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애장판 1~8(완결) 세트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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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누군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기생수(奇生獸)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도 그 누군가가 되어서 생각해보자. 오랜 고민 없이도 쉽게 하나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인간이란 종적 유대감만 없다면,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제거해야할 첫 번째 적은 바로 인간이 아닐까?




 이와아키 히토시는 그 답에서 이 작품을 구상했을 것이다. 인간만 없다면 지구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은 생명답게 나고 죽을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지구를 위해 인간을 죽이는 유전적 본능을 지닌 생명체가 없으리란 법도 없지 않겠나.

 그러나 앞뒤가 딱 맞아 들어가는 이 전개에서 정작 인간들만은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종이 자신들에게 품고 있는 적의(더 정확하게 말하면 ‘적의’라기 보다는 생명으로서 마땅한 유전적 본능)을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은 자신들이 왜 죽어야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무언의 답은 ‘너희들은 언제 자연을 유린하는데 까닭을 붙였던가.’이다. 까닭 없이 무감각하게 자행되는 폭력 앞에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되는 순간, 인간들은 비로소 인간이란 무엇인지, 생명이란 무엇인지 사유하기 시작한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 만만치 않은 답은 읽는 이의 몫이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도 넓은 의미의 생명이고, 자연이라는 실마리를 남겨둔다. 다윈의 진화론을 긍정하는 사람들과, 부정하는 사람들, 그리고 회의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기 식으로 해석 가능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인간이란 생물을 이 땅에 이토록 번성하게 한 ‘인간다움’이란 유전자에 확대경을 바짝 들이미는 작가의 능력에 절로 탄복하게 된다. 이 작품이 일본에 연재되기 시작한 해가 1989년이니, 얼추 20여 년 묵은 작품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세월의 흔적이 없다. 예리하고 번득이는 철학은 갓 길어 올린 물처럼 차갑고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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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2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수..
애니메이션으로 봤는데 저에게는 좀 징그럽던데요. 하하

산딸나무 2008-08-2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에니메이션은 못 봤는데...
만화책도 장난 아니게 끔찍한 장면들이 많아요.
그래도 워낙에 그런 만화에 익숙하다 보니...
 
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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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에게 똑같은 시대는 없다.

 최규석의 만화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가난한 집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도시하층민에 속하던 계급성을 뼛속 깊이 체화하며 살았다.  

 학교 다닐 적에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들이 말하던 민중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였고, 노동자가 우리 언니 오빠들이었는데 왜 그들은 늘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부정하고 책 속에서 길을 찾아서 헤매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그들이 소련이 망했다고, 사회주의가 끝났다고 술을 먹고 울면서 운동을 그만둘 때,  한마디로 좀 우스웠다. (물론 이런 사람은 소수였고, 정직하고 성실한 다수가 여전히 다양한 운동판을 지켜나가고 있다.)

 나더러 한 때 운동권이었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지만, 내 정체성에서 그걸 부정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 내가 우습게 본 그들의 모습을 어쩌면 다른 이들, 특히 내 가족들과 친구들 역시 나에게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것들이 언젠나 내 뒷머리를 주뼛 서게 만드는 것이다.

 '한겨레 21'에 연재될 당시에도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챙겨 보았는데, 이렇게 다시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어서 행복하다. 특히 연재 당시에는 없던 가족사와 인터뷰 글을 통해서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간간히 눈물을 닦아가며 읽었다.

 책을 덮고 나서 깊은 감동에 젖어 있다가 참으로 뜬금없이 든 생각.

 아, 만화가 하기엔 좀 아까운 인물인데...

 (웃자고 한 얘기는 아닌데, 좀 우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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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여자 큰여자 사이에 낀 두남자 - 장애와 비장애, 성별과 나이의 벽이 없는 또리네 집 이야기
장차현실 글 그림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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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제적 선거였었나?

어느 당에서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그런 문구를 사용한 적이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니 그 말이 문득 떠올랐다.

행복해지는 것은 모든 인간들의 바람일 터이지만, 또한 모든 인간들이 행복해지는 길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행복해지는 길은 타인의 제시하는 길이 아니라 나만의 길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 길을 걸어갈 때는 비난과 외로움을 각오해야하기 때문이 익숙한 것을 깨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 동반되는 것 아닐까?

이 작가의 삶 역시 다수와는 다른 삶, 그러나 오로지 행복해지기를 마다 않기에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참으로 아름다웠고 그들이 일구어온 행복이 빛나 보였다. 

이렇게 빛나는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양한 가족들, 다양한 생각들, 다양한 사랑들... 그래서 행복의 모양이 많아져, 희망의 모양도 더 다양해지는 세상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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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사 Dr. 스쿠르 애장판 전12권 세트
사사키 노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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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이 맘 때는 징글맞게 비가 내린다. 장맛비는 빨래를 눅눅하게 하고, 온 집안을 습기로 채우더니, 급기야는 기분까지 꿀꿀하게 만든다. 이럴 때는 노리코 사사키의 만화를 펴자. 눅눅한 빨래와 가득 찬 습기는 어쩌지 못해도, 꿀꿀한 기분만은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노리코 사사키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인물과 사건들로 사랑받는 만화가다. 그녀의 작품들은 어느 것 하나 재미있지 않은 게 없지만, 올 여름 장마 기간에는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를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특히, 동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시락 싸들고 쫓아다니면서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랑스럽지만 요상하기 짝이 없는 온갖 동물들과, 요상한 성격이지만 가끔 사랑스러운 H대학의 수의학도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개, 고양이, 닭, 말, 소, 양, 돼지 따위 상당히 보편적인 동물들은 기본이고, 쥐, 까마귀, 너구리, 오소리까지 등장한다. 심지어 온갖 세균들도 가끔 출연해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웃음 뒤에 찾아오는 갖가지 깨달음도 있으니, 내리는 비와 함께 생각에 빠져보아도 좋겠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 인간이 동물을 ‘데리고’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살아가듯, 부모와 자식이 더불어 살아가듯, 인간은 동물과 더불어 살아간다.

 살아있는 존재는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낼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는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도 타자에게 자신을 위해 살아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다만 함께 살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뿐이다.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

 나는 혹시 타자에게 나를 위해 살아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는가? 부모에게, 자식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친구에게, 내 반려동물에게…….

 그런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당신에게 내가 연이어 묻고 싶다. 당신은 타자에게 당신을 위해 살아달라고 요구한 적이 정말 없는가?

 산에게, 강에게, 하늘에게, 땅에게, 바람에게, 햇살에게, 공기에게…….

 

 나는 그 질문에 고개를 들고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게 참 많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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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26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만화, 애장판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와 아이들이 모두 업드려서 돌려가며 봤지요.
우리 가족들을 잠시 행복하게 한 만화책입니다.
사람보다 허스키의 맹한 표정이 압권이지요.
하하


산딸나무 2008-08-2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걔 이름이 꼬마였지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친구랍니다.
어찌나 귀여운지...
 
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최주현 옮김 / 새만화책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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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오래 기다렸던 작품이다. 아는 이들에게 많이 권했었는데, 사람들이 읽고 난 다음 하나같이 "2권은 언제 나와?"라고 물었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야 2권을 받아보다니 ...  사람들에게 문자로 "페르세폴리스 2권 나왔음! 당장 서점으로 날아갈 것!!" 하며 문자를 보냈다.

 오늘 아침, 책을 받아들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기다린 세월만큼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 소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타자와의 소통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는데 정말 그 계곡 아래 울부짖는 소용돌이를 직접 맞닥뜨린 느낌이다. 남자와 여자, 보수와 진보, 개인과 국가, 문영과 문명의 사이를 뛰어넘어 소통한다는 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울 줄이야...  정말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게 나을 것 같단 유혹을 느낄 법도 하다.   

 내 또래 작가가 살아온 삶의 만만치 않은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안고 보니, 숨 쉬기 힘들만큼 지친다. 좀 쉬어야겠다. 쉬면서 사유해보자. 나는 내 앞에 놓인 계곡들을 어떻게 뛰어넘어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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