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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사 Dr. 스쿠르 애장판 전12권 세트
사사키 노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해마다 이 맘 때는 징글맞게 비가 내린다. 장맛비는 빨래를 눅눅하게 하고, 온 집안을 습기로 채우더니, 급기야는 기분까지 꿀꿀하게 만든다. 이럴 때는 노리코 사사키의 만화를 펴자. 눅눅한 빨래와 가득 찬 습기는 어쩌지 못해도, 꿀꿀한 기분만은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노리코 사사키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인물과 사건들로 사랑받는 만화가다. 그녀의 작품들은 어느 것 하나 재미있지 않은 게 없지만, 올 여름 장마 기간에는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를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특히, 동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시락 싸들고 쫓아다니면서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랑스럽지만 요상하기 짝이 없는 온갖 동물들과, 요상한 성격이지만 가끔 사랑스러운 H대학의 수의학도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개, 고양이, 닭, 말, 소, 양, 돼지 따위 상당히 보편적인 동물들은 기본이고, 쥐, 까마귀, 너구리, 오소리까지 등장한다. 심지어 온갖 세균들도 가끔 출연해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웃음 뒤에 찾아오는 갖가지 깨달음도 있으니, 내리는 비와 함께 생각에 빠져보아도 좋겠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 인간이 동물을 ‘데리고’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살아가듯, 부모와 자식이 더불어 살아가듯, 인간은 동물과 더불어 살아간다.
살아있는 존재는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낼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는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도 타자에게 자신을 위해 살아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다만 함께 살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뿐이다.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
나는 혹시 타자에게 나를 위해 살아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는가? 부모에게, 자식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친구에게, 내 반려동물에게…….
그런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당신에게 내가 연이어 묻고 싶다. 당신은 타자에게 당신을 위해 살아달라고 요구한 적이 정말 없는가?
산에게, 강에게, 하늘에게, 땅에게, 바람에게, 햇살에게, 공기에게…….
나는 그 질문에 고개를 들고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게 참 많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