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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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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5)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는 미국의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라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미국의 지인들을 통해서 그가 페북에 올리는 글들이 공유되고 있었다. 주로 현대 영시를 이미지 파일로 올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써가는 형식의 포스팅이었는데, 늘 감명깊게 읽었었다. 유장한 영어 문장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문학을 이루고 있었지만, 영시를 읽어내는 그의 시선은 따스하지만, 표현은 강하였고, 글의 표면은 잔잔했지만, 깊은 곳에서는 큰 흐름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런데, 그는 이리도 두꺼운 책을 몇 권이나 쓴 사회운동가였다.


이 책은 여태까지 거의 읽어본 적이 없는 그러한 장르, 그러한 카테고리의 책이다. 모든 내용이 낯설고 어렵게 다가왔다. 이 책은 사회학 책이라고 해야할까.  참으로 어렵고, 무겁게 다가왔지만, 마음에 울림이 깊게 남았던 책이다.


이 책은 ‘이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들 (the brokenhearted, 마음이 부서진 자들)의 정치’라고 정의 한다. 이 책에서 마음이란 말을 라틴어의 원래 의미를 되살려 정의한다. 


 “마음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단지 감정만이 아니라 자아의 핵심을 가리킨다. 머리로 아는 것과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 통합되는 곳이고, 지식이 보다 인간적으로 충실해질 수 있는 장소다. 우리가 자아와 세계라고 이해하는 모든 것이 마음이라고 불리는 중심부에서 하나가 될 때 자신이 아는 바에 따라 인간적으로 행동할 용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주요 관심사로 민주주의의 인프라의 두가지 층위를 형성하는 ‘인간의 마음이 지닌 보이지 않는 역동, 그리고 그 역동이 형성되는 가시적인 삶의 현장들’을 이야기 한다. 어떤 제도나 시스템 등을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떤 의제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마음이 부서진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서로 비슷한 형태의 슬픔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비록 그 경험이 상반된 결론으로 이끌었을 지라도 그 마음이 부서진 경험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이 책은 그렇게 민주주의의 위대한 성취에 대해서 독자와의 공통의 이해를 확인하고, 그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다. 자신과 다른 편을 적으로 몰아붙이는 분노의 정치를 비판하며, 갈등과 긴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임을 재삼 강조한다. 마음의 역동이다.


현대에 이르러 사생활에 대한 강조가 강해지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이었던 공적 생활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어떻게 공적인 삶을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의 성찰의 결과를 정리한다. 그것을 위한 두가지 제도로 교육과 종교를 꼽는다. 


독실한 퀘이커 교도로서 전체주의적 압제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신념을 간직하고 퍼뜨린 선배 퀘이커 교도의 얘기를 언급한다. 영국 식민지 시절 미국의 퀘이커 교도였던 존 울만은 링컨보다도 앞서 노예를 해방시킨 주인공이다. 20년을 주변 퀘이커 교도를 설득한 존 울만의 노력의 결실로, 퀘이커교는 남북 전쟁 발발 80년 전에 노예를 해방시켰다.


저자는 올바른 마음의 습관인 민주적 마음의 습관을 이루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며, 그 노력에는 매우 깊은 자아 성찰, 영적인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한다. 미국의 수도사이자 작가였던 토마스 머튼의 예를 든다. 그넌 숲 속의 수도원의 완전한 침묵 속에서 억안된 자들의 목소리를 더욱 생생하게 들었다.


물론 저자는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절대 낙관적이지 않다.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도전적인 것은 “비극적 간극”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간극의 한쪽에는 세상의 어려운 현실이 있고, 그 반대 쪽에는 실제로 이 세계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삶이 있다. 이런 종류의 가능성이 부질 없는 꿈이나 환상이 아니며, 우리가 자신의 삶 가운데에서 목격해 온 대안적 현실이라 한다.


우리는 미래를 오직 상상 속에서만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현재의 순간 속에 살아간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하는 일 어느 것도 변화를 일으킬 것 같지 않은 기분이 종종 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많은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하며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글을 길게 인용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생애 안에 성취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진실하거나 아름답거나 선한 것은 어느 것도 역사의 즉각적인 문맥 속에서 완전하게 이해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고결하다 해도 혼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멈칫하고 있는 이 무렵, 우리는 다시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우리는 참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마음의 습관에 대해서 얼마나 성찰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그러한 우리 마음의 내적 인프라가 없다면, 겉보기의 모든 진보와 발전은 결국 사라지고 언제든지 민주주의는 제자리 걸음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경향신문 서평

http://myungworry.khan.kr/254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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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없는 사회 - 사회수선론자가 말하는 각자도생 시대의 생존법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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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의 '어른 없는 사회'

우연히 찾아든 이 책은 아래와 같이 '아이'와 '어른'을 얘기하면서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길에 떨어져 있는 빈 깡통을 줍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할 일입니다. 길에 떨어져 있는 빈 깡통을 줍는 일은 누구의 의무도 아닙니다. 자기가 버린 게 아니니까요. 버린 녀석이 주워야지 지나가는 사람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 일은 모두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이'입니다. 어른은 다릅니다. '어른'이란 그럴 때 선뜻 깡통을 주워서는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자기 집으로 가져가 분리수거해서 재활용품 수거일에 갖다 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른입니다."

총 10개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현대 일본 사회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통찰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그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통찰을 자신의 삶으로 담아내는 모습에서 숨이 탁 막히네요.

우치다 타츠루.

그냥 존경스럽습니다.
이런 사회학적인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리 감동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2016년에 읽은 책중 단연 베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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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뇌 - 독서와 뇌, 난독증과 창조성의 은밀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
매리언 울프 지음, 이희수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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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뇌>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영성 지음)에서 자주 인용이 되던 책이어서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고 나니, <책 읽는 뇌>라는 제목도 흥미를 끌게 되더군요.

저자인 매리언 울프는 독특하게도, 또는 도전적으로 이 책의 들어가는 말을 '나는'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보통 '나는'으로 첫 문장을 시작하지는 않쟎습니까. 그러면 안된다고 배운지라.) 자기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자신이 어떤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얘기합니다. 그는 보스턴에 소재한 터프츠 대학교의 '독서와 언어 연구센터'의 책임자로서 독서와 난독증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특하게 시작한 들어가는 말의 마무리 또한 예기치 못한 문장의 인용이었습니다.

"이것은 거의 모두 깊은 희망과 확신으로 쓴 글이다. 생각을 걸러내고 단어를 엄선하여 진실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고백하건대, 실로 멋진 일이었다."

뭔가 학술적인 느낌의 책의 서문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는 느낌입니다. 책의 내용이 궁금해지는 문장입니다. 결국 책의 끝까지 다 읽고나서 이 후기를 쓰면서 다시 보니, 저자가 왜 저 문장을 인용했는지 이제 확 이해가 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크게 세 개의 부로 나누어 '문자의 기원이라는 아름답고, 다양하고, 변형적인 역량에 대한 찬양'을 1부에서, '독서하는 뇌와 다양한 학습 경로의 발달과 관련하여 펼쳐지는 획기적으로 새로운 조망'을 2부에서 다루고, 3부에서는 '앞으로 전개될 상황의 장점과 위험성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언급'하면서 책을 마무리 합니다.

1부의 제목은 '뇌가 글을 읽게 된 역사'로 문자의 발명과 이후의 발전사를 간략하게 짚으면서 서구 언어의 기초를 이루는 알파벳의 형성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1장을 시작하는 2개 문단이 많은 것을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다. 인류가 독서를 발명해 낸 것은 불과 수천 년 전이다. 인간은 이 발명품을 통해 뇌 조직을 재편성했고 그렇게 재편성된 뇌는 인간의 사고 능력을 확대시켰으며 그것이 결국 인지 발달을 바꾸어 놓았다. 독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며 역사의 기록은 그 발명의 결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조상이 이렇듯 훌륭한 발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뇌가 비상한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기존 구조 안에서 새로운 연결(connection)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뇌가 경험에 따라 형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세스다. 가소성(plasticity)은 뇌 구조의 핵심적 특성으로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이루는 많은 것의 기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15p)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도 가장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이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다'라는 문장이었는데, 이 책은 첫 문장이 이 문장이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보니, 저 문장이 일차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독서는 선천적이지 않으므로 의식적으로 배워야 한다.' 이고 이 배우는 과정이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합니다.

읽다가 보니 저 문장이 의미하지 않는 바도 있습니다. '독서를 하는 능력은 유전과는 상관이 없다' 에 대해서는 그렇다 그렇지 않다라고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책의 후반부에 난독증이 가족력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부분이 있어서 '독서를 하는 능력은 유전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정도로 얘기할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 중의 하나로 저자가 보는 현 시대에 대한 진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도래 입니다.

"지금은 독서하는 뇌에서 디지털 뇌로 전환되어 가는 과도기다. 따라서 독서를 하기 위해 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인간의 사고와 감성과 추론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아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독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진화했는지, 아이가 독서를 어떻게 학습하는지, 독서 때문에 뇌 안의 생물학적 기반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해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지적 동물의 불가사의한 복잡성을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지적 능력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지,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어떤 선책을 해야 할지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16p)

'독서하는 뇌'는 무엇일까요? '독서하는 뇌'와 그렇지 않은 '다른 뇌'가 따로 있는 걸까요? 이 책에서 저자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지적 능력을 학습하기 위해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인간 두뇌의 놀라운 능력을 독서 행위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뇌에는 인간의 진화 단계상 더 옛날에 형성되었으며 시각, 언어 등 보다 기초적인 프로세스에 사용되는 구조와 회로가 들어 있다. 뇌가 독서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이들 기존 구조와 회로를 사용해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다재 다능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가 새로운 연결과 경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17p)

독서를 위한 '새로운 연결'이 곧 '독서하는 뇌'를 그렇지 않은 '다른 뇌'와 달라지게 하는 요인입니다. 그래서

"독서는 뇌가 가소성(plasticity)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비로소 학습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독서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뇌 안에 이미 생리적, 인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18p)

이런 뇌 안의 변화는 뇌 안의 다양한 부위 (좌뇌, 우뇌,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 등) 사이의 뉴런 연결이 형성되고 그 안의 프로레스가 자동화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뇌의 발달의 생물학적 측면은 결국 각 사람의 개인적이고 지적인 측면에 반영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과 내용은 우리가 과거에 읽은 것으로부터 형성된 식견과 연상에 기초하는 것이다. 작가인 조셉 엡스타인(Joseph Epstein)의 말마따나 "작가의 전기를 쓰려면 그가 언제 무엇을 읽었는지 상세하게 다루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그가 읽은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18p)

이후 저자는 우선 생물학적인 측면에서의 '독서하는 뇌'의 발달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얘기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것과 같이 원래 기능하게 되어 있는 것 이상의 체계를 독서라는 행위가 요구하기 때문에,  뇌는 여러 부위의 협력체제를 뉴런(신경세포)의 연결체계를 통해서 활성화시킨다고 합니다.

"독서하는 뇌는 시각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개념 및 언어 기능에 연결시키기 위해 기존에 설계되어 있던 뉴런(신경세포)의 경로를 활용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독서나 수리능력과 같은 새로운 능력을 창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자 사람의 뇌가 
첫째,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구조들을(주로 시각 및 인지 관련) 새로운 방법으로 연결하는 역량,
둘째, 정보의 패턴을 인지하기 위해 세밀하고 정확하게 특화 영역들을 형성하는 역량,
셋째, 이 영역들로부터 자동적으로 정보를 이끌어 내 연결시키는 능력,
이렇게 세 개의 정교한 설계 원리를 임의로 활용한다.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뇌의 세 가지 조직 원리가 독서의 진화, 발달 또는 실패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27p)

이런 회로와 경로들은 문자와 단어에 수백 번 노출된 다음에야 만들어지며, 난독증과 같은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수천번 이상 노출되어야 형성된다고 합니다.

"능숙하게 독서하는 뇌는 망막을 통해 정보가 들어가면 문자들의 물리적 속성을 특화된 일련의 뉴런들러 처리하며 이 뉴런들은 문자에 대한 정보를 자동적으로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다른 시각 프로세싱 영역으로 들여보낸다. 바로 그곳이 독서하는 뇌의 실질적 자동처리 능력의 핵심 영역이다. 그 안에서 시각 프로세스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하는 뇌의 모든 표상과 프로세스들이 어렵지 않게 속사포처럼 발화(rapid-fire)하는 것이다."

워낙 당연한 듯이 독서를 해왔지만, 그 안에서는 저렇게 뇌에서 많은 처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경이롭습니다. 예전에 책을 읽는 아이의 브레인 이미징을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감탄스러웠습니다. 바로 저 문장에서 묘사되는 바와 같이 매우 빠르게 다양한 부위들이 활동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새롭게 재편성된 뇌의 능력 중에 상당히 중요한 역량이 있습니다.

"독서에는 본래의 설계 구조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뇌의 역량이 반영된다. 독서에는 또한 텍스트와 작가가 제시해 놓은 내용의 한계를 뛰어넘는 독자의 역량이 반영된다. 좋아하는 책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의 하루를 묘사한 프루스트의 문장을 읽으면서 당신의 뇌 시스템이 모든 종류의 정보, 즉 시각, 청각 정보 및 의미론적, 통사적, 추론적 정보를 흡수하는 동안 독자인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프루스트가 기술한 내용과 당신 자신의 생각, 개인적 식견을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앞부분에 프루스트의 글을 보여주고 독자로 하여금 읽어보게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저자는 무척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가가 제시해 놓은 내용의 한계를 뛰어넘는 독자의 역량.' 이를 독서의 핵심인 생성적(generative) 장점이라고 부릅니다. 디지털 텍스트의 시대에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독서의 핵심을 이부분으로 지적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지적으로, 독서는 인류로 하여금 '주어진 정보를 뛰어 넘어' 너무나도 아름답고 훌륭한 무한히 많은 사고를 창조하게 해 준다. 우리는 현재,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고 이해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 본질적인 장점만은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 (33p)

프루스트가 독서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사고를 도출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문장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지혜가 시작된다는 것이 사뭇 사실이라고 느껴진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욕망을 주는 것뿐인데 우리는 작가가 답을 가르쳐 주길 기대한다. 그 욕망이란 작가의 지극한 예술적 노력으로 완성된 지고의 미를 관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 떠오를 수 있따. 그런데 진실은 그 누구에게서도 전수받을 수 없으며 오직 우리 스스로 창조해 내야 한다는 의미의... 법칙에 의해 그들의 지혜의 끝은 곧 우리의 지혜가 시작되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4p)

프루스트에 의하면 "독서의 목적이 작가의 생각을 초월해 훨씬 더 자율적, 변형적이고 결국 문서화된 텍스트와 별개인 독자적 사고로 옮겨간다는 점이다" 라고 저자는 결론 짓습니다.

그리고나서 저자는 책의 뒷 부분에서 다룰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서 1장을 마무리 합니다.

2장에서는 고대 문자의 역사와 그 문자 체계들을 사람의 뇌가 어떻게 인지하였을 지를 살펴봅니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지만, 굳이 여기서 요약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3장에서는 2장의 문자의 역사를 이어 가면서 고대 그리스 알파벳의 '발명'에 방점을 두어서 설명을 해나갑니다. 그리스 알파벳은 모음을 상징하는 문자를 가지는 최초의 표음 문자 체계라 합니다. 그리스 인의 이 놀라운 발명 덕분에 이 그리스어 알파벳은 대부분의 인도-유럽어 알파벳과 언어 체계의 시초가 되었다 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한글에 대해서도 거의 한페이지에 걸쳐서 설명을 합니다. 그리스 알파벳과 한글과 같이 자음과 모음 상징이 별도로 존재하는 문자 체계는 '무엇보다 글을 처음 배우는 이들이 매우 쉽게 학습할 수 있는 문자체계' 라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이들에게는 문자소와 음소가 거의 완벽한 규칙에 의해 대응되는 완벽한 알파벳이 주어졌다. 그 결과, 그 아이들은 수메르나 아카드 또는 이집트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유창한 문해 능력을 습득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범위를 벗어난 이야기지만, 고대 그리스의 아이들이 남보다 빨리 유창한 언어 능력이 발달했기 때문에 사고가 확장되어 위대한 그리스 고전 문화가 탄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102p)

상당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는 이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놀라운 아이러니가 되는 것은 정작 고대 그리스인들은 알파벳 교육에 대해서 모호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무려 400년 동안이나 그랬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리스인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도로 발달된 구어 문화가 문자 문화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고 합니다. 특히 가장 격렬하게 의문을 제기한 인물은 소크라테스 였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반대의 요지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첫째, 문자 언어의 불가변성
구전 문화에서는 대화를 통해 진리에 접근해갈 수 있지만, 문어는 되받아 말하지 못한다. "문어의 이러한 불가변적 침묵이 소크라테스식 교육의 핵심인 문답식 대화 프로세스를 가로막는 요소였다." (108p) 침묵 뿐 아니라 문자 언어는 오해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지적되었습니다. 오해의 결과로 인해 실제로 알지 못하면서 알게된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 그래서 공허한 자만심만 낳게 되는 결과를 우려했다고 합니다. 

둘째, 기억의 파괴
소크라테스는 "열심히 암기하는 프로세스만으로도 충분히 엄밀한 개인의 지식 기반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렇게 쌓은 지식은 스승과의 대화를 통해 정제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문자가 기억의 '비방(recipe)'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파괴할 수 있는 잠재 인자라고 결론지었다. 문자를 사용하면 문화적 기억을 보전하는 데 확실히 더 유리하지만 그보다는 개인의 기억과 지식의 검토와 구현에서 그것이 하는 역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111p) 저자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언젠가 부터 중요한 내용을 외우는 일들을 줄여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신의 어머니만 해도 방대한 양의 시문학을 외우고 있어서 언제든지 상황에 맞는 글귀를 읊으신다고 합니다. 그런 면이 부족한 자신과 그 이후 세대로 삶에서 기억이 차지하는 자리가 감소하여 그 능력이 감퇴될 경우, 궁극적으로 어떤 상황이 될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집니다. 

셋째, 언어에 대한 통제력 상실
"소크라테스가 두려워한 것은 지시그이 과인과 그로인한 결과, 즉 피상적인 이해였다. 스승의 지도를 받지 못한 독서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돌이킬 수 없는 지식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이었다"고 합니다. "글은 적절한 사람에게 말을 걸고 그렇지 않은 사람 앞에서 침묵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 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독서는 '신판 판도라의 상자'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세 가지 이유를 하나하나 살펴 보면서 그 이유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함의를 살펴봅니다. 그것은 저자가 아래와 같이 인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독서하는 뇌의 역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2,000년도 더 된 그 옛날, 소크라테스가 문자문화에 반대하며 제기한 문제들이 21세기초의 걱정거리와 거의 다를 바 없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구전 문화가 문자 문화로 바뀌면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제기하는 위험성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걱정하던 내용이나 현재의 아이들이 디지털 세계에 몰입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근심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우리는 현재 매우 중요한 전환기에 놓여 있따. 다만 우리의 경우에는 문자가 디지털 및 비주얼 문화로 옮겨가고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세가지 이유를 하나하나 살펴보다보면, 실제로 그 이전의 풍성한 구전 문화에 대비하여 문자 문화가 지금도 나타내는 부정적인 면들에 대해서 소크라테스가 매우 깊은 통찰력으로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문자 문화의 풍성함을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문자 언어라는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과 지식은 그 당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물결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가 세운 반대 논리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를 소크라테스의 그 반대 이론을 글로 기록한 제자 플라톤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적은 사실 문자로 기록된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플라톤은 알고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맞서 싸운 상대는 언어가 가진 변화 무쌍한 역량을 우리가 검토하지 못하고 그것을 '가능한 지적 능력을 총동원하여'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115p)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겪어 가고 있는 우리에게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지금 던져 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요지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깔고 2부를 시작합니다.

2부의 제목은 '뇌가 독서를 배우는 방법'입니다. 알파벳 체계를 아이들이 어떻게 학습하게 되는지를 차근차근 밝히고 있습니다. 2부는 별도의 글로 따로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마음 깊이 새겨 두면서 읽고 싶은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며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모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3부의 제목은 '뇌가 독서를 배우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2부에서 소개된 아이들의 단계별 읽기 학습 양태가 나타나지 않거나, 일반적인 경우보다 느리게 진행되는 아이들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증상을 통칭해서 '난독증' 이라고 하며, 이 난독증의 원인에 대해서 알려져 있는 바를 2부의 내용을 토대로 설명합니다.

이 부분에서 비로소 저자는 자신의 아들이 난독증이 있음을 얘기합니다. 그제서야 저는 이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써내려갔는지 공감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상세하면서도 광범위한 범위는 그 간절함의 결과였고, 모든 행간에 그 간절함이 배어 있는 책이었습니다. 진정성이 배어 있다고나 할까요.

2부는 따로 정리하기로 하고, 일단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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