 심심한 일상들도 이야기가 되는구나,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 심심함이 좋았다. 일상성을 잡아채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시선이 오히려 놀랍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가 SF를 그렸다고? 심심한 느낌의 SF라…….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잡았다. 궁금했다. 내가 아는 도다 세이지가 그려낼 수 있는 SF란 게 도대체 어떤 걸지…….




 이 책을 소개하는 광고에서 ‘체온을 가진 SF’라는 글귀를 보았다. 정말 딱 그 글귀 그대로의 작품이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미래의 어느 순간들이 지금 이 순간 내 일상처럼 펼쳐져 있다. 역시 도다 세이지의 세계다. 그가 그리면 SF도 이렇게 느낌이 달라질 수 있구나. 그만이 그려낼 수 있는 미래의 모습,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알 수 없는 미래의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 되어 내일 모레 서른인 당신이 고3인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 딱 한 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뇌가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된다면 그는 여전히 나의 연인일까?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당신 대신 임신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도발적이고 낯설지만 그 답을 풀어내는 그의 시선은 조금도 낯설지 않다. 타임머신이 발명 되고, 뇌 이식을 해서 몸을 바꾸고 살아가고, 남자가 아기를 대신 낳을 수 있는 날이 와도 인간은, 우리는 여전히 지금과 같은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산다는 게 뭘까? 나는 어떤 존재일까? 가족이란 무엇이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명은 얼마나 신비한 것인가? 그가 들려주는 삶의 모습들은 이렇게 익숙한 고민들에서 시작되고 있다.




 내가 만화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세상. 너무도 낯선 세계를 관통하는 익숙한 사유. 그 양극의 인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풀어내는 예술 세계. 철학의 무거움에 숨 막히지 않게 하는 환상의 가벼운 날개짓, 환상의 가벼움에 날아가 버리지 않게 하는 철학의 진중함. 그 어느 예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험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02-2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이 그저 본능인 거 같아요.
저는 사는 "멋진" 의미를 아직 못찾았답니다.
그래도 삽니다. 하하


산딸나무 2008-02-2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산다...
멋진 답인데요^^

금강초롱 2008-03-30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뇌만 살아있는 상태,내가 살아있는 느낌이란게, 언젠부터인가 이런모습이란 생각이 듭니다.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날은 언제나 오는가? 모든것으로부터 자유,장사꾼 똥은 개도 안먹는 이유를 절실하게 깨닫는 날. 그래도 산다 정말 멋진 답이네요 참! 남자가 건강한 아이를 낳아 다행입니다.

산딸나무 2008-03-3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선생의 글이었죠?
나침반이 한 곳을 가리킬 때 끊임없이 떨고 있다고요.
흔들리지 않는 순간은 죽은 순간이지요.
인생이란 원래 불안한 것.
불안하지 않은 삶은 없는 것이죠.
불안을 즐길 줄 아는 지혜를, 나이들면서 조금씩 알아갑니다.
금강초롱님이 가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대를 성실한 생활인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요?
 
천사들의 진화론 애장판 - 시미즈 레이코 걸작선 6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시미즈 레이코 베스트 시리즈를 꾸준히 사 모으고 있다.

소녀들의 취향을 제대로 맞춰주면서도 독특하고 깊이있는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는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이번 이야기들 가운데 <월하미인>의 한 장면이 오래도록 남아있다.

아름다운 여배우의 보디가드로 일하게 된 로봇 엘레나는 시들어버리는 꽃 따위보다 조화가 좋다는 그녀 앞에서 중얼거린다.

"하지만, 아름다워. 피었다 시들어버리는 꽃이 춸씬 아름다워."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원히 죽을 수 없는 엘레나의 그 선연한 눈빛이, 그 중얼거림이 내 가슴을 후벼판다.

그렇지, 삶이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지.

좌절이 있기에 도전이 아름다운 것이고, 실패가 있기에 용기가 아름다운 것이고, 늙어서 죽는 그날이 있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

한 동안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들 때문에 우울했는데, 그 고민들이 바로 지금 내 삶을 빛나게 한다는것을 알겠다.

내 삶의 성숙과 깨달음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답 나오지 않는 사유들을 붙들고 아파하는 이 순간이 있기 때문이란 것.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02-2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한 만년 살면, 사는 게 지겹겠지요?


산딸나무 2008-02-2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고 싶어서 환장하겠지요.
 
창조적 열정을 지닌 청소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 - 청소년, 우리의 삶을 변주하다
인디고아이들 지음 / 궁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유의 세포는 어리다고 적은 게 아니다. 작지만 그 하나 하나가 우주적 사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