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 세계 질서의 붕괴와 다가올 3개의 전쟁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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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혁명과 미국없는 세계 – 피터 자이한 (2019) The Absent Superpower (2017)

”세계 질서의 붕괴와 다가올 3개의 전쟁”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의 저자인 피터 자이한이 2017년에 미국에서 펴낸 두번째 책. 우리나라에는 지난 1월에 출판. 그의 첫번째 책 출간 이후의 몇가지 업데이트와 조금 더 상세한 얘기를 하고 있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미국에서의 셰일 산업의 발전 사항에 대한 업데이트, 2부는 셰일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결국 미국이 사라진 세계에 일어날 수 있는 주요 전쟁 3가지, 3부는 미국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이다.

1부에서는 셰일 산업이 저자의 첫번째 책이 출판된 2014년 이후로 어떤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는지 얘기한다. 기술 부분은 지루해서 대부분 패스. 결과적으로 2014년 11월 셰일 석유의 손익분기 비용은 배럴당 75달러였는데, 2016년 11월에는 새로 시추하는 유정의 경우 배럴당 생산비가 40달러대로 하락했다고 한다. 같이 생산되는 천연가스는 공급시설이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 한다. 향후 30년간 천연가스는 1,000 ft3당 4달러 이하에서 안정될 것이라 본다. 저렴하고 공급이 안정된 천연가스는 발전용으로 활용되기에 적합하여 복합화력 발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다. 셰일 혁명으로 인해 미국 4인가족 기준으로 휘발유 가격으로 평균 1100달러 절약, 전기료로 평균 750달러를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저렴한 에너지 가격 외에 다른 긍정적 영향은 일자리이다. 미국 상공회의소 추정으로는 셰일 산업으로 인해 새로 창출된 일자리가 2015년 기준 250만개이며 2020년까지 추가로 50만개가 늘어날 거라 예상한다. 내수가 경제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무역도 캐나다와 멕시코가 대부분인 미국이 굳이 다른 세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거라는 저자의 주장은 이렇게 강화된다.

2부에서는 미국이 사라진 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검토한다. 저자는 세 개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첫번째는 러시아의 확장이다. 서부로는 발트 3국과 폴란드 방향이다. 발트 3국으로의 확장은 스칸디나비아 3국과 덴마크의 참전을 유발하며, 전통적으로 이들 국가의 동맹이며 러시아의 앙숙인 영국도 참전하게 된다. 폴란드로의 확장은 결국 독일의 재무장을 유발하며,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대응하게 된다. 러시아 남쪽으로의 확장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 지역의 강국인 터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시리아에서 이미 러시아는 작전을 시작했다고 본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석유의 양은 평화시절보다 결국 급증하게 되며, 북해 유전만으로는 부족해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까지 석유를 끌어올 수 밖에 없을 거라 한다.

두번째는 페르시아만에서의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대결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 운송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며, 유가 상승의 요인이 된다. 사우디는 홍해 방향으로 석유를 수출하려 하고, 이는 수에즈 운하를 통한 유럽으로의 공급을 용이하게 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멀고 위험한 동북아시아로의 공급이 줄어들게 되는 결과가 된다.

세번째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중국과 일본의 대결이다. 저자는 중국에 대해서는 상당히 위험요소가 많다고 평가한다. 첫번째 책에서 저자는 중국의 통합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경제의 위험요소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석유의 공급가 인상 및 공급량 감소는 중국 체제 자체를 흔들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중국은 자체 석유 생산도 있고,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으로부터의 공급이 있지만, 중동으로부터의 석유 공급이 없으면 그 부족분을 채울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중동으로부터의 항로가 중요한데, 그 경로 주변에 군사력을 투사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으로 저자는 본다. 일본도 중동으로부터의 석유 공급이 중요해지는데, 일본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원양해군력을 가졌기에 이 해역에서 중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무척이나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한국이 중국 쪽에 합류하면 일본이 힘들어질 것이고, 일본 쪽에 합류하면 중국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중국 내부 요인의 한계로 인해 결국 일본이 이 지역에서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에 한국은 일본 쪽으로 합류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과거의 관계로 인해 한일 동맹은 쉽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며, 중국을 압도한 일본의 해군이 한반도에 어떤 위협이 될지에 대해서 한국이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이러한 세가지 전쟁으로 인해, 결국 유럽, 중동, 동북아시아는 활력을 잃게 될 것이고,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지역들이 있다 한다. 그 중의 하나는 동남아시아+오세아니아 경제권이라 한다.

3부에서 저자는 미국이 향후 관심을 가지게될 지역이 이러한 동남아시아 경제권과 바로 앞마당인 중남미 경제권 일것으로 본다. 동남아시아 경제권에서의 영향력을 두고 미국과 경쟁을 할만한 세력은 이제 더이상 중국은 아닐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본다.

이 책에서는 첫번째 책 대비해서 미래를 전망하는 부분이 더 상세해졌고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자이한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갈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조사자료는 방대하고, 그의 결론이 흘러가는 방향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안병직 교수가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자이한의 관점은 미국에 대해서는 낙관주의,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비관주의 일변도이며, 금융 측면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제 한일관계도 이전과 달라지게 될 것이며, 한미 관계, 남북 관계, 북미 관계, 한중 관계, 북중 관계, 중미 관계 등등 어느 하나 이전과 같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여기에 러시아까지 끼면 더 복잡해질 수밖에. 어느 하나 명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터 자이한의 시나리오는 많은 생각거리들에 대해 유용한 관점을 우리 일반인들에게 제시한다.

쉽게 감정적이 되어서도 안될 것이며, 쉽게 우리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려서도 안 될 것이다. 냉정하게 실리를 따져서, 최대한 온전한 형태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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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정훈 옮김 / 김앤김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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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 피터 자이한

The Accidental Superpower

“미국은 브레튼우즈 체제를 이탈하고 스스로 고립주의를 선택할 것이다.”

피터 자이한, 스스로를 지정학 전략가이자 글로벌 에너지, 인구 통계학, 안보 전문가로 소개하고 있다. 민간정보 기업인 Stratfor에서 분석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다가 2012년에 자신의 회사인 Zeihan on Geopolitics를 설립했다. 2014년에 미국에서 나온 이 책은 자신과 자신의 회사의 역량을 홍보하는 역할이 클 것 같다.

지리, 역사, 정치, 사회 등 다방면의 지식을 모아서 분석하는 내공은 상당해 보인다. 그는 지정학과 인구통계학을 결합한 프레임을 기반으로 과거의 역사를 리뷰하고, 현재의 상황을 상당히 명료하게 분석한다. 다만 미래를 전망할 때는 그의 외삽이 조금 과해 보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의 미국의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듯 해서 그의 이 책은 상당히 유용하다 생각된다.

저자는 먼저 어떻게 미국이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기술한다.(주1)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는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브레튼우즈 체제를 기반으로 형성된다.(주2) 미국이 자신의 동맹국에게 미국 시장을 개방하고 안보를 제공하는 이 브레튼우즈 체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국제 사회의 모습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오랜 기간 동안 앙숙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상호 협력해서 유럽 연합을 만들었다. 세계 곳곳의 유럽 식민지들이 자유를 찾았다. 일본은 이제 더 이상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의 위협이 되지 않았고,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서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중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로부터의 위협 없이 내부 통합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아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모습은 그 이전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기이한 일이었다. 세계 경제가 돌아가게 하는 모든 것, 에너지 공급 시장에 대한 안정적인 접근,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브레튼우즈 체제 기반하에서 발전했다.

저자는 이러한 체제가 앞으로 심각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2015년부터 2030년까지 향후 15년간의 세계의 변화를 구성하는 세가지 요소를 도출한다. 첫째는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 둘째는 인구역전 현상, 셋째는 셰일 혁명이다. 그 모든 격동을 미국의 입장을 중심으로 하여 분석한다.

애시당초 브레튼우즈 체제는 소련의 견제를 목적으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에 소련은 붕괴했다. 오늘날의 러시아는 그 이전의 소련만큼의 위협적 대상은 아니다. 저자의 첫번째 질문은 브레튼우즈 체제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이다.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자유무역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미 해군은 연간 족히 1,500억달러를 쓴다. 미국이 이 체제로부터 전략적 이득은 얻지 못하면서 체제 유지비용을 계속 부담하고 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면 브레튼우즈체제는 존속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인구 역전 현상은 주요 국가의 연령대별 인구구조가 역피라미드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결론은 이 부분에서도 미국만이 인구 역전 현상으로 인한 충격을 가볍게 겪을 것이라 말한다. (주3)

사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세번째인 셰일 혁명이다. 미국은 지난 30여년간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였지만, 2014년 기준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보다 석유를, 러시아보다 천연가스를 더 많이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 생산국이다. 세일 혁명으로 인해 미국은 중동으로부터의 석유 운송 체계에 더 이상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현재의 세계 정세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은 서서히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이탈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인구 구조는 역전되고 있으며, 셰일 혁명은 미국으로 하여금 에너지 유통 경로를 방어할 필요가 없게 하였다. (주4) 미국은 에너지와 식량을 모두 자급자족할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서 미국은 나머지 세상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된다. 결국 '개입하지 말자'가 세계를 대하는 미국의 기조가 된다. 오랫동안 미국의 보호를 받고 사는데 익숙해진 나라들은 이제 자기 스스로 지켜야 한다.

저자는 이제 미국의 안보 우산 때문에 얌전히 지냈던 나라들은 이웃나라를 상대로 마음껏 도발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전제하고, 전세계의 주요 국가, 지역에 대한 지정학적, 인구통계학적 분석을 진행한다. 결국 유럽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며, 캐나다는 분열될 것이라고 본다. 중국 역시 북부, 중부, 남부를 통합하고 있는 결속력이 약해질 것으로 보며, 일본의 팽창주의는 중국을 계속 고민케 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도.)

대만과 한국의 입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지정학적으로 미국이 필요로 하는 국가이고, 뛰어난 산업 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동맹 체제에 포함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크다고 본다. 다만 한국, 대만이 동남아시와 오세아니아의 나라들과 엮여서 경제 클러스터를 형성한다면, 미국에게도 매력적이 될것이라 한다.

전세계적으로 혼란이 가중되겠지만, 미국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을 지속하게 될 것이라는게 저자의 결론이다.

지난 번에 읽은 [예정된 위기]의 저자 안병진 교수님은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라는 책에서 자이한의 논리가 지리학적 인구학적 측면에서는 설득력이 있으나,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는 측면은 자이한이 놓친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미국만의 위기가 아니고 전세계적인 위기로 퍼져나갔고, 그 영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렇게 주요 국가들은 금융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과연 미국이 피터 자이한의 논리대로 완전한 고립주의로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트럼프가 주도하는 미중 무역 전쟁의 여파가 전세계를 흔들고 있다.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에 대해서 여야할 것없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미국은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아직 놓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안보에 대한 부담을 이제는 동맹국들에게 넘기려 하는 모습은 마치 후퇴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에 함대를 파견하라고 한국과 일본에 요구하는 모습은 일견 소름끼칠 정도이다.

전세계적인 패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의 움직임과 세계 무대에서 퇴장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언뜻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결국 오버랩되면서 수렴해갈 것이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도발은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일본의 우익이 지향하는 바가 어렴풋이 짐작되기도 한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정치 외교에서 세계적인 시각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갈지 미리 알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나라로서는 앞으로 어려운 시절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

(주1) 저자는 이집트, 오스만 투르크, 이베리아(스페인과 포르투갈), 영국, 독일이 어떻게 각각의 역사적 시점에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두가지 요소는 지리적 위치와 기술의 상호작용이었다. 영국은 이베리아보다 원양 항해기술을 더 잘 이용했고, 독일은 영국보다 산업화를 더 잘 활용했다. 그러나 이 두 요소를 더 잘 활용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지리적 입지가 있었으니, 그게 미국이었다. 거대한 곡창지대를 보유한 미국 땅은 미시시피 강을 중심으로 하는 수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교역을 통한 자본 창출이 용이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주변 국가들 중에서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으며, 아시아나 유럽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생각하기 어렵다. 결국 미국은 지리적 이점나 기술발달(즉, 산업화) 측면에서 기존의 어떤 강국보다 유리한 입장이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산업기술들이 확산될 무렵, 미국에는 이미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역량을 갖춘 교육 체제와 금융 체제를  자체적으로 구축한 도시 중심지가 50개에 이르렀다. " (115p)

(주2) 미국은 1890년 부터 세계의 초강대국이 되었고, 이 막강한 힘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제 2차 세계 대전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막강한 지상 군사력을 지닌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브레튼우즈 체제를 구축하였다. "자유무역"을 캐치프레이즈로 한 브레튼우즈 체제를 추진하면서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세가지를 제시하였다. 첫번째로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 두번째로 모든 해상 운송의 보호, 세번째로 전략적 우산이었다. 미국 시장은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거의 유일한 시장이었기에 모든 나라들이 진입을 원하는 시장이었다. 그러한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해상 운송이 필수적이다.  그 이전 시대에는 이 해상 운송은 항상 위험하였기에 각 나라 별로 별도의 해군력을 운용해야 했으나 이제는 미국이 해상 운송을 보호해주겠다고 하니, 더이상 바랄 나위가 없었다. 전쟁으로 인해 다른 나라의 해군력은 사실상 한계에 달했지만, 미국은 6,000척이 넘는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러한 체제에 합류화는 나라는 모두 소련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단 한가지 조건은 "냉전은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도록 내버려둔다는 조건이었다." 이 세가지 조건은 당시 서유럽 뿐 아니라, 독일과 일본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기에 브레튼우즈는 삽시간에 확대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도 1969년 소련과의 국경 분쟁 이후, 브레튼우즈 체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주3) 청년층, 장년층, 노년층 등 각 연령대 별로, 소비와 투자의 패턴이 다르다. 청년층은 소비대비 소득이 크지 않지만, 장년층은 소득이 늘어 잉여 소득을 자본시장에 투자하게 된다. 선진국 전체에서 장년층 인구 비중이 높아지면서 대규모 잉여자본이 창출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이 은퇴하는 시기가 되면, 원금손실 위험이 있는 투자는 하지 않으며 대부분 연금을 받게 된다. "몇 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금융부문 전체가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자본을 제공하던 거대한 세대 대신에, 규모가 작은 세대가 등장하게 된다. 자본 비용은 역사상 최저에서 역사상 최고에 근접할 정도로 치솟게 된다. 특히 역사상 가장 덩치가 큰 은퇴 집단의 연금과 의료비 지출을 고려하면 말이다." (161p) 이는 전세계 선진국 전체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저자는 지금까지와 같이 자본이 풍부했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며, 앞으로도 이런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 부분에서도 다른 나라 대비 유리하다. 미국에서만 이러한 인구역전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인구가 다른 주요 국가 대비 가장 젊으며, 이민자들이 잘 동화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은 인구 감소가 겨우 한 세대 동안 발생한다. 미국만 유일하게 1980년에서 1999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Y세대)가 인구 구조를 역전시킨다고 한다. 인구 구조가 고령화되는 다른 주요 국가에서 소비 시장의 성장은 곧 정점을 찍게 된다. 2030년이면 미국만이 자본이 풍부한 유일한 나라, 시장이 성장하는 유일한 나라로 남게 된다고 본다.

(주4) 2008년 현재 미국 GD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4%, 이 가운데 5% 정도는 에너지다. 지난 6년 동안 셰일은 이 5%를 절반 정도로 줄였고, 앞으로 0이 될 전망이다. 수출은 10%정도인데, 북미 지역이 이 중의 1/3을 흡수한다. 결국 미국은 세계 에너지 안보, 무역 공급 사슬의 안보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될 뿐 아니라, 무역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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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위기 - 북한은 제2의 쿠바가 될 것인가?
안병진 지음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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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한일 관계로 인해 하루하루 괜시리 긴장하게 되는 날들이다. 미국은 당연하지만, 한일 관계에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의 서투른 봉합이 가진 한계를 목격해서일까, 미국 측에 유리한 상황이기에 사태의 진전을 내버려 두고 있는 걸까.


트럼프의 등장으로 시사되는 미국의 변화는 어떤 것일까. 갑작스러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그 자체를 목적이라고 믿기는 힘들다. 미국 본토인들은 남북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트럼프의 재선에 조금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 비중이 얼마나 클까. 그러다보니 중국을 견제하는 큰 그림에서 어떤 포석인지 궁금해진다.


방위비 분담액 증액 이슈에서도 느껴지는 바와 같이 미국은 전세계적인 군사력 전개에 대해 그 필요성과 유용성을 다시 질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셰일 가스가 미국 본토에 넘치도록 있는데, 굳이 미국이 중동에 신경을 써야할 이유는 무엇일까? 남은 건 중국과 러시아. 중국이 막강하지만, 미국 경제를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중국과의 신경전은 구 소련과의 냉전과는 구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러시아와 중국이 상호 협력 관계로 가는 것은 결국 미국의 압박 때문이겠다. 절묘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 세력과 미국의 동맹국이 만나는 곳이 하필이면 한반도이다. 왜 늘 이래야만 하는 걸까. 이 상황에서 남북 문제는 중러 연합과 한미일 동맹 사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걸까. 남북은 종전을 선언하고 그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을까?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고 나아가서 국교 정상화까지 갈 수 있을까? 얼마나 걸릴까?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은 어떻게 나올까?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어떠한 생각으로 임해야 할까? 그리고 얼마나 오래 걸릴까?


어떤 전문가도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지금 시점에서 섣불리 예측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궁금해서 어떤 책이 있을까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저자인 안병진 교수님음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으시고, 미국에서 미국 정치를 가르치다 현재는 경희대에서 미국학과 교수로 재임중이시다. 저자는 1962년의 쿠바 사태의 진행 과정에 참여했던 미국 케네디 정부, 소련의 흐루쇼프,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의 행보를 집중적으로 리뷰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결국 자신만의 프레임에 갇혀서 상대방의 의도를 간파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을 보여준다.


그 프레임중 하나는 '베두인 전설'이다. 늙은 베두인 족장이 정성껏 키우던 칠면조를 누군가 훔쳐갔다. 족장은 큰 위험을 느끼고 두려워 하면서 아들에게 경고했으나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무시했다. 결국 어느 날 낙타도 도둑 맞았고, 족장 아들의 딸이 강간을 당하기에 이른다. 족장은 이렇게 한탄한다. "칠면조를 훔쳐갈 수 있다는 걸 놈들이 알았을 때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바라보는 케네디 정부에게 쿠바는 칠면조이다. 쿠바에 미사일 배치를 용인하는 순간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위기의식이 케네디를 지배했다. 그 첫번째가 베를린이었다. 당시 동독의 한가운데 있던 베를린 서부 지역은 미소 대결의 주요한 전장이었다. 케네디는 쿠바 미사일 배치의 목적이 베를린을 장악하려는 흐루쇼프의 큰 전략의 한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이것이 두번째 프레임인 '베를린 대전략 가설'이다.


이 책은 당시 위기의 단계별로 나타난 케네디 정부의 대응과 그에 이르기까지의 의사 결정과정을 '베두인 전설'과 '베를린 대전략 가설'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으로 해석한다. 저자는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의사 결정이 이러한 프레임을 인정하고 나면 더 깔끔하게 설명될 수 있음을 보인다. 


쿠바 위기는 그 진행 과정 중에 케네디와 흐루쇼프가 차츰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었고, 그 의도가 '베두인 전설'이나 '베를린 대전략 가설' 같은 것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위기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서 케네디는 결국 소련의 흐루쇼프와 핫라인을 설치하게 되고,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까지 추진하던 중에 암살되고 만다. 후임자는 당시 부통령이면서 민주당내 강경파였던 존슨. 그는 베두인 전설 프레임에 기반한 의사 결정으로 미국을 베트남전이라는 수렁으로 이끈다. 소련에서도 흐루쇼프가 쿠바 위기의 후유증으로 인해 실각하게 되고, 보다 호전적인 브레즈네프가 들어서면서 냉전은 더 연장되고 말았다.


 '베두인 전설' 같은 프레임이나, 그 이전에 겪었던 강렬한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 등이 쿠바 위기에서 양측의 의사 결정 과정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짚어보면서 저자는 이 과정에서 얻게 된 깨달음을 남북 관계, 북미 관계에 적용시켜보고자 한다.


저자는 북한이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지를 생각해보자고 한다. 한국 전쟁 때 미국의 어떤 장군은 '북한에 대한 폭격을 통해 북한을 석기시대로 돌려 놓았다'고 할 정도로 북한은 미국의 군사 전력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고 한다. 북한 입장에서 소련과 상대했던 미국의 가공할 만한 핵전력은 북한으로 하여금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격심한 신경발작적 반응을 보이게 했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은 '허드슨 하버'작전이라는 이름으로 B-29 폭격기를 평양으로 날려 보내어 모의 핵폭탄을 투하한 적도 있다고 한다. 거대한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본 당시 평양에 있던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와 트라우마는 어땠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저자는 북한 지도부가 이러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북한에게 있어서 핵무력은 결국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협상의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한 수단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핵무기 획득 자체가 목적이라면 은폐하려 했을 것이며, 그렇다면 이스라엘 처럼 모든 것을 지하에 건설해야했을 것이라 한다.


저자는 그렇다고 북한의 핵보유를 정당시 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추구는 수십년간의 경제 제재와 봉쇄를 초래했으며, 북한 정권은 언제나 교체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으며, 북한 국민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북한의 핵포기가 가능하냐고 하는 질문에, 저자는 그렇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한다. 쿠바와 국교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냐는 질문은 오바마 시대 전까지만 해도 비웃음을 샀다고 한다. 오바마 시대 이르러 미국과 쿠바의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국교 정상화를 이루었고, 오바마는 쿠바를 방문하기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가 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다고 한다. 북한 핵무기도 이와 같은 측면이 있다고 본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보다 더 다양한 국제 관계가 작용하는 한반도에서 북한 핵문제는 수많은 행위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게임이다. 상대방이 두는 수에 따라서 부단히 전략을 재조정해야 하는 바둑과 같다. 필연적 미래를 상정하는 결정론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상황에 따라 핵문제는 한없이 연장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때에 갑작스러운 해결을 볼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쿠바 위기 이후에도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까지 5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미완성이다. 북한과의 평화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평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베두인 전설' 같은 프레임에 사로잡히지 않고, 당면한 이슈 해결을 위한 창의적인 방안을 (마치 쿠바 위기 때 캐네디 행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계속 제안하고 실행하는 것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내는 것은 정치적 용기와 미래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전자책으로 읽어서 책 두께에 대한 감이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종이책으로 36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결코 적지 않았다. 쿠바 위기의 진행 과정은 상당히 자세해서 그 과정의 디테일에 큰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흥미진진했다.


안병진 교수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라는 책을 2016년도 후반에 읽고 참 감명 깊었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지난 미국 대선의 구도를 진단하면서 민주당의 승리를 예측했었으나 현실은 트럼프의 당선이었다. 미국 전문가인 저자도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었다. 그 책이나 이 책에서도 느껴지는 바 저자는 리버럴한 이상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때로는 그 이상으로 인해 현실의 냉엄함을 놓치는 것은 아닐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 이상에 대한 희망으로 인해 현실의 결론도 그 방향으로 바이어스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작은 우려 정도. 


그럼에도 이분의 논의 자체는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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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 -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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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The Great Transformation 입니다. 하지만 번역 제목이 더 인상적입니다.  '축의 시대'.


저자는 머릿말에서 우리가 이 시대에서 겪고 있는 많은 난관 뒤에는 더 깊은 정신적 위기가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전례 없는 규모로 폭력이 분출했던 20세기'를 겪으며 저자가 목격한 바는 '우리가 서로 해치고 상처를 내는 능력은 경제적, 과학적 진보에 뒤처지지 않고 함께 발전해 왔다는 것'과 '인간 존중의 마음을 키우도록 도와주어야 할 종교조차 종종 이 시대의 폭력과 절망을 반영 하는 듯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대한 이런 진단을 내린 뒤에 저자가 눈을 돌린 것은 과거의 역사 중에서 특히 '축의 시대'입니다. 저자는 카를 야스퍼스를 인용하며, '축의 시대'를 정의합니다. 기원전 900년 경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에 세계의 네 지역에서 이후 계속 해서 인류의 정신의 자양분이 될 위대한 전통이 탄생했다고 하며 이 시기가 인류의 정신적 발전에서 중심축을 이룬다 하여 '축의 시대'라 한다고 합니다.


유목 문화에서 차차 농경 문화로 옮겨갈 무렵, 빠르게 진행된 도시화, 차곡차곡 증가하는 부와 늘어가는 인구는 그 이전 시대보다 더한 폭력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전쟁과 대규모 살상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던 많은 사람들은 폭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그 이전까지 막연하게 가져왔던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신념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주나라의 봉건제에 기반한 통치질서가 세워지기까지, 그리고 그 봉건제가 다시 무너지고 전국 시대를 거쳐 진에 의해 통일되기까지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제자백가로 알려진 다양한 사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주나라의 예전을 발전적으로 재해석해서 다시 세우려는 공자로부터 시작해서 묵자, 장자, 노자, 맹자 등 다양한 사상들이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가 체제를 효율적으로 정립하게 만든 법가의 정치철학이 진으로 하여금 천하를 통일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도시 국가인 폴리스들끼리의 국지적인 경쟁적 발전 단계에서 페르시아와의 전쟁이라는 국제적인 격변에 휩쓸렸던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이해하게 하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에우리피데스 등으로 대표되는 그리스의 비극은 고난에 직면한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 묘사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공감의 경지에 이르게 하였고,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어지는 합리적, 철학적 사고는 그리스가 페르시아 침략이라는 전대 미문의 고난에 접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대응방안을 빠르고 신속하게 채택하게 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게 하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변방인 유다에서 야훼 신앙은 앗시리아와 바빌론의 침공으로 인한 포로기를 겪으며 새롭게 재해석되고 발전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하라파 문명과 마우리아 왕조를 겪으면서 자신을 깊게 성찰하는 전통이 세워졌고, 고타마 싯다르타가 등장하여, 불교를 일구어 냈습니다.


이러한 각 지역에서의 사상적 발전은 도덕성, 자비, 비폭력에의 추구를 공통적인 강조점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축의 시대의 희망이고, 그 시대 영성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일들의 배경과 그 전개를 10개장에 걸쳐서 설명합니다. 1~3장까지는 축의 시대의 배경이 되는 기원전 1600년경 부터 700년경까지를 다루고, 4~9장까지는 축의 시대인 기원전 700년경부터 220년경까지를 다룹니다.


마지막 10장에서는 '축의 시대의 귀환'이라는 이름으로 기원전 200년경 이후의 시대에 축의 시대의 유산이 제국의 성립, 또는 해체라는 새로운 변화의 상황에서 어떻게 재발견되었는지를 얘기합니다.


중국에서는 한 제국이 성립되고 통치철학으로서의 장점을 가진 유가가 중심적인 사상이 되었지만, 다른 사상들도 폭넓게 수용되었습니다.


마우리아 왕조가 해체된 인도의 불교 전통에서는 새로운 불교 영웅 보디사트바(보살)가 탄생했습니다. 그는 깨달음을 얻어 니르바나에 도달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피난처, 세상의 빛, 세상의 구원 수단의 안내자'가 되기로 하려한 사람들로 축의 시대의 오래된 이상을 새로운 형식으로 번역한 존재였다 합니다.


유대교는 로마의 지배라는 변화된 상황에서 새롭게 개화하였다 합니다. 바리사이파는 유대교의 축의 시대에서 가장 포용력있고 진보적인 영성을 발전시켰습니다. 당시의 대표적인 랍비 힐렐은 토라 전체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했습니다. "당신 자신에게 가증스러운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시오. 그게 토라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 주석일 뿐이오. 가서 그것을 공부하시오." 당시 유대교에서 토라의 본질은 이러한 황금률이었습니다.


유대교를 배경으로 한 기독교 역시 이타적인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중요한 순종의 규범으로 삼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자기 비움과 사랑이 기독교의 핵심이었습니다. '사랑은 자만심으로 부풀어 올라 자기에 대한 과장된 관념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것이고, 자기를 잊는 것이고, 끝없이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축의 시대의 마지막 개화가 서기 7세기의 아라비아에서 이슬람교의 탄생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슬람의 전통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 관용적 태도를 강조했으나 오늘날의 모습은 그러한 전통과 멀어진 모습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원전 200년 이후의 주요한 흐름으로 유가를 중심으로 한 사상체계의 안정적 정립, 불교의 갱신, 랍비 유대교로의 변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탄생을 열거하면서 축의 시대가 새롭게 귀환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10장의 마지막 소챕터에서 오늘의 '이 위험한 시대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큰 공포와 고통의 시기에 살고 있다. 축의 시대는 인간 삶의 피할 수 없는 사실인 고난과 직면하라고 가르쳤다. 우리 자신의 고통을 인정할 때에만 타인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의 시대 현자들이라면, 우리의 고통이 곪아서 폭력, 불관용, 증오로 터지도록 놓아두는 대신, 그것을 건설적으로 이용하려는 영웅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유다의 예레미야는 추방당한 유대인들에게 원한에 휘둘리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으며, 그리스인은 불과 몇 년 전에 그들의 도시를 유린했던 페르시아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비극 서사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축의 시대 현자들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상황에서 자비의 윤리를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늘 일깨워야 한다. 그들은 상아탑에서 명상을 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찢긴 무시무시한 사회, 오랜 가치들이 사라져 가는 사회에 살았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공허와 심연을 의식했다. 이 현자들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감이 단지 유익하게 들리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 자비와 모든 이에 대한 관심은 최선의 정책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통찰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시대는 과학과 기술의 천재들의 시대지만, 축의 시대는 영적 천재들의 시대였습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암 치료법을 찾아내는데 쏟아붓는 것 만큼이나 많은 창조적 에너지를 인류의 영적 불안의 치료법을 찾는데 쏟아 부었습니다


황금률은 축의 시대에 새롭게 발견된 '개인'들에게 '내가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듯이 타인도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일깨웠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과제가 이런 통찰을 발젼시켜, 여기에 전지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비극적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리스인이 이미 알고 있었듯이, 여기에는 간단한 답이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 비극이라는 장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사물을 볼 것을 요구합니다. 종교가 우리의 부서진 세계에 빛을 가져오게 하려면, 맹자가 주장했듯이, 우리는 사라진 마음, 우리의 모든 전통의 핵심에 놓여 있는 자비의 정신을 찾으러 나서야 한다고 하며 책을 마무리 합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각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각 지역에서의 역사를 시대별로 지역별로 나누어 기술한다기 보다, 같은 시대에 각 지역에서 어떤 흐름들이 있었는지를 차례차례 조망하는 방식의 기술이어서 그 시대 자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네 개 지역에서의 수백년에 걸친 영적, 종교적 통찰의 결과가 결국 '네 자신이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로 수렴된다는 것은 놀랍고도 감동적인 결론이었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공감의 시대'가 되어갈 거라고 얘기합니다.  SNS의 도래와 같은 기술적, 문화적 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더 잘알게 돕게 되므로 '공감'은 이전 시대 보다 조금 더 쉬어질거라 합니다.


반면에 저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끼리 더욱 각박해져가는 모습은 이미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난민에 대해서 보다 더 엄격해지고,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증가한 오늘의 현실은 '공감'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도 보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남겨진 선택지는 두가지 극단의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이 책아 우리에게 주는 통찰은 축의 시대가 남긴 정신적, 영적 경험과 지식의 기반 위에서 공감의 실천을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시대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희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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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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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간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제목이 참 인상적입니다. 아픔을 길로…

우리는 대략 알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축난다는 것을. 개인적인 스트레스 뿐 아니라 사회적인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그만큼 몸이 더 아프고 결국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막연하게 나마 알고 있습니다.

간혹 기사로 전해지는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늘 그때 뿐이었지요. 그 분들과 함께 하는 많은 전문가분들이 계심에 감사하면서, 제 자신은 그 이야기들을 잊어갔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건사고들이 줄을 잇고, 또다른 희생자들이 나타납니다. 아픈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마음이 우울해 지다 보니,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선을 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습기 사건, 세월호 사건 어느 하나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이었지만, 그 비극에 대처하는 우리 나라 사회의 무능함 역시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늘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사회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가 그들의 몸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개인적인 질병이나, 사고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발생 빈도가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해서 더 높게 나타난다면, 그 뒤에 뭔가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는게 자연스럽습니다.

저자인 김승섭 교수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소방공무원, 전공의 등의 아픔을 직시하며, 그들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그 내용을 데이타로 정리하고 분석에 분석을 거칩니다. 그렇게 과학의 이름으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아픔의 원인을 드러내려 합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과 성소수자들같이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더 큰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을 위한 작업들을 어떻게 해가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상황을 진단하고자 하는 저자는 사회역학자입니다.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입니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벤젠 노출이 백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일반적인 역학의 역할이라면,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차별과 사회적 고립과 고용불안이 인간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가설을 탐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폭력의 경험과 질병의 발병 사이의 시점이 제법 차이나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증명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다양한 기법이 동원되고, 오랜 시간에 걸친 관찰 조사가 필요하게 됩니다.

사회적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가지지 못할 때도 많다 합니다. 사회적 차별을 경험해도 과연 자신의 경험이 차별이었는지 판단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차별이라고 인정하기 보다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덜 불편하기 때문에 차별로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저자는 IBM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린 노동자들의 직업병 소송을 도와주었던 보스턴 보건 대학원의 리처드 클랩 교수의 사례를 인용합니다. 그는 “문헌 검토를 진행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서 1961년부터 1991년까지 IBM에서 일했던 3만 3,730명의 건강자료를 분석해 암 사망 비율을 계산하고 그들의 직업이 뇌종양, 신장암,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결과물을 법정에 제출합니다.” 법정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클랩 교수의 보고서를 공식적인 자료로 채택하지 않았고, IBM측은 여러 언론을 통해 클랩 교수의 연구 결과를 깎아내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다른 언론들은 클랩 교수를 지지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한 저널은 클랩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합니다.

인터뷰어: 왜 이런 일을 하나요? 돈 때문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클랩 교수: 골리앗에 맞서는 것이지요. 법정에서 노동자들은 보통 이길 수 없습니다.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변호사는 어떤 학자는 그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라는 클랩 교수의 말과 같이 저자는 그렇게 이 사회의 약자들의 편에 서고자 했습니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과도 함께 하며, 그들의 아픔을 기록하려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아픔의 사례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1994년의 성수대교 참사,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등 여러 참사들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 합니다. 아픔은 기록되지 않았고, 대책도 전무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온전히 기억되지 않습니다.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이 참사의 연쇄고리를 끊었던 사건으로 기억되기 위해 저자는 살아남은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자는 또한 동성애를 향한 혐오가 비과학적이라고 합니다.

“동성애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동성애는 질병’이고 ‘치료받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라는 식의 폭력적인 구호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의학계에서는 오래전 정리되어 더 이상 논쟁조차 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이러한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들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라고 합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한 이후 사회학, 심리학을 포함한 여러 학제에서 성소자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오늘날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학계의 상식이 되었다 합니다.

동성애 전환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미국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 집단에서조차 극단적인 주장으로 취급되고 있다 합니다. 1976년에 설립되어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은 동성애 전환 치료를 주도하는 가장 큰 규모의 탈 동성애 운동 단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2013년 6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그동안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글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문을 닫습니다.

또한 저자는 HIV/AIDS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측면에서 동성애를 그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과학적 발언이라고 합니다. 파트너가 HIV에 감염되었을 경우 이성 간, 동성 간 성관계 모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동성애에 대한 혐오에 기초해서 동성애와 HIV 감염을 연관 짓는 것은 HIV/AIDS의 예방과 치료에 큰 장벽이 되었고, 오히려 그 유병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현재의 연구 결과라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동성애가 치료받을 질병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성적지향이고 HIV/AIDS는 바이러스가 원인이며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과학적 사실 위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무리로 저자는 1960년대 이전의 미국의 로세토 공동체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1992년에 발표된 논문에서 로세토 공동체는 30년간 비슷한 환경을 지닌 이웃 마을 대비 지속적으로 낮은 심장병 사망률을 보여주었다 합니다. 로세토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고, 이 확신이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합니다.

로세토 공동체 이야기는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고 합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을요.

저자는 후배들과 함께하는 지면을 통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면서 책을 맺습니다.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저도 싫습니다.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 책은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소중한 책입니다. 관련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막연히 마음 한 끝 아프기만 하고 무엇을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역학이란 학문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소 주관적일 수 있는 주장이 아닌, 논리적 과학적 데이타와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에 근거하다 보니 힘있게 다가옵니다.

진심으로 우리 사회가 이 저자가 기대하듯 그렇게 변화해 가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그러한 변화에 큰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모든 수고를 감당하기로 결단한 저자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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