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아가면서 때론 사소한 것으로부터 때론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끊임없이 받고 산다. 마음의 상처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 상처는 “삶 자체는 고해다.” 혹은 “상처 또한 자신의 일부이고, 불행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수용하지 못 해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삶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 자신만큼은 남에게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 혹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보호하려는 마음. 그런 방어 심리가 사실은 상처를 만들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수도 있다.
‘나는 남보다 행복해야 하는데, 나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아야 하는데, 나는 나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데, 나는 반드시 사랑받아야 하는데,’ 그런 경직된 생각들은 어쩌면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마주하기 두려워서 거짓된 자아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들이며 많은 심리학자들이 그것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유년시절의 경험, 가장 친밀한 대상과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스스로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거짓된 자아’를 만들어 내는데 소비하는 시간보다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아직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린 자아’를 껴안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0세에서 5세 이전의 기억들이 무의식에 잠재되어 생에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하자. 그 과정에서 술 먹는 아버지, 엄격한 어머니, 때리는 부모, 방치하는 부모, 비판적인 부모 등의 성숙하지 못 한 부모와의 관계에서 ‘어린 자아’의 상처가 무의식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그것을 적절히 치료하지 못 한 채로 성인이 되어 억압하고 마음 한 구석에 그 상처를 묻어두었다면, 어른이 되어서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치료할 것인가?
설사 자신을 학대했던 부모가 늙고 힘이 없어지고, 지난 시절의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한 들, 이미 깊어질 데로 깊어진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 사실 그 상처를 돌이켜 기억하려고 해도 이미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의식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잘잘못을 따져 묻는 것은 치유책이 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스스로가 어떤 이유로, 어떤 경험에 의해 상처를 받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상 부모가 아닌, 다른 대상(부부 혹은 연인)을 통해 이해 받고, 수용 받고, ‘거짓된 자아’가 ‘본래 자아’의 모습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참 쉽지 않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는 눈으로, 그들과 나눈 경험의 기억으로 타인을 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 혹은 새로운 가정을 이룬 가족들에게도 억압된 상처는 전이되거나 투사하게 된다. 편안하고 불안하지 않은, 자아가 건강한 상태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에 직면하고, 불안하고, 자아가 혼란에 빠졌을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보호하여 타인에게 자신의 것을 떠넘기지 않으면 스스로가 견딜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자신의 상처는 타인의 잘못으로 둔갑하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신경증이나 성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탓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분명 타인이 자신의 상처를 건드렸다거나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도록 이끈 촉발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상처를 건드린 것은 타인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은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같은 인격체가 아닌 이상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타인이 미리 알고 있었을 리 없다. 그러므로 타인이 어느 정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지라도 그 이상의 분노를 표출하고, 원망을 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대상에 대한 것까지 분풀이를 할 뿐인 꼴이 된다.
그러므로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대상과도 싸우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상대를 아픈 자신을 더 힘들게 한 대상으로 폄하시킨다면 결국 자신의 상처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악순환의 늪으로 빠지고 만다. 자신의 기억, 자신의 상처를 기꺼이 기억하고, 그 원인이 과거에 있음을 즉시하고, 더불어 그런 과거로 인해 자신이 어느 ‘행동’이나 ‘말’에 상처를 잘 받는지 상대에게 이해시켜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적절한 소통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새로운 대상과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의 상처가 치유될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므로 기꺼이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고, 자신의 아픈 기억을 들춰내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스스로의 치부까지 보여주고, 이해를 구할 수 있을 때, 상처를 치유하는 첫 단추를 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