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 성큼성큼 당차게 내게로 들어온다. 팔뚝을 쓸어내리는 순간이 많아졌다. 옷장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여름 이불도 빨아야 할 때가 되었고 밥을 먹을 때마다 뜨거운 무언가를 찾게 된다. 따뜻한 감자 두 알과 물 김치로 든든한 아침을 먹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살짝 고백하자면 성실한 예배는 아니었다.


대청소를 하기에도 좋은 날씨, 피크닉을 떠나기도 좋은 날씨, 맑고 투명하고 화장한 날씨에 집 안에만 있어야 해서 친구는 우울하다고 했지만 마음껏 햇살을 받고 게으름을 부리기에 정말 완벽한 아침이다. 방충망 위에 살포시 앉아 곤충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재미도. 가을이구나, 싶다.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을 오래 담아두고 싶다.





주 중에는 보일러를 수리했다. 화요일 저녁에 거실의 온도조절기의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걸 발견했다. 다시 켜지지 않았다. 예고나 기척도 없이 작동을 멈췄다. 작년 여름 보일러를 수리하거나 교체해야 할 위기가 있었지만 잘 견디나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이틀에 걸쳐 수리를 했고 보일러를 교체했다. 비용이 상당해서, 속상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이너스의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이런 내가 태평한 사람이구나 여길 것이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한 겨울에 발생했더라면 여러 날 불편을 감수해야 했으니. 지금이 가장 적절한 때일지도 모른다고 정리를 했다. 후회를 하고 책망을 하는 일은 한 번으로 족하다. 계속 그것에 매달려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니 깔끔하게 털어버려야 한다.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아서 힘들다.


기다렸던 황정은 작가의 연작소설 『연년세세』가 출간되었다. 그런데 가격이 비싼 건 아닌가. 나만 그럴까. 네 편의 이야기, 188쪽. 이 책으로 처음 황정은 작가를 만나는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마케팅의 비용일까. 그냥 좀 궁금하다. 황정은 작가를 좋아하기에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아무튼 빨리 읽고 싶다.


밤에는 활짝 열어두었던 문을 닫는다. 열어두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습하고 더웠던 날들이 지나갔다. 이제는 창문과 방문을 닫는다. 문을 닫을 계절이 왔다. 열렸던 모든 것들이 닫히는 계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열려있어야 할 것은 열린 채로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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