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Classics in Love (푸른나무) 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영하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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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보다 서른 살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 많은 여자들이 결혼이라는 굴레에 묶여 지대한 탄압을 받는다. 서른을 넘기면 거의 '반병신' 취급을 당한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논리에 대해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여성과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 정말로 좋은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회현상을 꼼꼼히 뜯어 보면 허탈해진다. 그토록 자신있게 이십대를 넘긴 여자들이 자신의 사랑을 찾아 결혼을 하지만 그 늦은 사랑 또한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디에 있나? 바로 우리사회가 '사랑'이라는 담론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진지한 고민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데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사랑. 사랑. 노래를 해대지만 정작 그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 중심을 세울수 있는 기회란 많지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교육을 받으며 사랑이란 문제를 철학적으로 삶의 문제로 접근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없거니와 대학이란 델 가더라도 그 곳엔 미팅과 남자와 여자, 호기심, 연애 따위가 난무할 뿐 정작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결혼이란 문제에 대해 자기원칙을 세운 사람이라면 이젠 사랑이라는 문제도 자기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하면서 나는 아주 큰 부담을 갖는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거니와, 읽은 사람치고 다시 한번 더 볼 만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담을 안고서라도 한번쯤은 친한 벗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 까닭을 이 책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오해를 풀면서 해 볼까 한다.

먼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는 대충 알고 있다. 베르테르라는 청년이 롯테라는 여인을 너무도 사랑하여 마침내 자살로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 과히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고 자살충동을 이기지 못한 죽음'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 서 있는 나이에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면 그 청년이 죽은 까닭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회를 향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음을 알게 된다.

젊은 괴테는 권위와 관습으로 굳게 닫혀있는 사회에 대해 갑갑함과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분노를 가진다. 그 분노가 가장 잘 표현된 글이 바로 이 작품이다. 결혼이란 제도와 사랑이란 감정 본연을 파헤치기를 두려워하는, 사회적으로 훈련된 인간들. 그리고 롯테의 약혼자, 알베르트로 대변되는 그 시대 '상식적인 사람들'의 사고. 그런 것들에 적당히 타협하며 살 수 없는 순결한 영혼이 바로 괴테가 그려낸 인물, 베르테르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롯테가 베르테르를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오해하고 있지만 절대로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보다 더 그를 사랑한다. 그녀의 감정을 군데군데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훈련된 자신의 이성에 짓눌려 진실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랑과 결혼은 곧바로 안정을 뜻하는 사회 속에서 그녀도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까. 인간은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 자유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인간다움의 시작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책은 사랑하는데 있어 자유롭고자 하나 그 감정의 원천을 다시 회의하고 파헤쳐 보는 것조차 용납이 되지 않던 시대, 열정적인 청춘의 고뇌가 그대로 담겨있는 괴테의 수작이다. 찬찬히 돌아보면 지금이라고 더 나아진 것이 있는가? 사랑이라는 인간에 대한 최고의 경외심이 아무런 조건 없이 가능한 사회인가? 모든 것을 거부하고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고전이 고전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은 그것이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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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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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밥 먹는 시간을 빼고 꼬박 책에 매달려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책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끝없는 이야기는 끝이 없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감동 또한... 미하엘 엔데의 작품은 내 중학 시절 '모모'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모든 이에게 마음을 열어주던 여자 아이 모모는 내 이상형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은 모모는 그 당시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내게 선물했고 엔데의 작가적 상상력과 어린이에 대한 깊은 신뢰에 다시금 감동했다.

'끝없는 이야기'를 사기 위해 몇군데 서점을 들렀으나 모두 절판되었단 이야기만 들었다. 그 실망감이라니... 그래도 꿋꿋하게 구하고 다니던 중 드디어 묵직한 이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작품을 단연 판타지의 으뜸으로 꼽고 싶다. 판타지를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쯤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판타지는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고, 그 세상은 이 현실 세계의 또다른 해석이고, 대안제시이다. 그 세상의 모든 질서와 법칙들이 그 세상을 지배하고 철학과 윤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또다른 삶의 대안인 것이다.

그런 뜻에서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는 그 어떤 판타지도 넘보기 힘든 판타지 세계 그 자체를 소재로 삼은 뛰어난 도전이다. 판타지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얼마나 섬세하게 엮여 있는지, 그리고 판타지의 어두운 면인 거짓과 망상들이 어떻게 인간에게 오게 되었는지, 그 또한 인간의 책임인 것을... 그리고, 이 책이 전반부엔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바스티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후반부엔 그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에서 나는 작가의 놀라운 혜안을 감지했다.

내가 인간임을 자각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건강한 환상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 이 진리를 망각한 사람들의 결말이 어떠한 지도 엔데는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합리적인 해석보다 이 책에 어울리는 느낌은 책이라는 창조물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뛰어난 선물, 바로 '자아의 발견'이다.

삭막한 세상에 하루하루를 성실한 현대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용을 쓰고 있는 나에게 환상세계 주민들은 '삶이 무엇인지, 나란 누구인지'를 돌아보게 했다. 그들은 그들의 현실과 나의환상을 연결하였고, 나의 진실은 그들의 환상을 일깨워주었다. 책을 덮은 저녁, 세상에서 내가 경험한 가장 긴 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오늘을 잊지 않는다. 끝없는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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